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주석

사도행전 제24장 주석(요약자; 에덴지기)

손진길 2024. 5. 29. 03:52
사도행전 제24장 주석(요약자; 에덴지기)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닷새 후에. 즉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부터이다(참조 11절 주석). 닷새는 공식적인 고소를 준비하고 전문 자격을 갖춘 대변인에게 사건을 제출하도록 지시하는 데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참조 21:17, 18, 27; 24:11).
아나니아. 이 대제사장은 바울에게 친근함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를 “회칠한 담”(23:3)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장로들. 참조 23:14 주석.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어떤 장로들”이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예루살렘 의회에서 바리새인들이 바울을 옹호했었기 때문에(참조 23:9 주석), 사두개인인 아나니아가 거기서 바리새인들을 많이 데리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참조 23:9 주석).
변사. 헬라어 레토르(rhe-to-r). “연사”, “웅변가.” 레토르는 변호사 혹은 전문적인 탄원자였다. 이 명칭은 한 번도 신약에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 혹은 “기별자”(헬라어 케뤽스[ke-rux], 딤전 1:7)라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우리의 “대언자”(헬라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요일 2:1; 참조 마 5:4 주석) 그리스도에게도 사용되지 않았다.
더둘로. 이 이름은 라틴어 테르티우스(Tertius, 더디오)의 애칭인데 “셋째”를 뜻한다. 세쿤두스(Secundus, 세군도), “둘째”(20:4)와 비교하라. 모든 속주의 법정마다 비로마 속주인들을 변호하는 유능하고 로마 풍습에 정통한 사람들이 있었다. 더둘로는 로마의 법적 절차에 정통한 유대인이었거나 유대인의 전승에 익숙한 로마인이었을 것이다. 더둘로가 로마인이었다면, 그가 사용한 “우리”,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라는 대명사는 그가 유대교로 개종했거나, 그가 의뢰인을 위해 변호하고 있음을 강조하려고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내려와서. 산 위 높은 곳 예루살렘에서 해변에 있는 로마의 주요 도시 가이사랴로 내려온 것을 말한다.
고소하니라. 헬라어 복수형으로 아나니아, 장로들, 더둘로를 포함한다. 대표단 전원이 바울을 고소하는 일에 가담했다. 25:2, 15에서와 같이 헬라어 엠파니조(emphanizo-), “알리다”는 공식적인 고소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부르매. 바울이 구금되었다가 심문을 받기 위해 소환된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사하여 가로되. 과도한 아첨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더둘로의 변론은 고소의 말이었다. 이렇게 아첨으로 변론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참조 Cicero De Oratore ii. 80). 의심할 바 없이 그 변론에 대한 누가의 보고(2~8)는 간략한 요약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단지 연절의 핵심적인 요점만 보존되어 있다.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각하. 헬라어 크라티스토스(kratistos). “가장 고상한”, “가장 빛나는.” 이 단어는 루시아가 벨릭스에게 보내는 편지(23:26)에서도 사용되었고 “가장 뛰어난”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품성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바울도 베스도에게 비슷하게 사용했다(26:25).
태평. 문자적으로 “많은 평화.” 이 유대 역사의 황혼기에 팔레스타인은 평화라고는 누려 보지 못했다. 반란은 표면 아래에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고, 그로부터 7, 8년쯤 후에는 공공연한 반란으로 터져 나왔다(참조 제10, 79~83). 그 땅이 누린 평화는 무력과 군대에 의해 강요된 로마식의 평화였다. 벨릭스는 반복해서 정치적 메시야들을 억압했으며 로마의 권위에 대항하는 초기 단계의 반란 배후를 분쇄했다(참조 Josephus Antiquities xx. 8. 6, 7; War ii. 13. 2[253]).
민족. 헬라어 에쓰노스(ethnos).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 신약 기자들은 보통 유대인들을 헬라어로 라오스(laos), 즉 “백성”이라고 불렀다(10:2; 26:17, 23). 유대인들이 에쓰노스를 자신의 민족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이방인 앞이거나 이방인에게 존경을 나타낼 때였다(참조 눅 7:5; 23:2).
