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1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1. 12. 17:05

가지를 뚫는 햇살14(손진길 소설)

 

19635월말에 서운갑은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했다. 사전에 아내 황옥주와 두차례 상경하여 마련한 집이 마포에 있는 방이 많은 저택이다. 그가 근무하게 될 경기도 고양시 수색의 국방대학원의 위치를 생각하면 마포는 상당히 떨어진 거리이다.

그렇지만 서운갑 부부는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위하여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기에 함께 이사를 온 양부모 서달호장화련이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긍정적이다; “운갑아, 너희 내외가 잘 생각했다. 그래 마포 정도의 위치에 자리를 잡아야 손주들이 좋은 학교에 다닐 수가 있는 것이야!...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들 서운갑이 멀리 수색지역까지 어떻게 출퇴근을 할지 그것이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따라서 서운갑은 부모님이 안심하도록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퇴근 버스가 운영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편리하게 오토바이를 한대 구입하여 출퇴근을 하고자 합니다. 오토바이로 달리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자 서달호가 속으로 생각한다; ‘포항에서부터 자영업으로 자전거포를 일찍 시작한 운갑이지. 그러니 능히 오토바이를 타고서 편하게 출퇴근을 하고자 할 것이야! 서울만 벗어나면 신작로이고 한적한 시골길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야!... ‘.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하는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아내 황옥주가 자녀들을 전학 수속하는 일을 전담한다. 그녀는 고3인 장남 서경일을 마포고등학교에, 2인 차남 서한국을 마포중학교에 데리고 가서 교감을 찾아 뵙고 전학수속을 한다;

황옥주가 참고삼아 지니고 간 서류 곧 두 아들이 대구와 포항에서 각각 공부한 성적표를 제출하자 학교측에서 곧바로 수속을 밟아준다. 그리고 딸 서민경은 국민학교 5학년이므로 집 가까이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서 전학을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오는 학생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아니한 시절이므로 곧바로 수속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듬해 19641월이 되자 가장 먼저 장남 서경일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서울 변두리 태능에 자리잡고 있는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고자 입시를 치른다. 신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하고 학업성적도 좋아서 넉넉하게 합격한다;

따라서 그해 봄이 되자 사관생도가 되어 학교 기숙사에서 단체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도 집이 서울 시내 마포에 있으므로 주말에 외박을 나오게 되면 언제나 들리고 있다. 그것이 부모와 조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다.

그 이듬해 1965년에 들어서자 차남 서한국이 마포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리고 딸 서민경이 마포에 있는 여중에 들어간다. 그들 오누이는 서로 경쟁하듯이 학업에 매어 달리고 있다. 마치 누가 더 좋은 성적을 받는지 내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차남과 고명딸을 지켜보면서 황옥주가 하루는 남편 서운갑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여보, 딸 민경이를 좀 보세요. 호호호, 꼭 당신을 닮은 것 같아요. 애가 남에게 지기를 싫어해요. 학업에서 오빠를 이기겠다고 기를 쓰고 공부하고 있어요. 당찬 구석이 꼭 당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아요, 호호호“.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거참, 자기 이야기를 꼭 남의 이야기 하듯이 하는구려! 당신도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 옛날에 내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에 당신이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하하… “.

그 말에 황옥주가 해방을 일년 앞둔 그때를 아련하게 회상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운갑이 설명한다; “정신대에 끌려갈지 모르니 당장 결혼할 생각이 있으면 데이트를 신청하라고 말했지요. 그렇게 대찬 여자가 사실은 당신 황옥주랍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담대한 여장부 황옥주에게 처음부터 확실하게 끌렸지요, 하하하… “.

그때서야 황옥주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요, 워낙 급한 상황이라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지요. 하지만 나로서는 매일 길 건너편 자전거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2살위의 당신을 남몰래 지켜보고 또한 누구인지 알아보고 있었어요. 정말 근실한 청년이더군요. 그래서 진작부터 남편감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내게 데이트를 신청했지요. 그러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확실하게 한 것이지요, 호호호… “.

