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1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1. 11. 17:15

가지를 뚫는 햇살13(손진길 소설)

 

19657월 한여름 오후이다. 서운갑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수연구실로 돌아와서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하여 바깥을 잠시 내다본다. 날씨가 더워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신작로를 보고 싶은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 구름이 별로 없는 맑은 하늘이다. 그 아래에 국방대학원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헌병들과 그들의 근무지 위병소가 보인다. 그 바깥에 인접하여 신작로가 있고 가로수가 양옆에서 열을 맞추어 푸른 잎을 늘어뜨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다;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는 매미소리가 한가롭다. 한여름이므로 계절적으로 교수들만 나와서 구내 도서관에서 자료조사를 하고 연구실에서 연구과제를 작성하고 있을 뿐 대학원 학생들은 등교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들이 여름방학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서운갑은 마포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끝내면 곧바로 준비해둔 가방을 오토바이 뒤쪽에 싣고서 헬멧을 쓰고 경기도 고양시 수색으로 달린다. 모레내 시장을 오른쪽으로 보고서 계속 달리면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의 신작로가 전개된다. 나름대로 그에게 익숙한 편안함이 찾아온다. 그러한 정취를 시골출신인 서운갑이 개인적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스스로 사랑하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처자식을 위하여 또는 그 이전에 생가의 부모님과 형을 위하여 9촌 숙부의 양자가 되는 희생을 치루었다고 하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크리스천인 서운갑은 주님의 은혜로 공부도 잘하고 군청공무원생활도 하고 끝내는 해외에서 두차례나 공부하여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마침내 국방대학원의 교수직을 얻게 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생길에 우여곡절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두뇌를 타고 나게 했으며 오요한의 부친 오천덕 선교사를 만나게 하여 그를 통하여 자신의 앞길을 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라고 생각하는 신앙인이 바로 서운갑인 것이다.

국방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한지 2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19657월에 서운갑은 문득 자신의 나이가 연말이 되면 만으로 42세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잘하면 앞으로 활동연한이 20년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하는 생각이 갑자기 밀려들고 있다. 20년의 세월을 나는 계속 국방대학원에서 교수직을 고수하고 있으면 될 것인가?

국방대학원의 총책임자는 3성장군이다. 현정권 자체가 국민의 투표로 당선이 된 민간인 신분의 박정희 대통령이 통솔하고 있는 정부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군부이다. 그러므로 현역 3성장군인 국방대학원장은 군부의 힘을 과시하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 골자가 국방대학원을 석사학위를 수여하는 정식대학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단기과정이 아니라 훗날에는 반드시 2년 과정의 안보학 석사학위를 수여하는 국방관계 전문대학원으로 발전시킨다고 하는 비전의 제시이다;

육군과 해군 그리고 공군의 장교들을 모아서 2년간 안보학을 공부하게 하고 논문을 제출하게 한다. 그리고 정식으로 국방대학원에서 논문을 심사하여 안전보장학 석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되면 군장교의 자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국방대학원장의 공언과 같이 그러한 미래가 금방 도래하지 아니하고 있다. 십 수년이 지나서 1980년대가 되어서야 그 일이 성사가 되는 것을 훗날 서운갑이 멀리 여의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무더운 그해 7월 중순 1965년에 서운갑은 자신을 찾아온 미국사람 오천덕 선교사 부부를 국방대학원에서 만나게 된다. 그날 오후에 갑자기 정문을 지키고 있는 위병이 구내전화를 통하여 David Paul Ross Helen Ross 부부가 찾아왔다고 말했을 때에 서운갑이 깜짝 놀랐다.

그는 어째서 오선교사님 부부가 포항에서 멀리 경기도 수색까지 나를 찾아온 것일까?궁리를 해보아도 그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너무나 반가운 손님이다. 따라서 급한 마음에 조용히 연구실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두사람을 만나고자 정문초소로 나간다.

위병소 안에서 서운갑을 기다리고 있던 두사람이 그를 보자 얼른 바깥으로 나와서 포옹을 한다. 서운갑에게 있어서 그들 두사람은 마치 제2의 부모와 같다. 따라서 서운갑은 오천덕 선교사를 먼저 끌어안고 그 다음에는 헬렌 선교사를 포옹한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말한다; “제가 2년 넘게 포항을 방문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직접 이곳으로 찾아오신 것이군요. 송구스럽습니다. 두분, 건강하시지요?”. 그 말에 오천덕 선교사가 껄껄 웃으면서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한다; “운갑, 우리 부부는 주님의 은혜로 건강하다. 너도 건강하게 보이는 구나. 내가 아들 요한이를 본 듯이 반갑다!”;

당장 요한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지만 헌병들이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자리인지라 서운갑이 두 분을 자신의 연구실로 안내한다. 커피를 대접하였더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데이비드헬렌이 한번 실내를 둘러본다.