선견. 헬라어 프로노이아(pronoia). “선견”, “선견지명이 있는 돌봄.
개량된 것(「제임스왕역」에서는 “worthy deeds[훌륭한 일들〕라는 표현으로 더둘로의 아첨을 나타내고 있음-역자 주). 타키투스에 의하면(Annals xii. 54) 벨릭스는 팔레스타인 산적들의 활동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상당한 수입이 있었다. 벨릭스가 약탈을 징벌하는 경우는 오로지 자신의 부를 증가시키려는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뿐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잘못된 행정 때문에 벨릭스는 바울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로마로 소환되었다.
천박하고 비열한 벨릭스―여기에서 더둘로는 뻔뻔스런 거짓말을 했다. 벨릭스의 인격은 비열하고 천박하였다. … 그의 인격을 더럽힌 무절제하고 음란한 생활의 한 단면은 드루실라와의 결합에서 드러나 있다. 그 결합은 그때쯤 이루어진 것이었다. 벨릭스는 마법사 시몬 마구스의 속임수로 이 공주로 그녀의 전남편을 떠나고 그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 드루실라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더구나 유대 여자였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아주 헌신적이었다. 그 남편은 이 여자를 얻으려고 큰 희생을 치루었다. 그러한 이 여자에게서 강렬한 편견을 사라지게 하고, 잔인하고 늙은 탕아와의 음란한 결합을 위해서 자기 민족의 혐오감을 감내하게 만들만한 것은 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와 배신자들의 사탄과 같은 계략이 주효하여 벨릭스는 그의 목적을 이루었다(바울의 생애 235,236).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괴롭게 아니하려. 헬라어 엥콥토(egkopto-). “방해하다”, “지체시키다.” 더둘로는 벨릭스가 평화를 유지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일(참조 3절 주석)로 바빠서, 지금 당면한 것과 같은 대수롭지 않은 문제는 돌볼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체면을 세워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둘로는 자기의 의뢰인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 달라는 소원을 암시한다.
관용. 헬라어 에피에이케이아(epieikeia). “온화함”, “공정함”, “부드러움”(참조 고후 10:1). 여기에는 “배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더둘로는 법정 분위기를 아첨으로 채움으로써 이 소송의 진실에 대한 벨릭스의 시각을 흐리게 한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우리가 보니. 이 진술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바울이 불량한 사람이라는 증거로 결론이 내린 면밀한 조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염병. 헬라어 로이모스(loimos). “해충”, “천재.” 문자적으로 “역병.” 마카베오1 10:61에서 로이모스는 범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 “사람이 사는 세계.” 여기서는 로마 제국을 의미한다(참조 눅 2:1 주석).
유대인을. 연례 축제에 참가하려고 유대인 수천 명이 해외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였기 때문에 빌립보(16:16~24), 데살로니가(17:5~9), 고린도(18:12~17), 에베소(19:8~10, 13~20:2) 등지에서 바울의 활동에 수반하여 일어난 소동은 분명히 지도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이러한 소동들은 바울의 선동적인 행동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었으며 그에게 씌워진 혐의에 증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둘로는 특정 사건들을 인용하고 최악의 해석을 붙임으로써 그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참조 24:18).
소요케 하는 자. 즉 “선동자.” 로마법에 정면으로 저촉되게 함으로써 고소자들이 바울에게 씌우려는 중한 죄목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염병”이었으나 로마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벨릭스는 반란 선동자들을 가혹하게 다룬다고 알려져 있었고(참조 2절 주석), 만약 더둘로가 이 주장을 그에게 확실히 납득시킬 수 있다면 바울의 운명은 끝날 것이었다. 빌라도 앞에서 주님이 쓰셨던 혐의와 비교해 보라(참조 눅 23:2 주석).
나사렛. 신약에서 여기서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었는데, 틀림없이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말한다. 2, 3세기에 나사렛인들이라고 불린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불렀다(참조 제10, 61, 62). 나사렛 거주자인 예수에게 “나사렛 사람”이라는 단어가 적용된 마 2:23을 참조하라. 이 단어와 나실인( 6:2; 2:23)이라는 용어는 어떤 연관성도 없으며 “준수하다”, “지키다”, “간직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나차르(nas.ar)와 연관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
이단. 참조 5:17 주석.
