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을 신뢰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대속의 은혜와 영생구원의 은혜”(롬5:1-21)
설교일; 주후 2026년 1월 2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4월 8일 화요일 작성)
히브리경전에 박식한 랍비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과 형상으로 졸지에 자신에게 임재한 재림 예수를 만나자 엄청난 신학상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십대소년시절부터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유대인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삼고 20대 중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 그 문하에서 배운 히브리경전의 해석에 따르면 사람 앞에 현신하여 음성으로 대화를 걸어오는 창조주 여호와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 첫째, 모세오경의 첫번째 경전인 창세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모양과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습니다(창1:26-27). 그에 따라 여호와가 이 세상에 들어와서 선지자 앞에 현신할 때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창18:1-2). 여호와의 사자인 천사장도 그러하고 실제로 창조주도 그러한 임재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창19:1-3).
(2) 둘째, 선지서의 기록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이 선택한 선지자에게 현신하고 있으며 사람의 목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6:1, 8, 7:9-11). 그와 같은 사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와 대화를 나누시는 여호와의 모습에서 더욱 뚜렷합니다(창2:7-9, 16-18, 3:18-19).
그와 같은 사전지식을 지니고 있는 랍비 사울이기에 창조주 여호와의 강림과 임재로 자신의 육신적인 눈이 멀어버렸지만 마치 환상을 보듯이 영적인 눈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있는 여호와를 보고서 그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전혀 뜻밖입니다. 사울은 이제 환상 가운데 영적으로 창조주 여호와를 직접 만나게 되었으니 자신은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여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뜻밖에도 현신한 주는 사울이 자신을 박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랍비 사울의 간증이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역사서인 사도행전에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다메섹으로 오는 길가에서 직면한 그 영적인 체험의 엄청난 충격으로 말미암아)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행9:3-9).
그런데 놀랍게도 다메섹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이미 부활하여 승천하신 주님이 환상 가운데 임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아나니아가 랍비 사울을 찾아와서 안수하여 눈을 낫게 하고 그를 이방인사도로 선택하셨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행9:10-19).
그와 같은 확실한 영적체험을 얻은 랍비 사울은 그때부터 히브리경전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깨닫게 됩니다;
(1) 첫째,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다가와서 음성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Abram in a vision, saying, Fear not, Abram).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2) 둘째, 다니엘의 기록을 보면 인자 같은 이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을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얻고 있습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7:13-14).
(3) 셋째,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영적인 깨달음의 노래 가운데 특이한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내 주(my Lord)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막16:19).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히7:15-22).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삿7:5-7, 대적자들을 쳐부수기 위하여 출전하시는 주님의 결의에 찬 모습임)”(시110:1-7).
(4) 결국, 모세오경과 선지서 그리고 시편에 대속자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쳤기에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갔으며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것이라는 히브리경전의 말씀이 그제서야 랍비 사울에게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사도 바울의 주치의 의사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 및 사도행전의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눅24:44-53, 행1:3-14). 그에 따라 개인적으로 랍비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 이방인 사도 바울이 되어 기독교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롬1:1-7).
그러한 영적체험과 복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는 사도 바울이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지니고 있는 여호와신앙의 특징과 아담과 대비가 되는 그리스도의 행적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브라함은 자신의 경험과 세상적인 이치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아니합니다. 그 대신에 창조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과 예언을 반드시 실현하여 주실 것임을 믿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브람 자신은 이 세상에서 유한한 삶을 살게 되는 일개 피조물이지만 여호와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지금도 그 역사를 섭리하시며 영생의 천국을 새로이 창조하여 그곳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실 대속자를 보내어 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창21:33, 22:12-19, 25:7-10, 욥19:23-27, 요5:24-29, 8:56, 히11:16);
(2) 둘째, 그와 같이 창조주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를 바라보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훗날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로 이 세상에 나타나며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과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심으로 새 언약의 시대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렘31:33, 눅24:44-49). 요컨대, 사도 바울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죄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는 성도의 믿음이 그 옛날 아브라함이 얻은 믿음의 의와 같은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롬5:1-11).
(3) 셋째,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하나 추가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창조주 여호와와 동거한 아담 부부가 타락하여 이 세상으로 쫓겨났지만 이제는 회개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여호와로부터 얻게 되었기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영적으로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장차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롬5:12-21).
