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선민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이방 헬라인에게는 본성과 양심이 올무가 되듯이 로마인에게는 법원칙이 올무가 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롬2:1-29)
설교일; 주후 2026년 1월 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4월 1일 화요일 작성)
주후 49년경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서방지역에 대한 선교보고를 하면서 한가지 특별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 출신 성도들에 대하여 선민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규정을 전부 지키라고 요구하는 대신에 꼭 필요한 규정만 적용할 수 있도록 그 조치를 완화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두사람의 후속사도가 지난 3년간 구브로와 소아시아를 다니면서 이방인선교를 한 결과 많은 회심자를 얻고 초대교회를 개척할 수가 있었는데 그 요인이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행15:4, 12). 그것은 결코 유대교인들이 크게 의지하고 있는 율법의 강요에 의한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설명을 들은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총회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 가정에 벌써 주님의 은혜로 보혜사 성령께서 역사하여 그들을 회심하게 하고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행15:7-9, 10:15-16, 44-48, 11:9-18).
주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회심하며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원한 그들에게 물세례를 베풀고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주장하고 있습니다(행15:7-11).
사족을 더하자면, 주님의 말씀과(행10:15, 11:9) 성령의 역사가 벌써 있었기에(행10:44-48, 11:15-18) 선민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율법 준행에 의한 구원론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한 이방인성도들에 대하여는 앞으로 경건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우상숭배금지 및 음행금지 그리고 목매어 죽인 동물의 식용금지 및 피 채 먹는 것 금지 정도만 적용하는 것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인 것입니다(행15:19-20).
사도 베드로의 주장은 당시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유력자들 곧 예수님의 친동생인 장로 야고보와 그 사촌동생인 시므온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행15:13-21). 그에 따라 예루살렘총회의 결정사항으로 의사 누가에 의하여 사도행전 제15장에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행15:27-29).
그와 같은 예루살렘총회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인 헬라인과 로마인 그리고 로마제국의 바깥에 살고 있는 야만인들에 대한 사도와 성도들의 선교는 활기를 띠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는 서방선교에 나섰던 후속사도 바나바와 바울의 이야기만 주로 수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 누가가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그와 동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얻고 그 결과 복음서는 물론 초대교회의 역사서인 사도행전을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후 로마제국의 역사가 로마교황청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으로 진행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음 3가지입니다;
(1) 첫째, 주후 70년에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사회가 멸망하자 예루살렘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2) 둘째, 주후 324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유일한 국교로 인정되자 로마황제는 그 영향력을 행사하여 로마교황청의 주장만 교리로 받아들이고 기타 안디옥 교회나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주장하는 신학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주후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유럽의 유목민들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로마를 정복한 고트족들이 이미 기독교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사라진 시리아교회의 성도들이 야만족인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덕택에 기이하게도 역사 가운데 서로마제국은 멸망을 당했지만 로마의 교황청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유일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구교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애굽의 곱틱교회는 역사적인 흔적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시리아교회는 동로마제국이 멸망을 당하자 러시아로 옮겨져서 오늘날에도 정교회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를 간략하지만 장황하게 말씀드린 이유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저술하면서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지를 규명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들어가서 자생적인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싶어합니다.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교회가 로마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실력자들인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이 바울의 설명을 듣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얻게 되면 믿음이 성숙하게 된 그들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로마제국의 기독교탄압이 완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로마교회는 부유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사도 바울은 이태리에서부터 스페인에 이르는 서방선교를 마무리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해 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야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사도 바울이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에 사도 바울은 가급적 로마교인들의 심정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을 우선 서신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로마인이라고 하는 그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점을 자극하지 아니하도록 가급적 헬라인과 야만인 또는 유대인과 헬라인이라는 대조법을 사용하여 교묘하게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로마인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가 무엇인지 그 점을 먼저 살펴보아야 로마서에 대한 깊숙한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이제부터 그 점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첫째, 로마인들은 매우 실용적인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로마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면 유용한 자원을 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학문과 철학 그리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 그리스인들이며 그들의 문화가 헬라세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비록 로마인들이 무력으로 헬라세계를 정복하였지만 그 문화를 없애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정치적으로 그리스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문과 철학 그리고 예술의 능력만은 그대로 보존하고서 그들을 사용하여 잘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당시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헬레니즘이 대세이지만 그와 전혀 다른 하나의 사상과 종교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헤브라이즘입니다. 