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대교리와 기독교리의 극명한 차이점을 사도 바울이 설명하다”(롬3:1-31)
설교일; 주후 2026년 1월 1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4월 3일 목요일 작성)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들이 창조주 여호와와 언약을 맺었으며 그 언약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간 기록을 보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제국 애굽에서 100년 넘게 핍박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과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신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류 최초로 창조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시내 산 정상으로 불러서 여호와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이 시내 산 언약에 기초하고 있는 모세의 율법이며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운영하는 지침서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독특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선지자들이 계속 출현하여 선지서와 역사서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름하여 기록으로 남아 있는 히브리경전인 미크라, 말로만 전해지고 있는 전승들인 미쉬나 등입니다.
그리고 주전 2세기 중반부터는 바리새인들이 나타나서 미쉬나를 글로 적고 기도문과 율법세칙을 보완하여 마침내 탈무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그들은 100여년에 걸쳐서 미크라와 미쉬나를 연구하여 주석서 미드라쉬를 만들어 그것으로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똑똑한 아들을 선택하여 십여 세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뛰어난 랍비나 율법학자인 교법사로부터 율법을 배우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전통적으로 30세가 되면 소정의 시험을 거쳐서 생도들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랍비의 자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좁은 문입니다. 왜냐하면, 수천명의 생도들 가운데 그 시험에 합격하여 실제로 랍비가 된 수는 수백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10대 소년시절부터 열심히 미크라와 미쉬나 그리고 미드라쉬를 공부하게 되면 25세에 그 시험에 합격하여 랍비의 자격을 획득하는 천재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중의 한사람이 랍비 사울인데(행22:3-5) 그가 바로 로마교회에 보내는 이글의 저자인 이방인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야 말로 유대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자랑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지하여 본문에서 3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간직하고 있는 민족이며 선민의 표징인 할례를 행하고 있는 백성들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롬3: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모르고 있는 이방인들과 다르며 창조주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표시인 할례가 없는 민족들과는 전혀 다른 거룩한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창17:9-14).
(2) 둘째,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며 노예처럼 부리고 있던 애굽제국에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출12:29-42).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선민 유대인들을 멸시하고 박해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유대인사회에 메시아가 나타나게 되면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입니다(롬3:4).
(3) 셋째, 이스라엘의 정통 왕가인 다윗왕조가 사라지고 유대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하25:1-12). 그것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선민 유대인들이 선하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롬3:5-6).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파수하고 있으며 여호와신앙을 고수하고 있기에 주변의 이방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의롭고 선한 백성들입니다. 더구나 선민 유대인들의 실족을 통하여 창조주 여호와의 선하시고 거룩하심이 더욱 돋보이고 있으니 선민 유대인과 그들의 종교인 유대교는 여전히 그 존재가치가 충분한 것입니다(롬3:7-8).
