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주석

사도행전 제23장 주석(요약자; 에덴지기)

손진길 2024. 5. 27. 19:07

사도행전 제23장 주석(요약자; 에덴지기)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주목하여.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눈을 고정시키다”, “지속적으로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다”라는 의미이다(참조 행 13:9 주석; 1:10; 7:55; 4:20; 22:56). 누가는 진지하게 말하려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바울이 유대인 최고 집단을 4반세기 만에 보는 표정을 묘사하는 일에 이 단어가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구성원들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나 어떤 얼굴은 바울이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참조 23:5 주석).

여러분 형제들아. 참조 1:16 주석.

양심을 따라. 누가 이런 주장을 하든 이것은 매우 포괄적인 주장이다. 유대화주의자들(Judaizers)과 그 희생자들과의 더불어 여러해 논쟁을 한 후의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행동 노선에 관한 그의 확신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율법과 선지자를 따른 것이었다(참조 24:14; 28:17). 바울이 옳다면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분명 잘못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양심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24:16; 2:15; 13:5; 고전 10:25; 딤전 1:5; 딤후 1:3).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아나니아. 칼키스(Chalcis)의 왕 헤롯이 대제사장으로 임명한 네베대우스의 아들(Josephus Antiquities xx. 5. 2).

치라. 1절에 나타난 바울의 양심 선언은 산헤드린의 위선 혐의를 고발하는 것과 같았다. 만약 바울의 행동이 양심적이었다면 산헤드린 공회의 행동은 분명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왕상 22:24; 26:67; 22:63, 64과 비교하라.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회칠한 담이여. “외식하는”자를 지칭하는 말이다(참조 마 23:27). 회칠한 담과 같이, 재판을 맡아 고위직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지위를 나타내는 외적 장식물을 달고 있을지 모르나 지도자로서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의롭지도 사려 깊지도 않았다.

하나님이…치시리로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성급하게 말했으며 5절에는 사과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예수는 잠잠했다( 26:63; 벧전 2:23). 그러나 바울이 영감을 받아 말하면서 상대가 대제사장인 줄 모른 채 그의 운명을 예언했을 가능성도 있다(참조 5). 아나니아는 7, 8년 후인 AD 66년에(Josephus War ii. 17. 6, 9) 아마도 시카리이(Sicarii)들이 암살했을 것이다(참조 21:38 주석; 10, 80, 84). 28:15~17과 비교하라.

네가…앉아서. 대명사 “네가”는 헬라어 원문에서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 의미는 “위선으로 회칠한 담인 그대가 어떻게 다른 사람 위에 재판관으로 앉을 수 있는가?”이다.

율법대로. “율법에 따라”라는 의미이며, 여기서 율법은 유대인의 율법이다.

율법을 어기고. 치는 일은 유대인의 법에 허용되어 있었으나,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쳐 고발을 당한 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후에만 가능했다( 25:1, 2; 참조 요 7:51). 전 산헤드린 회원으로서(참조 사도행적, 112, 410,) 바울은 율법과 적절한 재판 절차를 알고 있었으며 율법의 정당한 절차를 누릴 권리를 주장했다 (5, 539을 비교하라).