그 사실을 실용적인 로마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시리아제국을 정복하지만 그 속국인 선민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유대교를 보전할 수 있도록 종교적인 자치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로마황제가 파견한 로마총독이 유대 땅에서 대제사장을 임면하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유대교의 최고지도자로서 행세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입을 대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로마인들은 헬라 세계 바깥에 존재하고 있는 유라시아 유목민들에 대해서는 문명의 바깥에서 살고 있는 미개한 야만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전통적인 헬라인들의 이분법적인 세계관과 같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 4분5열이 되어 있던 헬라 세계와는 달리 로마제국의 모든 영역안에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정치권력과 군사력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①로마인들이 제정한 로마법이 모든 속국의 백성들을 하나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②로마시민권을 가진 로마인들은 황제가 있는 로마시에서 재판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③로마인들에 대해서는 속국을 다스리고 있는 총독이나 왕가가 결코 재판해서는 안되며 로마황제도 그들을 십자가에 처형할 수가 없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로마황제를 신처럼 섬기는 속국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굶어 죽지 않도록 경제적인 원조를 베푸는 것도 로마황제의 정책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법제도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소아시아의 남부 교육도시 다소 성 출신이며 로마시민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로마서에서 그 점을 직접 내비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저 조심스럽게 외식적인 신앙생활, 이중적인 신앙생활은 올바른 믿음의 자세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민법을 속국의 백성들에게만 강요하고 로마인들은 지키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이중적인 잣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질타한 이중적인 신앙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남에게는 강제하면서 자신은 예외로 두고 있으니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올바른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 점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쳐 나가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속마음이지만 오늘의 본문인 로마서 제2장에서는 그 표현이 아주 완곡하며 결코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러하다는 직접적인 지적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간접적인 설명으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사도 바울의 놀라운 글솜씨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함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우월한 지위와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기득권자를 말하고 있음. 예를 들면, 여호와신앙에 있어서는 율법을 지니고 있는 선민 유대인이고 철학과 학문과 예술에 있어서는 헬라인이며 법제정과 통치권력에 있어서는 당시 제국의 지배자인 로마인인 것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마7:1-5, 예수님은 당시 백성들에게 율법선생으로 군림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에 대하여 그와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심, 마23:2-36. 마찬가지로 이방인사도인 바울은 각 분야의 기득권자에게 같은 경고를 하고 있음. 특히 제국의 수도 로마시에 있는 초대교회의 구성원인 로마인 성도들에게 그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임).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창조주 여호와의 처벌과 심판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것임, 렘25:29).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율법선생인 랍비를 비롯한 바리새인, 여기서는 세상의 지배자이며 재판권을 가진 로마인을 말함),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마18:5-10, 왕자무치의 특권을 주장하는 권력자도 결코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임)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진정한 회개를 원하시는 여호와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는 것임, 출32:34, 33:19, 마12:31-32, 눅12:5)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창15:16, 우상을 섬기고 음란에 빠진 그 정도가 정해진 선을 넘어서게 되면 여호와의 심판으로 가나안 원주민들처럼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마는 것임. 그 점에서 사도 바울은 벌써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임)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공의의 원칙과 아가페 사랑을 말함, 막3:4, 눅10:33-37, 마25:40)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마5:44-45),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롬1:32, 끼리끼리 당을 지어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기득권과 특권을 언제나 누리고자 하는 자들)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말미암아 처벌과 멸망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임)”(롬2:1-8); 사도 바울의 서신인 로마서의 수신인이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자리잡고 있는 로마교회의 성도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로마인에 대한 경고와 회개를 종용하는 바울의 강력한 외침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우월한 지위와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기득권자를 말하고 있음. 예를 들면, 여호와신앙에 있어서는 율법을 지니고 있는 선민 유대인이고 철학과 학문과 예술에 있어서는 헬라인이며 법제정과 통치권력에 있어서는 당시 제국의 지배자인 로마인인 것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마7:1-5, 예수님은 당시 백성들에게 율법선생으로 군림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에 대하여 그와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심, 마23:2-36. 