이상과 같은 선민 유대인들의 주장과 유대교리의 정당성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기독교리와 비교하면 당장 두가지의 큰 오류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파수하고 있으며 육체적인 선민의 특징인 할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대교인인 그들은 주변의 이방인들보다 의롭고 거룩하다는 주장은 인위적인 이분법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의 속성과 거룩한 말씀의 뜻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는 공의의 정신과 인위적인 차별이 일체 없는 아가페 사랑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마5:44-48, 요3:16). 그러한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이 세상에 전파한 인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이 선민 유대인만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는 유대교리와 정반대로 다르기 때문에 그만 그리스도가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유대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다윗의 자손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하는 인물입니다. 그들은 중동에서 지역패권을 행사하던 다윗대왕의 이스라엘제국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국의 건설은 주변의 족속들을 속국의 백성으로 삼아 조공을 받으며 정치적 군사적으로 핍박하는 또다른 패권국의 성립을 의미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는 현세적인 패권국의 건설이 아니라 온 세상만민이 영생구원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 다 함께 들어가서 창조주 여호와와 대속의 구주를 영원히 찬양하는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보전하고 있다는 것이 인류에 대한 가장 큰 기여임. 로마인들이 잘 알고 있는 그대로 헬레니즘이 그리스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면 헤브라이즘은 선민 이스라엘인에게서 비롯된 것임. 그에 따라 로마인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작성하면서 사도 바울이 그 점을 여러 번 지적하고 있음, 롬9:4-5, 11:17-21, 24, 15:27).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여기서의 어떤 자들은 사실 선민 유대인들임. 왜냐하면,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가장 먼저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본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임.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생활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임. 구체적으로, 선민우월사상에 젖어서 그들만의 구원을 믿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는 그러한 정치적인 메시아를 보내어 주기를 학수고대하였으니 그것이 올바른 믿음에서 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게 된 가장 큰 요인임)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사도 바울은 선민 유대인들의 넘어짐이 사실은 이방인들에게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베풀기 위한 여호와의 놀라운 역사섭리라고 보고 있는 것임, 롬11:12, 15, 19-21)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나 이기심과 세속적인 탐욕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길에서 실족하게 되는 것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하나님 말씀의 진리성과 절대선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음. ①무엇보다 창조주이신 여호와는 피조물을 자신의 자식같이 사랑하여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심.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며 아가페 사랑인 것임. ②그러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진리이며 그것이 변함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되는 것임. ③그 사실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복음사역을 통하여 밝히고 있으며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 죽음과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하는 역사로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것임. ④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임).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여기서 ‘그러나’로 시작하고 있는 피조물의 항변은 ①창조주 여호와에 의하여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있음. 그 이유는 소위 ‘제조자 책임에 관한 법칙’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임. 그러나 ②그것마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고 나면 더 이상 항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임. 왜냐하면, 여호와의 독생자가 스스로 성육신하여 공생애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였으며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말았기 때문임. ③그때 흘리신 성부 하나님의 피눈물을 생각하면 더 이상 피조물이 창조주의 책임을 거론할 수가 없음. 왜냐하면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심하여 올바른 믿음생활에 들어가야 하는 자는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임. ④역사적으로 신학적인 책임론의 공이 창조주 하나님께 넘어갔다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넘어오고 만 것임) ①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②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③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④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제는 구주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롬3:1-8); 문답형식을 통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유대인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결정하신 여호와는 어떠한 분이신가요?(롬3:1-4) 먼저 유대인이 생각하고 있는 선민사상과 할례의 유익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롬3:1-2); 이방인 사도로 일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그 출신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정경을 가르치는 랍비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에 대해서는 엄청 할 말이 많은 인물입니다. 당장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 비해서 유대인은 훌륭한 구석이 많이 있으며 할례도 그 유용성이 범사에 많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서 단 한가지만 우선적으로 설명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롬3:1-2).
(2) 사도 바울이 여기서 생략하고 있는 설명을 로마서의 다른 대목에서 찾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얻지 못하고 있는 여호와의 언약과 율법,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 안식일과 예배, 믿음의 조상들, 그리스도의 유대 땅에서의 출생 등이 그러한 것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여호와를 섬긴 믿음의)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4-5).
2) 둘째,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심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지나쳐서 그들의 인간적인 행위가 구원을 이룬다고 하는 자랑거리가 되고 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구원에서 멀어지는 문제거리가 되고 말았다고 또한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1-3).
3) 셋째, 구원이란 자기의 의로움을 크게 주장하거나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고 주장하는 그러한 인간의 의나 정의개념에서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남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1-13).
4) 넷째, 위와 같이 오로지 구원과 공의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고 있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발견입니다. 그의 깨달음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지적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18:19b),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요5:31-32),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5:34).
