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1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1. 19. 11:34

가지를 뚫는 햇살17(손진길 소설)

 

197610월에 청와대의 정무 제2수석이 바뀌고 있다. 지난 197212월부터 4년간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던 허달수 박사가 19769월이 되자 68세의 고령이라는 이유로 그만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내심은 그것이 아니다.

19727월에 남북한 사이에 7.4공동성명을 각각 발표하고 잘 굴러가던 남북협상이 그만 그해 말에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4개의 강대국들이 남북한 사이의 민족단합과 통일논의에 대하여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박정희 대통령은 김일성 수상과의 정상회담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다. 그 사실을 눈치챈 김일성은 자신의 독재권력을 명문화하는 헌법개정을 197210월에 실시하고 만다. 그는 북한에서 유일한 주석이 되고 그의 장남 김정일에게 서서히 후계자 수업을 시키기 시작한다;

그것이 현대 공산주의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 유례가 없는 김씨 왕조정치의 태동이다. 그런데 그해 197210월에 한국에서도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개정을 제안하는데 그 주요내용이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임기가 6년이지만 얼마든지 연임이 가능하며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에서 그 옛날 16세기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선거에 의한 제후에 해당하는 현대판 군주가 된다고 하는 의미이다. 20세기 후반에 그러한 완벽한 독재권력을 가지는 대통령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의 제안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의 명분을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낡은 것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10월유신이며 유신헌법의 채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하여 서운갑 박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명치유신(明治維新)이 발생하여 새 정부가 일본 열도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이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자 남북한 사이에 진행되고 있던 적십자회담이나 남북조절위원회 회담 등이 그 열매를 얻을 수가 없다. 결국 이듬해 1973년부터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정무 제2수석 허달수 박사가 진작에 사직을 청한다.

그러나 비서실장을 통하여 대통령이 만류하고 있다; “남북협상이 난관에 부딪히고 있지만 민족의 저력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4강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계속 보고해주세요!”.

그렇지만 3년의 세월이 더 흘러가도 남북한 사이에 전혀 변화가 없다. 그것을 보고서 허달수 수석이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 것이다. 그러자 그 자리에 느닷없이 서운갑 박사가 임명되고 있다. 그것이 197610월에 발생하고 있는 서운갑의 신상변화인 것이다.  

당시 서운갑은 다소 어리둥절하다. 왜냐하면, 그는 허달수 수석이 어째서 그 자리를 떠나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정무 제2수석의 자리는 남북한 협상과 교류를 위하여 신설된 자리인데 이제는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처지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무비서관인 서운갑 자신을 차관급 자리로 승진시키면서 후임 정무 제2수석으로 임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나보고 무슨 업무를 추진하라는 말인가?’, 그것이 궁금하여 하루는 비서실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이 나름대로 우문현답이다; “나도 대통령님의 내심을 모두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님은 우리 한국의 국력과 국방력이 확실하게 북한보다 우위에 서는 그날 우리 민족의 역량을 모아서 다시 한번 남북한 통일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그날을 앞당길 수가 있는지 그것을 연구하고 보고하는 자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미국정부의 정책변화를 면밀하게 살피고 한국의 경제력 상승과 국방력 상승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또 무엇을 살펴야만 하는가? 서운갑 수석은 나름대로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은밀하게 정보 수집하여 그것을 분석 평가하면서 그 대안을 찾기에 열심이다.

그런데 북한정권에 관한 정보는 한국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미국정보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이 더 최신이며 정확하다. 그 이유는 미국의 인공위성과 정찰기의 성능이 극히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거리 촬영기기와 감청장치의 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 점을 익히 알고 있는 서운갑 수석은 1977년부터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장기 근무하고 있는 참사관 제임스(James Rogers)를 자주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아직도 참사관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고서 하루는 서운갑이 의아하여 질문한다; “제임스, 내가 알기로는 그대가 1965년에 이미 참사관으로 진급했는데 어째서 아직도 참사관인가요? 12년 이상 승진이 되지 않고 있으니 그 참 신기해요. 어째서 그러한 것인가요?... “.