영감받은 예언적 책망―성령의 감화하에서 바울은 예언적인 책망을 발하였는데, 이는 마치 예수께서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심과 같은 것이었다. 사도가 내린 심판의 선고는 유대 전쟁 때 자객들이 이 죄많고 위선에 가득찬 대제사장을 살해함으로써 무섭게 성취되었다(바울의 생애 222).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하나님의 대제사장. 종교적으로나 민사상으로 유대인 최고의 공직자인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겨졌다. 구약에서 사사를 간혹 엘로힘(elohim), 즉 문자적으로 “신들”이라고 불렀다(참조 시 82:1 주석; 1, 150, 151).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나는…알지 못하였노라. 참조 3:17. 바울의 진술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1) 시력 장애(참조 9:8, 18 주석) 때문에 바울은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2) 바울은 그를 치라고 명령한 사람이 대제사장이었는지 몰랐다. (3) 대제사장이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미심쩍어하며 반어적으로 말함으로 아나니아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권한에 바울이 간접적으로 도전했다. (4) 말한 사람이 대제사장 아나니아인 줄은 알았지만 말하기 전에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이중 첫 번째 설명이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인다. 두 번째 설명도 바울의 시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두 가지는 바울의 성격이나 그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비방치 말라. 바울은 인간 재판장을 언급할 때 히브리어 엘로힘(elohim)을 사용하는 출 22:28을 인용하고 있다(참조 23:4 주석).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70인역」에서 인용하고 있으나 바울은 분명히 이 구절을 히브리어로 인용했다. 이 시점에서 바울의 진실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복음의 일꾼들은 설령 위정자들이 권위를 남용한다 해도 그들을 인정하고 합당한 명예를 돌려야 한다.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바울이…알고. 한때 산헤드린 회원이었던 바울은 당연히 그들 중 얼마는 사두개인이요 얼마는 바리새인인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어느 파에 속했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나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에 대하여는 5:34 주석과 제9, 56~58을 참조하라. 헬라어 본문에서 대명사 “나”는 강조적으로 쓰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은 아직도 자신이 바리새인이라고 주장한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도 주의 추종자였다( 3:1; 사도행적, 104, 105,).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많은 바리새인이 회심했다(참조 행 15:5). 성경을 연구하는 어떤 이들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 대다수가 바리새인이었다고 제시한다. 예수와 바리새인의 가르침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예수가 바리새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과 바리새인은 모두 영감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세속으로부터 분리와 의를 강조했고 부활과 미래의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바리새인과 다른 점은 주로 의를 얻는 방법에 있다(참조 마 5:20; 7:5~13; 18:9~14; 2:16~21 주석). 그러므로 바울은 정직하게 “나는 바리새인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반드시 바리새파의 모든 믿음과 행습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다툼. 바울이 심리 초기에 이렇게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산헤드린 앞에서 공정한 청문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에게 판결을 내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는 그를 재판하는 자들이 서로 대립하게 함으로써(7) 그 재판에 종지부를 찍었다. 선택된 주제인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었으며(참조 고전 15:12~23), 바울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거의 확실한 것이었다(참조 마 22:23~33 주석).

나누이니. 헬라어 스키조(schizo-). “찢다”, “산산이 쪼개다”, [조각으로] 나누다.” 분리, 분열, 분파 등을 뜻하는 영어 “schism”은 헬라어 스키조의 명사형인 스키스마(schisma)에서 유래했다.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사두개인. 사두개인에 대하여는 4:1 주석; 5, 51, 52을 참조하라. 그들은 모세오경의 권위는 인정했으나, 선지자들의 글에 대해서는 권위를 보류했고, 구약의 문학적 부분과 전승의 권위를 모두 거부했다. 그들은 천사를 하늘 영광의 현시(顯示)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내세의 삶을 부인했다. 그러므로 바리새파는 “유대인의 스도이고(스토아)파” 그리고 사두개파는 “유대인의 에비구레오(에피쿠로스)파”라고 칭해졌는데 이는 넓은 의미에서 사실이다(참조 17:18 주석).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훤화. 헬라어 크라우게(krauge-). “부르짖음”, “떠들썩함.” 침착하고 유식한 산헤드린 회원들도 변덕스럽고 무식한 폭도들처럼 이성을 잃고 흥분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참조 22:22, 23).

서기관. 본문상의 증거는(참조 20) “서기관들 중의 얼마는”으로 읽는 것을 증거한다. 바리새인들의 모든 서기관이 참석한 것은 아니다.
다투어. 헬라어 디아마코마이(diamacho-mai). “격렬하게 다투다.

악한 것이 없도다. 주에 대한 빌라도의 결정( 18:38; 19:4, 6)과 비교해 보라. 각 경우에 유대교의 최고 법정은 의로운 사람을 맹목적으로 죽이려고 했다.

영이나 혹 천사가. 사두개인은 이 둘 가운데 어느것도 믿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서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본 이상(22:6~10)이나 성전에서 경험했던 “비몽사몽”(22:17~21)을 언급한 것 같다. 바울의 증언은 허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이전에 가말리엘이 보인 태도(5:33~40)를 상기시킨다.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천부장. 헬라어 킬리아르코스(chili- archos). 공공 질서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의 안전에도 관심이 있는 천부장 루시아가 임석했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22:30).

