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1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1. 18. 06:12

가지를 뚫는 햇살16(손진길 소설)

 

한편, 청와대 비서실에서 남북관계 협상에 관하여 자료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관하여 여러가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자리가 서운갑 박사가 맡고 있는 정무비서관의 역할이다. 그는 그 일을 맡아 19721210일부터 그해 말까지 3주 정도 열심히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기에 바쁘다.

당시 서운갑 비서관이 취득한 자료는 주로 중앙정보부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그 발전방향에 관하여 분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서운갑은 외무부를 통하여 2가지 자료를 더 얻고 있다; 하나가, 남북한 협상에 관한 소련과 중공의 입장이다. 또 하나가, 그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입장이다.

그 결과 서운갑이 발견하고 있는 특이사항이 있다. 당시에 그는 직무상 필요하여 관련자료들을 분석하였지만 그 분석의 결과는 정치학박사인 그의 관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한마디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관계와 그에 대처하고 있는 남북한의 태도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서운갑이 혼자서만 갈무리하고 있는 견해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남북한은 19727월에 쌍방 간에 합의한 7.4 공동성명을 각각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이 압축하면 심히 간단하다; “남북한 사이의 통일은 자주적, 평화적, 민족적 대단결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원칙의 선언이다”.

둘째로,  그 구체적인 방안이 다음 7가지이다; 긴장상태 완화, 상대방 중상비방 중지, 무장도발 중지,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고 방지 합의, 남북 사이에 () 방면적 제반 교류실시, 적십자회담 성사 적극 협조,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개설,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과 운영, 이상의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엄숙히 약속하는 등이다.

셋째로, 이른바 친서(親書)외교를 통하여 이루어진 합의이며 실무차원의 논의에 불과하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수상이 직접 대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 만나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게 될 것인가? 그 점에 대하여 서운갑이 분석한 결과는 두가지 이유로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    하나의 이유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외세인 4강 곧 소련과 중공 그리고 일본과 미국이 그 원칙에 결코 동의하지 아니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김일성과 박정희가 나름대로 독재권력의 강화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수상 김일성19721026일에 주석(主席)제 개헌을 통하여 유일한 주석이 되고 있다;

(2)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19721017일에 대통령 중대선언을 통하여 4가지 비상조치를 제안하고 이를  1227일에 국민투표로 확정하여 제3공화국 헌법을 개정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소위 유신헌법이며 박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한 헌법개정이다. 그 주요 4가지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3)    ①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 및 모든 법관을 임명한다. ②대통령이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진다. ③대통령은 임기가 6년이며 계속 연임할 수 있다. ④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한다. 요컨대, 유신대통령은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전제군주와 같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군주이며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군주가 된 것이다.

넷째로, 그렇다고 하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4강의 입장은 과연 무엇인가? 서운갑의 관심이 이제는 거기에 집중이 되고 있다. 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집약이 되고 있다;

(1)    첫째, 독재권력을 장악한 자가 평화적으로 민족통일에 합의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권력자는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영구집권을 합리화했을 따름이다;

(2)    둘째, 만약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통일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중소(中蘇)의 공산진영과 미일(美日)의 자유진영이 대리전을 수행할 수 있는 남북한이라고 하는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용병이 없이 직접 4강이 대결국면에 들어간다는 위험성을 말한다. 4강은 국지전이 아니라 핵전까지 가능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3)    셋째,  그에 따라 4강은 영구집권을 도모하고 있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리고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통합할 수 있는 우월한 무력을 지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4)    넷째, 만약 김일성 주석 또는 박정희 대통령이 비밀리에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여 핵무장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상대방을 흡수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므로 4강은 그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서운갑 박사는 그 직책이 정무비서관이므로 상관인 허달수 정무 제2수석에게 그가 정리하여 알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를 요약하여 보고한다. 전체내용을 말해주면 그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면서 서운갑은 이듬해 1973년에 들어서서 그 문제가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를 부지런히 추적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장남 서경일이 전방생활을 정리하고 서울 마포의 부모님 집에 와서 살면서 새해 1973년에 연세대학교 법학과의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어째서 그러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서운학이 차남 서한국으로부터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장남 서경일의 나이가 벌써 28살에 들어서고 있다. 장남의 결혼이 늦어진다고 하는 것이 걱정이다. 그 점에 관하여  80세의 양부 서달호78세인 양모 장화련은 걱정이 태산이다. 장화련은 며느리 황옥주에게 말한다; “에미야, 우리 장손 경일이가 벌써 만나이로 28살이 되려고 한다. 결혼이 너무 늦어. 빨리 장가보낼 생각을 해야 한다!”.

