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1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1. 16. 17:07

가지를 뚫는 햇살15(손진길 소설)

 

6. 국회에서 청와대로 근무지를 옮기는 정치학박사 서운갑

 

197212월초에 국방대학원에서 오래 근무하고 있는 허숙의 삼촌인 허달수 교수가 국회 외무위의 서운갑 전문위원에게 참으로 오래간만에 전화를 내고 있다. 비서 아가씨가 발신자의 신분을 이야기하면서 서위원에게 통화를 연결하고 있다.

서운갑은 반가운 김에 먼저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한다; “허교수님, 그동안 적조했습니다. 서운갑입니다. 어른께서 전화를 먼저 주시니 황송합니다!”. 그 말에 허허 웃으면서 허달수 교수가 말한다; “허허허, 내가 국회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서박사에게 싱겁게 전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만. 그래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기분 좋게 대답한다; “우리 외무위원회는 금년 농사를 대충 끝냈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이제는 국회 본회의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

허달수 교수의 말이 들려온다; “그래요, 내가 전화를 잘 했군요. 나는 이제 65세 정년을 1년 앞두고 자리를 옮기고자 합니다. 마침 청와대 비서실에서 자리가 하나 났다고 하면서 나처럼 나이 많은 교수에게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는군요. 내가 여기 변두리 수색에서 근무지를 만약 청와대로 옮기게 되면 그곳 태평로 국회의사당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박사를 자주 만나게 되겠군요, 허허허… “;

허달수 교수가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서운갑이 전화기에 바짝 귀를 기울인다. 허교수가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사람이 나와서 나보고 신설되는 정무 제2수석을 맡아달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무슨 자리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내일 청와대로 들어가보면 알겠지요. 그리고… “.

그 다음에 허교수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내가 정무 제2수석을 맡게 되면 나는 누구보다도 서박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되면 서박사는 나와 함께 청와대 비서실로 함께 들어가도록 하십시다. 그 말씀을 일단 드려 두고자 내가 미리 전화를 낸 거예요. 그러면 내일 오후에 서박사에게 전화를 다시 내도록 할께요. 내일 뵙도록 합시다, 하하하 “.

그렇게 용건을 말하고 전화를 끊고 있다. 전문위원실에게 서운갑이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해본다; ‘그렇군. 나보다 15년 연상이시니 허교수께서 벌써 64세이시구만. 그런데 정년을 1년 남겨두고 갑자기 청와대 수석으로 발령이 나고 있다는 말씀이군. 그런데 내가 필요하고 또한 함께 청와대에서 일하자고 하시니 그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당하는 일인 것이지?...’.

궁금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다음날 오후에 다시 허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비서 아가씨의 전화연결로 전문위원실에서 서운갑이 급히 전화를 받는다. 허교수가 또박또박 말한다; “서박사, 아무래도 앞으로 몇 년간 청와대에서 나를 도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한시간 내로 그 방에 들릴 테니까 직접 얼굴을 보고서 자세하게 말하도록 하지요!”.

한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당시 청와대에서 태평로의 국회의사당까지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그런지 30분 정도 지나니 허교수가 직접 서운갑 전문위원의 방으로 들어선다. 비서 아가씨가 차를 내오자 천천히 마시면서 두사람만이 남게 되자 허교수가 비로소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가 다음과 같이 천천히 말문을 연다; “서박사, 몇 달 전 그러니까 19727월달에 남북한 사이에 7.4공동성명이 발표된 것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우리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제는 북한을 능가하고 있기에 대통령 각하께서 주도적으로 남북협력의 시대를 열고 그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

서박사가 경청하는 모습을 지긋이 보면서 허교수가 이어서 말한다; “내가 맡게 된 정무 제2수석은 그 성명에 따른 남북한 사이의 후속조치를 구체화하고 그 상황을 점검하여 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하는 일을 주로 맡게 됩니다. 물론 “.

