선더말 아재33(작성자; 손진길)
1968년 2월 하순에 대구의 ‘계성고등학교’에서는 입시에 합격을 한 신입생을 소집한다. 그날 반편성을 하기 위한 것이다. 수험표와 합격증을 가지고 합격자들이 학교 운동장에 집합한다. 그날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일찍 남산동 하숙집을 나와서 대신동에 있는 역사가 오랜 ‘계성고등학교’의 교정을 밟아 본다;
손진길이 대구의 영수학원에 다니고 계성고 입시를 볼 때에는 하숙집에서 방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주인집 아들 손기중과 함께 다녔지만 지금은 혼자이다. 그 이유는 손기중이 1차인 계성고에 떨어져서 2차로 ‘대건고등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학교는 그 옛날 조선인 신부 ‘김대건’을 기념하는 유명한 카톨릭 고등학교이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이제는 신입생의 입장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계성고등학교’의 건물들을 살펴보기 위하여 그 유명한 ‘50계단’을 밟아본다. 시험 당일에는 계성고 옆에 있는 계성중 건물에서 입시를 보았기에 고교 건물로 올라가는 ‘50 계단’을 사용하지 아니했던 것이다;
언덕에 우뚝 자리를 잡고 있는 계성고 본관 건물을 쳐다보니 한달만에 그 감회가 새롭다. 본관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는데 그 위를 뒤덮고 있는 담쟁이 잎이 은근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단단한 건물이 마치 대학교의 건물과 비슷하다;
역사가 오랜 대구의 사립 명문의 위세를 본관 ‘핸더슨’관이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걸맞게 ‘계성고등학교’의 선생들은 실력이 좋고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심심찮게 대학의 전임강사로 선발이 되어 간다는 말도 들리고 있다. 당시 ‘계성고등학교’는 그와 같이 실력이 좋은 선생들이 교무실을 장악하고 있는 명불허전의 사립 명문인 것이다.
과연 손진길이 경험하게 되는 당시의 ‘계성고등학교’는 그 정도의 자랑에 그치고 있는 학교일까? 그것이 아니다 두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전국최강을 자랑하는 ‘유도부’가 있다;
또 하나는, 소위 ‘특별반’을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 실체가 ‘서울대 입시반’이다;
애교심이 남다른 동창생들이 역사가 오랜 모교의 명성을 다시 빛내기 위하여 ‘계성고등학교’에 엄청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 자금으로 학년당 50명씩의 성적장학생을 두고 있다. 그들 전액장학생들이 특별반에 편성이 되어 서울대학 입학을 목표로 죽기 살기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매년 30명 정도가 재수를 하는 경우까지 포함하여 ‘서울대학교’에 합격을 하고 있으니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는 서울대학교에 100명 정도의 합격자를 내고 있는 ‘경북고등학교’를 제외하면 당시 ‘계성고와 ‘사대부고’가 그 다음 순위를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서울대에 10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내고 있는 명문 고등학교가 당시에는 서울의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등이고 지방에서는 부산과 경남의 부산고와 경남고, 대구와 경북의 경북고, 광주와 전남의 광주제일고 정도이다. 그러한 형편이므로 대구의 계성고와 사대부고가 각각 30명 정도의 서울대 합격자를 매년 생산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성과인 것이다.
그와 같은 정보를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입학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는 전혀 그러한 정보가 없이 그 학교에 입학을 한 희귀한 경우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합격자인 신입생들을 운동장에 집합하게 하여 반편성을 할 때에 손진길이 깜짝 놀라고 만다. 그 이유는 담벼락에 1학년 1반부터 8반까지 팻말을 세워놓았는데 8반에는 손진길 자신을 포함하여 10명 정도만이 호명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손진길이 옆을 보니 1반에서 7반까지는 전부들 6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호명이 되었다. 어째서 자신이 호명이 된 8반에는 10명밖에 신입생이 없는 것일까? 그는 참으로 순진하게 지레짐작을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입학성적 순서로 반을 편성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성적순으로 끊어오다가 보니까 7반이 끝난 다음에 꼬랑지로 10명이 남았는데 내가 거기에 속한 것이야. 내 입학성적이 꼴찌반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이거 앞으로 학업을 따라가자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구나!...”;
3년전에 경북중학교 입시에서 떨어져본 경험이 있는 손진길이다. 그래서 그는 이상한 열패의식에 젖어서 그렇게 제멋대로 짐작하고 있다. 그때 참으로 희한한 일이 발생한다. 학교교실에서 갑자기 50명 정도의 신입생이 한꺼번에 운동장으로 몰려나오고 있다. 그들이 모두 1학년 8반의 팻말 아래에 합세한다.
그러자 그 팻말로 담임선생이 걸어온다. 그 다음 그는 60명의 자기 반 학생을 인솔하여 1학년 8반 교실로 들어간다. 1학년은 4층 건물의 1층을 사용하고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1반이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끄트머리인 8반은 제일 안쪽 깊숙한 곳에 그들의 교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교실에 신입생들이 모두 착석하자 담임이 자신은 ‘황재호 선생’이라고 자기소개부터 한다. 그 다음에 중요한 말을 한다; “우리 8반은 ‘특별반’이다. 입학성적이 우수한 60명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50명은 정식 입학시험을 치기 전에 같은 재단에 속하는 ‘계명대학교’에서 특차시험을 보고 합격한 장학생들이다”;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이 깜짝 놀란다. 그는 꼴찌인 학생들이 모여서 8반이 된 줄 알았더니 그것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입학성적이 굉장히 좋았다는 말이구나!...’ 이어서 담임선생의 말이 들린다; “그런데 나머지 10명은 입학성적이 좋아서 특별반에 편성이 된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특차 장학생보다 입학성적이 더 좋은 학생이 들어 있다”.
