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지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와 진노하시는 여호와 그리고 모세의 결사적인 중보의 노력”(출32:1-35)
설교일; 주후 2025년 10월 2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3월 5일 수요일 작성)
출애굽기 제32장은 창조주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섬기는 인류최초의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전 1,446년 봄에 출애굽 해방을 맞이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해 여름에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내 산 아래에서 산 정상에 강림하여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만나게 되었을 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제19장을 다시 살펴보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시내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째서 그들을 세상제국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시내 산 아래로 데리고 왔는지 그 이유를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건국이념으로 모세를 통하여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 대목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4-6).
알기 쉽게 풀이를 해보자면, 출애굽의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만들어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온 세상에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선지자가 되게 하며(창12:1-5, 20:7, 23:6)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되고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창18:22-32).
요컨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이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차이를 말하자면, 고조선의 경우에는 널리 인간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고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여 만민을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 역시 하나의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신정국가를 관리하고 백성을 통솔해야 하는 최고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 최고지도자가 현실적으로 국가의 무력을 독점하여 관리하고 나라의 경제적인 가치를 배분하는 결정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모세에게 맡기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그의 권위의 기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똑똑하게 보여주고자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여 그와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출19:9).
그와 동시에 두가지 조치를 취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여호와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시내 산 정상에는 여호와의 부름이 없이는 아무도 올라와서는 안됩니다. 그곳은 거룩한 산이므로 산 아래에 경계선을 설치하고 있습니다(출19:12a). 경계선을 침범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출19:12b).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결계와 같습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산 위에서 음성으로 산 아래의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모든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출20:19). 그 음성을 계속 듣고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뜻을 그 말씀으로 똑똑하게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선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민11:29).
그러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들이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음성으로 계속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경계선을 침범하게 되어 죽임을 당할 수가 있다고 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출20:18-19).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 여호와가 강림하는 현장을 빽빽한 구름 가운데 보게 되더라도 오금이 저리고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인 장로들을 모세에게 보내어 부디 혼자 시내 산 정상에 올라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산하여 자신들에게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여 달라고 부탁합니다(신5:23-26). 그리하면 그 말씀을 여호와의 뜻으로 알아 듣고서 그대로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신5:27).
모세의 말을 듣고 여호와께서는 모든 백성에게 음성으로 자신의 뜻을 전하는 그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모세에게만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신5:31). 모세는 자신이 배운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이 이해하고 실천하기 쉽도록 아예 신정국가를 움직이는 법률의 형태인 소위 율법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신5:5).
그러나 그와 같은 간접신앙의 형식을 여호와께서는 싫어하십니다(출20:19-21). 모세가 전해주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일단 매개체인 한사람을 통해서 전하다 보니 원하지 아니하는 인간의 주관적인 가치가 개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첨단과학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늘날에도 과학철학적으로 하나의 학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실험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 실험의 주체가 사람인 이상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자기도 모르게 실험자의 주관이 스며들어 그 결과는 ‘간주관성’(間主觀性, inter-subjectivity)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이 주전 15세기 모세의 시대에 벌써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정국가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의 음성을 가까이에서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하게 되어 그 뜻을 직접 깨닫고 마치 모세처럼 여호와의 사자로 활동할 수가 있게 될까요? 그 방법은 창조주 하나님이 더 이상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여 임재하여 계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처하고 있는 시내 광야 그 삶의 현장인 그들의 진중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사실은 여호와의 거처를 이스라엘 자손들의 진중으로 옮기기 위하여 성막을 마련하는 것입니다(출25:8).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범신론의 제국 애굽에서 잡신과 우상들을 섬기는 여러 신전만 보았지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를 모시는 신전을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는 모세에게 시내 산 정상에서 환상을 통하여 성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세하게 그 제조방법을 설명하십니다(출25:9). 그리고 관련 율법과 제례의식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말씀하십니다(출29:1-30:38). 그러는 동안에 40일이나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40일 모세가 없는 동안 산 아래 시내 광야에서 백성들 사이에 발생한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음성도 들려오지 아니하고 시내 산 위에 올라간 모세도 내려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임재도 모세의 동행도 느끼지 못하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불안에 사로잡히고 있습니다(출32:1). 사실 그들이 거처하고 있는 시내 광야는 불모지에 가깝습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강림하여 계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머물고 있기에 광야에 샘물이 솟아나고 목초가 자라며 목축이 가능하고 또한 일용할 양식 만나가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출13:20-22, 15:25, 16:12, 35).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오지 아니하고 그 사자인 모세마저 산 위에 올라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출24:12-13, 15-18).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힌 백성들이 모세의 권력을 대행하고 있는 아론과 훌에게 대책을 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출32:1, 24:14).