괴수. 헬라어 프로토스타테스(pro-tostate-s). “앞줄에 선 자”, “선두” 그러므로 “지도자.” 투키디데스의 History v. 71에서는 우익(右翼)의 프로토스타테스는 전진하거나 공격할 때 따라야 할 방향을 책임지고 있다고 밝힌다. 여기에서는 은유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더럽게. 헬라어 베벨로오(bebe-loo-). “불경스럽게 하다”, “신성을 더럽히다”. “문지방”을 뜻하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동사형에는 “문지방을 밟고 넘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바울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허락된 성전 뜰의 경계선 안으로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혐의를 받았다. 바울에게 씌워진 이 혐의는 유대법뿐만 아니라 로마법 아래에서도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하려 하므로. 문자적으로 “시도하였다.” 바울의 반대자들은 이제 그를 체포하게 된 혐의를 제시한다.
우리가 잡았사오니. 헬라어 크라테오(krateo-). “취하다”, “붙잡다.” 무력 사용을 암시한다. 그들은 바울을 무력에 의해 붙잡힌 위험한 범죄자로 묘사한다.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그를 심문하시면. 헬라어로 “그”가 단수인 것으로 보아 바울이 분명하다. “그”의 선행사는 5절의 “이 사람”(바울)이며 6절의 “저”이다(참조 6절 주석).
8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참가하여. 더둘로는 유대인의 대변인이었으며 유대인들은 그가 진술한 내용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그가. 바울은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참조 12, 13)를 조목조목 부인한다. 그는 네 가지 요점을 말하고 있다. (1)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으며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왔다(11, 17). (2) 소동을 부리지 않았다(12, 18). (3) 고소하는 자들에게 증거를 들어 고소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13, 19). (4) 그의 유일한 잘못이란 하나님과 율법에 순종하며 부활을 믿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4, 15, 21). 그의 변명 중 앞부분은 일반적인 진술(11~16)인 반면, 뒷부분은 그 진술에서 지적한 요점에 대한 자세한 반복(16~21)이다. 이 과정은 아마도 헬라어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라틴어로 말했다면 바울이 히브리어를 사용했을 때(21:40)처럼 분명히 누가가 그 점을 언급했을 것이다.
여러 해 전부터…재판장. 당시 벨릭스는 유대의 다른 총독들보다 더 긴 기간인 약 6년 내지 8년간 총독으로 있었을 것이다(참조 제10, 79, 80). 벨릭스는 자신의 임기 외에도 얼마간 쿠마노스(참조 Tacitus Annals xii. 54)와 공동 총독직을 수행했을 것이다.
변명하나이다. 헬라어 아폴로게오마이(apologeomai). “자신을 변호하다.” 바울은 “기쁘게” 벨릭스를 신뢰할 만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벨릭스가 유대 관습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바울의 용기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영원한 보증(23:11)에 기초한 것이었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 이틀 밖에 못되었고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벨릭스는 쉽게 이 진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폭동이 일어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사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은 전혀 달랐으며(11, 17), 벨릭스는 온 천하의 유대인들이 헌물을 가지고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예배.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주된 이유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 즉시 태도를 바꿔 그것을 더럽혔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열이틀. 포함 계산법에 의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 전 기간은 14일로 보이며 다음과 같이 계수된다. 1, 예루살렘 도착과 형제들의 환영(21:17). 2,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만남(18~25). 3~7(대략적임, 참조 사도행적, 406), 결례의 기간인 7일 중 5(26, 27). 7(대략적임), 유대인의 습격을 받았으나 루시아가 구해 줌(27~33). 8,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바울이 변론함(22:30~ 23:11). 9,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꾸며지고 폭로되었으며(12~22), 바울이 안디바드리를 통과하는 길로 가이사랴로 출발함(31). 10,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벨릭스 앞에 출두함(32, 33). 10~14, 24:1 5.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날과 벨릭스 앞에서 재판받는 날을 제외하고 그 중간의 12일만 언급했을 가능성이 있다.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저희는…보지 못하였으니. 이곳에서 바울은 혐의를 단호하게 부인하며 전적으로 논박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나중에는 좀 더 자세하게 한다(참조 10절 주석). 바울의 원수들이 고소한 일들 중에 어떤 일도 바울이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또한 바울의 진술은 증명할 수 있었다. 바울이 공격적으로 말했거나 행동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은 아무도 없었다.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 문자적으로 “군중을 선동하는 것.” 바울을 공격하기 위하여 폭도를 모은 것은 유대인들이었다(21:27, 28).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내세울. 헬라어 파리스테미(pariste-mi). 각 항목에 따르는 공식적인 증거를 갖다 대는 것을 의미한다. 요세푸스는 로마의 실정으로 반란이 촉발했다는 증거를 나열하면서 이 파리스테미를 사용한다(Life 6).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고백. 헬라어 호몰로게오(homologeo-). “선언하다”, “고백하다.” 바울이 그에게 씌워진 혐의를 어떤 면에서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고백”은 아니다.