찢겨질까 하여. 바울의 신변을 확보하려는 사두개인들과 보호하려는 바리새인들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군사를 명하여. 루시아의 천부장 직위(참조 22:24 주석; 18:12; 21:31, 32)로 볼 때 그 수비대는 약 1,000명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이는 원군 보병대의 최대 병력이었다. 킬리아르코스는 그만한 규모의 군대를 지휘했다(참조 21:31; 27:1 주석). 바울은 안전을 위하여 안토니아 요새로 호송되었다(참조 22:24 주석).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 존재는 분명히 그리스도 자신이었다(참조 9:5, 6; 22:17~21) 전망은 어두웠고 바울은 그리스도가 재판받을 때 유대인들의 소원에 응했던 빌라도의 비굴한 묵인을 기억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하나님의 보증은 바울에게 의미가 컸으며 향후 있을 수 년 동안의 재판을 감당할 용기를 주었다.

담대하라. 바울은 지난 이틀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되돌아보았다.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일어날 일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주어진 경고(20:22, 23)를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했던 그의 단호한 목적(20:24)이나, 결례(潔禮)에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에 동의했던 일(21:20~28) 그리고 산헤드린 앞에서 그의 행동(23:1~10)이 과연 지혜로웠는가 등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미래로 생각을 돌렸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그의 사명은 끝난 것인가?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의 소망은 좌절되었는가?( 19:21; 1:13). 그가 기도를 통해 마음을 쏟아 낼 때, 주께서 위로와 보증을 가지고 몸소 나타나셨다.

로마에서도. 바울은 로마를 방문할 결심을  이미 하고 있었다(참조 19:21).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유대인들이. 13절에 의하면 유대인은 약 40명이었다. 그들은 매우 열렬했으며 음모가 성공하리라고 확신했다. 마카베오 반란 당시 모딘(Modin)의 연로한 제사장인 맛다디아에 의해 자행된 살인과 (마카베오1 2:24; Josephus Antiquities xii. 6. 2 [268~ 278]), 헤롯 대왕이 원형 극장을 짓고 예루살렘에 검투사 경기를 끌어들였을 때 그를 암살하려 했던 시도(Josephus Antiquities xv. 8. 3)와 비교하라.

맹세하되. 헬라어 아나쎄마티조(anathe- matizo-). “저주하다”, “저주받았다고 선언하다”, [만약 맹세가 성취되지 않는다면] 저주 아래 묶는다.” 이들은 목적을 성취하지 못할 경우 하늘의 가장 엄한 형벌을 받겠다고 자청하였다. 히브리어 하람(h.aram)과 비교해 보라(참조 삼상 15:3 주석).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이러한 맹세를 통하여 자칭 암살자들은 바울을 속히 죽이고자 하는 열성과 결심을 나타냈다.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사십 여 명. 이 광신적인 무리의 규모는 바울의 목숨이 극도로 위험에 처해 있음을 뜻한다.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대제사장들. 음모자들이나 “대제사장들”이 바리새인(참조 6~9절 주석)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그들은 모두 광신적이었다. 그 나라의 지도자들은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사악한 사람과도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알아볼 양으로. 문자적으로 “그에 관한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조사할 의도가 있는 것처럼.

