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328강(사66:21-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6. 21:21

이사야 강해 제328(66:21-24)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3()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 세상의 질서를 어떻게 세우고 계시는가?(66:21-24)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고유하신 창조주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신다는 사실을 전함으로써 그의 기나긴 예언을 마감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골자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창조입니다(65:17-25).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뼈대인 일종의 하드웨어(hardware)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렇다면새로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는 방법 곧 소프트웨어(software)는 무엇일까요이사야는 그 점에 대해서 대략적인 예언을 해줌으로써 그의 대 선지서의 기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살펴보면이사야가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소프트웨어 그 경영방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인력관리입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이 제사장과 레위인을 선발하십니다그 대상은 인생 가운데 영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 또는 부활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성도들입니다그리고 출신성분은 상관이 없습니다.  선민출신이든지 이방인출신이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새로이 제사장과 레위 인의 역할을 감당할 자를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66:21).

(2)  둘째영생관리입니다성도들에게 영생을 누리게 해주십니다성도들이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기억하시고 항상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시기 때문입니다그 대상은 두 종류입니다①하나는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예배하고 있는 자들입니다②또 하나는 부활과 승천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메시아처럼 여호와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입니다(66:22).

(3)  셋째예배관리입니다새 하늘과 새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과 생물들이 매월 초하루와 안식일이 되면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66:23).

(4)  넷째패역한 자의 관리입니다새로운 세상에는 역사적인 전시관이 하나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거나 대항을 하다가 죽은 자들의 시신입니다그 시신들에는 여전히 벌레가 살아서 꿈틀거리며 형벌의 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타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가증한 모습을 관람함으로써 성도와 모든 생물들은 다시 한번 창조주 앞에 겸손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66:24).

과연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내용과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 레위인을 삼으리라여호와의 말이니라(66:21); 그 가운데, 제사장과 레위인, 여호와의 말’의 의미에 유의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를 다시 해봅니다;

(1)  여기서 그 가운데’는 만민구원의 취지에 찬동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라나선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끝까지 선민만의 구원을 고수하고 있던 자들은 제외가 되고 있습니다비록 혈통적인 선민이지만 이기적인 구원관을 버리고 이방인들을 함께 구원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자 회심한 자들은 그 가운데’에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그리고 당연히 이방인성도들이 그 가운데’에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2)  유대교에 있어서는 12지파의 하나인 레위 지파에서 제사장의 직무와 성전을 섬기는 임무를 전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만민구원의 시대에는 달라지고 있습니다이방인성도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제사장과 레위인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새로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맡게 되는 직분이 무엇일까요이 구절에서는 인사관계만 언급을 하고 그 직무에 대해서는 제23절에서 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이사야가 여호와의 말’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역사가 진행이 될 것임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여호와의 말씀에 토를 달거나 반대를 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할 따름입니다스스로 창조주 앞에 자세를 낮추고 그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a)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b) 너희 자손 너희 이름 항상 있으리라여호와의 말이니라(66:22); 영이신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법이 명료하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66:22a); 사람은 시공간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그것이 육신적인 삶입니다그러므로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미래지사에 대해서는 아직 시간이 지나야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1)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의 입장은 다르십니다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보시면서 성도의 앞에 현재형으로 서 계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2)    그러므로 미래에 지으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사실은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 담겨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하나님의 품 안에 그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때에 미래의 시점에 반드시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3)    만약 하나님의 품 안에 새로운 세상이 들어 있지 아니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미래에 실현이 될 리가 없습니다그러한 관점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안에 성도가 들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벌써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14:20, 8:1-2, 39). 그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2)  “너희 자손 너희 이름 항상 있으리라여호와의 말이니라(66:22b); 하나님께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는 성도들을 귀하게 보십니다;

1)    그래서 메시아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특혜를 그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도 베풀어주십니다그것은 그 성도를 항상 기억하시고 보호하시며 그 성도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시겠다는 것입니다.

2)    그 뿐만이 아닙니다그 성도의 후손들에게도 믿음의 조상의 하나님경외신앙을 본받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그 언약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유효할 것입니다그 사실을 이사야는 여기서 여호와의 말이니라(66:22b)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여호와가 말하노라매월 초하루 매 안식일 모든 혈육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66:23); 참으로 흥미로운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1)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살펴보면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21:23).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해와 달이 없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광채가 너무나 찬란하므로 다른 광채가 필요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22:5).