(3) 다음은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유대인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롬3:1-4);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시51:4),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롬3:1-4).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말할 수가 있겠지만 그 이치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 이치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즉,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께서 그들을 믿고 맡기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2) 셋째, 그러므로 선민들이 자랑할 수 있는 자신들의 유용성이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수많은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믿고서 맡겨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따라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의로움이란 인간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판단과 신뢰 그리고 그 선택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다섯째, 영생의 구원이냐? 아니면 영벌이냐?를 결정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도 참된 증거자는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말씀을 맡기시며 말씀의 종으로 살아가게 하신 그것이 의로움과 구원과 영생의 판단기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4) 참고로,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사상을 원용하여 자신의 교회론을 세우고 있는 신학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봅니다(롬3:4);
1) 주후 5세기 튀니지 작은 도시 히포의 주교였던 성 어거스틴(Augustinus,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어식 발음, 주후 354~430)의 ‘교회론’이 그러합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조직과 구별되며 거룩함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성도들의 의로움이나 거룩하게 보이는 그들의 행위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미성숙하고 죄인의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고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교회가 거룩하며 성도들이 그 안에서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이미 성도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하게 된 줄 알고서 다른 성도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닮고자 하는 제자도에서 먼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교회 안에서는 서로를 용납하고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가 도와 주어야만 합니다. 보충설명을 하자면 성령님께서 그 일을 증거하고 도움을 주고자 진리로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시고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러한 성령님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면 사도 바울의 글이나 성 어거스틴의 주장이나 모두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행1:8, 16:6-7).
(5) 둘째, 선민 유대인의 불의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는데 그러한 역설적인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요?(롬3:5-8) 선민 유대인의 불의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도 바울의 주장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습니다;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롬3:5-8);
(6) 선민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맡은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믿고서 말씀을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선민 유대인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항변이 가능하다는 사도 바울의 지적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러한 바울의 자문(自問)에 대한 자신의 자답(自答)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첫째, 일방적으로 신뢰하고서 말씀을 맡겨 놓으시고 이제 와서 선민 유대인들이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신다면 그것은 부당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항변은 “심판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롬3:6의역)라고 하는 비판과 같습니다. 그 항변이 성립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는 불의하신 창조주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불의한 종이 되고 있는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들이 감히 실천할 수도 없는 거룩한 것임이 증명되고 있으니 그와 같은 반사적인 이익을 과연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면 불의한 종이라고 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위선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절대선을 행하시는 유일한 존재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위선자이며 불의를 행하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구원과 심판 그리고 영생이라고 하는 모든 절차와 과정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발상은 그 자체가 사탄적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7) 셋째,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롬3:7-8a)는 반론이 있을 수가 있다는 사도 바울의 지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항변은 성립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거짓말과 악행을 자행하는 사탄과 악한 영들이 창조주 여호와에 의하여 정죄되고 마침내 영벌에 처해지는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3:8b, 요8:44, 시1:5-6). 참고로, 그러한 역설적인 인간의 역사의 반전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봅니다;
1) 첫째, 외경인 유다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절차를 선물하기 위하여 가룟 유다가 스스로 배신자가 되고 내부고발자가 되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구원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유다의 불의한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하는 궤변입니다. 그것은 복음서의 기록에 비추어 보면,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미 지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눅22:3, 요13:27);

2) 둘째,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상이 유대교리에 반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행동이 유대인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사형집행권을 억지로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요11:47-53, 18:31-32).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양이 되셨으며 제3일에 그 공로로 말미암아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긴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대인에 대해서는 주후 70년에 로마의 정예병에 의하여 그 성전이 불타고 고향에서 내쫓기게 되는 비참한 역사적인 심판이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도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3) 셋째,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극도로 과학을 발전시켜 오늘날 과학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최첨단의 21세기 물질문명시대를 구축하고서 인류가 지구촌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상이변과 공해, 핵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기아문제와 새로운 질병의 발생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가 자신들의 이성과 지성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스스로 죄와 사망 그리고 역사의 종말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역사가 진행할 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9 그러면 어떠하냐?