마찬가지로 이방인사도인 바울은 각 분야의 기득권자에게 같은 경고를 하고 있음. 특히 제국의 수도 로마시에 있는 초대교회의 구성원인 로마인 성도들에게 그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임).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창조주 여호와의 처벌과 심판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것임, 렘25:29).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율법선생인 랍비를 비롯한 바리새인, 여기서는 세상의 지배자이며 재판권을 가진 로마인을 말함),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마18:5-10, 왕자무치의 특권을 주장하는 권력자도 결코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임)”(롬2:1-3); 본문의 요지는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그것으로 의로움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첫째, 판단하는 자와 판단을 받는 자가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떠한 자들이며 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의 인간론은 한마디로,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롬3:9-10).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인간론과 동일한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18:19). 여기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자가 없다는 말은 절대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자가 창조주 하나님 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절대적인 선을 행할 수가 없으며 오직 상대적인 선만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절대적인 선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돌보며 그 생명을 전부 살릴 수 있는 창조주의 의지이며 능력인데 쉽게 말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와 달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상대적인 선은 다음 두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이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서로 옳다고 인정을 해주면서 자신들만의 이기적인 ‘정의’(正義, justice)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인 정의를 마치 하나님의 공의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비교론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잘못과 부족함을 지적함으로써 그 반사적인 이익을 얻어 자신의 옳음과 완전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불완전한 인간들의 비극은 죄인인 자신들이 서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완전함과 의로움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와 똑같은 잘못을 본질적으로 당사자도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자신이 비판하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롬2:1-2).
4) 바울의 말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한 맥락인 것입니다;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1-5).
5) 셋째,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심판과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역사 가운데 형식적인 이단논쟁만을 일삼은 자들은 누구인가요? 중세의 유럽에서는 스콜라 철학이 발달하여 대학을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철학적으로 연구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형식적인 논리와 궤변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토론을 통하여 학문을 한다고 하는 것은 서로 자신의 이론이 옳으며 더 낫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지나쳐서 나중에는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아 부치면서 자신들의 학파가 옳다는 점을 강조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말았습니다.
6) 그와 같은 잘못된 사례를 벌써 사도행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 도다”(행6:8-13).
7) 토론과 논쟁에 그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아서 처형을 하고자 하는 행태를 보이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주의하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경고가 다음과 같습니다;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2:3). 여기 본문에서는 상대방을 이단으로 보고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롬2:1-3). 그 대신에 로마제국의 수도에 있는 초대교회에서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그 신분이 지배계급이며 기득권자들이므로 속국의 백성들에게 로마의 만민법을 적용하면서 자신들은 그 법에 저촉을 받지 아니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불합리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자무치(王者無恥) 사상에 젖어서 살아가게 되면 그 옛날 다윗왕의 함정에 로마의 권력자들이 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삼하12:5-15).
(2)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진정한 회개를 원하시는 여호와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는 것임, 출32:34, 33:19, 마12:31-32, 눅12:5)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창15:16, 우상을 섬기고 음란에 빠진 그 정도가 정해진 선을 넘어서게 되면 여호와의 심판으로 가나안 원주민들처럼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마는 것임. 그 점에서 사도 바울은 벌써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임)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공의의 원칙과 아가페 사랑을 말함, 막3:4, 눅10:33-37, 마25:40)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마5:44-45),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롬1:32, 끼리끼리 당을 지어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기득권과 특권을 언제나 누리고자 하는 자들)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말미암아 처벌과 멸망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임)”(롬2:4-8); 역시 질의답변형식으로 알기 쉽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 하나님의 역사심판이 매우 느리다고 생각하여 자신들의 생각대로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요?(롬2:4-5) 먼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은 언제까지 계속이 되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롬2:4);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심판과 처벌이 아니라 그 전에 죄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까지 죄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 그 점이 궁금합니다.