그 말을 듣자 제임스가 빤히 한동안 서운갑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말한다; “운갑, 우리 대사관의 직책이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이 있어요. 대사, 공사, 참사관, 영사 등으로 외부적으로 불리고 있지만 내부적인 권력관계는 그것이 아니지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그 이상은 내가 말해줄 수가 없으니 말이야”.

동문서답으로 들린다. 하지만 미국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최근 수년간 청와대 비서실에서 주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파악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서운갑 수석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된다.

따라서 고개를 끄떡이면서 은밀하게 말한다; “잘 알겠네.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고마우이. 제임스, 그런데 말이야. 만약 김일성이 대외적인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자체 개발한다고 하면 미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그 말을 듣자 제임스가 또 서운갑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한다; “운갑, 그대도 알다시피 유엔의 안보리에는 상임이사국 5개국이 있어요. 그들이 상호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지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인데 그들의 특징은 핵무기ICBM(대륙간탄도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서로 전쟁에 돌입하면 공멸의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에 상호 비토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므로 그들 5개국은 핵무기의 확산을 결코 용납하지 않아요. 미국의 입장도 동일하고요!”;

그 말에 서운갑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정확한 설명이군요. 역시 제임스 당신은 일개 참사관이 아니군요. 내가 보기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는 한국전문가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 그 말을 하면서 서운갑이 일어나서 일부러 절하는 시늉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제임스가 손사래를 치면서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운갑. 자네와 나는 동갑이야. 게다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가? 그러니 그렇게 예를 차리지 않아도 돼요. 나도 한국에서 진실한 친구가 하나쯤은 필요한데 그 자가 바로 운갑 자네 아닌가? 그러니 친구 사이에 우리 서로 허심탄회하게 돕고 지내자고, 하하하… “. 

서운갑제임스의 말을 듣고서 속으로 생각한다; ‘제임스가 한국여인과 결혼하여 십 수년을 서울서 계속 살고 있으니 이제는 한국말을 모르는 것이 없구만. 미국무성과 정보부에서 한국에 내보낸 베테랑 실무책임자가 바로 제임스일 수밖에 없겠군. 앞으로 제임스와 더 자주 만나서 그의 견해를 은근슬쩍 들어보는 것이 미국입장을 파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야. 내가 참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구만!... ‘.

한편 1976년이 지나가기 전에 서운갑 부부는 집안에서 큰 경사를 맞이한다. 그것은 작년 19752월에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영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던 고명딸 서민경1976년 가을이 되자 갑자기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저녁시간에 함께 마포의 집으로 왔기에 인사가 끝나자 황급히 안주인 황옥주가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말한다. 그러자 서민경이 얼른 남자친구 유태삼(柳泰參)의 팔을 끌고서 식사자리에 앉게 한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것 참, 별일도 다 있군. 공부밖에 모르는 것 같던 민경이에게 저런 씩씩한 남자친구가 다 있다니. 그 참 두고 볼 일이야!’. 그런데 그날 식사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장남 서경일 부부와 차남 서한국은 자기들끼리 슬며시 웃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황옥주가 기어코 한마디를 한다; “내가 분위기를 보니 경일이 부부와 한국이는 벌써 민경이가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내게는 귀띔도 하지 아니한 것이냐? 이거 모두에게 나는 서운해요!... “.

그 말을 듣자 서민경이 황급히 말한다; “어머니, 그것이 아니예요. 아직 우리가 확실하게 결혼약속을 한 것이 아니고 해서 제가 오빠들에게 비밀로 해달하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이제는 유태삼 씨의 집안에서 결혼해도 좋다고 하는 말씀이 계셨기에 제가 오늘 저녁에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자고 태삼씨를 데리고 온 거예요”.

그 말에 황옥주가 급히 말한다; “그러면 민경이 너는 어디에서 유태삼을 만나서 사귄 것이냐? 그리고 오래 사귀었다고 하는데 어째서 이제서야 그 집안에서 너를 며느리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냐?... “.