이단.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 “당파”(참조 5:17 주석; 24:5).
(). 사실상 그리스도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참조 9:2 주석).
조상의 하나님. 바울은 “나사렛 사람”이 됨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을 떠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직도 그는 동일한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는 자신이 이단임을 부인한다.
섬기고. 바울은 “나사렛 사람들”(5)의 “도”를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당시 로마나 유대의 법에 나사렛 사람 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금하는 법은 없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판결받도록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율법…에. 문자적으로 “율법에 의해”(참조 눅 24:44 주석). 여기서 “선지자들”과 함께 사용된 “율법”은 오경(Pentateuch) 곧 모세의 다섯 책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이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의 세 부분 중 두 부분이며 여기서는 사실상 “구약”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율법은 참된 길을 지적해 주었으며 선지자들은 그 율법을 예증하고 확대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믿는다. 그는 이단이 아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최고 권위인 구약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믿음과 행위를 전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 믿으며. 바울은 유대인의 성경인 구약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했을 뿐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을 섬겼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이 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거짓에 대항하여 논쟁한다. 바울처럼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은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 바울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참조 눅 24:27 주석).
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기다리는바. 헬라어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받아들이다”, “기대하다.” 분명히 바울은 그를 고소한 자들 중 적어도 재판정에 출석한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참조 23:6).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부활을 믿었다(참조 사 26:20; 12:2, 13; 마카베오2 7:9; 에녹1 91:10; 솔로몬의 시편 3:16; 10, 27, 28, 31).
소망. 참조 롬 5:4, 5 주석. 부활과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모두 그 의미를 잃는다(참조 고전 15:14, 32; 2:13; 요일 3:3). 소망은 위대한 그리스도교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146:5; 9:12; 고전 13:13; 5:5; 6:19; 벧전 1:3). 소망이 없는 자들은 “세상에서…하나님도 없는 자”( 2:12)들로, 삶은 기껏해야 헛된 경험에 불과하다.
악인. 바울의 주장은 의인, 곧 의로운 자만 부활하는 것(고전 15:51~54; 살전 4:16)이 아니라 불의한 자도 부활한다는 것(참조 단 12:2)이었다. 그 상급이 서로 별개인 것처럼( 2:5~10), 두 부활은 각각 다른 범주에서 일어날 것이다. 요한은 두 부활이 1,000년 간격을 두고 따로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20:3~10). 바울이 언급한 악인의 부활은 벨릭스의 양심을 일깨웠다(참조 23:24; 24:2 주석).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이것을 인하여. 즉 그가 이미 언급한 믿음, 소망 그리고 경건한 봉사로 인하여
양심.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인 양심은 바울에게 가장 중요했다(딤전 1:5; 3:9; 9:14). 다시금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깨끗했다고 주장한다( 23:1; 참조 롬 9:1; 딤후 1:3; 13:18).