(4) 참고로, 사도 바울은 그러한 복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기에 그의 여러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게 되면 종래 여호와께서 다시 창조하신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을 모시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롬8:1-18, 살전4:16-17, 빌1:19-24, 3:8-14). 그 사실을 그의 주치의이며 그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배운 바가 있는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언약과 예언을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렘31:33, 새언약에 따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보내준 대속자, 욥19:25, 사5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죄사함과 칭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훗날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영생을 누리는 줄 알고서, 눅22:28-30)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 세상에서 성도가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요14:16-20, 행1:8, 롬8:1-4)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이 세상의 고난과 비교도 할 수가 없는 천국에서의 영생이라는 영광된, 롬8:17-18)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도가 영생의 부활과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약속 그대로, 눅24:44-45, 사53:4-10)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대속자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그 속죄의 은혜를 말함).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많은 친지들 가운데 선지자 엘리야를 숨겨주는 자가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한사람도 없음, 왕상19:3-4),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여호와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달하다가 죽은 선지자들이 있는 것임, 대하24:20-21, 행7:54-60),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신 성자 하나님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성육신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살아가시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자기 희생으로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랑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이 세상에서) 확증(확실하게 증거)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써 여호와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은 우리가 복음을 온세상에 전함으로써)더욱 그로 말미암아 (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다 함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속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 이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임을 확신한다는 바울의 말임).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우리 성도들은 그 마음속에 부활하신 주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요14:16-20, 마28:18-20, 행1:8, 16:6-7, 롬8:1-18, 34-39)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1-11); 일명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이라는 소제목을 지니고 있는 문장입니다. 알기 쉽게 그 점을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문답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언약과 예언을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렘31:33, 새언약에 따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보내준 대속자, 욥19:25, 사5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죄사함과 칭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훗날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영생을 누리는 줄 알고서, 눅22:28-30)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 세상에서 성도가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요14:16-20, 행1:8, 롬8:1-4)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이 세상의 고난과 비교도 할 수가 없는 천국에서의 영생이라는 영광된, 롬8:17-18)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도가 영생의 부활과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약속 그대로, 눅24:44-45, 사53:4-10)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대속자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그 속죄의 은혜를 말함)“(롬5:1-6);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선을 보이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이며 그 믿음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롬5:1, 창15:6, 21:1-7, 요1:12-13)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대한 아브람과 사래의 이해와 실천의 한계가 먼저 창세기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창15:4-6, 16:14). 그들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4-6);
2)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여호와께서는 이루어 주실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브람이 믿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통념과 세상적인 이치에 묶여 있는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인간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귀한 헌신이라고 생각하고서 사래가 안방마님의 체면과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씨받이 첩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창16:1-3). 그 결과 늙은 아브람이 젊은 첩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얻고 있습니다(창16:4, 15-16). 그와 같은 아브람과 사래의 인식과 행동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물학적인 생각과 사회적인 통념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3) 요컨대, 창조주의 능력을 인간의 고정관념 안에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생각과 역사의 창조를 단순하게 물질적인 이 세상의 법칙으로 한정하고 마는 인간의 불신앙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능력으로 바꾸어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 세상의 법칙 안에 가두고 마는 한심한 종교적인 이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시정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인간의 생각과 관습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현실적으로 발휘됨을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깨닫는 것입니다(창17:17-19, 18:10-14, 21:1-7);
4) 평생 불임여성으로 늙어버린 자신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을 낳도록 하신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비웃고 있습니다;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17:17-19).
5) 불임여성으로 늙어버린 사라도 자신의 처지와 남편 아브라함의 늙은 몸을 생각하고서 감히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서 속으로 웃고 있습니다; “10. 그(여호와)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14).
6) 그러한 그들 부부의 불신앙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비웃음을 일년 후에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서 현실적으로 믿게 되는 신앙적인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웃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약속의 아들 ‘이삭’이 실제로 그들 늙은 부부의 합방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8일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창17:10-12).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100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창21:1-7);
7) 인간의 헌신과 제사를 뛰어 넘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창22:10-14, 히11:18-19); 아브라함의 시대 사람들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헌신과 희생의 제사가 바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人身)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여호와께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아브라함 부부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최대의 헌신과 희생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실행하고 있습니다(창22:1-10).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의 영생을 간구하는 그 신앙의 상태를 시험하고자 하시는 것이지 진심이 아닙니다(창22:1-2).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이유와 목적이 그 시험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8) ①첫째, 여호와께서는 다른 수호신이나 우상들이 원하고 있는 그러한 인신제사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창조주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는 인간의 생명을 해치고 그것을 제물로 받고자 할 리가 없습니다(창1:26-27). 그래서 인신제사로 드려지는 제물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마련하신다는 말씀이 나중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창22:13-14). 여기 모리아 산에서는 여호와 이레가 숫양이지만(창22:13)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요1:29, 롬5:1).
