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24강(사66:10-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4월 29일(금)
예루살렘 성의 슬픔을 대신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기쁨에 대하여(사66:10-14)
성경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비록 그 말씀이 선지자의 음성이나 글을 통하여 전달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출처가 하나님의 입이므로 당연히 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이란 시공간에 갇혀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따라서 영적인 말씀은 시간의 시점을 쉽게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땅과 하늘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특징을 감안하여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본문의 예언의 말씀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그 대체적인 의미가 다음과 같음을 알게 됩니다;
(1) 첫째,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있는 선민들은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사66:10ab). 새 예루살렘 성에는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많이 입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선민사상을 버리고 여호와의 만민구원사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2) 둘째,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되는 미래가 전개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선민의 자손들이 슬퍼할 것입니다(사66:10c). 그러나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선민만의 구원을 상징하고 있는 예루살렘이 망하고 만민구원을 성취하는 새 예루살렘 성이 건설되는 것을 바라보고서 그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사66:10d). 왜냐하면, 만민의 속죄를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시며 만민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 성을 채우시는 것이 여호와의 역사섭리이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사람들은 여호와의 생명의 젖을 빨고서 살아가는 피조물입니다. 이 땅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와 만족을 여호와의 품에서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사66:11a). 특히 여호와의 생명의 젖은 넉넉하여 만민을 그 품에 안고서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 여호와의 풍성함을 알게 되면 참으로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사66:11b).
(4) 넷째, 여호와의 말씀의 뜻 그대로 만민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함께 창조주의 생명의 젖을 얻고자 할 때에 선민들이 참된 평강을 얻으며 여호와를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사66:12).
(5) 다섯째, 이 땅에서는 참된 위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위로는 여호와께서만 주실 수가 있습니다(사66:13a). 만민에게 그 위로를 베푸는 장소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사66:13b).
(6) 여섯째, 여호와는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는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창조주의 공의를 기뻐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사66:14b). 여호와를 기뻐하며 그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는 그 마음이 온유하며 그 열매가 풍성할 것입니다(사66:14a).
그와 같은 다양한 의미를 본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b)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사66:10); 선민의 예루살렘 성과 여호와의 새 예루살렘 성을 구별하면서 이 대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사66:10a); 이사야는 제66장에서 두 개의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선민들의 기존 예루살렘 성입니다. 또 하나는 메시아를 보내어 만민구원의 시대를 전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 훗날 마련하시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1) 기존 선민의 예루살렘 성은 장차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선민들은 이방인들까지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창조주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선민인 자신들만 구원 받고 잘 살게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선민사상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로 선민들의 예루살렘 성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 “떠드는 소리가 (예루살렘) 성읍에서부터 들려오며, 목소리가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사66:6).
2) 그 대신에 만민구원을 위하여 메시아를 그 땅에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 메시아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온 세상에 보내어서 마침내 만민구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온 세상의 구원자 메시아)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메시아의 제자들을)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사66:9). 그 결과 만민 가운데 구원받은 모든 백성들이 먼 훗날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사65:18-19, 66:10a).
3)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옛날 다윗 제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선민의 영광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사상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선민우월사상을 버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깨닫고 이제는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거주하게 되는 새 예루살렘 성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만 합니다(사66:10a).
(2)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사66:10b); 멀지 아니한 미래에 선민들의 기존 예루살렘 성이 적들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민의 자손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사야는 이 세상에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건설하시는 새로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민들이 생각하는 좁고도 이기적인 구원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넓으신 뜻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넓고도 깊은 뜻을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둘째로, “(a)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b)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사66:11); 이사야가 특이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어머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사66:11a); 젖을 빠는 아기는 행복합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생명의 젖을 빨며 안전과 만족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면 젖을 떼고 나중에는 어미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기다툼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며 험한 일을 많이 당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이사야가 생명의 어머니가 되시는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되면 그곳에서 그 옛날 생명의 젖을 먹여주시던 어머니를 여호와로 만나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성도는 다시 그곳에서 안전과 위로와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사66:11a).
(2)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사66:11b);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젖을 혼자서만 빨겠다고 하는 이기주의자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이나 자기 민족만 구원의 혜택을 누리겠다고 하는 집단이기주의자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온 세상 만민이 모두 함께 구원을 받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젖을 같이 빨자고 나서는 성도들만이 그곳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젖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누리게 해줄 정도로 풍성하십니다(사66:11b).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a)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b)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사66:12);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살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사야가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사66:12a); 새 예루살렘 성에서 여호와가 다음과 같이 성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주리니)”; 성도들에게 평강을 강같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수가 성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그 말씀 그대로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평강의 생명수를 성도들이 마실 수가 있습니다(계21:6-7). 또한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때에 성령님의 내주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맛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요14:14-20).
2)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여기서 ‘그’는 새 예루살렘에 입성한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기업을 얻게 됩니다. 그 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사야가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성도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새 세상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눅22:28-30).