거리낌이 없기를. 헬라어 아프로스코포스(aproskopos). 문자적으로 “대항하여 칠 것이 없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그가 행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박해자였을 때도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6:9, 10; 참조 요 16:2). 그러므로 그의 삶은 밝은 양심을 갖는 것이 양심적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예증으로 보여 준다. 양심은 그것이 이미 아무리 “선하다” 해도 하나님의 음성( 30:21)과 그의 말씀( 8:19, 20; 딤후 3:15~17; 참조 마 24:21~27)에 늘 주의해야만 한다.
힘쓰노라. 헬라어 아스케오(askeo-). “운동하다”, “애쓰다”, “고통당하다.” 바울은 종교적 신념과 행위를 진지하게 취급한다. 그에게 종교는 철학적 체계 이상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그는 그의 행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적 문제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투쟁한다(참조 마 7:24~27; 2:12, 13; 3:7~15).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여러 해 만에. 바울이 이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은 두 번째 선교여행이 마쳐가던 AD 52년경이었다(18:21, 22). 그 후로 약 6년이 지났다.
내 민족. 바울은 국적으로는 로마 사람이었으나 마음으로는 여전히 유대인이었으며 여기서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자기 백성과 동일시하고 있다(참조 22:3). “구제할 것”과 “제물”그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목적은 그가 성전을 더럽히거나 성전 봉사를 방해할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증거한다.
구제할 것.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의 귀환은 하나님과 동족에 봉사하려는 확고한 목적과 조화되는 것이었다(참조 16절 주석). 그는 자신의 민족에게 해를 끼치려 함이 아니라 유익을 주기 위해 돌아왔다( 11:29, 30; 20:35; 15:25~27; 고전 16:1~4; 고후 8:1~4).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드리는 중에. 즉 그가 “구제할 것”과 “제물”을 드리는 일에 열중하는 동안이라는 의미이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를 발견한 시각에 그가 실제로 예물을 드리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으나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체포되었을 때 바울은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필요한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있었다(참조 사도행적, 406).
모임도 없고. 바울의 유일한 동료는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그와 함께한 네 사람뿐이었다(18:18; 21:23, 24). 이것을 선동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24:5).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 부분적으로는 유대인들 때문에 바울이 큰 곤란을 겪었던, 아시아에 있는 로마 속주의 주요 도시인 에베소(참조 행 19:13~16; 21:27; 고전 15:32)에서 온 것 같다.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저희가…마땅히.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18).
반대할. 문자적으로 “고소하다.” 그들의 고소는 성전 뜰에 있던 무리를 향한, 민중을 선동하는 떠들썩한 호소였다(참조 21:27~30). 폭동은 그렇게 해서 일어났으며(30~32), 그 결과 바울에게 씌워진 얼토당토않은 혐의는 오로지 그 사람들의 증언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자리에 없었으며 바울이 소환을 당한 유일한 특정 혐의(참조 24:5, 6 주석)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이 없었으므로 그 소송은 기각되어야 했다.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이 사람들. 바울은 만약 아시아에서 온 고소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19), 그 자리에 참석한 유대인들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거나 받아들여질 만한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특정한 혐의를 진술하라고 요구한다.
공회 앞에 섰을. 유대인의 최고 의회는 그의 혐의에 의견을 일치할 수 없었다. 사실 많은 의원이 그의 편을 들었으며 그리하여 폭동을 촉발시켰다(23:1~10). 만약 많은 유대 지도자가 바울이 무죄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무력이라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지금 고소자들이 벨릭스 앞에서 어떻게 바울을 고소할 수 있었겠는가?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따름이니이다. 어떤 이들은 21절의 진술을 바울이 자기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했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읽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울이 공회 앞에서 한 선언(23:6)에 비난할 만한 점이 있었다면 그를 고소한 자들은 분명히 그 점을 추궁했을 것이다. 반면에 사실 그들을 곤경에 빠뜨릴 그 사건의 언급을 그들은 애써 회피했다. 더욱이 그 사건을 진술하는 것은, 바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에 대하여 의견이 서로 갈라져 있다는 것과, 진짜 문제는 유대인의 신학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것이었다. 만약 바울이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했다면 로마 법정에서 심리해야 할 고소거리가 되지 못함을 입증했을 것이다. 벨릭스의 반응에 관해서는 22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이 도. 그리스도교 신앙(참조 9:2; 24:14 주석).