그리고 60대의 노인이 되어버린 오천덕 선교사가 먼저 입을 뗀다; “운갑, 네가 국방대학원에서 정치학교수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내가 국제관계 제자는 참으로 잘 키운 것으로 보인다. 어때 이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냐?...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가르침이 없었다고 한다면 저는 포항에서 계속 자전거를 판매하고 수리하는 업종에 종사했을지도 몰라요. 앞길을 열어 주셔서 군청공무원도 지내고 외국에서 정치학을 7년간 공부할 수가 있었지요. 그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 하하하“.

그 말에 오천덕 선교사가 손을 가로로 저으며 급히 말한다; “예끼 이 사람, 이제 늙은 스승을 놀리고 있구만. 그것이 어떻게 내 덕분인가? 전부 운갑을 향하신 주님의 계획하심이지!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허허허… “.

그 말을 옆에서 들은 헬렌 선교사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한다; “허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지요. 그리고 운갑에게 그러한 재능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되지요. 그러니 운갑이 너도 좋은 달란트를 주신 주인에게 이제는 보답하는 종으로서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

역시 그 남편에 그 아내이다. 서운갑은 오선교사 부부를 볼 때마다 참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러니 해방 전부터 지금까지 그 긴 세월을 한국에서 오래 선교사로 일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모두 60대에 들어선 나이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 오요한은 미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서운갑이 조용히 질문한다; “, 요한이는 미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그 말에 헬렌이 먼저 대답한다; “요한이는 미국에서 로스쿨을 진작에 마치고 변호사 생활을 계속하고 있어요. 뉴욕에서 제법 큰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데 하와이에 가는 일이 없어서 운갑이를 못 만났다고 해요. 게다가 한국에 들어올 일이 없어서 나도 이제 미국에 가면 아들을 만나보려고 해요. 참 우리는 며칠 후에 미국에 들어가요!”.

그 말에 서운갑이 오천덕 선교사에게 눈길을 돌리고 물어본다; “선교사님, 그러면 포항에서의 선교업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데이비드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벌써 후임 선교사가 와서 업무를 인수했어요. 젊은 선교사 부부이니 우리 부부보다 더 잘할 거예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서운갑이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헬렌이 자신의 품에서 카드를 한 장 꺼내어 그에게 준다. 거기에는 미국의 뉴욕주소와 Goodbye 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을 보고서 갑자기 서운갑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조금 진정을 하고서 그가 천천히 말한다; “두 분은 저를 요한이처럼 아들로 여기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주셨어요. 게다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시고 이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셨지요. 이제는 연세가 있으셔서 미국으로 귀국하시는군요. 그동안 제가 자주 찾아 뵙지 못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

그 말을 듣자 헬렌이 수건으로 서운갑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한다; “운갑, 너의 말이 맞다. 우리 부부는 젊은 날에 조선 땅에 와서 일제의 압박에서 한국이 해방되는 모습도 보고 한국전쟁의 비참함도 보았지. 그것은 현대판 출애굽기와 같았어. 그리고 한국사람의 인정과 놀라운 영성도 보았지. 그것은 모세와 아론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았어. 게다가… “;

 신앙심이 깊은 헬렌이 다음과 같이 말을 맺고 있다; “우리 아들 요한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고 나자 포항에서 우리 부부는 운갑이 너를 요한이처럼 생각하면서 살았지. 우리는 운갑 네가 참으로 진실하고 앞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기에 좋았단다. 그래서 너를 볼 때마다 조선사람의 재능과 부지런함에 거듭 탄복을 했단다. 그러니 한국의 앞날이 밝다고 우리는 생각해요!”.

헬렌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그날 오천덕 선교사가 서운갑에게 말하고 있다; “운갑, 미국대사관의 영사 제임스(James Rogers)가 지금은 참사관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가 자네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군. 그는 한국여성과 결혼하였는데 아주 한국에서 우리처럼 오래 살려고 하는 것 같아. 그러니 한번 찾아가 보도록 해요. 그리고 우리가 가는 뉴욕의 주소를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편지를 주세요!”.