(2)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사66:12b);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되는 성도들에게 장차 어떠한 은혜가 임하게 될까요? 세 가지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성도들은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주님의 영광을 보며 살 수가 있게 됩니다(계21:22-22:5). 그것은 새 예루살렘 성에 충만한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얻으며 사는 것입니다(창2:7, 겔37:9-10, 계21:6-7). 그것을 이사야는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주님의 옆에 자리를 잡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그와 같은 미래에 대하여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십니다; “종은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8:35), “(메시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3) 셋째, 그 무릎에서 놀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고 그 명령을 따라 새 세상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나누어서 통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66:13);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되는 성도들이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부활 승천하신 메시아로부터 어떠한 위로를 얻게 될까요?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하나님 안에 생명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사66:13).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성경에서 두 군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변화산상의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중에 몇 사람이 생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막9:1 의역). 그 말씀 그대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변화산상에서 보게 됩니다(막9:2-8). 그곳에서 갑자기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여 그 옷에서 광채가 나며 모세와 엘리야가 그 좌우에 나타나서 보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막9:3-4). 그것은 한 마디로,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나라에서 살아 있으며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막12:27, 히11:13-16). 영생의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 성도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 새 예루살렘 성에서 얻을 수 있는 참된 위로입니다.
(2) 둘째, 욥이 깨닫고 있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욥은 의인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살았지만 갑자기 비참한 운명에 빠지게 됩니다(욥1-2장). 많은 재산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같은 날에 10자녀가 죽으며 몸에 병이 생겨 죽는 것만도 못한 형편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자 친한 믿음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그와 같은 재앙이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큰 죄악을 욥이 범한 결과라고 말하면서 거듭 회개를 종용합니다. 그러나 욥은 동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왜 그와 같은 저주와 고난이 왔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서 그 대답을 듣고자 합니다”.
(3) 욥의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그 설명을 들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혼자서 전부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악한 세력을 다스리시면서 이 세상을 섭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단순한 말씀을 듣고서 욥이 갑자기 회개를 합니다(욥42:5-6). 그리고 자신을 공격했던 3친구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의 기도를 해줍니다(욥42:7-10). 그 순간에 기적이 발생합니다. 욥의 신원이 회복이 되고 갑절의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욥이 깨달은 사실은 “여호와가 욥과 자기 가족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집안의 잘못만을 속죄하는 제사장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욥1:5). 자신을 공박하고 있는 3친구를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어야만 하는 만인의 제사장이 바로 자신의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4) 모든 재물을 갑절이나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10자녀를 다시 얻는데 그치고 있습니다(욥42:13). 갑절의 보상이라면 20자녀를 얻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왜 10자녀만 다시 얻고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천국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신앙생활을 하고서 갑자기 죽음을 당한 10자녀가 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욥1:18-19, 막12:27). 훗날 새로 얻은 10자녀도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욥이 천국에서 20자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진정 얻을 수 있는 참된 위로입니다.
(5) 그와 같이 역사해주시는 영생의 하나님의 천국구원을 믿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처럼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헛것이라면 성도의 믿음도 헛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고전15:14-19). 예수님은 그 모든 논쟁을 한 마디로 정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다섯째로, “(a)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b)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사66:14); 천국을 바라보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되는 성도는 기쁘고 온유하게 믿음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모두 구원의 대상입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진짜 원수를 가려내어 종말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1)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사66:14a);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게 되고 영생의 생수를 젖과 같이 마시며 살게 되니 성도의 마음이 얼마나 소망 가운데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온유해집니다. 마치 뼈가 연한 풀과 같습니다. 그리고 인생 가운데 성화와 전도의 열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마28:18-20, 요15:4-5).
(2)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사66:14b); 여호와의 손은 공의의 손입니다. 그리고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손입니다;
1) 그 손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만민구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교의 현장에서는 많은 창조주의 기적이 발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있는 성도의 삶이 옳다는 것을 여호와께서 여러 모습으로 증거해주십니다(요5:36-37, 롬1:16-17, 8:35-39).
2) 반면에 하나님의 진노는 영적으로 여호와의 뜻에 끝까지 대항하고 있는 원수들에게 강력하게 임합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끝까지 반대하고 있는 무리들은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영원히 가두어두고자 획책하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입니다(롬8:2, 엡2:2, 6:12). 그리고 그 사주를 받아 행동대장이 되고 있는 음행과 권력욕의 화신 바벨론과(사14:4-5, 12-20, 계18:2-3) 적 그리스도, 그리고 그 하수인인 거짓선지자들입니다(계20:10).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고 있는 동족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제는 하늘에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민사상과 현세구복사상에 찌들어 있는 선민들의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할 것임을 예언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생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새 예루살렘 성을 그 수도로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성에는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훗날 모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자신들의 예루살렘 성이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하여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 예물로 드리고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생의 구원을 누리게 되는 소망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은 구속자 메시아가 선민의 사회에 오심으로 시작이 될 것임을 이사야가 이미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사11:1-12).
그와 같은 본문의 내용을 거듭 음미하시면서 아무쪼록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만민구원에 나서시는 성도 여러분들의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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