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27강(사66:20-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5월 2일(월)
하나님의 전에 성도들이 바칠 수 있는 진짜 예물은 무엇이며, 먼저 믿은 이방인 성도의 할 일은 무엇인가?(사66:20-21)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대선지서의 결론을 맺기 전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진심을 놀라운 비유와 상징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스라엘 제국의 영광을 드러낸 다윗 대왕 그리고 만민의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그리스도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는 두 개의 산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성산(聖山, the holy mountain) 곧 ‘거룩한 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66:20). 그 이유는 주전 2,050년경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창조주 하나님께 바친 모리아 산이라고 하는 제단이 그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2:1-14). 그러한 연유로 훗날 그 모리아 산에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고 있는 것입니다(대하3:1).
또한 예루살렘은 시오니즘의 발상지입니다. 주전 1,000년경 다윗 왕이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아 다윗의 성을 건설하고 그의 왕국의 수도로 삼게 되는데 그것이 예루살렘입니다(삼하5:6-7). 그러므로 다윗 대왕의 찬란한 이스라엘 제국의 영광이 그 시온 예루살렘 성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제국이 주전 930년경 남북으로 분열이 되고 힘이 약해지자 주변의 강대국 이방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침탈을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은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고 시온의 영광을 온 세상에 다시 떨치고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민족의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어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본문에서 전혀 다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은 패권제국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신앙을 이방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성산 모리아 산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에 예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들이 그 일을 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선민을 버리시고 장차 이방인 성도들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방인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새로운 제사장과 레위인을 발탁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향후 역사섭리인 것입니다”(사66:20-21 의역).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두 구절을 상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a)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b)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c) 그들(이방인 성도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d)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사66:20); 한때 선민들이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뜰 일부를 개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장차 대대적으로 이방인성도들에 의하여 전개가 될 것임을 여기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사66:20a); 이사야는 자신이 전하고 있는 말씀이 여호와의 입에서 발현이 된 창조주의 말씀임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창조주의 말씀이므로 반드시 역사 가운데 실현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동족인 선민들은 창조주의 능력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다음의 예언의 말씀을 경시하지 말고 부디 명심하여 자신의 행동을 고쳐나가라는 이사야의 간절한 당부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요컨대,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반드시 그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사66:20a).
(2)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사66:20b);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인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여호와에게 예물로 바치고 있다는 선례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창세기를 살펴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할례를 받으라고 지시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9-14).
2) 풀이를 해보자면, 아브라함의 후손이 돈으로 산 이방인도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인들을 돈으로 사서 종으로 삼고 할례를 행하여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조치해주고 있습니다(출12:43-48). 그리고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싶어하면 성전 내 제일 바깥뜰에 ‘이방인을 위한 기도의 마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이 매우 소극적이며 최소한의 조치에 그치고 있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방인들의 극히 일부를 종으로 삼아 할례를 받게 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전통을 이사야가 여기서 깨끗한 예물로 여호와께 바치고 있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사66:20b). 그것은 장차 이방인성도들에 의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전 세계에 퍼지고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들(이방인 성도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사66:20c); 역사적인 배경과 더불어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 옛날 모리아 산에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바가 있습니다(대하3:1). 그렇지만 그 성전은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되면 신바벨론 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불타버리게 됩니다(왕하25:8-9). 그 후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 고레스 황제의 칙령으로 자유민이 된 선민의 자손들이 일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서 조그만 성전을 건설하게 됩니다(스1:1-4, 6:15-16). 그것이 소위 ‘제2성전’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헤롯 왕조에 의하여 증축이 되다가(요2:20) 주후 70년에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소실이 되고 맙니다(눅19:41-44, 21:24, 요2:19-22).