9) ②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선은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공의의 정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눅18:19, 마5:43-48). 반면에 이 세상을 지배하고 피조물을 해치고 있는 자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롬8:2, 엡2:1-3, 6:12). ③셋째,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사람의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돌보고 살리기 위하여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을 아낌없이 행사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창22:12-14). 그 점을 히브리서의 저자도 밝히고 있습니다(히11:19). 요컨대, 하나님 경외라고 하는 것은 ①여호와 이레의 은혜, ②부활의 역사, 그리고 ③영생의 구원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10) 둘째, “목숨과 현세에 묶여 있는 인간을 해방시키고 영생의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물들은 무엇일까요?”(요1:12-14, 3:13-16, 14:16-20, 눅24:49, 행1:8, 히11:16, 26); 하나, 말씀의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요1:12-14, 3:13-17, 롬5:1);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3-1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11) 둘,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서 사도와 제자들 그리고 성도들이 땅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재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눅24:49, 행1:8);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12) 셋,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성도들의 심령속에 마련된 성령의 전에 함께 임재하여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요14:16-20, 롬8:1-2);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거하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13) 넷,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가지고 살아간 자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만나고 천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히11:16, 26);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14)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며 그로 말미암아 어떠한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가요?”(롬5:2-6)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살펴봅니다(롬5:2-4); “2. 또한 그(주 예수 그리스도, 롬5:1)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2-4);
15)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간주되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기적으로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영생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서 번제로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이삭을 살리시고 그 대신에 ‘여호와 이레’의 은혜로 대속의 속죄양을 준비하여 그것을 바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생의 하나님을 믿으면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는 속죄양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심판을 면하고 부활과 영생의 구원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하는 진리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16) 둘, 실제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발생했던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과 무덤 속 부활이 그 영생구원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대속자이며 구원주로 믿게 되면 자신에게도 이 세상을 이기는 예수님과 같은 영적인 삶, 자신의 부활과 영생을 확신하는 믿음의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확고하게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2. 그(주 예수 그리스도, 롬5:1)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롬5:2) 얻게 된 것입니다.
17) 셋, 성도들의 거듭난 믿음의 인생 가운데 그러한 미래의 약속에 대한 즐거움만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3.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성도의 삶 가운데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인내로, 동일한 환난을 그 다음에는 더욱 거뜬하게 이길 수 있도록 하는 연단으로, 그 연단과 믿음의 성숙 다음에는 하나님자녀로 영생의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으로 계속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18) 넷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어떠한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가요?”(롬5:5-6) 본문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5:5-6);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하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부활과 영생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선례가 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으며 또한 소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발생한 그 부활과 승천이 나중에 제자들에도 있게 된다는 사실을 성령님께서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19) 둘, 그와 같은 성도들의 미래는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내세적인 것이므로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여 증거해줄 수 있는 영적인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를 하시게 된 것입니다. 셋, 성도들의 거듭난 삶에 동행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한가지 사실을 증거해주는데 그 의미가 큰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 답게 살아가게 되면 성도들에게도 예수님에게 발생한 그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생이 그대로 주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20) 넷,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로 압축하고 계십니다;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구하는 자에게 자신의 아들을 대속자로 주셨을 뿐만 아니라(롬5:6) 성령님을 주셔서 함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마침내 성도들을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롬5:5).