황옥주는 보기보다 솔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서운갑이 화제를 슬쩍 바꾸어서 말한다; “칭찬으로 알아 듣겠습니다, 마님. 그런데 차남 한국이를 보면 나름대로 여유가 있어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마포중학교를 졸업할 때에 성적이 대단히 좋았지요. 내가 알기로는 형보다 성적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 민경이가 애를 써도 한국이가 슬며시 웃고 있잖아요, 허허허… “;

장래가 촉망되는 자녀를 슬하에 두고 있는 부모들은 마음이 기쁘다. 그들이 자라서 어떻게 결혼을 하고 또한 국가와 민족에게 큰 유익을 가지고 오는지 그것을 보고싶어 한다. 1965년 여름에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운갑 부부가 즐거워하고 있다.

그러한 기쁨은 사실 양부모인 서달호장화련이 진작에 누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부부는 9촌 조카인 서운갑11살에 양자로 들여서 오랜 세월 그와 함께 부모와 자식 사이로 살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생각보다 서운갑은 더 뛰어난 인물이다.

우선 포항에서 보통학교를 다닌 아들 서운갑이 굉장히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부부는 돈이 들더라도 아들을 대구에 있는 5년제 명문 사립중학교에 유학을 보냈다. 5년간 줄곧 성적이 좋았다. 당시 서달호 부부는 아들이 원하기만 하면 대학까지 보내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서운갑이 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양부모님을 모시고 포항으로 이사하여 자전거포를 차려서 잘 봉양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당시 농토 값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어서 서운갑이 그렇게 미리 대처를 한 것이다.

그런데 서운갑이 결혼하고 이듬해 해방이 되자 격변하는 세월의 앞날을 알기 위하여 친구 오요한의 부모인 미국선교사 오천덕 부부를 자주 만났다. 그들 부부로부터 미국의 대외정책의 기본을 배우고 또한 주일예배에 함께 다니면서 영어를 많이 배웠다.

그리고 오천덕 선교사의 권유로 서운갑1948년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지방공무원생활을 시작한다. 서달호 부부는 아들 서운갑이 주사로 승진하여 군청에서 농정과장으로 일하게 되자 그가 장차 내부승진시험을 거쳐서 지방직 사무관으로 입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기대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서운갑이 갑자기 영연방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아 호주로 가서 시드니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대학생이 된 그가 열심히 공부하여 3년만에 영어로 정치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2년간 다시 월성군청에서 근무했다.

그는 거기에 머문 것이 아니다. 미국무성에서 장학금을 받아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으로 또 유학을 떠난 것이다. 5년치 전액장학금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그 기간을 일년이나 단축했다. 4년만에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아서 귀국한 것이다.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양부모 서달호장화련이 서울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하여튼 똑똑한 조카를 양자로 들인 것이 참으로 우리의 복입니다. 아들 운갑이가 미국 하와이에서 정치학박사가 되고 한국의 국방대학원에서 근무하다가 이제는 국회 전문위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우리 내외가 늘그막에 복이 많아요, 허허허… “.

양부모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그런지 한번은 장화련이 며느리 황옥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며늘아, 너의 남편은 우리 부부에게 참으로 기대 이상이었다. 뛰어난 아들을 둔 보람을 우리 부부는 실컷 누리고 있다. 너도 이제 장남이 사관생도이다. 그리고 차남과 고명딸이 또 공부를 잘하고 있으니 그들이 너희 부부에게 큰 보람을 안겨줄 것이야. 그렇게 좋은 손주를 안겨주어서 나도 너에게 감사하고 있단다!”.

그 말을 들으면서 황옥주는 자신이 좋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머니, 부디 아버지와 함께 오래오래 우리 곁에 사세요.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우리 함께 보도록 해요. 저는 그것이 좋아요!“.

장화련은 며느리 황옥주가 여장부라서 빈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인 것이다. 따라서 호호라고 웃으면서 마치 농담처럼 말한다; “호호호, 그것이야 옥주 네가 이 시에미에게 지금처럼 효도를 계속하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식이 잘되는 그 기쁨을 나도 손주에게서 다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지, 호호호… “.

그렇게 서로 덕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도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있다. 3년이 지나 1968년에 들어서자 차남 서한국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하고 있다;

 그 전공이 기계공학이므로 경쟁율이 상당했다. 하지만 넉넉하게 합격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 부부는 물론 조부모가 되는 서달호장화련이 그렇게나 기뻐한다.