(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마침내 그를 처형한 잘못이 있지만 이방인인 우리는 그러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관하다는 견해에 대하여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대답하고자 함) 우리는(이방인들을 말함)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말함)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사14:1b, 53:1b),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사14:1a, 2, 53:1a, 2),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14:3, 53:3).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시5:9),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140:3),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시10:7, 59:7),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 지라(잠1:16). 16. 파멸과(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처형하였기에 38년후 예루살렘의 멸망이 찾아옴, 눅21:6, 23-24a) 고생이(눅21:24b, 유대인들이 이방 땅에 흩어져서 고생하게 됨)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눅24:36, 롬8:1-2,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비로소 마음속 평강을 회복하게 되는 것임),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시36:1) 함과 같으니라”(롬3:9-18);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서 그 답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생한 진리를 상대방에게 인상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선민 유대인의 죄를 비판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잘못은 무엇이며 성도들은 과연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롬3:9-18)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역시 문답형식으로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의 죄를 비판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이 앞서 설명한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선민 유대인들의 역사적인 기여가)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3:2-4);

1) 이방인들이 선민 유대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의 뜻을 온전하게 실천하지 아니하였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선민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 대하여 세상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이방인들의 비판이 성립될 수가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 여호와의 선택과 결정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고 있는 창조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참되시고 옳은 판단과 결정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깨달아야만 한다”(롬3:2-4 의역).
(2) 둘째, “이방인들은 과연 선민 유대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으며 세상사람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요?”(롬3:9-18).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14:1-3).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시5:9),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140:3),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시10:7),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 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사59:7-8),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시36:1) 함과 같으니라”(롬3:9-18); 한 마디로,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선민이나 이방인 교회 안의 성도이거나 바깥의 불신자들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롬3:9). 시편에 수록되어 있는 다윗의 노래에 따르더라도, 인간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심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의인이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시14:1-3).
2) 둘째, 그와 같이 죄인이 죄인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방인들이 선민들을 비판하는 것, 나아가서 불신자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비판하는 것도 전부 그러한 것입니다.
3) 셋째,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정통하고 있는 히브리정경의 시편말씀과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원용하여 다음과 같이 죄인인 인간들의 행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①그 혀로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 그 입으로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여 남을 해치는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롬3:13-14, 시5:9, 10:7, 140:3). ②무죄한 자를 살해하는데 서슴지 아니하고 있으니 카인처럼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자신의 파멸과 고생을 초래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영적인 평강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롬3:15-17, 사59:7-8). ③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무신론자와 같다는 것입니다(롬3:18, 시36:1).
셋째로,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보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말함)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율법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창조주 여호와 앞에 구원받을 만한 의인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임).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선민들에게 율법을 주신 여호와의 뜻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직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임, 창17:1). 21. 이제는 율법(하나님의 눈 앞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외식적인 종교생활에 빠져 있기에 그것)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죄인인 사람을 의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마침내 새언약의 시대로 도래하게 되었으니, 렘31:31-33), 율법과(민11:29)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신18:15, 모세와 같은 한사람의 선지자 곧 대속자 그리스도가 나타남. 사7:14,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사9:1-2, 11:1-9, 온세상에 여호와의 말씀이 전파되고 풍성해질 것임. 렘31:33,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성도들의 심령에 새기는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 눅24:44-45,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부활로 성취가 되는 것임).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주요, 부활의 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의 세례와 충만한 영적인 거듭난 삶이 이루어지니), 차별이 없느니라(이제는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임).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1:29),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칭의의 은혜를 말함)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 그 증거임, 고전15:21-23a)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그 뒤를 이어 주님의 재림으로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가 이루어지는 것임, 요5:24-29, 고전15:23b, 살전5:16-17).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영접하고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거듭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창조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곧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성도들이 이제는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롬8:1-6) 굳게 세우느니라”(롬3:19-31);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보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말함)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율법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창조주 여호와 앞에 구원받을 만한 의인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임).