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28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2. 7. 01:24

역대하 제28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28
 
28:1-7. “1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2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5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6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7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요담이 죽은 후 아하스가 유다 왕이 되었다. 그는 이십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통치하였다. 아하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였다. 여기 힌놈 골짜기는 동쪽 기드론 골짜기, 가운데 두로푀온 골짜기, 서쪽에 와디 엘 라바비가 모두 힌놈의 골짜기라고 불린 때가 있었다. 그러나 와디 엘 라비비가 힌놈의 골짜기라고 한다. 힌놈의 골짜기가 나쁜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거기서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이곳을 “살륙의 골짜기”라고 불렀다(렘7:32, 19:6). 그러므로 아하스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였다는 것은 이 골짜기에서 우상을 숭배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28:1-4). 이처럼 그는 스스로 우상숭배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유다를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고, 이로 인하여 그가 통치했던 십육 년은 유다에게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이 기간에 유다는 철저하게 황폐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28:5-7)” 아하스가 이처럼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그를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아람과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다. 이로 인하여 유다는 아람에게 크게 살육 당하였고 또한 형제 이스라엘에게 하루에 용사 십 이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으며 또한 왕자를 비롯하여 정부 수반(首班)들이 죽임을 당했다. 유다가 이처럼 살육과 고난을 당한 것은 그들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었다.

28:8-15. “8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10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11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12 에브라임 자손의 우두머리 몇 사람 곧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막으며 1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14 이에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 15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것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들은 모두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이스라엘은 형제 유다를 친 후 그들의 재물을 약탈했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 등 모두 이십만 명을 포로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그때 선지자 오뎃이 그들을 맞으며 유다에 대한 그들의 잔혹함을 책망하고 사로잡아 온 포로들을 돌려보낼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여호와의 진노가 임박해 있음을 경고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 베가는 이방의 왕들의 행위를 본받아 형제 유다를 치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베가는 율법이 형제를 노예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음을 알고도(레25:39-55), 그것을 행하였으므로 그의 행위는 율법을 무시한 불신앙적 행위였다. 그래서 선지자는 베가와 이스라엘을 항하여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28:9,10)”라고 말했던 것이다.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28:13)” 이 말은 에브라임의 우두머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얻은 승리가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가져다 줄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전장에 나갔던 자들도 선지자의 말과 우두머리들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오히려 포로와 약탈해온 물건들을 방백들과 회중 앞에 내 놓았다. 그래서 그들은 포로로 잡혀온 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치료하여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낸 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잠시의 이익을 위하여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그 이익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행위는 우리에게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교훈해 준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승리를 얻었을 때 그것이 축복이 되기보다 오리혀 저주가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것을 포기할 때 오히려 그것이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28:16-21. “16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17 이는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18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 및 그 주변 마을들과 딤나 및 그 주변 마을들과 김소 및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았으니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20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21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유다는 또 다시 에돔과 블레셋으로부터 침략을 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유다는 여러 성읍들을 빼앗겼고 또한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다. 이처럼 시련의 때에 유다 왕 아하스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강대국을 의지했다.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28:16)”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과 그의 군대가 아하스의 요청으로 유다에 이르렀지만 그들은 유다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 있는 재물을 취하여 앗수르에게 주어야 했고 또한 앗수르 군으로부터도 오는 어려움까지 당해야 했다.

아하스는 시련 가운데 구원의 길을 찾았지만 그가 찾은 구원의 길은 더욱 그와 유다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것은 그의 무지로 인해 온 것이다. 유다의 시련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없었다. 19절은 유다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유다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가 도움을 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를 의지했지만 그가 이처럼 세상의 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은 그로부터 멀어졌고, 이로 인하여 유다는 더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8:22-27. “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23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24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25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26 아하스의 남은 시종 사적과 모든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하스는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다. 이것은 그의 생각이 여전히 세상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곤고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수고할수록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곤고함이 축복으로 나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기회는 곤고함을 통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세상으로 향하느냐 하나님께 향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하스는 그릇된 생각으로 인하여 유다를 친 다메섹의 우상들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숭배하였다. 23절은 아하스가 이처럼 어리석음을 범한 동기를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아하스가 세속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세상은 힘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신들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다메섹이 유다와 싸워 승리한 것은 다메섹이 숭배하는 신들이 유다의 하나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아하스는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다메섹을 승리로 이끌어 준 바로 그 신들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다음 구절은 아하스가 이를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말해 주고 있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28:24,25)” 아하스는 다메섹의 우상들을 숭배하기 위하여 성전을 폐쇠시켰고 대신 예루살렘 구석마다 그리고 유다 각 성읍에 우상을 위하여 단을 쌓고 그것들에게 분향했다.

아하스는 힘의 논리만을 생각하고 이렇게 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즉 그는 유다가 다메섹과 싸워서 패한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들보다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범죄 한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심판을 통하여 회개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을 일지 못했다. 아하스는 자신의 논리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처럼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유다까지 모두 넘어지게 했다(28:23, 25). 이처럼 무지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아하스는 죽은 후 시신조차도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했다.

우리는 아하스를 보면서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특별히 유다 역사에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 즉 여호사밧으로부터 요시아까지 이어지는 왕들을 살펴보면 경건했던 왕 다음에 악한 왕이 그리고 또 다시 경건한 왕이 교차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참으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떻게 가장 경건했던 왕의 아들이 가장 불경건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가장 불경건했던 왕의 아들이 가장 경건한 왕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찾지는 못할지라도 한 가지 확실하게 발견하는 교훈은 한 시대의 지도자에게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대에 나라를 얼마나 발전시켜 놓았느냐”가 아니라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를 준비시켜 놓았는가”라는 사실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시대를 발전시켜 놓았을지라도 다음 시대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진다면 건설해 놓은 모든 것은 철저하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즉 이런 사실은 준비된 지도자가 세워질 때만 전시대의 역사는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도자가 한 일들 가운데 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보다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하스는 왕이 된 후 경건했던 부친 요담이 건설해 놓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해 놓았다. 실제로 아하스는 왕이 되자 곧 하나님 경외하기를 버리고 바알을 숭배했고 끊임없이 이방 나라들로부터 우상을 수입하여 그것들을 숭배했으며 또한 유다의 모든 곳에 우상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았다(28:2-4, 23). 이것도 부족하여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 하고 성전 문들을 닫아버렸으며 또한 예루살렘 구석구석에 우상들을 위하여 단들을 쌓았다. 그의 악함에 대하여 본문은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28:22)”라고 말하고 있다. 아하스는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하여 그가 통치하는 날 동안 유다에는 평화가 없었다. 아하스가 통치했던 기간은 유다 역사 가운데 한 사람의 왕이 통치하는 기간 중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가장 많은 침략을 받았다. 아람으로부터 침략을 받았고, 블레셋의 침략을 받았고, 형제나라 이스라엘로부터 침략을 받아 그들로부터 유다 군사는 하루에 십 이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고 또한 이십만 명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불행한 일이 있었으며 또한 자신들이 용병(傭兵)한 앗수르 군대로부터 무시와 고통을 받았다. 아하스 시대 유다는 이렇게 황폐해갔다. 따라서 전 세대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된 시대를 이루었을지라도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로 인하여 이 역사는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질 수 없었다. 아하스는 자신의 행악으로 인하여 죽어서도 왕들이 묻히는 묘실에 조차 묻힐 수 없었다. 아하스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는 시편의 말씀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시16:4) 는 말씀의 교훈을 받는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세속화 될수록 근심이 더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