공회. 산헤드린. 이와 같은 음모에 의존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산헤드린은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참조 요 18:31; 7:58 주석). (2) 그렇게 할 수 있을지라도 로마 시민인 바울에게는 사법권이 전혀 미칠 수 없었다. (3) 혹시 사법권이 미칠 수 있었다 해도 이제는 바리새인들의 영향력이 바울에게 평결을 내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우리. 헬라어 본문에서는 강조형으로 사용되었다.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그들은 바울이 결코 공회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산헤드린 회원 중 어느 누구에게도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게 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암살을 광신자들의 소행으로 돌릴 계획이다. 이 음모자 40명은 틀림없이 광신적인 “자객들” 즉 시카리이(Sicarii, 참조 21:38 주석)였을 것이다. 복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가는 복음 전파 시에 발생한 어려움의 책임이 주로 로마인들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참조 눅 23:2, 4, 14, 22). 요세푸스는 헤롯에 대한, 이와 유사한 유대인들의 음모를 기록했으며(Antiquities xv. 8. 1~4),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음모가 있었다( 7:19; 8:40; 10:39).
필론은 배교자 암살에 관해 이렇게 옹호했다. “정의에 대한 열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범법자를 법정이나 의회 혹은 법무관 앞에 데려오지 않고 지체 없이 즉석에서 형벌을 가하도록 허락하며,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악에 대한 미움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경한 자들 위에 자비 없는 형벌을 가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한 기회가 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문관, 배심원, 치안관, 의회 의원, 원고, 증인, , 백성 나아가 사실상 모든 권한을 가진 존재라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지장을 받을 필요 없이 그들의 종교가 전혀 침해받지 않도록 옹호해야 한다”(The Special Laws i. 9. 55; Loeb ed., vol. 7, 131).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바울의 생질. 예루살렘에 있는 바울의 친척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다. 로마에 그의 친척이 있었으며( 16:7, 11), 고린도에도 분명히 있었다(21). 바울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참조 22:3 주석) 바울의 생질도 예루살렘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의 여형제나 생질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영문에 들어가. 무엇보다도 그 사도는 보호 차원에서 구금되어 있었으므로 그의 친구들을 접견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로마의 법은 세 종류의 구금을 규정하였다. (1) 일반인을 공공의 감옥에 구금하는 것, (2) 고위직 인사를 공판일에 출두시킬 책임을 진 재판관이나 원로원 의원의 개인 구금에 맡기는 것, (3) 생명을 걸고 죄수를 지킬 책임을 진 군병이, 대개는 자신의 왼손과 죄수의 오른손을 사슬로 묶어 두는 군사 구금. 바울은 군사 구금에 처해 있었다(참조 18절 주석).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바울이…청하여. 그는 하나님과 그의 인도를 믿고 있었지만(참조 11절 주석) 한가로이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생질을 통해 이르러 온 기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했으며 이 임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그의 믿음과 일치함을 알았다.

청년. 헬라어 네아니아스(neanias, 참조 20:9 주석).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죄수. 헬라어 데스미오스(desmios). “묶인 (), “포로”, “죄수.” 대개 군사 구금하에 있는 죄수는 그를 지키는 군병과 묶여 있었으나(참조 21:33; 23:16 주석), 이 단어가 반드시 바울이 사슬에 매여 있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그 손을 잡고. 그 생질의 통보를 더욱 은밀하게 듣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그는 고소를 당한 로마 시민의 밀사로서 루시아에게 왔다. 분명히 그 “천부장”은 바울을 고소한 자들보다는 바울을 더 배려해 주었다(참조 26~33). 로마인들은 관례에 따라 유대인들보다 더욱 사려 깊고 공정하게 바울을 취급했다.

종용히. 따로 데리고 어디로 간다기보다 묻는 것에 주안점을 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유대인들. 유대 지도자들이 작당하여 음모를 꾸몄으므로 유대 민족이 관련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21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맹세한. 즉 “저주 아래 있는”(참조 12~ 14절 주석).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심문하려는 장소로(참조 15) 루시아가 바울을 내려 보내는 데 동의하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이에 천부장이.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고, 유대인들이 그를 부당하게 고소한 것으로 보였으며, 유대인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바울에 대한 공정한 심문을 보증하려는 루시아의 시도를 그들이 분명히 회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천부장”은 바울에게 더욱 호의를 갖고 그를 보호하기로 더욱 결심하게 되었다.

고하였다고. 즉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만약 루시아에게 그들의 음모가 드러났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알아채면 바울을 보호하려는 루시아의 노력은 좌절될지 모른다. 또한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밀고자는 침묵해야 했다.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 바울이 그들과 있다는 것을 구경꾼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제삼시에. 오후 9시나 10시경이다(참조 2:15; 3:1 주석).
가이사랴까지. 팔레스타인 내의 로마 정부 소재지이며 속주 재정관이나 총독의 일상 거주지이다(참조 8:40; 10:1 주석). 육로로 100여 킬로미터 거리였다.