2) 그 점에 대하여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좋은 사례가 민수기 제20장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출애굽 제40년 정월에 모세와 아론은 새로운 세대로 구성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가데스 바네아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대로 이스라엘 군대를 편성하고 지휘체계를 갖추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벌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38년 만에 돌아온 가데스 바네아에는 그 옛날의 우물에서 더이상 물이 나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이 여호와와 모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 간구하여 그 처방을 얻어 내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큰 반석에 모세와 아론이 조용하게 명령하여 샘물이 솟게 하여 백성들과 가축들에게 마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세대나 신세대나 변함이 없이 무려 40년간이나 여호와와 모세에게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는 광경을 보고서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분노를 먼저 동족들에게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미성숙하고 반역하기를 떡 먹듯이 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들은 더 이상 물을 만들어 제공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하면서 모세가 그 지팡이로 반석을 2번 내리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번복하지 아니하는 자신들의 의사결정임을 백성들 앞에서 밝히고 있는 행위입니다. 바로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역설적으로 그 반석에서 엄청난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여 모든 백성과 가축들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을 저버리고 백성들에게 역정을 내고 그들의 잘못을 비판한 모세와 아론에게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해에 광야에서 죽는 것으로 심판하시고 마는 것입니다”(민20:2-13 요약).
3)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생활 40년을 지내면서도 여전히 구세대나 신세대나 별로 차이가 없이 마실 물이 없으면 여호와와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는 것을 보고서 모세와 아론이 분노하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 긍휼하게 여기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여 살 길을 마련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인내와 긍휼 베푸심은 모세와 아론의 경지를 훨씬 뛰어 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죄 사함과 살길 마련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전부 계산하여 심판하고 처벌하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벌써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32:33-35). 한 마디로, 대속자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시고 보응할 날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4) 둘째, 여호와의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날이 되면 무엇에 근거하여 판결이 이루어지는가요?(롬2:5)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5);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 제 고집과 제 마음대로 인생을 살게 되면 그 내용이 일일이 기록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여호와의 심판대에 서게 되면 영생이냐 영벌이냐가 평생 동안 지은 그 죄를 가지고 결정되고 마는 것입니다.
5) 그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벌써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지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7-29). 또 하나의 기준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을 면할 수가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시인하고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백과 진심 어린 회개가 있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상급을 바라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눅22:28-30, 롬8:16-18).
6) 셋째,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영생을 주시고 누구에게 진노하시며 분노하시는 가요?(롬2:6-8) 본문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2:6-8);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사도 바울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인생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참고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여기서의 선은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썩어질 세상의 영광보다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진노로 심판을 받게 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자입니다; ①첫째, 무리를 규합하여 그 세력과 자신들의 교리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②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지 아니하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둘째로,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선민) 유대인에게요(렘25:29, 여호와의 진노와 처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임. 실제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그 땅에서 내쫓기고 마는 것임) 그리고 (이방) 헬라인에게며(헬라인의 문명을 인정하고 수용한 로마인들이 여기에 포함되고 있음. 특히 로마인은 당시 제국의 지배자이며 로마시의 성도들이 바로 그들임),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선포와 부활의 역사가 선민 유대인의 땅에서 발생하고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것임) 그리고 헬라인에게라(사도와 성도들에 의하여 이방지역 헬라의 세계로 복음전파가 이루어지고 있음. 그리고 이제는 사도 바울이 체계적인 복음을 전해주고자 로마시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임).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빈부귀천이나 세상적인 우월함과 지배력을 말함)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삼상16:7, 창22:12, 다윗과 아브라함의 경우). 12. 무릇 율법 없이(여호와로부터 주어진 선험적인 본성과 양심을 어기고, 14-15절) 범죄한 자는(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야만인은)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선민 유대인들)는 율법으로 말미암아(율법의 적용을 받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마7:21,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임),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요3:18-21, 히4:13, 삼상16:7, 창4:8-11, 39:9)”(롬2:9-16); 역시 문답형식으로 알아봅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영생을 주시고 누구에게 진노하시며 분노하시는지 그것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알게 될까요?(롬2:9-10) 먼저, 본문의 내용입니다;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2:9-10);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사도로서 세계선교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3차례의 선교여행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전한 대상자는 크게 보아 유대인 교포들과 헬라인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①시리아의 안디옥교회의 유대인 성도들과 헬라인 성도들, ②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여러 도시의 유대인 교포들과 헬라인들, ③그리스반도와 마케도니아의 유대인 교포들과 헬라인들입니다.