잠시 말을 끊고서 황선생이 가방에서 60장 정도의 접힌 종이를 꺼낸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내가 각자의 입학성적과 전체 석차를 적은 메모지를 준비했다. 전면에 적혀 있는 이름을 호명하면 앞에 나와서 받아 가기 바란다. 잘 살펴보고서 자신의 성적과 석차를 확인한다. 그리고 명심해라. 그 성적은 매달 치르는 ‘월말고사’에서 언제나 바뀔 수가 있다는 사실을…”;
손진길이 자신의 메모를 받아 와서 자기 좌석에서 조용히 펴본다. 그는 갑자기 눈이 커지고 있다. 엄청난 사실 앞에 너무나 놀랐기 때문이다. 그 메모지에 적여 있는 글자가 다음과 같다; “입학시험 점수 681점, 전체 석차 10등”. 자신이 전체 10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계성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것이다. 그 성적이면 특차를 본 50명의 장학생 안에 넉넉히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사실일까? 자신이 왜 자기의 학력과 능력에 대해서 그토록 무지했던가?...’
그렇게 자신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있는 손진길의 귀에 담임 황선생의 말이 들려온다; “그 성적이 이상하여 학교에서는 일주일 안에 다시 ‘임시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때 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는 매달 ‘월말고사’를 보고 ‘성적과 석차의 전체 일람표’를 작성하여 학생들을 지도한다. 더구나 학년별로 전교 10등까지는 그 이름과 석차를 ‘베스트 텐’이라는 제목으로 ‘50계단’ 입구 게시판에 한달동안 전시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담임 황선생이 더 중요한 사항을 전달한다; “’계명대학교’에서 실시한 ‘특차시험’에 합격한 50명의 장학생들은 매 학기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실시하게 되는 ‘장학생 선발시험’에서 다시 50등 안에 들어야만 계속 장학생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다. 물론 그 성적 안에 들게 되면 누구나 한 학기 동안 ‘전액장학생’이 될 수가 있다”.
그 말을 듣자 상당수의 학생들이 술렁거린다. 그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내내 장학금을 주는 줄 알고서 ‘특차시험’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6개월 짜리이다. 반년마다 다시 시험을 보아 50등 안에 들어야 전액장학생 혜택을 계속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많은 학생이 경북에 있는 시골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던 자들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장학생 선발에 응시했는데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결사적으로 공부하여 항상 50등 안에 성적이 들어야만 한다”. 특별반인 8반에 그것도 전체성적 50등 안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이곳 학비가 비싼 명문사립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매 학기말에 이루어지는 반 편성 배치고사는 피를 말리는 경쟁이다;
그러한 결의를 다지고 나서 분위기가 가라앉자 황선생이 이어서 말한다; “우리 계성고등학교가 전액장학생 50명 제도를 운용한지 몇 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동안의 통계치를 보면 한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3년 동안 한번도 전액장학금을 놓치지 아니한 학생이 절반이다. 그 25명이 졸업한 그해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물론 재수까지 합하면 30명 정도가 된다. 그러니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기를 바란다. 이상”;
그날 그 말을 들은 선더말 아재의 차남 손진길이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래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내 입학성적이 10등이다. 그러니 매달 월말고사에서 ‘베스트 텐’ 안에 들어 게시판에 이름이 올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확실하게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가 있다. 형이 ‘서울대학교’에 응시하여 낙방하자 아버지가 한동안 전혀 말씀이 없으시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셨다”.
손진길의 각오가 야무지다; “이제는 내가 3년 후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여 축 쳐진 아버지의 어깨를 펴드려야 하겠다. 3년전에 ‘경북중학교’에 떨어진 것으로 낙방은 이제 내 인생에서 끝이다. 나는 다시는 큰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기로 벌써 맹세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그 결심을 확고하게 실천할 때이다. 한번 부딪쳐 보겠다. 누가 이기는지, 그리고 최후에 누가 웃게 되는지!…”.
참으로 당찬 손진길이다. 키는 별로 크지 않아도 그 결심과 단호함이 어쩌면 그렇게 선더말 아재의 청소년 시절을 빼 닮아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가 은근히 차남에게 무언의 기대를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남 손진길이 자신의 결심을 죽기 살기로 실천하고자 한다. 그 결과 일주일 안에 치루어진 ‘임시고사’에서 다부진 그는 ‘공동6위’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둔다.
손진길과 함께 6위를 했던 친구 ‘박성웅’은 훗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된다. 그렇다면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의 장래는 친구들보다 굴곡이 많은 삶으로 연결이 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쨌든 ‘특차시험’에 관한 공문조차 받지 못한 경주의 이름도 없는 문화중학교의 학생이 대구의 사립 명문인 ‘계성고등학교’에 전교 10등으로 입학하고 그 다음에는 공동 6등을 하자 담임 황선생이 일찍 하숙집으로 가정방문을 온다. 그날 하숙집 할머니가 학부형을 대신하여 담임선생을 대접한다.
그 자리에서 황선생은 손진길 학생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하숙집 할머니께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손주처럼 거두겠다고 대답하신다. 그때쯤 손진길의 형인 손진목은 더 이상 하숙을 하지 아니하고 좀 떨어진 동네에 방을 하나 얻어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손진목은 거기서 제 마음대로 살고 행동하는 것이 편하다. 하숙집에 있으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동생 손진길에게 노출이 되고 또한 부친이 자주 방문을 하니 그것이 귀찮은 것이다. 말로는 장남이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대학입시학원에 열심히 다닌다고 하는데 부친인 선더말 아재가 그 점을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변화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1968년은 계속 쉬지않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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