잠시 허교수가 서박사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어서 말한다; “당국자 사이의 대화와 인적 물적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을 비밀리에 맡도록 되어 있어요. 따라서 나는 서박사가 내 보좌관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직책은 정무비서관이 될 거예요”.

갑작스러운 제안이다. 따라서 서운갑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마나 급한 일입니까? 제가 국회 전문위원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신분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저로서는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말미를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허교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며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제가 오래 기다릴 수가 없으니 이틀 안으로 가부를 말씀해주시지요. 그러면 됩니다. 나는 서박사가 나를 보좌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적임자라서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여러 사람과 상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서운갑이 그날 저녁에 아내 황옥주하고만 상의를 한다. 설명을 듣자 그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게 하세요. 당신 나이가 내년이면 50에 들어서요. 그러니 앞으로 10년 정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가 있다고 보고서 지금쯤 근무지를 한번 옮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찬성이예요”;

그 말에 힘을 얻은 서운갑이 다음날 당장 허교수에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전화상으로 그 말을 들은 허교수가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좋아요 좋아. 그러면 일주일 안으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국회의장 비서실로 연락이 갈 것입니다. 서박사에 대한 인사이동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거예요. 그리 아시고 일주일 내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뵙도록 합시다”.

허달수 교수의 말이 사실이다. 1210일자로 서운갑 전문위원이 청와대 비서실로 이동이 되고 그곳에서 정무 제2수석을 보좌하는 정무비서관으로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무수석이 있는데 그것을 제1수석과 제2수석으로 구별한 이유는 국내정치와 국외정치로 나누기 위한 것이다. 말이 국외이지 그것은 남북한 사이의 대화와 교류에 관한 직무이다.

서운갑은 어째서 허달수 교수가 그 일을 전담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관하여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 1908년생이며 서울 명문가의 자제인 허달수는 일제시대에 와세다대학교에서 오래 정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젊은 나이에 벌써 일본 동경의 모교에서 대학생을 가르친 인물이다.

그런데 조선인이 정치학교수로 일본 동경에서 이름을 얻고 있으므로 그를 흠모하여 조선인 젊은 유학생들이 그에게 인사를 오고 또한 강의를 듣곤 했다. 그 가운데 한사람이 훗날 박정희 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1927년생 박태준이다. 그는 조선에서 온 유학생이 아니다.

왜냐하면 박태준은 어린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서 동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가 좋아 18살의 나이 곧 1945년 봄에 와세다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해 8월에 해방이 되자 다시 조선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런데 박태준은 와세다대학교에서 잠시 공부하는 동안에  특이하게도 허달수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 것이다.

해방이 되자 조국에 들어온 박태준은 군장교가 되어 소대장을 지낼 때에 군 선배인 박정희 중대장과 인연을 맺었다.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은 그 옛날에 일본 제2사관학교를 수료한 경력이 있기에 일본에서 성장한 박태준과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이였다.

그렇게 박대통령의 개인적인 신임이 두터운 박태준이 소장으로 전역한 이후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특히 산업의 근간이 되고 있는 포항제철을 건설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재작년 1970년부터 일본정부와 산업계의 도움으로 포철 제1고로를 우선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그 준공목표가 내년으로 되어 있다;

박태준이 국방대학원에서 오래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허달수 박사를 박대통령에게 신설되는 정무 제2수석으로 추천하였는데 그것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어째서 박대통령허박사를 적임자로 생각한 것일까?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면서 서운갑은 그 이유를 나름대로 2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1) 하나는, 일본의 제2사관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박대통령이 일본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허교수를 북한과의 교섭에 한번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박대통령은 일본의 명치유신을 연구하여 조국의 근대화계획을 유신체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정치사를 잘 알고 있는 허교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과 일본과의 교섭에 대해서도 허교수가 보다 전문가다운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박대통령이 벌써 내다보고 있다.