그때 고명딸 서민경이 한마디를 한다; “작은 오빠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으니 3년후 1971년에는 내가 또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거예요. 두고 보세요! 내가 오빠를 이기고 말 거예요”. 그 말을 듣자 황옥주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부디 그렇게 해다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여자들이 그만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단다, 호호호“.

서울공대에 다니게 된 서한국1968년 한해를 태능 옆에 자리잡고 있는  공릉동 캠퍼스에서 교양과정부 수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듬해 1969년부터 3년간은 바로 공릉동 공대 캠퍼스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포에서 통학을 하고 있기에 나름대로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에는 가정교사로 일한다. 서울공대생을 가정교사로 삼고자 하는 부잣집이 서울에 많아서 인기가 있다. 서한국은 학교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착실하게 가정교사생활을 하여 돈을 모으고 있다. 그는 도대체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1964년 봄에 육사 제24기로 입학한 장남 서경일4년의 과정을 마치고 1968년 봄에는 소위로 임관하여 전방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군장교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집에 들리지 아니하고 군무에만 충실하다. 동생 서한국이 서울공대에 다니고 있는 동안에 장남 서경일은 전방에서 중대장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71년에 여동생 서민경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전방에서 듣게 된다. 남동생에 이어 여동생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였으니 축하할 일이다;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중얼거린다; “서울대 68학번인 한국이가 ROTC를 하고 있으니 72년에 졸업하고 군으로 들어오겠구나. 그리고 71학번인 민경이가 또 서울대에서 공부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잘되었다. 이제 나는 결혼을 하면 되는 것인가? 하하하… “.

그렇다. 1945년생인 서경일1971년에 벌써 나이가 26살이다. 그 이듬해 1972년에 동생 서한국이 군장교로 들어오게 되면 그는 27세이다. 따라서 그는 그때쯤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신부감이다. 전방에서 열심히 복무하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처녀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1972년 여름에 전방에 자대배치가 된 동생 서한국이 주말에 형이 근무하고 있는 부대를 방문하고서 한마디를 한다; “, 벌써 27살인데 장가를 가서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려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전방에서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언제 참한 처녀를 사귀어 보겠어. 이거 우리 집안에서 장남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구만, 하하하“.

4살이나 적은 동생이 형의 심기를 은근히 건드리고 있으니 서경일이 맞대응을 한다; “한국아, 네가 진정으로 이 형을 생각한다면 좋은 처녀를 한사람 소개를 시켜주고서 그런 말을 해라. 나는 신앙심이 있고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처녀이면 된다. 네 주위에 어디 좋은 처녀가 없을까?... “.

꼭 처녀를 소개해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동생 한국이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그가 정색을 하고서 말한 것이다; “, 그러면 내가 좋은 처녀를 한사람 소개해줄 테니까 진지하게 한번 만나볼 생각이 있는 것이야?... “.

그 말에 서경일이 즉시 대답한다; “그래, 나는 한국이 네가 소개하는 처녀라고 하면 무조건 만나볼 생각이다. 4살 연하이면 궁합이 딱 좋은 것이거든. 그래 언제 내게 소개해줄 생각이냐?... “.

서경일은 생각보다 형이 적극적으로 나오자 내심 좋은 처녀를 소개해주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성사가 되는 것일까?...

그렇게 자녀들이 성장하고 있는 때에 서운갑1965820일에 국회 외무위원회 전문위원이 된 후 19728월까지 만 7년 동안 근속하고 있다. 그런데 10월이 되자 갑자기 유신정국(維新政局)이 발생하고 있다. 서운갑은 일본제국의 치하에서 살아본 사람이다. 192312월에 태어난 그가 해방을 맞이한 19458월에는 나이가 22살이 되어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868년에 일본에서 명치유신(明治維新)이 발생하여 일본 열도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국책사업으로 시작하였고 동시에 천황(天皇)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민(臣民)을 만들기 위하여 군인칙어(軍人勅語)교육칙어(敎育勅語)는 물론 재건체조(再建體操)까지 만들어 전국적으로 보급시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비슷한 시대가 197210월에 한국에서 노골적으로 시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운갑은 정치학박사이며 국회 외무위에서 전문위원으로 오래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대외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밝은 전문가이다. 그러한 그가 유신체제의 시작을 보고서 나이 50세를 일년 앞둔 실로 미묘한 시기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그의 앞길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