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제 6과(2:14-26)(손진길 작성)
|OBS15-6|
Q1. 열두 살 때에 이미 자신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형 예수가(눅2:42, 49) 서른 살이 되자 출가하여(눅3:23) 이를 증거하는 공생애를 살아 가기 시작했으나 동생 야고보는 이를 믿을 수가 없었슴(요7:5, 눅4:22-24, 29).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야고보가 목격하고서 믿게된 것은 처형당한 형 예수가 삼 일만에 부활한 대 사건과(고전15:7) 오순절 성령 강림의 대 역사였던 것임(행1:14, 2:1-4). 그러므로 야고보에게 있어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되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Ø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은 반드시 보이는 하나님의 역사로 증명되어져야만 하는 것임(1:5,12,17, 2:1,5,17).
Ø 환언하면,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 생각을 바꾸고 마침내 행동 양식을 바꾸게 됨으로써 믿음이 보이는 바 행동의 변화로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임(2:14,22). 이것은 나타나는 열매로 보이지 아니하는 나무의 유전자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임(눅6:44, 마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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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그렇다면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어떠한 믿음 생활인가?
Ø 그와 같은 믿음은 자기를 구원하는데 유익이 되지 못하는 믿음인 것임(2:14).
Ø 이를 야고보는 ‘죽은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임(2:17). 말로만 평안을 전하며 생활의 형통을 기도할 뿐 만민의 공존공영을 위한 생존권의 보장, 거주권의 보장, 자원 사용의 공동 이용권, 발명 발견물의 나눔, 지적 소유권의 개방 등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과 만민 축복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한 그와 같은 믿음은 별로 쓸모가 없는 것임(2:15-16, 창1:26-31).
Ø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위와 같은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일종의 외교적인 언어인 ‘립 서비스’(lip service)에 불과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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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믿음과 행함이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은 누구의 술책인가?
Ø 귀신들의 술책이라는 것임(2:19).
Ø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 분은 의도와 능력이, 말과 실천이, 뜻과 행함이 똑 같으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가 바로 악한 영인 귀신들인데(2:19) 그들은 하나님을 이율 배반적이며 이중 인격적인 음흉한 존재로 폄하시키고 있는 것임.
Ø 악한 영의 거짓말이 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인데 이 주장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공로를 공짜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후 삶의 질적 변화가 없어도 된다는 것임. 이른바 ‘입술로만 시인하고 자신의 삶을 산제사로 또는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리지 아니해도 되는 믿음’(2:18-20, 롬12:1-2, 6:13반대해석)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교묘한 ‘립 서비스’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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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장로 야고보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좋은 선례로서 누구의 예를 들고 있는가?
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경우를 들고 있슴(2:21-25).
Ø 첫째로,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나님이 명령했을 때(창22:2) 말로만 ‘예스’(Yes)했을 뿐아니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바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함께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출발한 것임(창22:3).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임(2:21).
Ø 둘째로, 기생 라합이 구원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무사히 숨겨주고 탈출시켜준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지 말로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것이 아니었던 것임(2:25, 수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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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는 바울의 주장(롬4:2-3, 창15:5-6)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장차 베풀어 주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임(창15:5-6). 그 후 그의 남은 인생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한 의인의 삶으로 일관했던 것임. 이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가장 큰 약속은 ‘세상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기초한 의로운 삶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된다’(창12:2-3)는 것이었슴. 그러므로 장래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라면 끝까지 인내함으로써 인생 가운데 그 열매를 얻는 것이 믿음의 성숙이요 성취임을 알 수 있게되는 것임(롬1:17, 6:22).
Ø 구원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들였다고 하더라도 불완전한 육체(mortal body)를 입고 있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양심에 따른 행위로써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는 존재는 없슴(롬2:10, 욥1:1,5, 42:5-6). 왜냐 하면, 선한 존재는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임(막10:18). 예수님께서도 불완전한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완전히 선하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신 것임(막10:17-18).
Ø 그러므로 칭의받은 성도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쫓아서 행동하는 것이 믿음인 것임.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받아들이고 그와 같은 삶을 평생 살아가는 것이 영생의 영광을 얻는 믿음인 것임. 결국 믿음과 행함이 하나이며(2:22) 삶으로 증명되는 것이 믿음(2:24,26)이라는 야고보의 주장은 바울의 주장을 알기 쉽게 풀이해 주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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