보병 이백 명. 소환된 백부장 두 명에게 각각 100명씩 속한 보병은 바울을 보호할 임무를 맡았다.

창군. 헬라어 덱시올라보이(dexiolaboi). 문자적으로 “오른쪽[]으로 잡은 자들.” 「불가타역」에는 덱시올라보이가 란체아리이(lancearii) 곧 “창기병들”로 번역되어 있다. “창군”, 즉 “창기병들”이 의미하는 바는 일반적으로 창을 오른손에 든다는 사실에서 기인되었다. 단 한 명의 죄수를 폭력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470명이나 되는 큰 병력을 배치한다는 것은 유대의 소란스러운 상태, 예루살렘 주둔군의 위력, 루시아가 바울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 부여한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루시아는 유대인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만군의 여호와(참조 왕하 6:17; 6:22; 26:53)가 보낸 많은 천사가 틀림없이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루시아는 자신의 안전에 위협을 느낌―루시아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바울에게서 손을 떼고자 하였다.… 이보다 조금 전에 루시아보다 휠씬 높은 로마의 기사가 미쳐 날뛰는 유대인들의 손에 붙잡혀 난폭하게 끌려 나와서는 예루살렘 성벽 근처에서 마침내 목이 잘려 죽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서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비슷한 죄의 혐의로 다른 고위 관리가 투옥되었고, 공직을 박탈당하였다. 만약 바울이 살해되면 그 천부장은 그의 죽음을 눈 감아 주기 위해 뇌물을 받아 먹었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럼으로해서 그에게는 이제 바울을 몰래 보낼 충분한 이유가 생겼고, 입장이 난처해진 그 책임을 면하게 되었다(바울의 생애 227).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총독. 헬라어 헤게몬(he-gemo-n). (참조 마 27:2 주석).

벨릭스. 벨릭스의 임기는 AD 52년경부터 AD 60년경까지이다. 타키투스(Annals xii. 54; Loeb ed., vol. 3, 393)는 벨릭스가 “배경을 믿고 모든 범죄를 경미하게 여겼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의 형제가 글라디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에토니우스(Lives of the Caesars v. 28)는 벨릭스를 계속하여 세 번 결혼한, 세 아내의 남편으로 묘사한다. 이들 중 하나가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딸로 헤롯 대왕과 마카베오의 후손인(참조 24:24) 드루실라였다. 벨릭스는,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초기 반란과 그의 잘못된 행정에도 불구하고 유대에서 상당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참조 24:1, Tacitus Annals xii. 54).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로마의 시민임을 주장하는 죄수의 안전, 백부장들과 군병들의 목숨 그리고 로마 군대의 치안 유지 능력 등 이 모든 것이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이사랴로 바울을 호송하는 일에 달려 있었다.

짐승을 준비하라. 이 짐승들은 모든 무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바울 그리고 아마도 단 한 지휘관들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로마 시민으로서 보호받는 죄수 신분으로, 바울은 보통 유대인이나 일반 죄수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특권을 받았다. 분명히 그런 호송은 바울이 그간의 여행에서 흔히 누려 보지 못한 호사였다.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아래와 같이. 문자적으로 “이와 같은 모양으로”, 즉 다음과 같은 형태로. 누가가 기록한 편지는 원문과 글자 그대로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흡사했을 것이다. 그것은 요지를 담고 있다.

편지21:15, 18에서 누가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바울 일행에 자신을 포함시킨다. 그 편지는 아마도 공식 통용어인 라틴어로 쓰였을 것이며, 누가가 여기에 제시한 것은 헬라어로 쓰인 편지이다.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각하. 이 단어와 “문안”이라는 단어는 당시 고급 헬라어의 문학적 용례를 반영하고 있다(참조 눅 1:3 주석; 1:1; 15:23; 1:1).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사람. 헬라어 아네르(ane-r). 여자와 구별되는 “남자.” 바울이 로마 시민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은 어느 정도 존경을 내포하는 것 같다.

