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7. 1. 01:46

제목;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1:31-2:17, 3:1-8, 4:25-5:9, 21-24, 6:8-10, 참고구절; 12:1-5, 15:1-7, 10-21, 17:1, 18:1-14, 28:12-15, 3:5-8, 11:25-29, 왕상19:13-18, 왕하2:8-14, 2:28-32, 3:16, 1:1-18, 3:2-18, 14:16-20, 16:27-17:5, 2:1-4, 3:14-21, 4:5-16)

설교일; 주후 2024 7 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 1일 월요일 작성)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제1장에서 6일 동안 온 우주와 삼라만상을 창조하십니다. 6일날 마지막으로 창조한 존재가 바로 여호와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남자와 여자입니다(1:26-27).

그들이 여호와의 일꾼이 되어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다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1:28)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 매우 좋았다고 창세기 제1장 말미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1:31).

시작은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러나 6일 동안 창조된 세상의 운영에 있어서 나중에는 중차대한 문제가 하나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가 되어 있는 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탐욕스럽게 세상경영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드웨어의 창조가 중요하지만 그 경영에 있어서는 실제로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교회건물만 잘 짓는다고 하여 교회가 제대로 운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교회지도자와 성도들의 교육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대를 이어가면서 창조주 여호와의 뜻대로 언제나 신실하게 피조세계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방법론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 점을 창세기 제2장에서는 여호와 안에서 안식하는 인간 그리고 제7일에 고침을 받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2장 제7절에서 사람은 비록 흙으로 지어진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창조주 여호와의 생기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유일한 영적인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영성을 계속 발휘하자면 여호와와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안식의 의미입니다. 그러한 자가 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이며 성령충만을 입고 있는 자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세기 제2장에서 창조주 여호와와 에덴동산에서 동거하고 있는 아담이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나중에 만들어지고 있는 그의 배필 하와가 또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 두사람이 여호와의 섭리를 따라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 11처제’(monogamy)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2:20-25).

그런데 창세기 제3장에 들어오게 되면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 앞에 종의 법도를 어기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시선을 피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3:8). 그들이 그만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결과입니다(3:4-7).

이제 에덴동산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마저 따먹게 되면 죄악 가운데 영생하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3:22). 어떻게 하면 그들을 다시 창조주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성경에서 그 구원의 방법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과연 구원론의 본질과 과정이 무엇일까요?

그 첫 단계는 무엇보다도 그들을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보내어 죄 가운데 영생하는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3:21-24);

그 다음에는 실락원(失樂園, Lost Paradise)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부디 죄사함과 영생의 은혜를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너나없이 여호와의 동거할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존재이기에 생명의 기운을 더 이상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가 없어서 유한한 인생을 살고서 죽고 마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서 여호와께 간구하여 영생의 은혜를 얻어야만 합니다(24:44-53, 3:13-21, 1:7-14).

그러한 간구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고 있는 아담의 아들 에게서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5:1-3). 그는 아들의 이름을 유한한 몸을 가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을 담아 에노스로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영생을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4:25-26).

셋과 에노스의 후손 가운데 평생을 여호와와 동행하면서 구원을 얻고 있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사람이 에녹이고 또 한사람이 노아입니다. 에녹은 365세에 여호와에 의하여 휴거를 얻고 있습니다(5:23-24);

노아는 물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가족과 더불어 방주 구원을 얻게 됩니다(7:13, 8:16, 9:1).

여호와와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 많은 의인의 족보 가운데에서도 에녹노아에 관한 이야기가 창세기 앞부분에 수록되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의 연대를 계산해보면,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이 주전 25세기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400년의 세월이 지나자 주전 21세기에 믿음의 조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4:16).

그는 부자 아버지인 족장 데라의 재산을 상속하는 것보다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방지역에 여호와신앙을 전하기 위하여 부친 데라가 머물고 있는 하란을 떠나 과감하게 변경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12:1-5). 