더 자세히 아는 고로. 벨릭스는 팔레스타인에서 여러 해 근무했으며(참조 10절 주석), 분명히 그 당시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헤롯 아그립바 Ⅱ세(참조 24절 주석)의 자매로 유대인이었다(참조 23:24 주석).
연기하여. 좀 더 많은 정보 없이는 이성적인 판결을 내릴 수가 없었으므로 벨릭스는 공판을 연기했다.
처결하리라. “알아내리라”, “결정하리라.
벨릭스는 바울에 관하여 속지 않았음―벨릭스는 아주 오랫동안 가이사랴에 살아왔고, 그곳은 여러 해 동안 기독교 신앙이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종교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 대표단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았다(바울의 생애 239).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백부장. 문자적으로 “그 백부장.” 아마도 예루살렘으로부터 바울을 호송한 두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지키되. 헬라어 테레오(te-reo-). “시중들다”, “지키다”, “간직하다.” 이 동사는 빈틈없는 구류보다는 안전하게 지킴을 암시한다. 벨릭스는 바울에게 호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깨우침받은 양심 때문이고(참조 14~16, 24, 25) 한편으로는 뇌물을 바랐기 때문이다(26).
자유를 주며. 일반 죄수가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참조 23:16, 17 주석). 그는 구류되어 있었으나 일반 감옥의 불편함을 겪지 않았다.
친구. 헬라어 이디오이(idioi). “그 자신의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참조 요 1:11 주석). 이들 중에는 아마도 빌립(21:8)과 가이사랴 부근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포함되었으며 예루살렘까지 바울과 동행했던(17) 누가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수종하는 것. 헬라어 휘페레테오(hupe-reteo-). “보조하다.” 문자적으로 “밑에서 노를 젓다”(참조 13:5 주석). 사회 생활적 접촉에 대한 호의, 옷과 음식을 통한 위로 그리고 기별 전달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벨릭스는 바울이 그의 친구들을 통해 몸값을 장만하는 일을 쉽게 해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참조 24:26).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수 일. 참조 9:19 주석.
벨릭스가…와서. 벨릭스가 가이사랴를 얼마 동안 떠나 있었던 것 같으며 돌아와 바울에 대한 심리를 계속했다.
드루실라. 벨릭스의 두 번째 아내이다. 그녀는 이전의 유대 왕가인 하스몬가() 출신 마리암네와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딸이었다. 따라서 헤롯 아그립바 Ⅱ세는 드루실라의 남자 형제였고 버니게는 자매였다(참조 제9, 51). 드루실라는 벨릭스와 결혼하려고 유대교로 개종했던 첫 남편 에메사 왕 아지쥐스와 헤어졌다(Josephus Anti- quities xx. 7. 1, 2). 당시 그는 약 22세였다. 그의 아버지가 야고보를 죽였을 때 그는 여섯 살이었으며(12:1, 2) 그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베드로가 감옥에서 벗어난 사실(3~19)과 그의 아버지가 불행하게 죽은 사실(21~23)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드루실라의 복잡한 결혼 관계는 그가 유대인의 규정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드루실라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하는 사람인 바울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 싶어했을 것이다.