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선민들에게 율법을 주신 여호와의 뜻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직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임, 창17:1). 21. 이제는 율법(하나님의 눈 앞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외식적인 종교생활에 빠져 있기에 그것)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죄인인 사람을 의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마침내 새언약의 시대로 도래하게 되었으니, 렘31:31-33), 율법과(민11:29)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신18:15, 모세와 같은 한사람의 선지자 곧 대속자 그리스도가 나타남. 사7:14,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사9:1-2, 11:1-9, 온세상에 여호와의 말씀이 전파되고 풍성해질 것임. 렘31:33,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성도들의 심령에 새기는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 눅24:44-45,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부활로 성취가 되는 것임).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주요, 부활의 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의 세례와 충만한 영적인 거듭난 삶이 이루어지니), 차별이 없느니라(이제는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임).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19-24);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율법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율법을 완전하게 준행하는데 있어서 실패한 자들에게는 이제 어떠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요?”(롬3:19-24) 먼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율법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롬3:19-20)에 대한 답변부터 살펴봅니다;
2) 본문 말씀입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19-20);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3) 하나,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롬3:19a)라는 말은 그 의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험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에게 먼저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류의 대표로 선택된 선민 유대인들에게 먼저 적용되고 있습니다.
4) 둘, 만약 인류의 대표인 이스라엘 족속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으면 그것은 모든 인류가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예표가 됩니다. 반대로 선민들이 율법을 자력으로 잘 지킬 수가 없으면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율법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3:19b)고 하겠습니다.
5) 셋,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택하여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삼고 그 나라의 운영이 여호와의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모세를 통하여 신정국가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지키는 법률체계로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출19:4-8). 그것은 행위적인 규범이기 이전에 내적인 규범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듯이(창15:6, 17:1) 그렇게 십계명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율법의 뜻을 실천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6) 넷, 그렇게 율법을 준행하는 신정국가를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경영하도록 한 결과 실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a). 그렇다면 율법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요? 모세는 한마디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b).
7) 둘째, “율법을 완전하게 준행하는데 있어서 실패한 자들에게는 이제 어떠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요?”(롬3:21-24). 먼저 본문 말씀입니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1-24); 한마디로, 이제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제사를 의지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어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8) 하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율법을 지킬 수가 있는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시험을 해본 결과 실패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롬3:23). 따라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제사의 효력을 의지하여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믿음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롬3:21, 24).
9) 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제사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롬3:22).
10) 셋,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이 히브리정경에 이미 예언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롬3:21, 렘31:33).
(2)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1:29),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칭의의 은혜를 말함)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 그 증거임, 고전15:21-23a)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그 뒤를 이어 주님의 재림으로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가 이루어지는 것임, 요5:24-29, 고전15:23b, 살전5:16-17).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영접하고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거듭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창조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곧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성도들이 이제는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롬8:1-6) 굳게 세우느니라”(롬3:25-31); 역시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출32:34b)고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어떻게 대속의 은혜로 보응이 되고 있는가요?”(롬3:25-26) 그리고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출32:34b)는 말씀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가요?

2) 시내 산에 올라가서 모세가 40일 동안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배우고 있는 동안에 최고지도자의 장기간 부재로 불안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여호와 신상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고 앞길을 인도 받자고 종용했습니다(출32:1). 그 결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로 섬기면서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출32:2-6). 그 광경을 시내 산에서 내려다 보신 여호와께서는 모세 앞에서 대노하십니다(출32:79). 십계명을 정면으로 어긴 이스라엘 자손들을 전멸시키고 오로지 모세의 자손만으로 새로운 선민을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출32:10).
3) 그에 따라 모세가 간절하게 중보기도를 하여 일단 여호와의 진노를 거두게 하고 있습니다(출32:11-14). 그러나 완전한 용서를 받지 못한 모세는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분노하면서 돌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출32:19). 그리고 금송아지를 부수어 그 가루를 시내물에 타서 온 백성들에게 먹이고 있습니다(출32:20). 끝으로, 레위인으로 하여금 타지파의 백성들을 치라고 명령하여 동족상잔(同族相殘, 같은 민족이 서로 잔혹하게 싸우는 것)의 결과 3천명이 살해를 당하는 비극이 연출됩니다(출32:26-28).