그러자 대제사장 후보인 아론이 그만 애굽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범신론 국가인 애굽과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이 전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모세가 전달한 모든 율법의 취지인 십계명에 대한 이해가 박약한 것입니다(출20:1-7);
그 이유는 한마디로 모세처럼 여호와를 직접 만나 말씀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세가 전해주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듣고 고개를 끄떡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차제에 조금의 부연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 근본적으로 영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말씀은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사회적인 정의구현과 모든 피조물을 하나같이 돌보고 그 생명을 정부 살리고자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2) 현실적으로 인간은 너나없이 이기적으로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창조주의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겠습니까?
(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그 심령속에 큰 깨달음으로 새기고 줄기차게 실천하지 아니하는 이상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과 아가페 사랑은 세상살이 가운데 너무나 쉽게 날라가 버리는 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4) 다만, 시내 산 정상에 올라가서 여호와를 직접 만나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선지자 모세만이 어느 정도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눅9:29-30, 히11:26).
한편 아론은 백성들에게 성의껏 금붙이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제조하고 그것을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소개하면서 그 앞에 제단을 만들고 있습니다(출32:2-5).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우상인 금송아지를 창조주 여호와의 모습이라고 여기고 너무나 좋아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에 빠져들고 있습니다(출32:6).
시내 산 정상에서 산 아래 광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어처구니가 없는 그 제사와 축제의 모습을 내려다보신 여호와의 진노와 두려운 심판의 말씀이 모세의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출32:7-9). 차제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진멸하고 오로지 모세의 자손만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고 말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출32:10).
모세의 중보기도가 즉시 나타나고 있습니다(출32:11-13).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일단 즉시 처벌을 유보하십니다(출32:14). 그러나 중대한 정책변화가 나중에 발생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중에 성막을 짓고 그곳에 거처하면서 그 음성으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일일이 전달하고자 하신 그 뜻을 거두어들이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진중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모세의 회의용 장막인 회막(會幕) 안에 여호와의 성막을 설치하고자 하십니다(출39:32, 40:2, 22, 32-35). 그리고 그 동안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회막에 강림하고 임재하여 그와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것입니다(출33:7-9). 불기둥을 감싸고 있는 빽빽한 구름기둥이 모세의 회막 위에 임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서 그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들은 그곳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아무런 대화의 내용도 듣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죄인임을 자각하고서 멀리서 여호와를 경배하고 예배할 따름입니다(출33:10-11a).
다만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만 그 회막 가까이에서 그 음성을 들으면서 예배하고 있습니다(출33:11b). 그 일로 말미암아 여호수아가 훗날 선지자가 되고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신31:1-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이스라엘) 백성이 (창조주 여호와에게 직접 나아가 영적으로 교제하며 그 말씀을 듣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뜻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는 직접신앙의 기회를 포기하고 그 대신에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중간에 내세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듣고 그것을 율법으로 지키는 간접신앙을 선택하였기에 그 부작용으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모두가 불안에 사로잡혀서 함께) 모여 백성이 (지파의 장로들에게 부탁하여, 신5:23-24)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가 애굽에서 본 그대로 신상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대제사장 후보이며 모세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출24:14, 28:1) 아론이 그들(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우상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을 지휘하여) 그(백성)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고온으로 녹인 다음에 쇳물을 나무틀에) 부어서 (사전에) 조각칼로 새겨 (나무틀을 만든 그대로) 송아지 형상을 (신상으로) 만드니, 그(장로)들이 말하되, 이스라엘(백성들)아, 이는(우상, 곧 사람들이 만든 신, man-made god을 가리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출애굽의 신 여호와)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금송아지 우상) 앞에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출12:42절을 모방한 것임),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화목제물을 나누어)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애굽에서 배운 그대로 축제를 겸하여)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산 아래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 어리석은 모습을 보시고)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여호와의 백성이 아니라 모세 너의)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십계명까지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우상을) 만들고, (피조물의 모양에 불과한)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출애굽의 신 여호와)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거만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창조주 여호와)가 (심판하고 처벌) 하는 대로 (너는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①그들(이스라엘 12지파)을 진멸(인종청소)하고 ②(그들 대신에 모세) 너를 (번성으로 축복하여 너의 후손으로 하여금) 큰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19:6).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중보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출19:4) 진노(분노하시고 진멸하고자, 10a) 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출5:1, 19:5) (시내) 산에서 죽이고 지면(시내 광야)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그와 같은 사람들의 비난을 물리치시고 여호와의 본래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부디)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소서(출2:24-25).