오천덕 선교사 부부가 한국을 떠나고 나자 서운갑은 개인적으로 스승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마음이 쓸쓸하다. 따라서 그는 7월 하순에 일부러 미국대사관에 가서 제임스 로저스를 찾는다. 40대 초반의 제임스서운갑이 방문하자 그렇게 좋아한다. 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운갑, 자네가 국방대학원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어 내가 깜짝 놀랐어. 정말 잘된 일이야!...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오천덕 선교사로부터 제임스가 한국여성과 결혼도 하고 대사관에서 진급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Congratulations!”. 제임스는 한국에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이제는 한국말이 유창하다.

그가 함께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다음과 같이 서운갑에게 말한다. 사실은 서운갑을 만나고자 하는 목적이 그것이다; “운갑, 지금 한국에서는 미국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없어요. 그런데 그대는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고 또한 한국의 국방대학원에서 한미관계와 안보학을 연구했어요. 따라서 나는 운갑이가 한국의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때요, 한번 해보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은 다소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다짜고짜 물어본다; “그것은 한국의 국회의장이 결정해야 할 인사내용 같군요. 그런데 제임스가 추천하면 그것이 가능한가요?... “.

그 말에 제임스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맞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한국의 국회의장이 나에게 외무전문위원으로 일할 수 있는 적임자를 소개해 달라고 일부러 요청했어요. 그러니 내가 추천하면 가능하지요. 물론 최종결정은 국회의장이 하겠지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무슨 이야기인지 분명히 알아 들었다. 따라서 제임스에게 정확하게 말한다; “좋아요. 그렇게 된 연유라고 하면 나는 한국국회에서 외무위 전문위원으로 한번 일해보고 싶어요. 한국과 미국은 상호안보조약을 맺고 있으니 양국간의 상호이익을 도모하고 또한 외무분야에서 조국의 경제건설에 도움을 주고 싶군요. 저를 추천해주세요. 그런데 언제쯤 결과를 알 수가 있을까요?... “.

그 말을 하면서 서운갑은 적어도 한두달은 걸릴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한달도 지나지 아니하여 8월 중순에 벌써 서운갑에게 국회의 외무위 전문위원으로 발령이 났다고 하는 연락이 오고 있다. 그때부터 서운갑은 갑자기 바빠진다. 무엇보다도 허달수 교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국방대학원에 사직을 요청한다.

그리고 1965820일부터는 서울 중심 태평로에 있는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게 된다. 서운갑은 국회의장으로부터 외무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임명을 전날 받았다. 그리고 외무위 전문위원은 직제상 차관보급의 월급을 받는 자리인데 직무에 있어서는 국회외무위원장의 지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국회 상임위원회인 외무위원회가 열리게 되면 각종 외무관계 법안 및 외무부의 정책과 예산안 등에 관하여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먼저 있게 된다. 따라서 서운갑 전문위원은 9월에 열리는 국회 정기회에 대비하여 각종 법안과 예산안 등을 사전에 실무적으로 심의하느라고 무척 바쁘다.

전문위원을 보좌하고 있는 국회직원들이 각 상임위원회에 몇 명 씩 있는데 국장급인 심의관이 한사람이고 과장급과 계장급인 입법조사관이 둘이다. 그리고 사무직으로는 주사가 한 명 있다.

입법조사관실에는 선임이 서기관이고 그 다음이 사무관인데 두 사람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서기관이 위원회 행정을 총괄하고 있으므로 옆방의 주사는 그의 지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전문위원의 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있고 사무실에는 전문위원실에 여비서가 있다. 물론 입법조사관실에는 행정을 보좌하는 주사 아래에 타이핑과 여러가지 잡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자보조수가 한사람 근무하고 있다.  

외무위원회에는 15명 정도의 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다. 1963년에 개원한 제6대 국회는 의석수가 175석에 불과하므로 상임위원의 수가 많지 아니하다. 따라서 위원회 직원들의 직무상 부담이 경감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전문위원이 외무위원들을 잘 보좌하기 위해서는 외무부의 현황은 물론 그 법률과 예산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어야 하므로 일을 제대로 하자면 시간이 크게 모자란다. 그에 따라 서운갑은 전문위원이 되자 말자 가장 먼저 위원회 직원의 업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분담한다.

외무부의 직제를 참조하여 심의관과 입법조사관들에게 분담을 시키고 담당제로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토보고서의 최종검사 및 조정은 서운갑 전문위원이 책임지고 하기로 한다. 그가 첨삭하는 바에 따라 검토보고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외무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서운갑은 나름대로 외무부의 업무를 파악하고 그 예산은 물론 법안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내용을 거의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서 이웃 주요국과의 외무관계와 경제관계가 어떠한지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소득이다.

그렇게 열심히 외무위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이에 그의 주변에서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