(2) 바울이 교포사회의 유대인들과 현지의 헬라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결과 한가지 깨닫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말씀의 진리를 예수님처럼 실천하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는 영적인 상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①첫째,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생명살림의 천국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영적인 평강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 반대로 생명살림의 복음을 거부하고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이익만을 극대화하고자 몸부림을 치게 되면 그 심령속에 영적인 불안과 죄의식만이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롬2:11, 삼상16:7). 그 점을 언제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둘째,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과 사람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율법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롬2:12-13) 먼저, 사도 바울의 ‘영적 기독론’(靈的 基督論, spiritual Christology)의 핵심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봅니다;
1) 첫째, 랍비 사울이던 시절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사람의 음성으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4)고 하는 말씀을 들은 당사자입니다(행9:3-9). 그는 그와 같은 영적인 체험의 의미를 깨닫기 위하여 히브리정경의 말씀과 예수님의 교훈 및 행적을 비교하면서 오래 묵상한 사람입니다(갈1:14-19). 그 결과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음성으로 임재한 실체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재림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생전의 예수님의 제자나 사도는 아니었지만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영이신 주님을 만나 그의 제자이며 사도가 된 자입니다(고전15:8). 따라서 그는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이방인들에게 자신처럼 그렇게 영적인 주님을 만나서 그 제자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고전11:1, 빌3:13-16). 그것이 그의 독특한 영적 기독론의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생전에 육신을 가지시고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셨지만 이제는 영적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주님이십니다(요14:1-3, 18-19). 그 일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영을 성도들에게 성령님으로 먼저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눅24:49, 요14:16-17, 행1:8, 2:1-4).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제는 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선적으로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시면서 성도들에게 영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행2:1-47).
3) 셋째,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성전을 마련하고 계시기에 그곳에 성자(聖子, son of God)께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임재하실 수가 있습니다(요8:29, 14:19-20, 23).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제8장에서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롬8:1-39). 따라서 로마서 제8장이 사도 바울의 영적 기독론의 결정판이 되고 있습니다.
4) 넷째,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에 동참한 바가 있는 의사 누가는 그가 적고 있는 사도행전 제16장에서 사도 바울의 영적 기독론의 영향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기고 있습니다; “1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1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투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6-7).
(4) 셋째, 사도 바울의 영적 기독론은 율법의 의와 어떻게 결부가 되는가요?(롬2:11-13) 먼저 본문이 다음과 같습니다;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1-13);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의 영적 기독론은 그가 생전의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관계가 분명하게 영적인 관계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나 육체가 아니라 그 속 사람 곧 영적인 상태와 마음의 중심을 먼저 보시고 영적으로 임재 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는 말씀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2:11)는 말씀은 상통(相通, 서로 통함)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율법의 의(義)는 마음 속에서부터 그 율법의 의미를 철저하게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도 그 율법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육신의 이기심과 현세적인 탐욕 때문에 율법의 의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실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셋째, 그 대안으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잘 실천하는 백성들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종교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외식적(外飾的)인 율법생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외식적인 율법의 준행으로써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제23장에서 그토록 통렬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4) 넷째, 사도 바울은 율법의 중요한 역할이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3:20).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율법을 온전히 준행을 하려고 하지만 육신적인 탐욕 때문에 도저히 율법의 의를 이룰 수가 없으므로 대속자를 보내어 주시고 영적인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도록 해달라고 간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이 선민들에게 주고 있는 참으로 중요한 기능입니다.
(5) 넷째, 창조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로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면 율법은 선민들에게 주어진 특별 계시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율법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롬2:14-15) 그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가요?(롬2:16) 먼저, 이방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율법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부터 알아봅니다(롬2:14-15).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운영을 위한 법률인 율법으로 전해진 바가 없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6)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특별계시인 율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을까요?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현실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깊이 아는 신앙생활이란 것이 율법을 가진 선민들보다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창조 당시에 인간의 심령속에 그리고 자연 속에 각각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연계시인 그것을 인간의 능력이라는 차원에서 다음 2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자연의 흐름과 움직임 가운데 들어 있는 창조주의 솜씨를 깨닫는 인간의 지성적 이성적 능력이며 ②또 하나는 인간의 심령 속에 내재가 되어 있는 하나님을 알 만한 영적이고도 직관적인 장치들인 것입니다. 각각 나누어서 설명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피조물의 세계인 우주와 삼라만상의 자연적인 흐름과 그 움직임의 이치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역사하심을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은 이미 로마서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2) 둘째, 사람을 창조할 때에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창조주를 알 만한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사람들에게 부여하였는데 그것이 창세기 제1장에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창1:26-27). 그 선험적(先驗的, pre-monial)인 능력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 양심에 담겨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롬2:14-15). 그것은 로마서 제1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것임;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 자신의 본성과 양심을 거슬러 살고자 하면 훗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 자신의 본성과 양심이 일종의 고발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그것은 마치 선민들의 율법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견해는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는 신중하게 본문에서 괄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롬2:14-15).