바울을 불러. 벨릭스의 의도는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드루실과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바울로 하여금 돈을 대가로 그를 풀어 줄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 바울은 메시야에 대한 믿음과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라는 믿음(참조 마 1:1 주석), 죄인을 위한 그의 죽음과 구원의 은혜, 부활, 재림의 확실성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심판에 대한 믿음을 강력히 권했을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는 그분에 대하여 “이루어진 사실”( 1:1)을 가장 확실히 믿는 믿음의 도를 의미한다.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헬라어 디카이오쉬네(dikaiosune-, 참조 롬 1:17 주석). 바울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행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단어로 누가는 바울이 해설한 율법과 복음의 위대한 진리를 요약하고 있다(참조 미 6:8; 22:36~40 주석). 자신의 행위를 돌아볼 때(참조 24:2 주석) 벨릭스의 양심은 틀림없이 불안 속에 동요되었다. 바울이 강론할 때 벨릭스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는 것을 상상하고 떤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절제. 헬라어 엥크라테이아(egkrateia). “자아 조절” 즉 식욕과 정욕을 통제(참조 갈 5:23 주석). 이러한 성품은 지도자에게 특히 중요하며 바울은 벨릭스에게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설명했다.
심판. 헬라어 크리마(krima). 판결(참조 요 9:39 주석). 여기서는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 벨릭스는 지금 재판관으로 앉아 있다. 그러나 심판 때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피고로 설 것이다. 벨릭스의 강탈성, 잔인성 그리고 방탕함(Tacitus Annals xii. 54; History v. 9)에 대한 바울의 기별은 매우 적절했다. 바울은 벨릭스의 품성을 알았으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강조하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바울은 단순히 윤리적인 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의와 절제의 좋은 점과 실용성에 관한 추상적 논의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의 말은 매우 실제적이었으며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벨릭스와 그의 아내를 초대하는 하늘의 초청이었다.
강론하니. 바울이 받은 훈련, 특히 예루살렘 가말리엘 문하에서의 훈련은 분명 바울의 타고난 대중 연설의 기질과 기량을 계발시켰다. 다메섹 근처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계시를 통해 주를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과(9:4~6; 22:17, 18) 활력을 주는 성령의 능력은 바울에게 매우 귀중한 필수적인 복음 진리를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하는, 진리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제공했다. 그가 복음을 제시하는 데는 여러 해 동안의 전도 경험으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두려워하여. 헬라어 엠포보스(emphobos). “겁에 질리다”, “놀라다.” 육체가 아니라 마음의 동요를 의미한다. 성령이 총독의 괴로운 양심에 역사하고 있었으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16:8) 그를 책망했다. 귀신들처럼 벨릭스도 믿고 떨었다( 2:19). 그를 놓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바라면서 바울에게 공의를 행하기를 거절하고 있던 총독은 우주의 법정에서 그의 행위에 답변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떨었다.
틈이 있으면. 벨릭스는 개인적 결단을 유보함으로써 양심의 호소를 가라앉혔다. 그는 성령의 요청을 공공연히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바른 결정 앞에서 우유부단했으며, 고통스럽지만 그 자신의 문제들을 바로잡는 일을 미루기로 결심했다. 흔히 반갑지 않은 이 일을 위한 가장 좋은 “틈”은 언제나 “지금”이지만, 죄에 눌린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 지금은 언제나 가장 불편하고 성가신 시간이다.
부르리라. 벨릭스는 바울을 거듭해서 불렀으나(26) 결코 결정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는 그가 말한 “틈”을 얻지 못했다.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받을까. “주어질까”가 더 낫다. 만약 바울이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반대를 그렇게 심하게 일으킬 만큼 중요하다면, 그를 놓아주는 것은 상당한 뇌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벨릭스는 생각했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선물을 가져왔으므로(17) 벨릭스는 바울에게 석방을 위해 돈을 지불할 부요한 친구들이 있다고 결론지었을 것이다. 벨릭스는 바울을 방문하도록 허락한(23) 친구들 중에 그렇게 할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자주. 벨릭스는 “의와 절제와 심판”(25)으로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에 그리고 뇌물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바울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는 어울리지 않는 두 동기의 결합이었다. 그는 결국 뇌물도 마음의 평화도 얻지 못했다.