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15:5-6, 13-21, 22:17-18, 26:3-5, 28:13-22). 14. 여호와께서 (기대한 그대로 모세의 중보의 기도가 자신의 뜻에 맞는 것임. 따라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구원을 베풀기로 최종결정) 하시니라”(출 32:1-14):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이스라엘) 백성이 (창조주 여호와에게 직접 나아가 영적으로 교제하며 그 말씀을 듣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뜻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는 직접신앙의 기회를 포기하고 그 대신에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중간에 내세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듣고 그것을 율법으로 지키는 간접신앙을 선택하였기에 그 부작용으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모두가 불안에 사로잡혀서 함께) 모여 백성이 (지파의 장로들에게 부탁하여, 신5:23-24)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가 애굽에서 본 그대로 신상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대제사장 후보이며 모세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출24:14, 28:1) 아론이 그들(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우상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을 지휘하여) 그(백성)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고온으로 녹인 다음에 쇳물을 나무틀에) 부어서 (사전에) 조각칼로 새겨 (나무틀을 만든 그대로) 송아지 형상을 (신상으로) 만드니, 그(장로)들이 말하되, 이스라엘(백성들)아, 이는(우상, 곧 사람들이 만든 신, man-made god을 가리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출애굽의 신 여호와)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금송아지 우상) 앞에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출12:42절을 모방한 것임),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화목제물을 나누어)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애굽에서 배운 그대로 축제를 겸하여)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산 아래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 어리석은 모습을 보시고)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여호와의 백성이 아니라 모세 너의)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십계명까지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우상을) 만들고, (피조물의 모양에 불과한)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출애굽의 신 여호와)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거만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창조주 여호와)가 (심판하고 처벌) 하는 대로 (너는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①그들(이스라엘 12지파)을 진멸(인종청소)하고 ②(그들 대신에 모세) 너를 (번성으로 축복하여 너의 후손으로 하여금) 큰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19:6)”(출 32:1-10);
1)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기사를 살펴보면 창조주 여호와의 음성이 개인적으로 말씀으로 그에게 가까이 들려왔다고 되어 있습니다(창15:1).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이방 땅 가나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선지자입니다(창20:7). 여호와는 필요한 경우에는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오기도 하십니다(창18:1-4). 아브라함은 현신하신 여호와에게 소돔성에 살고 있는 롯의 구원과 주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창18:22-33). 그와 같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그리고 중보기도를 하는 제사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준 축복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창12:1-5, 22:15-18).
2) 모세는 창세기에 이어 출애굽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출애굽기 제19-24장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애굽에서 해방을 얻어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내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집단적으로 맺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출24:3-8). 그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지킬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친히 시내 산 정상에 빽빽한 구름 가운데 그 형상을 숨기시고 강림하여 임재하십니다(출19:9-20). 그리고 모세와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그 음성을 모든 백성들이 산아래에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내 산 정상에 창조주 여호와께서 강림하실 때에 발생하고 있는 그 두려운 현상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출19:16, 21, 20:18-19).
3) 그 음성을 계속 듣고 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경계선을 침범하여 산 위로 올라가게 되면 죽임을 당하고 말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숨보전을 위하여 최고지도자인 모세 혼자만 산 위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의 내용을 자신들에게 하산하여 전해주면 꼭 그대로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출20:18-21, 24:1-11, 신5:23-27). 그 결과 직접 자신의 눈으로 여호와의 형상을 확인하고 그 음성을 듣고서 창조주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하고 실천하는 직접신앙인 곧 선지자의 삶을 백성들이 살지 못하게 됩니다(민11:29). 그 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시내 산 아래에서 백성들이 여호와와 언약을 맺는 피의 의식을 치루었지만 그 효과는 잠시 뿐이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고 그 음성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직접신앙이 아니기에 그만 여호와의 말씀이 그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요5:37-38).
4) 그 부작용이 끔찍합니다. 왜냐하면, 시내 산 정상에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의 형상도 직접 볼 수가 없고 그 음성을 직접 듣지도 못하고 있기에 그들의 마음속에서 십계명과 율법규정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온전히 지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롬8:1-8).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모세가 시내 산 정상에 올라가서 한달이 넘도록 하산하고 있지 아니하자 그만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몰라서 커다란 불안에 빠집니다(출32:1). 심각한 위기를 느낀 그들은 애굽에서 경험한 그대로 우상인 신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것을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부르게 됩니다(2-4절). 그리고 금송아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부디 자신들의 앞길을 인도하여 달라고 간구하면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킨다고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5-6절).