(7) 그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가요?(롬2:16)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2:16); 자연계시 가운데서 창조주를 발견하는 인간의 능력과 자신의 심령 속에 담기어 있는 본성과 양심의 소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기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1) 하지만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삶을 탐닉하고 있는 육신적인 욕구 때문에 그렇게 정직하게 살아가지를 아니하고 있는 존재입니다(롬7:17-24).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자연계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본성과 양심마저 외면하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탐욕적으로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그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에 있어서 인간들의 모든 변명과 핑계를 원천봉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본문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하나의 심판의 기준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 같은 환경 가운데 성장한 나사렛 예수가 천국복음을 전파하면서 살아간 그 공생애의 과정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옹호할 수 있는 하나의 논리적인 주장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영적인 삶이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일반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특혜가 없지 아니했느냐?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차이를 메꾸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강림이며 초대교회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는 그러한 핑계와 변명이 전혀 통하지 아니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진 백성이며 율법대로 행할 때에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이 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믿고 있음),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율법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생명을 살리며 돌보는 선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음),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그러므로 선민 유대인은 이방인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임),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율법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가 담겨 있으므로 율법을 파수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어리석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올바른 인도자요 선생이 되고 있다는 것임),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잘못은 그 율법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지 아니하고 우선적으로 이방인들의 잘못을 심판하고 비판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임. 말과 행동이 다른 선민들의 문제점을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적인 신앙태도로 지적하고 계심. 그것을 사도 바울은 십계명 위반이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임) ①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제8계명 위반, 출20:15) 22. ②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제7계명 위반, 출20:14) ③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창31:19, 라헬이 족장 라반의 신물이며 우상인 드라빔을 탐하다. 제10계명 위반, 출20:17) 23. ④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여호와의 진리의 말씀 대신에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마귀의 꾀를 따르다, 창3:1-10. 제1계명 위반, 출20:3, 마4:8-11)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사52:5, 말 따로 행동 따로 이중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보고서 이방인들이 유대교를 믿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멸시하고 있는 것임)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만약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 행하면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역사가 발생하고 , 만군의 여호와는 찬양의 대상이 되며 선민들의 할례는 자랑거리가 될 것임)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그와 달리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경우에는 유대인들의 육체적인 할례가 도무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임)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無)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만약 할례제도를 지니고 있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율법의 정신에 따라 행동한다고 하면 그것은 육체적인 할례를 받은 선민보다 더욱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이 될 것임을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임)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나아가서 율법을 가지고 있을 뿐 그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정죄하고 말 것임)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그러므로 결론은 육체적인 할례를 가지고 선민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임).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신10:16, 30:6, 렘9:26),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창17:1,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신앙생활. 삼상16:7,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여호와. 마7:21, 그 말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을 보고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심)”(롬2:17-29);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진 백성이며 율법대로 행할 때에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이 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믿고 있음),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율법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생명을 살리며 돌보는 선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음),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그러므로 선민 유대인은 이방인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임),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율법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가 담겨 있으므로 율법을 파수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어리석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올바른 인도자요 선생이 되고 있다는 것임),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잘못은 그 율법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지 아니하고 우선적으로 이방인들의 잘못을 심판하고 비판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임. 말과 행동이 다른 선민들의 문제점을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적인 신앙태도로 지적하고 계심. 그것을 사도 바울은 십계명 위반이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임) ①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제8계명 위반, 출20:15) 22. ②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제7계명 위반, 출20:14) ③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창31:19, 라헬이 족장 라반의 신물이며 우상인 드라빔을 탐하다. 제10계명 위반, 출20:17) 23. ④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여호와의 진리의 말씀 대신에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마귀의 꾀를 따르다, 창3:1-10. 제1계명 위반, 출20:3, 마4:8-11)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사52:5, 말 따로 행동 따로 이중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보고서 이방인들이 유대교를 믿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멸시하고 있는 것임)”(롬2:17-24); 문답형식으로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유익이 무엇인가요?(롬2:17-20)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든 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롬2:17-20). 율법을 가진 선민 유대인들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사도 바울의 문장입니다.