잡혀. 헬라어 쉴람바노(sullambano-). “취하다”, “잡다”(참조 마 26:55; 12:3).

죽게 된 것을. 문자적으로 “죽임을 당하려 할 때.” 편지에는 바울을 공격하게 한 종교적 논쟁의 세부적인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루시아가 그런 문제에 관해 무지했거나, 이 내용이 벨릭스 앞에서 진술될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참조 30).

들어 알고. 즉 “알고”, “정보를 받고.” 루시아는 바울이 로마인인 줄을 알고 자신이 바울을 구했다고 벨릭스가 생각하도록 진술을 꾸몄다. 이것은 물론 사실과 달랐다(참조 22:25~29).

구원하여다가. 즉 바울이 처음으로 공격받았을 때(21:32).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알고자 하여. 루시아는 채찍질을 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했으나(참조 22:24), 바울은 로마 시민임을 주장하여 그 처지에서 벗어났다(25).

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 성전의 규정(참조 21:18 주석)과 신학적 질문(23:6)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제들은 평화를 교란시킬지 모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루시아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사건. 로마의 법률에는 그러한 종교적 사건에 대한 아무런 조항이 없었다. 바울이 가이사랴와 이후 로마에서 너그러운 대우를 받았던 데는 루시아의 우호적인 보고가 한몫했을 것이 틀림없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 즉시. 루시아는 죄수를 벨릭스에게 보냄으로써 총독의 우월한 지위와 유대인의 관습에 대한 그의 더 폭넓은 지식에 넌지시 경의를 표하고 있다.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밤에 바울을 데리고. 밤에 예루살렘을 떠나 날이 밝을 무렵에 이미 순탄하게 가이사랴로 가는 중이었음을 의미한다(참조 23).

안디바드리. 현대의 라스 엘-아인(Ras el-Ain)으로 확인되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Antiquities xvi. 5. 2.) 이 성은 헤롯 대왕이 카파르 사바(오늘날의 케프르 사바[Kefr Saba]의 남쪽)에 세웠으며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의 이름을 따라 명명하였다(5, 38). 안디바드리는 “안티파테르에게 속한다”는 뜻이다. 그 성은 샤론 평야에 멋지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지고 관개 시설이 잘 되어 있었으며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통하는 로마가도에 있었다. 동일한 자리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는 구약 당시의 고대 성읍 아벡에 대하여는 요세푸스의 기록(War i. 4. 7; ii. 19. 1; iv. 8. 1)을 참조하라(참조 마카베오1 7:31).

32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가니라

이튿날. 안디바드리는 예루살렘에서 약 6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저녁에 떠나(참조 23절 주석) 보병과 함께 여행한 바울 일행은 다음날 안디바드리에 도착했을 것이다.

영문. 예루살렘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를 가리키며(참조 21:34), 로마군이 숙영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주둔군은 이처럼 곤란한 일이 발생할 때 큰 규모의 파견대를 내보낼 수 있을 만큼 상당한 규모였음에 틀림없다.

돌아가니라. 바울이 이제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자 보병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33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편지를…드리고. 파견대의 지휘자는 편지, 죄수 그리고 문제 사안을 총독에게 인계했다. 사명이 사고 없이 완수되었다.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총독.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그”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길리기아. 참조 6:9; 15:41 주석. 이 당시에 길리기아와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수리아 도(속주, 屬州)에 편입된 듯하다.

35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네 말을 들으리라. 문자적으로 “나는 네 말을 상세하게 들을 것이다.” 즉 발언할 기회를 충분히 주겠다는 말이다. 벨릭스는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 송사하는 자들은 5일이 더 지나기까지 가이사랴에 이르지 않았다(24:1).

. 헬라어 프라이토리온(praito-rion, 참조 마 27:27 주석). “관정”, “브라이도리온”(참조 막 15:16). 라틴어 프라이토리움(praeto- rium)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사령관의 숙소, 로마에 있던 황실 친위대 병영 그리고 여기서처럼 로마제국 속주 총독의 “궁”(재판정)을 일컫는 데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