(2)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많은 친지들 가운데 선지자 엘리야를 숨겨주는 자가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한사람도 없음, 왕상19:3-4),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여호와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달하다가 죽은 선지자들이 있는 것임, 대하24:20-21, 행7:54-60),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신 성자 하나님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성육신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살아가시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자기 희생으로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랑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이 세상에서) 확증(확실하게 증거)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써 여호와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은 우리가 복음을 온세상에 전함으로써)더욱 그로 말미암아 (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다 함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속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 이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임을 확신한다는 바울의 말임).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우리 성도들은 그 마음속에 부활하신 주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요14:16-20, 마28:18-20, 행1:8, 16:6-7, 롬8:1-18, 34-39)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7-11); 역시 문답형식을 빌려서 알기 쉽게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예수님의 공생애와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이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이라고 볼 때(롬5:7-8),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성도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며 어떻게 부활의 소망을 가지며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요?”(롬5:9-11) 먼저 예수님의 공생애와 대속의 죽음이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사랑과 비교할 때 그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부터 알아보고자 합니다(롬5:7-8);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
2)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사람들에게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그 절대적인 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성령님을 임재시켜서 하나님의 공의와 선을 행하게 하고 부활과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의 정의(正義, justice)와 하나님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3) 하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2가지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이 세상에서 인간들의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선민들의 정의를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체포가 되고 정죄가 되어 종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역설적으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4) 둘,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은 사람들의 정의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이 소속한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화가 한정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한 집단의 이익은 반드시 다른 집단의 손해를 동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정의의 개념입니다. 그와 달리 하나님의 공의는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돌보고 그 생명을 모두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화의 한정이라고 하는 기본전제를 깨지 아니하면 결코 이 세상에서 실현될 수가 없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힘입어서 실천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그러하며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능력을 선 보여주신 것이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5) 셋, 자기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고 있는 이기적인 정의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게 되면 예수님의 경우처럼 반드시 죄인으로 정죄가 되고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속죄의 제사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 놓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부활과 영생을 선물하신다는 것입니다.
6) 넷, 문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그러한 대속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또다른 보혜사로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눅24:49, 행1:8, 2:1-4). 그러므로 성도의 거듭난 삶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롬8:1-4). 그런데 진리의 성령님께서는 제멋대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생에 따라서 성도들이 그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증거하고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롬8:1-2, 행1:8). 그것이 성도들의 믿음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7) 둘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성도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며 어떻게 부활의 소망을 가지며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요?”(롬5:9-11) 본문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9-11);
8)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의 의미와 부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다음 3가지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①예수님의 희생의 제사가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②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③하나님을 대적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9) 둘,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자신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이루어집니다”. 요컨대, 성령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성도의 거듭난 삶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며”(롬5:11b) 남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12.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 창2:7-9, 22-25)으로 말미암아(창3:6)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창3:22-24, 5:4),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롬3:9-18),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창6:3, 전3:20, 롬7:14-24).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창6:5-7),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창6:11-12, 롬1:28-32).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그 죄성의 유전으로 말미암아, 창4:7)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τύπος, 헬라어 튀포스는 표상이나 예표를 말하고 있음)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아담)의 범죄를 인하여(아담부부가 여호와와 동거하던 에덴동산에서 내쫓김에 따라, 창3:22-24)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실락원에서 살아가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한 영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그들을 지배하였으나, 창4:18-24, 롬7:14-24),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이름을 믿고 회개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가 참으로 크고 영원한 것임, 롬7:25-8:18).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비록 인류의 조상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창조주 여호와가 독생자를 대속자로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세상만민에게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고 영생의 부활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임) .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8:2, 눅22:30). 18. 그런즉 한 범죄로(아담부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여호와와 동거할 수 있는 에덴동산이 아니라 실락원에서 살게 된 것과)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독생자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어) 생명에 이르렀느니라(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요5:24-29).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여호와 앞에서 실천하지 아니하고 사람들 앞에서만 실천하는 척하고 만 것임. 그것이 외식적인 신앙생활의 문제점임, 마15:5-9).