5) 그 광경을 산위에서 내려다보신 여호와께서는 크게 실망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진멸하고 그 대신에 모세의 후손으로 새로운 선민을 만들고자 하십니다(7-10절). 그것은 시내 산 언약이 완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 때문에 파괴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근본 원인과 이유를 성경에서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첫째, 구약에서는 새언약이 필요하다고 렘31:31-33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복음 제5장과 제8장에서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셋째,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제8장에서 또한 설명하고 있습니다.
6) 참고삼아, 그 내용을 옮겨서 알기 쉽게 아래에 적어봅니다; 첫째,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글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대속자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모세를 사자로 보내어)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시내 산 언약)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이스라엘 백성)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승천 및 보혜사 성령의 강림)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3).
7)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5-26),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에 거하지 아니하고 있기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된 것임)”(요5:37-38),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믿음과 구원의 확신이 그것이며 동시에 여호와의 언약에 머물 수 있는 비결임).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선지자의 삶에 동행하시는 여호와).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요8:29-30).
8) 셋째, 사도 바울의 글입니다;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비록 생존하고 있으나 영이 살아 있지 못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것임, 창11:31-32, 12:4, 행7:4),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전15:20-24).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0-18).
(2)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중보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출19:4) 진노(분노하시고 진멸하고자, 10a) 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출5:1, 19:5) (시내) 산에서 죽이고 지면(시내 광야)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그와 같은 사람들의 비난을 물리치시고 여호와의 본래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부디)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소서(출2:24-25).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15:5-6, 13-21, 22:17-18, 26:3-5, 28:13-22). 14. 여호와께서 (기대한 그대로 모세의 중보의 기도가 자신의 뜻에 맞는 것임. 따라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구원을 베풀기로 최종결정) 하시니라”(출 32:11-14):
1) 모세가 동족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서 여호와의 뜻을 돌이키기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조건 여호와의 뜻을 철회하여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일목요연한 2가지의 이치를 근거로 하여 여호와의 뜻을 돌이켜달라고 진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모세가 여호와를 설득하고 있는 2가지 이치가 무엇인지 말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 하나는, 출애굽 당시 가까운 미래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계셨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지금 여호와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몇 달 전에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자신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하여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라고 요구하였을 때에는 광야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출5:1, 10:3, 12:31-36). 그런데 지금 여호와께서 조치하고자 하시는 일은 그것과 앞뒤가 맞지 아니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출32:11).
3)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에서 추격하는 바로의 정예병마저 바다에 수장하신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역사의 끝에 이스라엘 자손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세상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인데(출19:4-6)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아니하시고 그 반대로 자신의 명령을 불순종하였다고 하여 단번에 인종 청소한다고 하시면(출32:10) 그것은 애굽인들의 비웃음을 살 따름이라는 모세의 날카로운 지적입니다(출32:12). 요컨대, 여호와 말씀의 진리성을 확보하시라는 모세의 진언입니다.
4) 또 하나는, 그 옛날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분명히 이방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올 것이라고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창15:13-16, 46:3-4, 출32:13, 2:24-25, 3:8, 16-17). 그런데 그 도중에 광야에서 전멸시켜버린다고 하면 조상에게 주신 여호와의 예언은 성취가 되지 못하는 공수표가 되고 맙니다(출32:13, 10).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은 반드시 훗날에 성취가 된다고 하는 말씀의 진리성에서 벗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5) 그 사실을 지적하면서 모세는 부디 이스라엘 자손의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매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출32:12-13). 모세의 논리적인 호소를 듣자 여호와께서는 놀랍게도 애초의 말씀을 거두어들이고 마십니다(14절). 너무나 쉽게 그렇게 조치하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순식간의 철회를 보고 있으면 한가지 생각이 들게 됩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모세로부터 그러한 중보의 기도가 있기를 속으로 무척 기다리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선지자이며 제사장인 선민들과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중보기도자로 살아가야 되는 이유입니다(창18:22-32). 창조주 여호와의 마음은 언제나 모든 생명을 살리고 영생으로 돌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65:17-25, 요3:16, 마5:44-448, 28:18-20, 행1:8, 롬8:18-21, 계21:1-8).