이야기하더라. 헬라어로는 우호적인 논의를 암시한다. 바울과 벨릭스는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다소의 사울이었던 바울은 한때 동족 중에 자신의 지위를 높여 주는 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유대 청년이 흠모하는 일에 등을 돌리고(참조 빌 3:8, 10) 그 대신 미움받는 분파와 연합하여 모든 방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수치와 고난을 경험하였다. 악한 방법으로 자신을 그의 백성들 중에 높이려는 희망을 가진 벨릭스는, 확신 가운데 담대한 정직성을 가진 바울에게 부러움을 느끼며, 멸시받는 바울을 공정하게 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는 분명 바울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 숙고했을 것인데 어떤 면에서 바울과 같이 유능하고 솔직하고 양심적인 사람과 대화하기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이태를 지내서. 문자적으로는 “2년이 이루어졌을 때” 혹은 “ 2년이 지나갔을 때”. 이것은 포함계산법에 의하면 2년의 일부가 아니라 만 2년을 의미한다(참조 제1, 83, 84; 11, 58, 61).
보르기오 베스도. 요세푸스는 이 총독의 품성을 벨릭스보다 더 친절하다고 묘사하지만(War xi. 14. 1), 그의 전임자만큼 선동과 암살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인물로 나타낸다(Antiquities xx. 8. 9, 10).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문자적으로 “벨릭스가 후임자를 받았다.” 베스도가 벨릭스의 자리를 계승했음을 의미한다. AD 60년경이었다(참조 62).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문자적으로 “유대인의 호의를 얻는다.” 벨릭스는 바울을 죄수, 그것도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질로 내버려 둠으로써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그에 반대하여 제기하는 불평들을 누그러뜨리기를 희망하였다. 불명예스럽게도 그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 유익을 위하여 바울의 운명을 이용하였다.
구류. 결박을 의미하는 강한 표현으로, 총독이 떠나기 전에 내린 명령이며, 죄수로서 바울이 처음에 누리던 관대한 대우(참조 23)가 끝났음을 나타낸다. 벨릭스에 의해 구금되었던 2년 동안 바울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
벨릭스의 면직―이때쯤 해서 가이사랴 주민들 간에 큰 소요가 일어났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간에는 잦은 싸움이 있었고, 그 싸움은 해묵은 불화와 반목 상태로 남아 있었다. 싸움의 원인은 그 도시에서 그들 각자가 누려야 할 권리와 특권에 관한 것들이었다. 가이사랴의 모든 영광 곧 그 사원들, 그 궁정들, 그 원형 극장등은 다 헤롯 Ⅰ세의 야망에 의한 것들이었다. 가이사랴가 번영하게 되고 중요한 도시가 된 것은 그 항구 덕분이었는데, 그 항구까지도 막대한 돈과 노력을 들여서 헤롯이 건설하였다. 유대인 거주자들의 수는 많고 부유하였으며, 그들은 그 도시가 그들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기들의 왕이 자기들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와 조금도 못하지 않은 고집을 가지고 헬라인들은 그들의 우선권을 주장하였다.
두 해 말쯤에 가서 이 분쟁은 장터에서 무시무시한 싸움으로 변하였다. 결과는 헬라 사람들의 참패였다. 이방인편을 들었던 벨릭스는 그의 군대를 끌고 와서 유대인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긴 편인 유대인들은 그 명령을 즉각 순종하지 않았고, 벨릭스는 그의 군대를 명하여 그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군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충족시킬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가장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것으로 충분치 못하기나 한 것같이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원한은 해마다 점점 더 커져서 그의 군인들에게 각 가정의 집에 들어가서 도둑질해도 좋다는 자유를 주었다.
이 대담하고 불의하고 잔인한 행동은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벨릭스를 탄핵하는 공식적인 상소를 올렸고, 그는 로마로 송환되어 유대인들의 비난에 대하여 답변을 하여야 했다. 그의 강압 통치가 유대인들의 불평을 살 충분한 근거를 주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지만 그래도 그들을 회유할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가 바울을 진정으로 존경하였지만, 그를 감옥에 가두어 둠으로써 유대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의 모든 노력은 허사였다. 비록 그가 추방과 죽음은 면하였지만 그는 공직을 박탈당하고,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하였다. 그의 죄악의 파트너였던 드루실라는 후에 하나 뿐인 그의 아들과 함께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시에 죽었다. 그의 날은 수치와 불명예 가운데서 끝이 났다(바울의 생애 24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