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하나님의 눈앞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속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여호와께서 보내주셨기에 그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임, 렘31:33, 요3:16, 롬8:1-4),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롬8:1-18) 하려 함이라”(롬5:12-21); 소제목을 ‘아담과 그리스도’라고 붙이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1) “12.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 창2:7-9, 22-25)으로 말미암아(창3:6)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창3:22-24, 5:4),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롬3:9-18),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창6:3, 전3:20, 롬7:14-24).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창6:5-7),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창6:11-12, 롬1:28-32).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그 죄성의 유전으로 말미암아, 창4:7)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τύπος, 헬라어 튀포스는 표상이나 예표를 말하고 있음)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아담)의 범죄를 인하여(아담부부가 여호와와 동거하던 에덴동산에서 내쫓김에 따라, 창3:22-24)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실락원에서 살아가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한 영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그들을 지배하였으나, 창4:18-24, 롬7:14-24),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이름을 믿고 회개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가 참으로 크고 영원한 것임, 롬7:25-8:18).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비록 인류의 조상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창조주 여호와가 독생자를 대속자로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세상만민에게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고 영생의 부활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임) .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8:2, 눅22:30). 18. 그런즉 한 범죄로(아담부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여호와와 동거할 수 있는 에덴동산이 아니라 실락원에서 살게 된 것과)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독생자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어) 생명에 이르렀느니라(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요5:24-29).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2-19); 역시 문답형식으로 알기 쉽게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아담의 DNA가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그 때문에 사망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롬5:12)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모세오경인 율법의 기능은 무엇이며(롬5:13-14) 사망을 이기자면 인류는 누구의 새로운 DNA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롬5:15). 먼저 아담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인류의 본성에 저장되어 있는 아담의 DNA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 점을 살펴보겠습니다(창3:1-19, 롬5:12). 로마서의 본문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2) 하나, 아담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롬5:12a).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어 있는 인간의 유전자에 암세포가 발생했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지은 죄의 영향이 그 정도로 대단합니다. 둘, 그 죄라고 하는 암세포는 육신을 죽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영적인 생명까지 죽이는 무서운 것입니다. 따라서 사망이 그로 말미암아 발생하게 됩니다(롬5:12b). 셋, 아담의 자손들에게는 그러한 DNA가 유전되고 있어(롬5:12c) 육신적인 삶을 탐닉하게 되면 그 향년이 천재지변과 급변하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120년으로 줄어들고 맙니다(창6:3).
3) 넷, 그 밖에도 여호와께 죄를 범한 아담 부부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창세기 제3장에서 다음과 같으며 그것 역시 그 후손들에게 유전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①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됩니다(창3:8). ②타인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변명합니다(창3:12-13). ③여자에게는 임신하는 고통과 출산하는 고통이 크게 더해집니다(창3:16). ④남자에게는 평생 수고하여야 처자식과 함께 먹고 살게 되는 고역이 부가됩니다(창3:17-18). ⑤향년을 맞이하면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창3:19).
4) 둘째, “그렇다면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모세오경인 율법의 기능은 무엇일까요?”(롬5:13-14). 먼저 본문 말씀입니다;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5:13-14);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 율법의 기능은 무엇이 죄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롬5:13).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어기는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5) 둘, 율법이 없어서 죄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여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아담의 후손이므로 죄로 말미암아 유전자의 변형이 이루어졌으며 그 죄라고 하는 암세포 때문에 모든 인류가 사망에 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롬5:14a). 셋, 하나님께 대한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비극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아담이 와서 순종의 모범을 보인다고 하면 새로운 구원과 영생의 DNA가 인류에게 삽입될 수가 있습니다(롬5:14b).
6) 셋째,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면 이제는 사망이라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하여 사망을 이기신 누구의 새로운 DNA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롬5:15). 그에 대한 본문입니다;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5:15);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가 없게 된 이유는 아담의 DNA를 유전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롬5:15a). 그렇다면 그 잘못된 유전자를 치유하는 방법은 아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로이 창조하시는 새로운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것입니다(롬5:15b).
7) 둘, 아담은 흙으로 만든 육신에 하나님의 생기가 그 코에 들어가서 생령(生靈, living soul)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창2:7). 그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의 능력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서 모태에서 태어난 경우입니다(눅1:34-35, 요1: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하고 내주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요5:30, 8:29, 10:30). 셋,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그 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실 수가 있는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며 그 성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서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셔서 아담의 DNA를 일일이 고치고 계시는 것입니다(요14:16-20). 그것이 일종의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롬5:15).
8) 넷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줄 수가 있는 것일까요?(롬5:16-18)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들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가요?”(롬5:19).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줄 수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롬5:16-18). 본문 말씀입니다;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6-18);
9) 곰곰이 하나씩 뜯어 놓고서 생각해보면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아니한 문장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전제지식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인간은 죄를 범하게 되면 그 죄성이 육신에 스며들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고 그 잘못된 DNA가 후대로 유전되고 맙니다. 둘, 그와 같은 죄성의 DNA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도려내거나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습니다.
10) 셋,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성육신시키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DNA를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넷, 하나님의 영적인 죄 사함과 칭의의 능력이 육신을 가진 인간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모든 믿는 자에게 임재하여 보혜사로 내주 역사하십니다(요14:16-20, 롬8:1-2). 요컨대, 육신을 가진 인간의 잘못은 후대로 유전되는데 불과하지만 영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한꺼번에 죄 사함과 칭의를 주며 보혜사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생의 천국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롬5:16-18).