2) 그러므로 이 대목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성산 예루살렘은 장차 무너지고 소실될 수밖에 없는 성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예루살렘이며(사65:17-19) 영적인 예루살렘입니다(사48:16, 고전6:19). 즉 그것은 하나님나라에 건설이 되는 새 예루살렘 성을 말하고 있으며 그곳에 갈 때까지 거듭난 성도들에게 임재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장차 메시아의 시대를 지나 그의 제자들이 온 세상에 만민구원과 부활의 메시지를 하나님말씀으로 전하게 될 것입니다(눅24:44-49, 행1:8). 그리하면 이방인 가운데서 믿는 자가 많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깨끗한 예물로 올려드리게 되면 그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여 임재하십니다(행10:44-48). 그리하면 그들 새로운 성도들의 속사람 속에 하나님의 성전이 건설이 되는 것입니다(요14:16-20, 고전6:19-20).
4)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행한 후에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계21:26-27). 그와 같은 풍성한 의미를 압축적으로 전해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위의 구절 ‘사66:20c’ 라고 하겠습니다.
(4)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사66:20d); 이방인성도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육하여 복음의 전파자로 온 세상에 내어 보내게 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요?
1) 그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들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함께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요14:16-21). 그러면 그 열매를 여호와께 예물로 올려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이사야는 말, 수레, 교자, 노새, 낙타 등 5가지 탈 것에 태워서 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2) 그것은 귀하게 모시고 온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방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꾼들은 새 신자들을 말과 노새와 낙타에 태우고 자신은 그 말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에6:11). 또한 그들을 수레와 교자에 태우고 여호와의 종들이 동역하여 그 수레를 끌거나 교자를 어깨에 메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서 운반을 하고(수3:6) 기타 레위 인들이 성막의 성물을 수레에 싣거나 어깨에 매어서 일일이 운반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민1:50, 10:17, 21). 한 마디로, 하나님께 깨끗한 것을 바치기 위하여 예물이 되는 새로운 신자들을 얻는 일에 정성을 다하라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a)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b) 여호와의 말이니라”(사66:21); 선민이 아니라 장차 이방인 성도 가운데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방인 출신들이 마치 그 옛날 선민들의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처럼 지근(至近, 지극히 가까움) 거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보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획기적인 정책의 변화입니다. 그 뜻이 무엇일까요?
(1)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 인을 삼으리라”(사66:21a); 출애굽 당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특별히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으로 삼습니다(출19:5).
1) 그 목적은 그들에게 이방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전으로 모아 들이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역할을 맡기기 위한 것입니다(출19:6).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선민들이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중보의 기도도 쉬지 말아야 합니다.
2) 그런데 그 사명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명을 누가 대신하게 될까요? 이방인성도들이 대신하게 될 것임을 이사야가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선민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사66:18-19).
3) 그것은 마치 주인이 맡긴 포도원을 가로챈 농부들을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마21:40-44). 이에 따라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 인의 직무도 더 이상 수행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방인 성도 가운데 제사장과 레위 인을 새로이 발탁하실 것입니다(사66:21a).
(2) “여호와의 말이니라”(사66:21b);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사야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향후 역사의 섭리가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더 이상 혈통적인 선민이라고 족보자랑만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자신들을 선택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는지 그 목적과 사명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선민의 나라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 예루살렘에는 두 개의 산이 있습니다; 모리아 산과 시온 산입니다. 모리아 산은 그 옛날 아브라함의 하나님경외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터전입니다. 따라서 훗날 솔로몬 왕이 모리아 산에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시온 산에는 산성이 있습니다. 본래 가나안 여부스 족속의 산성인데 그것을 다윗 왕이 무력으로 빼앗은 것입니다. 거기에 다윗이 왕궁을 짓고 예루살렘 성을 이스라엘 제국의 수도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 산은 다윗 제국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고 있는 중심지이며 시오니즘의 발상지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있는 두 산 가운데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성산 나의 거룩한 산이라고 부르고 있는 곳은 전쟁으로 온 세상에 선민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시온 산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경외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모리아 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 제국을 재건해야 선민의 영광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시는 신이 아니십니다(마26:52-53). 모두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인데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시겠습니까? 모두를 살려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경외사상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산에 모여서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동족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때부터는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완전히 철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먼저 믿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만민구원의 사명을 우선적으로 실천하는 성도가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치고 나면 당당하게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 자랑스러운 새로운 제사장이며 레위 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깨달음과 실천이 풍성하신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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