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27 과 (14:1-11) <OBS2-27>(손진길 작성)
[Q1] 제14장 1-2절에서 엿볼 수 있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예수님 그리고 민중들의 클래스(Class) 구분과 유월절(4월14일), 무교절(4월21일)의 종교적,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l 당시 정치적, 종교적 지배구조상 가장 앞서는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 그리고 율법선생이면서 공회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서기관들은 명실상부한 지배 엘리트(Elite) 그룹에 속함. 그런데 민중 또는 민초(mass)들의 지지가 커지자 예수는 반(反)엘리트(Anti-Elite)로 급부상함.
l 유월절과 무교절 같은 종교적 절기는 전통적인 율법적 통치체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임(출12:6, 13:6). 그 기간 동안 Anti-Elite를 기습적으로 제거할 경우 부화뇌동의 성향이 강한 반면 이념에 대한 의식화가 약한 민초(mass)들은 큰 관심이 없이 지나치기 쉬울 것임.
l 설혹 예수가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다윗 제국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정치적인 메시아라고 하더라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그가 Anti-Elite로서 현존하는 Elite 지배구조를(대제사장, 공회원, 서기관, 바리새인) 무너뜨리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었음(요11:46-53). 한 마디로,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시켜줄 메시아를 갈망한 것이지 결코 민초(mass) 편에 서있는 Anti-Elite로서의 메시아를 원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음.
[Q2]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이 바로 죽음을 향해 가는 길임을(10:32-34) 세 번씩이나 12제자들에게 분명히 밝힌 바 있으나 곧 당할 일을 미리 대비한 흔적은 제자들로부터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음. 오직 그 말을 전해 들었던 베다니의 마리아만이(요12:3) 죽음의 길로 가시는 예수님께 미리 자신의 향유를 부어 드리고 있음. 그렇다면 평소 마리아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며 그녀의 인식의 근거는 무엇인가?
l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하여 평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음; ①병 고치시는 예수님: 가까운 친척인 문둥이 시몬이 치료됨을 들었음(14:3). ②죽음에서 살리신 예수님: 오빠 나사로를 살렸음(요11:2,44). ③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 막달라(갈릴리 지역)인 마리아의 일곱 귀신을 추방한 이야기를 들었음(눅8:2). ④회개하는 여인을 구원하신 예수님: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께 눈물로 향유를 붓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들었음(눅7:44-50). ⑤죄인인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 예루살렘 성전에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었음(요8:1-11).
l 오빠와 친척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익히 파악하고 있었음. 한 마디로, 불행한 사람들을 구원해주시고 애통해하는 눈물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은 구원주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과 영생의 주님이시고 영원히 찬양하고 경배하여야 할 왕이셨던 것임. 그와 같은 인식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모습인 것임.
[Q3] 향유 부은 여인의 일은 왜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l 여인이 향유를 붓는다는 뜻은 예수님의 공생애와 그 죽음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평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행위에 해당됨. 그것은 육신적인 평탄한 삶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영적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하는 위대한 신앙적인 결단인 것임.
l 그것이 일생일대의 결단임을 처녀의 옥합이 상징하고 있음. 그것은 여자가 평생 한 병 모아서 한번만 깨뜨리는 일편단심의 상징인 것임. 그것이 믿음생활의 회심과 결단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 일을 대대로 온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임. 그 뜻은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결심으로 믿음생활을 시작하라는 뜻인 것임.
[Q4] 예수님께 필요한 것은 여인의 보배로운 향유부음 곧, 자신이 가장 아끼는 향유보다 자신에게 영생과 구원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한다는 그 마음인가 아니면 향유의 물질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의 돈인가?
l 공생애 기간 중 비록 굶주리시더라도 돈 달라고 하신 기록이 없는 예수님이심.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다만 죄인인 인간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바쳐 구원자 예수를 예배하는 것을 원하셨으며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하셨던 것임(14:6).
l 물론 가난한 이웃에게는 당장 돈이 필요하며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함.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그들을(14:7) 돕기 위하여 성도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를 제하고서는 남는 소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임.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임. 사실 짧은 인생 가운데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로 향하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더 귀한 일임. 그리고 그 만민구원의 뜻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시간과 재물은 더 가치가 있는 것임. 그 점을 여기서 예수님이 언급하고 있는 것임.
[Q5]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 돈에 손을 대고 그렇게 데나리온을 취하여 살아가고 있는 가장 가난한 자는 누구이며 동시에 귀한 옥합을 깨뜨리고 메시아를 영접하는 베다니의 마리아와 같은 믿음의 삶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 제자는 누구인가?
l 보배로운 신앙적 결단을 말하고 있는 향유 대신 물질적인 돈을 선택한 자가 여기서는 가룟 유다임(14:11). 그렇지만 유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는 오늘 날에도 많이 발견할 수 있음. 예를 들면, 연보 돈으로 화려한 성전 짓고 그것에 의지하여 세상적인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이에 해당할 것임.
l 그렇지만, 초대교회시대에 가난한 자에게 물질보다 더 귀한 복음을 들고 찾아간 사도들이 있었음(행3:6, 11:26). 그리고 오늘 날에도 가난한 족속들에게 복음 들고 찾아가고 있는 오지 선교사들과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후원자들이 또한 많이 있음. 그러므로 평생 예수 닮는 삶을 일관하는 자는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삶이 더 중요한 줄 알고서 모두 자신의 옥합을 깨뜨린 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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