둘째로, “15. 모세가 (시내 산 정상에서 여호와께 하직하고 몸을)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여호와께서 계명과 율법을 친히 새겨 주신, 출24:12) 2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이미 예고하신 대로, 출24:12)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신성)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모세와 함께 시내 산에 올라갔던, 출24:13-18) 여호수아가 (산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는, 6절)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산 중턱에서)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6절)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우상인 금) 송아지와 (이방인 애굽 사람처럼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민25:7-13), 손에서 (여호와께서 주신)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민19:17-19, 송아지를 불사르고 그 재를 마신다는 것은 청결함을 다시 받기 위한 비방임).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1절)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2-5절)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아론이 자신의 잘못을 작게 만들고 그 대신에 잘못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자)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사실설명이 정확한 것 같지만 이미 면피용 언급을 먼저 하고 있기에 그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임. 더구나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모세가 되고 있다는 것임),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아주 자연발생적으로 우상을 만든 것처럼 꾸며서 말하고 있는 대목임. 그것은 변명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론에 대한 책임추궁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눈여겨볼 점인 것임).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모세는 아론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 그러나 친형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그 죄짐을 자신이 지기를 소원하고 있음, 32절. 그러나 모세가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 아님. 그에 따라 그 보응은 훗날 대속자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마는 것임, 34절, 요1:13-17, 29, 히7:22-28).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오로지 아론과 모세의 친족인)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말은 쉽지만 막상 레위 지파가 기타 11지파 동족들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게 되면 2가지 어려움이 발생함; 하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함. 또 하나는, 수가 많은 기타 11지파에 의하여 레위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임).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그로 말미암아 그 옛날 야곱의 예언이 달라지게 되는 것임, 창49:7. 레위인들이 기타 11지파의 성읍에 흩어지는 것은 같지만 그들은 영광스럽게도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과 일꾼이 되고 있는 것임, 수21:3-41), 이 날에 백성 중에 3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이스라엘 백성 수백만명이 도살되는 대신에 일단은 3천명의 희생으로 그 비극을 막고 있는 것임, 10-14절, 민25:9-13).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여호와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였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15-29);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5. 모세가 (시내 산 정상에서 여호와께 하직하고 몸을)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여호와께서 계명과 율법을 친히 새겨 주신, 출24:12) 2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이미 예고하신 대로, 출24:12)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신성)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모세와 함께 시내 산에 올라갔던, 출24:13-18) 여호수아가 (산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는, 6절)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산 중턱에서)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6절)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우상인 금) 송아지와 (이방인 애굽 사람처럼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민25:7-13), 손에서 (여호와께서 주신)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32:15-19);
1)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간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산 중턱에서 그가 내려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충직한 시종이 한사람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 모세의 시종이며 에브라임 지파의 족장의 한사람인 여호수아입니다(출33:11, 민13:8). 여호수아는 40세 가량의 장정입니다. 무예가 출중한 여호수아는 유다 지파의 족장인 용맹한 친구 갈렙과 함께 몇 달 전 미디안 변경 르비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장정들을 지휘하여 광야의 약탈자 아말렉 족속의 습격을 물리친 적도 있습니다(출17:9, 민13:6).
2) 모세는 갈렙과 함께 군사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평소에는 자신의 부관인 시종으로 삼고 있습니다(수1:1). 금번에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갈 때에도 시종 여호수아를 대동하고 올라가서 자신이 산정의 구름 사이에 들어가서 여호와를 만나고 내려올 때까지 산중턱에 머물면서 자신이 하산하기를 기다려 달라고 지시한 것입니다(출24:13, 15-18). 40일간이나 대기하였기에 여호수아는 하산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자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런데 한눈에 보아도 모세의 품안에는 여호와께서 신성(神聖)글자로 손수 새겨 주신 것으로 보이는 2개의 돌판이 안겨 있으며 모세의 표정이 심히 어둡습니다(출24:12, 32:15-16).
3) 순간 여호수아는 산 아래에서 들리고 있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가 염려되어서 안색이 어두운 것이 아닌가 짐작하여 먼저 한마디를 하고 있습니다;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17b). 산정상에서 여호와와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모세이기에 산아래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벌써 깊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6절) 하고”(출32:18). 모세의 말을 듣고 시종 여호수아의 표정도 급히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4) 두사람은 이스라엘 진영에 이를 때까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모세는 산정상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습니다.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시내 산 아래로 데리고 온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를 물어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10절). 어떻게 하면 그 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가 있을까요? 깊은 생각에 빠진 채 하산한 모세가 막상 이스라엘 진중에서 발생하고 있는 광경을 보니 실로 기가 막힙니다. 완전히 무지몽매한 백성들입니다. 여호와에 의하여 전멸을 당할 위기에 빠진 줄도 모르고 그들은 춤을 추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19a).