고대의 족장사회에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움직인 여호와의 축복의 약속 가운데 첫번째가 무()자식인 그에게 후계자인 아들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12:2). 그 언약이 기적의 아들 이삭을 얻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18:11-14, 21:1-7).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영생을 자신에게 달라고 창조주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21:33). 과연 자신이 가진 모든 것 특히 후계자인 이삭까지 여호와께 바치고서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동거하는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여호와의 시험이 창세기 제22장에 기록되어 있는 모리아산에서의 제사입니다. 제사의 현장에서 막상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고자 하는 아브라함을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급히 말리고 계십니다(22:10-11);

그리고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부르시면서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베푸십니다(22:12-13). 또한 여호와께서 손수 마련하여 주시는 제물을 대신 바침으로 말미암아 아들 이삭이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창세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에녹과 노아처럼 여호와와 동행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구원의 비결입니다. 둘째, 셋과 아브라함처럼 여호와께 이 세상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더라도 영생을 얻겠다고 결단하는 그것이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자에게 여호와를 만나며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에서는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이 그러한 여호와신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곱은 벧엘에서 비박을 할 때에 꿈속에서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께서 천국으로 통하는 사다리 그 끝에서 그에게 말씀하시며 축복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28:12-13).

그와 같은 일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발생하게 되면 그때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아울러 자신의 인생을 모범적으로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여호와의 선지자가 됩니다.

그러한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모세엘리야의 이야기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출애굽기 제3장에서 80세의 모세가 장인의 양을 치다가 호렙산의 꺼지지 아니하는 불꽃이 신기하여 산중턱 현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3:1-5, 7:23, 30). 그곳에서 그는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고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이른바 Calling out입니다.

여호와를 만나서 사명자로 살아가는 모세가 영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시자 그때부터 여호와를 자주 만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얻고 있습니다(4:12-17, 19:3, 9, 10, 21, 20:21-22, 33:1, 7-11). 그것이 소위 성령충만의 비결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비슷한 일이 이스라엘 장로 70인에게 발생하게 될 때에 모세가 시종 여호수아에게 동족들이 모두 그러한 성령세례의 경험을 하고서 성령충만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참으로 좋겠다고 하는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습니다(11:29).

둘째로,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영적으로 캄캄한 시대가 바알 우상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의 통치 때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쓰임을 받은 선지자가 엘리야입니다.

이세벨에게 쫓기게 된 선지자 엘리야가 멀리 남쪽 유다왕국으로 피신하고 마침내 브엘세바에서 기진맥진하여 고단한 인생을 끝내고자 합니다(왕상19:3-4). 그때 여호와께서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고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명을 주시고 제자 엘리사를 붙여 주십니다(왕상19:15-21).

그후 엘리야는 자신이 못다 한 사명을 제자 엘리사에게 맡기고 여호와의 은혜로 요단 강가에서 회오리 바람을 타고서 올라가 불 말과 불수레로 승천하고자 합니다(왕하2:11). 그때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요청합니다(왕하2:9). 엘리야는 자신의 승천을 보게 되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답합니다(왕하2:10);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첫째, 여호와와 동행하는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 가운데 만나는 것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 세상적인 것보다 여호와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셋째, 그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하고 성령충만한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넷째, 휴거나 승천 또는 방주 구원 등의 선례를 보게 되면 영적인 능력이 배가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보게 된 제자들이 그러합니다(24:49-53, 1:8-11).

그와 같은 구약의 시대가 끝나고 신약의 시대에 들어오게 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로,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구원주로 오게 됩니다. 그 의미에 대하여 사도 요한이 제4복음서 제1장과 제3장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성육신)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공생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공생애를 살아가심으로써) 나타내셨느니라”(1:18), “5.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세례)성령(세례)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人子, son of man)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만민과 만물)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3-16).

둘째로,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주이심을 3사람의 사도들에게 천국의 모습을 변화산에서 미리 보여줌으로써 증거하고 있습니다;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1. 엿새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때에 모세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3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16:28-17:5);

출애굽의 지도자이며 여호와를 만나서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을 동족들에게 율법으로 전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건설자 모세나 승천의 모습을 생도들에게 보여준 큰 선지자 엘리야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구약시대에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이 세상에 완전하게 전해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여호와의 음성이 제자들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오직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서 신앙생활에 정진하라고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한 사실을 진작에 세례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세례)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5-17).

