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마가복음 제29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 14. 14:23

마가복음 제 29 (14:32-42) <OBS2-29>(손진길 작성)

 

[Q1] 예루살렘 성내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후 예수님은 베다니 방향에 자리잡고 있는 감람 산으로 제자들과 함께 이동하고 계신다. 그런데 감람 산에서 마지막 기도가 끝나자 긴급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연행된다. 심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닭 울기 전까지, 그리고 헤롯 궁전에서 새벽까지 계속된다. 여기서는 체포되기 직전에 이루어진 감람 산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일을 집중적으로 묵상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로 향하기 전 제자들과 함께 한 마지막 밤이기에 그 속에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고 특히 기억할만한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먼저, 제자들의 경우 원기 왕성하게 감람 산까지 찬미하고 갔으며(14:26) 예수님의 흩어진다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힘있게 그 사실을 부인했다. 그런데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 순간에는 제자들이 그토록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는가?

l  한 마디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했기 때문임(14:38). 생각해보면, 스승의 유언 같은 마지막 예언(14:27, 헤어짐과 흩어짐, 14:30, 버림받음, 14:28, 다시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첫째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스승의 일이지 아직 제자들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며 둘째로,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지사이기 때문에 당장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육체적 피곤과 잠 부족이 더욱 문제가 된 것임.

l  인간은 비록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공기를 코로 받아들여 온몸으로 호흡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서 살고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한 평생 땅을 일구어서 먹고 살아가야만 하는 하나님의 징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임(3:17-19). 요컨대, 인간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불완전한 육체적 존재일 수밖에 없음. 따라서 하늘을 향하여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여 인생 가운데 100% 선한 형상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8:26, 예수님의 경우22:43).

 

 [Q2] 예수께서 자신의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l  그것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실 일이 생겼기 때문임(14:33). 비록 제자들로부터 부인 당하는(14:30) 인간적 배신과 버림은 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홀로 십자가의 극형을 감당해야만 하는(15:34) 그러한 순간의 임박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던 것임.

l  그러하였기에 다른 방법으로 대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오랜 세월 습관적으로 새벽기도를 해오신 예수님이심(1:35, 6:46, 14:32-35).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대답은 언제나 대속의 십자가를 홀로 지는 것이 유일한 완전 속죄의 제사라고 말씀하신 것임(14:36).

 

 [Q3] 목숨이 걸려있는 마지막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세 가지 내용은 무엇인가?

l  첫째 내용은 아바 아버지는 전능하시다는 것임. 둘째로, 죽음의 잔을 옮겨 달라는 것임. 셋째로,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것임(14:36).

l  풀이해보면, ①나의 가장 친밀한 사랑하는 아버지의 힘은 전능하시다는 확신이 기도의 전제가 되고 있음. ②그러므로 그 전능성에 의존하여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임. ③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만민구원의 선을 이루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므로 그렇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추어서 결론을 내려달라고 기도한 것임. 결국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따르겠다는 100% 순종의 화답으로 기도가 끝나고 있음. 그러한 올바른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는, 그 능력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를 통하여 영광된 승리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임.

 

[Q4] 다윗의 기도(삼하12:16-23)와 예수님의 기도(14:35-42)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l  유사점은 다음과 같음; 첫째, 하나님의 의도확인을 위한 거듭된 기도들임. 둘째,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한 후 깨끗한 승복이 있음. 반면에 양자 기도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음; ①아이를 살려달라는 것이 다윗의 기도임. ②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살려달라는 기도임.

l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비록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하더라도 성부 하나님의 뜻이 우선적으로 온전히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 완전한 기도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차원이 높은 기도임. 그리고 그와 같은 목숨을 건 하나님의 뜻 우선주의의 기도는 타인의 죄 사함까지 요청할 수 있는 아가페적 사랑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음(23:34,43).

 

 [Q5] 아가페적 사랑의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l  약자(略字)를 사용하여 쉽게 “ GISH”의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임;  첫째로, 혈연(부모자식), 남녀간, 친구간의 사랑은 “Give & Take”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아가페적 사랑은 Giving의 사랑임. 다만 부자간의 사랑은 때로 아가페적 모습을 띄는 경우가 있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자간으로 표현하고 있음. 둘째, 아가페적 사랑은 자기희생(Sacrifice)으로 나타남. 셋째, 아가페적 사랑은 사랑 받는 자가 또 타인을 사랑하는 이른바 “사랑의 연쇄반응”(G-G 사랑)과 “사랑의 공명현상”(Resonance)으로 모두 함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Hope)을 가진 유일한 사랑의 형태임.

l  결국, 인간의 뜻과 인간의 사랑만으로(민족사랑, 이념적 사랑, 동지적 사랑) 바벨탑을 쌓는 것이 성도들이 추구하는 아가페적인 삶이 아님. 성도들이 추구해야만 하는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과 아가페적 사랑(성령의 인도하심, 예수의 모범)으로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