모두들 그 점이 궁금한지 귀를 기울인다. 서민경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동문이예요. 입학 학번이 같아요. 다만 저는 영문학과이고 태삼씨는 경제학과이지요. 우리는 졸업후에 대학원을 같이 다녔어요. 캠퍼스 커플이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결혼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마침 태삼씨 집에서 저를 신부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셔서 오늘 인사차 같이 온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질문한다; “그래, 민경이 네가 유태삼 군을 잘 데리고 왔다. 그래 태삼군의 부모님은 서울에 살고 계시는가?”. 그 말에 유태삼이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가로 막으면서 서민경이 순식간에 말한다; “아버지, 시아버지 되실 분이 우주식품(宇宙食品)유주민(柳宙) 회장님이세요. 태삼씨가 셋째 아들인데 두 형님은 모두 우주식품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

그 말에 황옥주가 깜짝 놀라고 있다. 그렇지만 서운갑은 담담한 표정이다. 그때 서민경의 말이 계속된다; “맏이가 장녀인 유태미(柳泰美)인데 그분은 모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있어요. 제가 듣기로는 재계 10위안에 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태삼씨의 남동생은 아직 대학생이예요. 이제 궁금한 것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그 말을 듣자 황옥주가 호호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호호호, 민경아. 우리는 본래 당사자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려고 그에게 질문한 것이다. 그런데 네가 성급하게 먼저 나서서 지금까지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제서야 유태삼군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니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늘 우리 똑똑한 민경이가 어쩜 그렇게도 어수룩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이 에미는 도통 모르겠구나, 호호호“.

그 말에 서민경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운갑이 천천히 말한다; “내가 알기로 안동의 풍산 유씨인 유회장은 우주식품을 창업하고 잘 경영하여 재계 50위 안에 드는 우수한 식품회사로 만드신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시지. 더구나 주식을 전부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기에 모두들 부러워하고 있지. 그런 훌륭한 집안의 아들이 우리 민경이와 결혼하고자 하니 나는 찬성이다”.

서운갑이 먼저 찬성하고 있으므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한다. 그때 유태삼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운갑 부부에게 감사의 절을 한다. 그러자 황옥주가 한마디를 한다; “내가 민경이의 짝이 되는 유서방의 절을 다 받게 되는군요. 고마워요. 그런데 형님들의 이름은 무엇이지요?... “.

뚱딴지 같은 질문이다. 그렇지만 유태삼이 진지하게 답변한다; “큰 형이 유태일(柳泰壹)이고 둘째 형이 유태이(柳泰貳)입니다. 그리고 제가 유태삼이고 동생은 유태사입니다. 아주 기억하기가 쉽습니다!”. 그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양가 집안의 결혼 승낙을 얻은 서민경유태삼이 그렇게 즐거워한다. 두사람은 금년 안에 결혼하고 내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197612월초에 두사람이 결혼하고 계획대로 이듬해 1977년에 들어서자 일찍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미국으로 가는 그때 고명딸 서민경의 나이가 25살이고 신랑 유태삼은 27살이다. 그것이 1976년에 맞이하고 있는 서운갑 집안의 두번째 경사이다. 또 한가지는 차남 서한국이 입사한지 일년이 지나자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1976년 봄에 대학원으로 진학한 것이다.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하였기에 서울공대 대학원에서 공장자동화를 위한 로봇개발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서한국의 나이가 벌써 27세이므로 집안에서는 그의 결혼이 늦어질까 어른들이 염려들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한국은 어른들의 걱정을 모른 체 하고서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서울에서 과외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어째서 대학시절에 이어 대학원시절에도 그렇게 과외를 하여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가? 그 이유가 2년이 지나자 자연히 밝혀지고 있다.

서한국1978년초에 미국 본토의 주립대학교 공대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 장학금을 현지에서 받고 부족한 돈은 자신이 벌어 모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는 로봇공학을 연구하여 미국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1979년에 서른이 되는 차남 서한국은 도대체 언제 결혼하고자 하는 것일까? 황옥주는 그것이 걱정이다. 서운갑은 차남 한국이 단단한 아들인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옆에서 아내 황옥주가 자꾸만 염려하고 있기에 덩달아 걱정이 된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자신이 결혼하는 당사자가 아니니 그 일은 본인 서한국에게 맡겨야 할 따름이다.

그런데 서운갑 집안에서는 사실 1976년이 지나고 이듬해 1977년에 들어서게 되자 1월달에 연이어 두가지의 경사가 더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그렇게 즐겁고 기쁜 일이 한꺼번에 발생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모두들 인생은 계속 열심히 살아볼 필요가 있다고들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