5) 그 순간 여호와의 진노가 그 사자인 모세를 통하여 영적으로 무지한 백성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엄숙하게 맺은 언약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율법의 취지가 되고 있는 십계명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송아지의 모습을 나무로 만들고 그것에 금칠을 하여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사람이 만든 신상인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면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께서 무엇을 가장 미워하시며 진짜 원수로 여기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영적으로 무지몽매한 행동입니다.
6) 십계명 가운데 제1-3계명의 내용은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천하만물 사이에는 절대적인 구별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출20:3-7). 그것은 창조주가 생명의 주인이며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만든 것으로서 그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를 주인으로 섬기며 어버이로 모시고 그 앞에서 철저하게 종의 법도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무지몽매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하여 주종 간의 구별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형상으로 창조주를 대신하고 있으니 그 패역함이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쳐죽여야 마땅한 범죄행위입니다(출32:10). 여호와의 심정으로 그 종인 모세가 시내 산 언약이 이제 쓸모가 없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하여 그 증거인 2개의 돌판을 땅에 던져서 깨뜨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19b).
(2)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민19:17-19, 송아지를 불사르고 그 재를 마신다는 것은 청결함을 다시 받기 위한 비방임).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1절)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2-5절)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아론이 자신의 잘못을 작게 만들고 그 대신에 잘못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자)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사실설명이 정확한 것 같지만 이미 면피용 언급을 먼저 하고 있기에 그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임. 더구나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모세가 되고 있다는 것임),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아주 자연발생적으로 우상을 만든 것처럼 꾸며서 말하고 있는 대목임. 그것은 변명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론에 대한 책임추궁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눈여겨볼 점인 것임).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모세는 아론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 그러나 친형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그 죄짐을 자신이 지기를 소원하고 있음, 32절. 그러나 모세가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 아님. 그에 따라 그 보응은 훗날 대속자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마는 것임, 34절, 요1:13-17, 29, 히7:22-28)”(출32:20-25);
1) 창조주이며 절대자이신 여호와의 진노와 그 사자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모세의 진노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호와는 신중한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쳐서 한번 천상에서 최종결정을 하시면 그것을 백성들 앞에서 선포하고 절대로 변경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성격의 창조주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은 적어도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 처음과 끝이 동일합니다. 둘, 속과 겉이 같습니다. 셋, 그 적용범위가 무한합니다.
2) 차제에 알기 쉽게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첫째, 창세기의 족장들의 이야기라고 하여 믿음의 조상들의 일대기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와 무관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발견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진리가 그대로 현대인류의 역사까지 섭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여호와를 주인으로 섬긴다고 하는 것은 물심양면으로 신실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겉으로만 사람들의 눈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척 하면서 사람들의 눈이 보고 있지 아니한 공간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그것은 속과 겉이 다른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여호와의 눈 앞에서는 외식적인 신앙이며 가증한 것입니다(창4:8-12, 삼상16:7, 마23:25-28, 히4:13).
3) 셋째, 선민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신 여호와는 선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을 압제한 이방인 애굽 사람들의 장자를 쳐죽였다고 믿고 있습니다(출12:29-37). 그러므로 선민을 괴롭히고 있는 주변의 이방인들도 사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쳐부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만민과 만물을 동일하게 사랑하고 돌보시는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과 아가페적인 사랑을 전혀 모르고 있는 이기적인 생각이며 현세적인 소원성취에 불과합니다(마5:43-48). 창조주 여호와의 선민에 대한 사랑이야기는 그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방인구원과 온 세상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요3:16, 렘25:29, 사19:19-25).
4) 그것이 그리스도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 복음입니다(마28:18-10, 행1:8). 마지막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진리성을 하나 더 설명하자면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선포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성부의 말씀인 예언이나 성자의 생애와 교훈으로 나타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나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증거가 꼭 같습니다(눅24:44-49, 요1:1-18, 3:11-18, 14:17, 26, 16:13-15). 만약 서로 다르다고 하면 그것은 비(非)진리이며 거짓인 것입니다.