2)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율법 속에 담기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것을 율법을 모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자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을 공부하고 그 뜻을 알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생 가운데 백성들이 진실로 무엇을 실천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면 선민들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사랑하여 살리라는 하나님의 지극히 선하신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선민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여 구원을 얻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파하고 가르쳐주어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참된 율법선생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참고로,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은 모세의 기록과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기록인 출애굽기 제19장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대하고 계시는 역할로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책무”를 말하고 있습니다(출19:4-6).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가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일원이 되고 또한 아브라함처럼 거룩한 중보기도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창18:23-32). 또한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이방인을 구원하는 선민의 역할론은 예수님께서 선민들에게 재삼 주지시키고 있는 ‘요나의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마12:39-42).
4) 둘째, 율법을 가진 것 만을 자랑하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지 아니하게 되면 어떠한 ‘왕자무치’(王者無恥, 왕은 법 위에 있다고 하는 생각) 사상에 빠지고 어떠한 ‘법비’(法匪, 법을 악용하는 비적을 말함)가 되고 마는 것일까요?(롬2:21-24) 먼저 본문 말씀입니다;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롬2:21-24);
5) 한마디로 선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철저하게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은 십계명과 이사야의 예언에 비추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롬2:22b). 하나님의 것인 신전의 물건을 사유화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며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롬2:22c). ②둘째, 바리새인들도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데 치중하고 있지 그것을 모범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실천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롬2:21a). 따라서 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간음죄와 절도죄를 은밀하게 행하고 있습니다(롬2:21b-22a).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범행은 결국 백성들에게도 만연되고 마는 것입니다.
6) ③셋째, 이방인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정확하게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눈 여겨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실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거룩하게 율법을 지키는 척 하지만 내적으로는 은밀하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면서 율법대로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이중적이면서 가식적인 신앙생활이 이방인들에게도 포착되어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우습게 여기며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롬2:23).
7) ④넷째, 사도 바울은 이사야 제52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사52:5). 외식적인 바리새인들의 율법생활이 모든 선민사회에 유포가 되고 만연이 된 결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이상 선민의 사회를 보호하실 실익(實益)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그 백성들이 이방의 제국에 잡혀가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게 되는 역사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롬2:24). 그와 같은 말씀은 뒤집어서 풀이를 하게 되면, 성도들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직하게 지키고 실천하게 되면 결코 성도의 사회는 망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불신자들에게 모독 받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2)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만약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 행하면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역사가 발생하고 , 만군의 여호와는 찬양의 대상이 되며 선민들의 할례는 자랑거리가 될 것임)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그와 달리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경우에는 유대인들의 육체적인 할례가 도무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임)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無)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만약 할례제도를 지니고 있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율법의 정신에 따라 행동한다고 하면 그것은 육체적인 할례를 받은 선민보다 더욱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이 될 것임을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임)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나아가서 율법을 가지고 있을 뿐 그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정죄하고 말 것임)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그러므로 결론은 육체적인 할례를 가지고 선민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임).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신10:16, 30:6, 렘9:26),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창17:1,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신앙생활. 삼상16:7,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여호와. 마7:21, 그 말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을 보고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심)”(롬2:25-29); 이것 역시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 율법을 형식적으로 행하는 것과 그 속뜻을 살펴서 진심으로 행하는 것과의 차이는 할례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롬2:25-29) 먼저, 선민들이 이방인들에게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만 주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①첫째가 율법이고 ②둘째가 할례입니다. ③셋째가 성전이고 ④넷째가 제례의식입니다. ⑤다섯째가 안식일 규례이며 ⑥여섯째가 희년(禧年, 50년 마다 종을 해방시키고 기업을 되찾게 하는 것임) 제도입니다. 그 가운데 역사속으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이 희년 제도입니다. 그 다음이 선민들의 국가의 멸망과 더불어 찾아온 성전과 제례의식의 실종인 것입니다.