4) 그러한 긴급처방을 한 다음에 모세가 시내 산에 다시 올라가서 여호와로부터 완전한 용서를 구할 때에(출32:31-32)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섬겼음이더라”(출32:33-35).
5) 둘째, “그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어떻게 대속의 은혜로 보응이 되고 있는가요?”(롬3:25-26) 출애굽기 제32장 말미의 내용 그대로 여호와께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완전하게 용서하신 것이 아니고 그후부터 여호와께 범죄한 그들의 죄를 일일이 기억하셨다가 훗날 보응할 날에 대속자를 통하여 한꺼번에 처벌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출32:33-35). 그 말씀과 관련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 제3장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3:25-26).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6) 하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십계명을 위반한 모든 죄를 기억하셨다가 하나님께서는 보응하는 날에 한꺼번에 처리하시는데(출32:34) 그 보응의 날이 바로 온전한 화목제물로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는 보혈을 흘리시는 날인 것입니다(롬3:25).
7) 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죄를 이제 화목제물인 예수님께 보응하시고 그 죄를 간과하시는 것입니다(롬3:25). 그것이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의 은혜입니다(요1:29, 히7:27). 그렇게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속의 제물인 예수님께 죽음으로 전가하고 이제는 그 죄의 결과인 사망을 건너뛰시는 것입니다(출12:12-14, 롬8:1-2). 그것이 여기서 죄를 간과하신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8) 셋,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의 정신에 따라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모든 죄를 대속자 예수님께 전가하여 보응하셨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롬3:26);

9) 셋째, “율법의 의를 스스로 이루지 못한 죄인들이 대속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다고 한다면 남은 인생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그 믿음에서 실족하지 아니하게 되는가요?”(롬3:27-28, 눅17:4-10) 먼저, “율법의 의를 스스로 이루지 못한 죄인들이 대속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주장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0) 유대교의 율법선생인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랍비였던 사도 바울의 지적에 따르게 되면 그들의 노력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코드에 맞지가 않습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1-4).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1) 하나, 랍비를 비롯한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엄청 열심히 십 수년간 배움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십대인 바리새인 소년들이 유명한 랍비의 문하에 들어가서 사숙하면서 히브리정경, 히브리전승, 랍비들의 주석 등을 공부하여 30세에 그 가운데 소수가 합격하여 율법선생인 랍비가 되고 있습니다. 아주 뛰어난 인물은 25세에 랍비가 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랍비 사울입니다.
12) 둘, 그런데 랍비들이 백성들에게 율법교육을 잘못 시키고 또한 바리새인들이 잘못된 모범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외식적(外飾的, 바깥만 그럴 듯하게 꾸밈)인 신앙생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그 앞에서 전심전력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이웃의 눈만 의식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척 시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식이며 가증스러운 가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13) 셋, 하나님 앞에서 율법생활을 제대로 하지 아니하게 되면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외식적인 율법의 준수에 불과하므로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여 결국 구원에서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선생이 그러하므로 그들로부터 배운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14) 넷,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사람들 앞에 솔직하고 여호와 앞에 정직하게 인간의 결단과 노력으로써는 율법을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게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죄를 자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고 사도 바울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15) 넷째,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다고 한다면 남은 인생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그 믿음에서 실족하지 아니하게 되는가요?“(롬3:27-28, 눅17:4-10)
16) 하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성도들은 먼저 그 종으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눅17:10);

만약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 앞에서 눈속임 용으로 율법생활을 한 것을 가지고 자신들이 의로우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변하게 되면 그것은 유대교인들의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선민구원사상은 예수님의 지적에 따르게 되면, 종의 자세를 저버린 무익한 종의 주장에 불과한 것입니다(눅17:4-10).