(2) 또 하나는, 박대통령의 대화상대방은 자신보다 5살 나이가 많은 1912년생 김일성인데 그는 북한에서 일종의 왕조정치를 펴고 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1953년에 죽고 나자 이제는 김일성이 마치 공산진영에서 최고 어른인 척 행동하고 있다. 그러한 김일성의 콧대를 어떻게 하면 보기 좋게 꺾을 수가 있을 것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판단으로는 김일성보다 4살이 많고 일제시대에 벌써 정치학박사로서 명성을 날린 허달수 박사가 적임자인 것이다. 그를 북한과 교섭하는 담당으로 정해 놓으면 북한 당국자의 오만한 콧대를 나름대로 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서운갑 그가 오래 전공하고 있는 정치학이론에 비추어 결국 국가 사이의 교섭과 국내정치라고 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관계를 따져보고 있는 것이다;

(1) 첫째,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이 젊은 시절 일본 제2사관학교에서 공부했고, 1927년생인 박태준 회장은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와세다대학교에서 잠시 수학한 적이 있다. 따라서 2사람은 나름대로 일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 이야기가 통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일본의 협력을 얻어서 한국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2) 둘째, 그들은 일본에서 정치학교수로 일한 적이 있는 1908년생인 허달수 교수를 정무 제2수석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들과 달리 허교수는 서울의 명문가 자제이며 일찍이 일본 동경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명문가 출신이 아닌 북한의 당국자들과 협상을 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3) 셋째, 한편 청와대에서 정무 제2수석을 맡게 되는 허교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남북한 사이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미국의 시각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와이대학교에서 일찍이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서운갑을 나의  보좌역으로 일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와는 국방대학원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기에 손발을 맞추기가 편한 것이다”;

그쯤 주요한 인간관계를 분석하고서 서운갑은 가장 먼저 1912년생인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1917년생인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만나게 되면 어떠한 그림이 그려질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본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중앙정보부가 남북한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그들의 자료가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박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비서실장 출신의 정보부장 이후락이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당시에 적진으로 여겨지고 있는 북한의 위험한 수도 평양을 대담하게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마침내 7.4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와 같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릴 수가 없다.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이고 허달수 수석의 생각이며 서운갑 비서관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운갑 박사가 정무비서관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참으로 이상한 일이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1973년이 되자 갑자기 장남인 서경일이 연세대학교에 학사편입을 하고 있다. 그것은 육사 출신 장교 대위에게 주고 있는 하나의 특혜이다. 육사를 다닐 때에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 가운데 전방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학사 편입하여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부친 서운갑은 장남 서경일이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런데 1973년 1월에 전방에서 잠시 집에 들린 차남 서한국이 부친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아버지, 제가 작년에 형에게 참한 신부감을 한사람 소개해주었어요. 서로 만나서 이야기가 통한다고 좋아하다가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여요. 그 아가씨는 서울에 살고 있고 연세대학을 졸업했으며 사실은 그 대학교수의 딸이거든요, 하하하“.

서운갑이 흥미가 생겨서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라고 차남에게 말한다. 서한국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제가 대학시절 연대 철학교수인 최병화(崔炳華) 박사의 둘째딸에게 과외를 했어요. 그 언니가 최영미(崔瑩美)인데 당시 연대 영문학과를 다녔고 저하고는 같은 학년이었지요. 우연히 그녀를 제가 형에게 소개해준 거예요. 그랬더니 서로 좋아하면서 자주 서울에서 만나고자 그렇게 형이 연세대 법학과에 학사편입한 것으로 보여요”.

서운갑은 자식교육에 있어서 별로 간섭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온 사람이기에 자식들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남이 전방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이제는 사귀고 있는 처녀가 마음에 들어서 아예 서울에 와서 공부를 더하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서운갑은 이듬해 1973년초에 서울 마포에 있는 자신의 집에 와서 대학에서 다시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장남의 행동을 눈 여겨 보고 있다. 지금까지 부모의 속을 썩인 적이 없는 훌륭한 아들이다. 그러한 그가 얼마나 그 처녀 최영미가 마음에 들면 그렇게 서울에서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서울에서 다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장남 서경일의 앞날이 어떻게 되며 그것이 부친 서운갑에게는 장차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