황옥주가 귀가한 남편 서운갑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서 자신도 빨리 손주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서운갑으로서는 그가 진작에 차남 서한국으로부터 듣고 있는 장남 서경일의 연애이야기를 아내에게 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남편의 설명을 듣자 당장 황옥주가 말한다; “여보, 그렇다고 하면 경일이를 불러서 당신이 그 처녀 최영미와의 결혼계획이 어떠한지 물어보아야 해요. 금년에 결혼을 시키는 것이 좋을 거예요. 할아버지의 연세가 벌써 80줄에 들어선 것을 경일이도 모르지는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빙그레 웃으면서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당신의 그 대찬 성격이 여전하군요. 꼭 적진에 싸우러 가는 용사와 같습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경일이에게 밥이라도 사주면서 한번 말을 꺼내 보세요. 분명히 그 녀석이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허허허… “.

서운갑의 판단이 맞다.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 황옥주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호호,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내가 비싼 식당에 데리고 가서 요리도 사주고 그 얘기를 꺼냈더니 대뜸 금년에 결혼하겠다고 대답했어요. 그 녀석이 참 진작에 말을 좀 해 줄 것이지꼭 당신을 닮아서 나중에 가서야 말을 해요. 그 참 부전자전이예요, 호호호“.

황옥주는 그 이야기를 시어머니 장화련에게 해준다. 그 결과 하루는 부친 서달호가 저녁에 귀가한 서운갑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중요한 말을 한다; “애비야, 너도 알다시피 내 나이가 금년에 80줄에 들어섰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도 모두들 호상(好喪)이라고 부를 것이야. 그래서 나는 더 늦어지기 전에 한가지 조치를 미리 하려고 한다. 그것은… “.

그 말에 서운갑이 긴장하면서 부친의 얼굴을 쳐다본다. 서달호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이내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곳 마포에 우리 부부는 부동산을 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아들인 너에게 넘겨줄 것이니 그 중에 주택 하나를 장손 경일이에게 주도록 해라.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는 예금통장이 둘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경일이에게 주고 싶다. 장손이 금년에 결혼을 한다고 하면 신혼생활과 앞길을 개척하는데 요긴할 것이야!...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천천히 말한다; “아버지, 너무 심려하시지 마세요. 경일이는 금년에 결혼할 것이고 아버지 생전에 증손자를 안겨줄 거예요. 그리고 말씀하신 건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상의하신 그대로 행하시면 제가 부모님의 뜻대로 처리를 하겠습니다. 이제는 풍요의 70년대이므로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있어요.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시고 저희 내외의 옆에서 무병장수하시면 됩니다”.

그 말에 서달호가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면서 말한다; “운갑아, 나는 네가 나의 아들이 되어 주어서 참으로 좋았단다. 11살 어린 나이에 나의 아들이 되었으니 벌써 40년이 지나고 있구나. 그 동안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 이제는 장손 경일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생산한다고 하면 나는 조상님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있을 것이야.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아들인 너와 장손인 경일이에게 넘겨주고 싶은 것이다, 허허허“.

그 말을 들으면서 서운갑은 자신이 좋은 양부모를 만나 앞길을 잘 개척할 수가 있었다고 새삼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부친 서달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게 된 것이 감사하답니다. 어머니에게도 감사하고요. 제가 마음껏 공부하고 앞길을 개척할 수 있게 된 것이 모두 부모님의 덕입니다. 그러니 저희 내외의 효도를 받으시면서 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주세요, 아버지!”.