(2)  해와 달이 없으므로 월삭과 제7일 안식일이라는 개념도 성립하기 힘듭니다실제로 달이 떠오르고 그 모양이 변해야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이라는 날짜가 생기고 초하루라는 월삭의 개념이 생기는 법입니다그리고 해가 아침에 떠오르고 저녁에 서산에 져야 하루의 개념이 생깁니다그래야 제7일을 셀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사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예배와 관련하여 월삭과 제7일 안식일이라는 개념이 별 소용이 없습니다왜냐하면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양의 영광이 빛나고 있어 그 성안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항상 예배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22:3-5). 그러므로 별도의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필요가 없습니다그 안에서는 모두가 제사장이며 레위인이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이 구절은 새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루어져 있는 천지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그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파견이 되어 나온 제사장과 레위인의 도움을 받아서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여기서 모든 혈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인류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피와 살을 지니고 있는 모든 생물들은 함께 모여서 정해진 날 월삭과 안식일에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그날이 되면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를 하십니다그 의미가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66:23)는 것입니다.

넷째로, (a)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b)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66:24); 하나님나라에서는 왜 여호와에게 반역한 자들의 시신을 보존하고 있을까요그리고 그 보존장소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1)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66:24a); 비슷한 사례를 먼저 살펴봅니다;

1)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 어떤 나라는 그들의 위대한 국가지도자의 시신을 미이라로 처리하여 영구히 보존하고 있습니다그냥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리관 속에 넣어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그 미이라를 보는 참배객들은 마치 살아있는 위대한 인물을 예방하는 것처럼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생생한 공산혁명이념의 학습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2)    아마도 그러한 정책은 이사야의 대선지서 마지막 구절을 잘못 원용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왜냐하면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반역한 자들의 시신을 그렇게 처리하여 산 교육의 자료로 사용할 것이라고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여기서 패역(悖逆)이라고 하는 것은 패륜과 반역’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용어입니다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범하게 되면 그것이 가장 큰 패륜입니다그리고 신하가 군주를 몰아내고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면 그것이 반역입니다그 두 가지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4)    이사야는 제14장에서 사탄의 탄생이 그러하며 세상나라 바벨론이 그러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14:4-20). 사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부부의 범죄행위도 같은 맥락입니다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과를 함부로 따먹었기 때문입니다(3:5-6).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선민사상과 현세구복신앙도 그러합니다그들은 선민의 영광과 현세적인 성공 및 복을 누리게 해주는 하나님만이 필요하다고 고집하면서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2)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66:24b);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을 도모한 사탄과 악한 영들 그리고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에게는 죽어서도 두 가지의 형벌이 가해지고 있습니다①첫째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벌레를 그 육신과 시신에 달라붙어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②둘째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 못의 불이 그들을 태우고 있습니다따라서 고통만을 맛보면서 완전한 소멸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그 고통이 가장 끔찍한 것입니다죽지도 못하고 계속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 그것이 가장 잔혹한 고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그 고통의 현장을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견학하게 됩니다그리고 스스로 옷깃을 여미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 무엇인지를 살아 있는 학습자료를 통해서 정확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66:24b).

결론적으로이사야가 그와 같이 끔직한 장면을 일종의 학습자료로 공개하면서 그의 선지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그것은 그의 동족들에게 주고 있는 생생한 경고입니다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러한 고통 가운데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그의 경고는 그의 동족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어주십니다그리고 그 제자들이 메시아의 뒤를 이어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어가게 됩니다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신앙을 심어주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고 또는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모른다고 핑계를 할 수가 없습니다오로지 창조주의 뜻을 받아들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공의를 실천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약끝까지 이기주의와 현세적인 축복사상에만 물들어 살게 되면 영생의 축복에서 멀어져 버릴 것입니다이제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여기서 한 가지 더 명심할 사항은 한번뿐인 인생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복음을 듣게 된 그 인생이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생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부디 마지막 기회를 홈런으로 마무리하시는 현명한 선택이 여러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