여호와의 선지자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물세례를 베풀 수가 있지만 성령세례는 창조주 여호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세례에 의하여 발생하게 되는 성령충만도 여호와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성령충만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주일에 제가 강해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다음과 같이 다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막내사도인 요한과 후속사도인 바울은 성령충만에 대해서는 그 생각이 같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들의 심령속에 성령의 전이 마련되면 그곳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함께 내주하여 충만하게 성도들에게 역사하고 계시며 그것을 두 사도가 성령충만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성경구절은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제4복음서에 있어서는 요한복음 제14장 제16-20절 말씀이 대표적이고,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서신서에 있어서는 특히 에베소서 제3장 제14-21절과 제4장 제5-6절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2)  둘째로, 먼저 사도 요한의 기록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6-20); 예수님 말씀의 핵심을 간추려 보면, 다음 3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주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시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진리의 성령님을 또다른 보혜사로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16&17a).

2)   둘째, 성도들의 심령속에 보혜사 성령께서 강림하여 성전을 마련하시면(17b) 그곳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오셔서 거처를 같이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18절과 20).

3)   셋째, 그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내주하여 하나로 역사하시게 되면 성도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9절과 20). 결국,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능력이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31체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성령충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셋째로,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에베소서의 제3장과 제4장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 대목을 아래에 적고서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14. 이러므로 (에베소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여호와)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초대교회 성도들)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알고, 19.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14-21);

2)   사도 바울이 이 세상 모든 족속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14-15)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 성령님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임재하게 하여 그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16). 둘째,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주님의 재림을 성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심령 속 성령의 전에 받아 들여서 그 교훈과 생애를 올바로 깨닫고 복음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구입니다(17-18). 셋째,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그 뿌리부터 깨달아 체계적으로 알게 되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19). 넷째, 넘치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충만의 능력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원히 함께하기를 사도 바울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깊이 깨닫고 올바르게 주님의 사랑으로 실천하는 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며 은사인 것입니다.

3)   5.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를 포괄하는 주님을 말함)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성령)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ἐπὶ) 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διὰ, 통과하여 통합하는 일통의 의미가 있음)하시고, 만유 가운데(ἐν) 계시도다”(4:5-6); 사도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 분이 동시에 구원주와 심판주가 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감찰하시면서(1:2) 그 위의 하늘 천국(heaven)에 보좌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영어로 over beyond의 의미를 가지는 헬라어 전치사 úπερ가 아니라 on의 뜻을 가지는 π가 여기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둘째, 성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성육신으로 오셔서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고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십니다.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점을 헬라어 전치사 διὰ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요청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십니다. 성도들이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심령속에 성령의 전이 생기고(영어의 in 해당하는 헬라어 전치사가 ἐν, 고전6:19) 그곳에  31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것을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성령충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간략하게 결론을 맺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참조하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었던 에덴동산이야 말로 아담과 하와가 영생을 누린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종의 분수를 넘어서서 창조주의 지혜를 탐내었기에 선악과를 따먹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눈을 피하게 됩니다. 영생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깨어지고 만 것입니다.

두사람이 에덴동산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되면 그때에는 죄 가운데 영생하는 마귀의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보내고 장차 그들을 구원할 방법을 준비하십니다.

그것이 구원주 그리스도를 여자의 후손으로 성육신하게 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서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여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3:15, 1:14-18, 3:13-16).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 전 시대에 있어서는 여호와를 직접 만나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한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영생이 무엇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녹노아 그리고 아브라함이삭야곱 등의 일대기가 창세기에 기록되고 출애굽기와 기타 모세오경에는 모세의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에 있어서는 선지자 엘리야의 승천이야기가 백미입니다. 특히 소선지서에 있어서는 요엘 선지자가 만민에게 성령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새 시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2:28-32). 그러한 새언약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예수 그리스도가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성령세례성령충만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막내 사도인 요한의 복음서 기록과 후속사도인 바울의 서신서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성도들에게 먼저 성령의 세례가 임하게 됩니다.

일단 성도의 심령속에 성령의 전이 마련되면(고전6:19) 그곳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으로 임재하십니다(14:16-20). 그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올바르게 살아가게 되면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의 삶 가운데 이미 영적으로 31체 하나님께서 내주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성도들이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되면 성령충만한 삶이 계속된다고 하겠습니다(28:18-20, 22:28-30).

아무쪼록 그러한 성령충만을 경험하시는 성도님들의 귀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울러 저와 여러분들의 주님에 대한 충성된 헌신과 봉사가 우리들의 교회와 민족을 살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