2) 주후 930년경 이스라엘 제국이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 2년에 둘로 쪼개어져 북쪽에는 이스라엘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시작하게 됩니다(왕상12:12-20). 남쪽에는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로보암1세는 백성들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성전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둘 만들어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남쪽 국경도시인 벧엘과 북쪽 국경도시인 단에 세우고 국가적으로 우상숭배를 시작합니다(왕상12:27-33). 그 우상을 철폐하지 아니하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계속 사용되다가 마침내 여호와께서 그들을 주전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왕하17:6, 22-23).
3)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유일한 선민의 나라의 정통성을 가지고서 대내외적으로 위의 6가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전 680년경 므낫세 왕이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백성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나자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역시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맙니다(왕하21:11-13, 25:1-7). 그러므로 주전 530년대에 페르시아 제국의 호의로 일부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와서 예루살렘 제2성전을 주전 516년에 재건할 때까지 실제로 성전문화와 제례의식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유민들과 함께 페르시아 황실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건설한 예루살렘 제2성전은 그 규모가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4) 그것을 주전 20년경부터 그 옛날 솔로몬성전만큼 크게 증축하고 있는 것이 헤롯 왕가입니다. 그들은 본래 에돔족속이지만 유대교인이 됨으로써 가나안 남부지역에서 살아남은 이두매인들의 왕가입니다. 그러므로 다수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그러한 정책을 추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46년이 걸려서 헤롯성전이 완성되어 있습니다(요2:20). 그러나 40년이 지나자 헤롯성전으로 증축이 된 제2성전의 시대가 주후 70년에 로마대군의 진입으로 끝나게 되고 선민 유대인들은 중동과 지중해에 흩어져버리며 그들의 성전문화와 제례의식 역시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5) 주후 70년부터는 유대인들의 회당(會堂, synagogue)이 그 옛날의 성전을 대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전과 제례의식이 모두 사라졌기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라 오늘날까지 선민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은 3가지입니다; ①첫째가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입니다. ②둘째가 매우 전통적인 유대인들이 시행하고 있는 할례인데 그것은 태어난 지 8일만에 사내아기에게 행하는 포경수술입니다(창17:9-12). ③셋째가 토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 규례인 것입니다(출16:28-30).
6) 둘째,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이 율법과 할례를 꼭 집어서 선민의 신앙상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와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요?(롬2:25-29) 먼저 본문 말씀입니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5-29);
7) 사도 바울의 문장의 표현력과 설명의 논리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글입니다. 그의 논리의 전개과정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풀이를 간략하게 해보고자 합니다; ①첫째,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롬4:16)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다음과 같은 믿음생활의 비결이 바울의 글을 해석하는데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그러므로 육신에 행하고 있는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정직하게 준행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입니다. 그에 따라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롬2:25)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8) ②둘째,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고 있는 이방인들이라고 선민들이 무시하고 있는데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의 제자 답게 진실되게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실천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결과는 외식을 행하고 있는 바리새인이나 선민들보다 훨씬 나은 믿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롬2:26-27).
9) ③셋째,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용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을 표면적인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심령 곧 마음과 영을 이면적인 것을 정의하고서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2:28-29a). 참고로, ‘마음에 행하는 할례’가 ‘육신의 할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벌써 모세에 의하여 지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신10:16).
10) 끝으로, 사도 바울이 온전한 신앙생활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한번 더 요약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9b).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들의 믿음 생활이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정직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일찍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창17:1).
결론적으로, 주후 49년 예루살렘총회에서 사도와 장로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예루살렘교회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결정된 사항은 유대인들의 선민우월사상과 율법지상주의라는 알을 깨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사도와 성도들이 해외에 선교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 그리고 부활에 관한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재래적인 인위적인 세계관 곧 선민과 이방인, 헬라인과 야만인이라고 하는 이분법에 의한 이중적인 잣대로 여호와의 뜻에 따라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국의 지배자라고 하여 로마인들이 속국의 백성을 하나로 다스리기 위하여 제정한 만민평등법에서 자신들만 제외하고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요컨대, 속국의 백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그 법정신을 로마인들만 예외로 하여 그들이 지키지 아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기득권을 보호하고 이중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게 되면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 보시기에 외식적인 것이며 결코 진리를 신봉하는 성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절대 진리성을 지니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복음과 그것을 실천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으로 헤브라이즘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관점에서 로마서와 히브리정경인 구약을 함께 살피고 많은 은혜를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