5) 그와 같은 말씀의 진리성을 지니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진노와 비교하면 피조물인 모세의 진노는 그 격이 다르며 여전히 중보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순간 그는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숨을 구원하기 위하여 열심입니다. 그 첫번째 방법이 영적으로 무지몽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오도하고 있는 애굽의 우상숭배사조 그것이 원수라는 사실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6) 그에 따라 갈아 마시고 싶은 원수가 바로 금송아지 우상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를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20절). 그런데 그 방법이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에서 제례의식에 있어서 하나의 비방이 되고 있습니다. 제물을 불살라 그 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게 되면 부정함이 정결하게 되는 여호와의 은혜가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민19:17-19).
7) 그 다음에는 어째서 여호와의 십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출애굽의 신 여호와로 섬기자고 했는지 모세가 그 출처와 주동자를 밝혀서 처벌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모자이며 대제사장 후보인 친형 아론부터 겁을 집어 먹고서 변명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21-24절). 그렇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배우고 영적으로 안목이 트이고 있는 모세입니다. 그 눈으로 불 때 정답은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 친형 아론부터가 문제인 것입니다(25절). 과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여호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가 있는 것일까요? 모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3)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오로지 아론과 모세의 친족인)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말은 쉽지만 막상 레위 지파가 기타 11지파 동족들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게 되면 2가지 어려움이 발생함; 하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함. 또 하나는, 수가 많은 기타 11지파에 의하여 레위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임).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그로 말미암아 그 옛날 야곱의 예언이 달라지게 되는 것임, 창49:7. 레위인들이 기타 11지파의 성읍에 흩어지는 것은 같지만 그들은 영광스럽게도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과 일꾼이 되고 있는 것임, 수21:3-41), 이 날에 백성 중에 3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이스라엘 백성 수백만명이 도살되는 대신에 일단은 3천명의 희생으로 그 비극을 막고 있는 것임, 10-14절, 민25:9-13).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여호와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였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6-29);
1)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더불어 검토해보아야 하는 사례가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 40년에 요단강 동편 싯딤에서 발생하고 있는 ‘바알브올 우상숭배사건’(민25:1-3)에 대한 모세와 비느하스의 역할입니다(민25:4-18). 또 하나는, 예수님의 예언의 하나로서 이 세상의 종말에 발생하게 되는 가족사이의 내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눅12:49-53). 그 2가지 사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출애굽 40년에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여 요단강 동편에 자리잡고 있던 아모리 족속의 2왕국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해 말에 싯딤에 집결하여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정권을 넘겨주기 위하여 우선 이스라엘 군대부터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그때 일명 ‘모압 평지’(민33:50)라고 불리고 있는 싯딤에서 불행한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바알 신을 섬기는 모압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함께 남쪽 브올 산에 올라가서 우상에게 제사를 바치고 2부순서로 진행되고 있는 혼음사건에 참여한 것입니다(민25:1-2).
3) 순식간에 우상숭배와 음란문화가 병영에 퍼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영에서도 그러한 조짐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주모자를 가려내어 백성의 수령들부터 목매어 달라고 구체적으로 명령하십니다(민25:3-4). 모세는 자신의 수족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출18:25-26) 강력하게 지시하여 그대로 실행합니다(민25:5). 그러나 여호와의 진노가 전염병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 나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 신임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사건의 배후가 되고 있는 시므온 지파의 젊은 족장 시므리와 그의 정부인 미디안 추장 수르의 딸 고스비를 적발하여 두사람의 장막으로 뒤쫓아가서 창으로 한꺼번에 쳐죽이고 맙니다(민25:6-8, 14-18). 그러자 돌연 전염병이 멈추고 있습니다(민25:8). 그 이유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편단심으로 비느하스가 미디안 추장의 미인계에 걸려들어 이스라엘 장병으로 하여금 모압의 우상 바알브올을 은밀하게 섬기게 하고 이스라엘 사회에 음란문화를 퍼뜨리는데 주범이 되고 있는 민족반역자 시므리를 발본색원하여 그를 시원하게 척살하였기 때문입니다(민25:11).
5)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축복으로 부친 엘르아살의 뒤를 이어 훗날 대제사장이 되고 그의 후손 사독의 가문이 예루살렘성전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계속 맡게 됩니다(민25:13, 왕상2:35, 대상6:53). 그러나 그 전염병으로 이미 이스라엘 백성 2만 4천명이 희생이 되고 맙니다(민25:9). 당시 240만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규모를 생각할 때에 비록 그것이 1%의 희생에 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적은 수의 희생이 아닙니다. 그만큼 우상숭배와 음란문화는 선민 이스라엘 사회에서 반드시 근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악한 영의 주무기이기 때문입니다(롬8:2, 엡6:12).