11) 다섯째,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들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롬5:19). 먼저 본문입니다; “19. 한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태초부터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 아담의 후손인 인간의 DNA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서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DNA가 어떻게 다른 지 말해주고 있는 문장입니다. 그 2가지는 다음과 같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12) 하나, 아담의 육신적인 후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불순종하는 DNA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말씀에 더 무게를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 아담의 육신적인 후손들은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주인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며 여호와 하나님은 조력자이거나 그 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본주의이며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비록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다고 선전할지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상문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13) 셋,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합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탐욕과 이익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생명살림의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마16:24). 넷,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롬1:1, 눅17:10). 그것이 아담이 선을 보이고 있는 하나님 경외의 삶이며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신 하나님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2)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여호와 앞에서 실천하지 아니하고 사람들 앞에서만 실천하는 척하고 만 것임. 그것이 외식적인 신앙생활의 문제점임, 마15:5-9).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하나님의 눈앞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속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여호와께서 보내주셨기에 그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임, 렘31:33, 요3:16, 롬8:1-4),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롬8:1-18) 하려 함이라“(롬5:20-21); 역시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풀이하여 봅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사람들 앞에서만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외식주의가 하나님께 대한 범죄라고 한다면(롬5:20), 그러한 잘못을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믿음생활의 모범을 보였으며 어떠한 은혜를 제자들에게 베풀고 계시는 것일까요?”(롬5:21, 요14:16-20, 눅24:49, 행1:8) 먼저 본문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사도 바울의 언급은 역설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다시 한번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2) 하나, 율법의 역할이란 선민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아니하도록 육신의 정욕과 탐욕을 다스려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능력이 율법 가운데 들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이 이미 정의한 바와 같이, “그것은 자신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으로 정직하게 나아가서 영적인 도움을 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롬3:19-20 의역).
3) 둘, 그에 따라 사람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정직하게 인정하게 된다면 자신의 죄에 대한 발견이 많아지는 만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롬5:20). 그 모범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습관을 따라 매일 기도하시며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해 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눅22:39-46).
4) 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앞에서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게 의롭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눅18:11-12).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외식주의를 소위 ‘바리새인들의 누룩’으로 멀리하라고 백성들에게 성전에서 힘주어 말씀하십니다(막8:15, 눅21:34-38).
5) 둘째,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떠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까?”(롬5:21, 요14:16-20, 눅24:49, 행1:8) 먼저 본문 말씀입니다;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5:21); 사도 바울이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죄가 사람들을 사망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생명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6) 그 은혜는 성도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게 하고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영생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 죄를 청산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 마치 광야에서 모세의 놋뱀을 쳐다보듯이(민21:8-9)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요3:13-15). 예수님의 피 흘림의 제사가 바로 나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희생임을 깨닫고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서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때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7) 둘, 죄 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간주가 되었다고 하여 바로 예수님의 제자 답게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소원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탐욕과 정욕의 이기적인 육신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으므로 그것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롬7:21-24). 따라서 성도들이 자신의 육신을 이기고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간구할 때에 또다른 보혜사께서 강림하여 그 심령속에 임재하십니다(요14:16-17);
진리의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의 부탁으로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시는 능력자이십니다(눅24:49, 행1:8).
8) 셋, 성령님의 임재가 있다고 하여 완전한 성도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2가지 점이 미흡한데 그것은 ①첫째, 주님의 교훈과 그 삶의 의미가 말씀 가운데 정확하게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롬8:1-2).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증거하여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선례와 모범이시기 때문입니다(요14:26, 16:13-15). ②둘째, 예수님을 무덤에서 살리신 부활의 영이 성도 자신에게도 임재하여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자신도 정확하게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을 성령님이 여호와의 진리로 거듭 확인해 주어야만 합니다(롬8:11). 그와 같은 확신이 있을 때에 이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영적인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롬8:1-4, 37-39).
9) 참고로,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로마서 제8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함께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습니다(롬8:9-16).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제14장에서 다음과 같이 그 점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7-20).
결론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는 물론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생까지 구원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눅22:28-30).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영적인 삶에 매진해야만 합니다(롬8:17-18). 그리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선물이 전해지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마28:18-20);
아무쪼록 그러한 기쁨과 사명의 완수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