17) 둘, 사도 바울이 적고 있는 본문이 다음과 같습니다;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7-28). 조금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8) ①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그 의로움을 인정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모두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들이 그 공동체에서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생에 이르게 되는 구원은 애초부터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적인 차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9) ②그러한 기본을 모르고서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잘 지킨 그것으로 자신들이 의로우며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효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헛되며 그러한 잘못된 모범을 쫓아가고 있는 백성들도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하여 예수님께서 그토록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질책하신 것입니다(마23장).
20) ③선민들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자면 여호와께서 보내신 대속자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서 자신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회개하고서 청산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영생의 구원에 이르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이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고 말하고 있습니다.
21) 다섯째,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복음을 전파하며 예배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 믿음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계시는가요?”(롬3:29-31, 요14:16-20, 행1:8) 성도들이 자력으로는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복음을 전파하며 예배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2) 사도 바울이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면서 자력으로는 복음사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실토하고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1-25). 조금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3) 하나, 성도라고 하더라도 육신을 가지고 복음사역을 하고 있으므로 육신의 요구에 져서 영적인 예배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는 영적인 능력이 죄의 법을 쫓고 있는 육신의 욕구를 능히 다스릴 수가 없으므로 결국은 죄와 사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주소를 사도 바울이 확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셋, 사도 바울은 육신의 탐심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영적인 힘을 공급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24) 이제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 믿음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계시는가?”(롬3:29-31, 요14:16-20, 행1:8)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하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부활의 영이 임하여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무덤 속에서 부활하십니다(눅24:1-12, 롬8:11). 그리고 사도와 제자들과 함께 40일간 사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다시 교육을 시키시고(행1:3) 마지막으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복음사역자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자로 살아가기 위하여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라고 명령하십니다(눅24:44-49).
25) 둘,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와 성도들에게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 그대로 오순절에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여 성도들에게 성령님으로 내주하여 역사하십니다(행2:1-13). 그에 따라 전도폭발이 일어나고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탄생한 것입니다(행2:14-47);

26) 셋, 그런데 성령님만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속 사람 속에 성령님께서 성전을 마련하시면(고전6:19-20) 그 속에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임재를 하십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27) 넷,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적인 임재가 성도들에게 이루어짐으로써 율법을 강조하는 선민사상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29-31).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8) ①모든 피조물을 동일하게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구원한다는 것은 집단이기주의를 ‘정의’라고 부르짖고 있는 인간들이 좁은 생각과 부족한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써만 그와 같은 집단 이기적인 성격의 ‘정의’(justice)를 넘어서는 모든 이웃사랑 곧 ‘공의’(righteousness)의 실천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 함께 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29) ②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하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성령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롬8:11, 행2:32). 그러한 사실을 진리로서 믿고 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행1:8, 16:6-7).
30) ③그러한 믿음으로 복음사역을 하고 예배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선민 이방인의 구별이 무의미하며 외식적인 모습으로 율법의 의를 이룬다고 하는 가식적인 주장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율법을 지키는 성도의 삶이 가능해집니다(요4:23-24).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고 결론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로마제국은 만민법을 가지고 제국 내의 속국들과 속민들을 평등하게 다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제국의 법정신과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만민평등의 원칙 즉,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이라고 하는 주장이 썩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250년 남짓 지나게 되면 기독교가 로마의 유일한 국교로 채택이 됩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되면 실로 끔찍합니다. 그 마음속의 악의가 입술을 통하여 상대방을 미워하는 살의로 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 발이 곧바로 상대방을 해치며 죽이고자 달려가게 됩니다. 선지서와 시편에서 기록하고 있는 그와 같은 일들이 사도 바울 당시 선민 유대인의 사회에서나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헬라인들의 사회에서도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앞으로 다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권유는 오늘날 우리들의 현대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들의 사회가 성령님의 역사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