6) 둘째, 예수님이 예언하고 계시는 세상의 종말에 발생하게 되는 가족사이의 내분에 관한 이야기를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대속의 십자가)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이 세상의 살기다툼과 탐욕에 물든 육신이 죽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터인데 그때까지 육신적인 삶을 계속하여야 하니 그것이 참으로 답답하다는 것임, 롬7:21-23, 빌1:23-24)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12:49-53).
7)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제4복음서 제1장을 살펴보면 그 이해의 실마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요3:3-8, 14:16-10, 롬8:1-18, 그리스도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성육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2-14). 그리스도가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이라고 한다면 주님의 제자인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서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여 내주 역사하고 있는 거듭난 자들입니다(롬8:1-4).
8) 그 성령의 전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으로 임재하여 성도의 인생에 동행하고 계십니다(요14:19-20, 고전6:19-20).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성도를 끊을 수 있는 우상문화나 이념이나 탐욕이나 음욕이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롬8:37-39). 그와 같이 세상의 탐욕의 누룩에 찌든 육신적인 삶을 청산하고 빛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제자로서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말씀과 기도로 성화에 힘써는 자들이 바로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라고 하겠습니다(마28:18-20).
9)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세가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을 떠나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는 자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26a). 그 부름에 응하고 있는 자들이 레위 지파의 장정들입니다(26b). 모세는 그들에게 칼을 가지고 나아가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제사를 드리자고 선동한 자들을 가려내어 처단하라고 명령합니다(27절). 그날 레위인들이 주동자 3천명 가량을 백성들 가운데서 색출하여 처단합니다(28절). 그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바라보고 나서 비로소 모세가 동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여호와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였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9).
셋째로,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200만명이 넘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과연 3천명의 희생으로 가능할 것인지 모세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임, 28절, 출12:37),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출애굽의 은혜를 배신하였으니 그것이)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자손이 그 반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무당 같은 제사장이 되고 말았으니 여호와께 큰 죄악을 범한 것이며 여호와의 출애굽의 은혜를 배신하였으니 그것이 슬프다는 것임, 출19:4-6).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모세는 그 옛날 유다처럼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내어놓고 친형 아론과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는 것임, 창43:9, 44:32-34).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성육신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와 달리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 범죄하면 용서함이 없음, 마12:31-32).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는 그때에는, 눅23:44-49)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훗날 그리스도가 그들의 죄짐을 지는 것으로 의제하고서 일단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임, 창15:16, 출3:8).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간접신앙에 의존하였기에 십계명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제국 애굽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는 잘못을 범한 것임, 출20:1-11, 18-21, 신5:22-33)”(출32:30-35);
1)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 시내 광야를 떠나서 다음날 모세가 거룩하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시내 산으로 다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이미 형제들에게 자신의 마음의 근심을 일부 내비친 것과 같이 다시 마음속이 답답해지고 있습니다(30a). 과연 3천명의 희생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잠재울 수가 있을까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습니다(30b).
2) 그래서 빽빽한 구름 속으로 들어간 모세가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영생을 담보로 하여 백성들의 잘못을 부디 용서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매어 달린 것입니다(31-32절). 그 옛날 유다가 부친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영생을 담보하면서 부디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가서 양식을 구해올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애원한 것과 비슷합니다(창43:8-9, 44:32).
3) 그러한 모세의 마지막 중보기도를 들으신 여호와의 답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피조물인 모세는 대속의 십자가를 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히7:28). 그러므로 여호와께 범죄한 자는 모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따름입니다(33절). 그러나 대속자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는 그 믿음으로 생명책에 그 이름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행4:12, 욥19:25-27).
4) 그 이유는 훗날 여호와의 독생자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그 보응의 날에 비로소 백성들의 죄악이 청산이 되고(34b)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의 문이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요5:24-29, 8:56, 히11:16, 26, 계21:27). 또 하나는, 그 일은 대속자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선지자인 모세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준비나 단단히 하라는 것입니다(34a);
결론적으로, 이 세상 만민과 만물이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대속자는 여호와의 독생자가 성육신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살아가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한 인자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요5:24-29, 행4:12).
그러므로 모세가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놓았지만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 앞에 열납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모세가 할 일은 구원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를 고대하면서 그 상급을 위하여 자신에게 맡긴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사명입니다. 오로지 여호와의 사자의 도우심과 여호와의 동행하심이 함께 할 때에 가능할 따름입니다(출32:34, 33:13-17). 그와 같은 사실이 다음 장인 출애굽기 제33장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출애굽기의 내용을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성도의 삶에 있어서 유익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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