그러나 세상일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뜻과 의지대로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해 197310월이 되자 서달호는 장손 서경일이 결혼하는 모습만 보고 이듬해 증손자의 탄생을 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게 된 장화련이 그해 겨울을 무척 춥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듬해 1974년 봄에 서둘러 남편 서달호의 뒤를 따르고 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서운갑과 아내 황옥주는 갑자기 이 세상이 쓸쓸한 것만 같아서 서로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당시 서운갑의 나이가 51세에 들어서고 있다. 아내 황옥주49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마포 집에서 함께 사시던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시자 자신들의 짐의 무게가 중압감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38월초 여름방학기간에 장남 서경일최영미와 결혼식을 가졌다;

 그리고 방이 많은 부모님의 마포 저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서운갑은 부친 서달호를 통하여 아들 서경일에게 마포에 있는 주택 하나를 넘겨주도록 조치했다. 그 자리에서 서달호가 예금통장을 하나 꺼내서 장손 경일에게 준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경일아. 이 할애비는 네가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너무나 대견해서 살림 밑천을 하라고 마포에 있는 주택을 한 채 주고 또 통장 하나를 선물로 준다. 경일이 네가 뒤늦게 법학공부를 더 한다고 하니 앞으로 유학을 갈지도 몰라서 미리 예금통장을 주는 것이다. 이 할애비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에게 직접 주는 것이 좋아서 내가 이렇게 한다. 부디 너의 아버지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식도 여럿 낳아 잘 기르기를 바란다. 그러면 이 할애비는 대 만족이다, 허허허“.

그렇게 기뻐하면서 웃으시던 조부 서달호2달이 지나자 그만 별세를 하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서경일어떻게 하면 조부의 뜻을 이루어 드릴 것인가?’고 자주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그가 이듬해 19746월에 아들 서장석(徐長錫)을 아내 최영미가 낳는 것을 보고서 한가지 결심을 하고 있다;

그의 결심이 무엇인지 19752월에 밝혀진다. 서경일이 아내 최영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보, 나는 군에 휴직을 요청하고 앞으로 2년간 도서관에서 법공부를 계속하고자 합니다. 사법고시를 합격하고서 군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제게 큰 기대를 하셨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이해를 해주세요!”.

그 말을 듣자 아들 서장석을 품에 안고 있던 최영미가 대답한다; “여보, 당신 뜻은 알겠어요. 일단 어려운 결심을 하셨으니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한가지는 명심해야 해요. 금년에 당신 나이가 벌써 서른이예요. 그러니 앞으로 2년안에 결판을 내야해요. 더 이상은 안돼요. 2년 후에는 무조건 군으로 돌아가야 해요!”.

일찍이 전방에서 중대장을 지낸 서경일4살이나 연하인 아내 최영미의 말이 무서운 모양이다. 그는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사법고시 준비에 매어 달리고 있다;

 그 말을 전해 들으면서 서운갑이 걱정을 하고 있다; ‘사법고시는 합격자 정원이 60명이다. 정말 어려운 시험이다. 경일이가 결사적으로 공부한다고 해도 합격할 확률이 높지 못하다.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가?... ‘.

청와대 비서실에서 업무가 바쁜 서운갑은 내심 걱정만 하고 있지만 아내 황옥주와 며느리 최영미는 그것이 아니다. 그녀들은 거의 매일 새벽에 인근에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니고 있다. 그렇게 지내는 것을 보고서 19752월에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한 딸 서민경이 한마디를 한다; “시험공부는 당사자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 어머니와 올케는 이제 그만 새벽기도회에 나가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사이에 차남 서한국은 전방에서의 ROTC근무를 마치고 있다. 그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자 유수한 기업에 입사원서를 내고 있다. 서울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기에 그는 좋은 직장을 잡을 수가 있다. 1970년대 중반기는 한국에서 고도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공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따라서 서한국은 어렵지 아니하게 좋은 직장을 얻어서 회사에 나가고 있다;

대학도 마치고 군도 마치고 이제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된 차남 서한국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듬해 1976년이 되면 그의 나이도 27살이 된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여전히 열심히 근무하면서 서운갑은 차남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1976년이 완전히 지나가기 전에 그는 3가지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