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2. 29. 15:31

가지를 뚫는 햇살8(손진길 소설)

 

4. 한국전쟁이 끝나자 서운갑이 선택하고 있는 새로운 인생

 

1953 7 27일 오전 10시에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방송과 신문으로 전국에 알려지고 있다. 서운갑은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의 휴전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어서 정전협정에 사인하지 아니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이해득실을 나름대로 따져보고 있다.

우선 그 협정에 사인한 당사자는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이고 타방은 북한인민군 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다;

 당시의 국제세계는 서서히 양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는데 하나는, 미국이 리드하고 있는 자유자본주의 진영이고 또 하나는, 소련이 이끌고 있는 공산주의 진영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에 있어서는 그들 두나라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지 아니하고 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경우에는 재빨리 북한에 공산주의 김일성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북한인민군의 무력증강에 박차를 가하여 김일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가지고 적화통일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스탈린의 행보가 다음과 같이 상당히 이상하다;

첫째로, 소련은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면서 유엔군을 결성하여 조기에 파견하자고 제안했을 때에 그 찬반표결에 적극 참여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것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직접 부딪히는 대결국면을 나름대로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서운갑은 보고 있다.

그에 따라 유엔군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낙동강까지 진출한 북한인민군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승리를 목전에 두고서 그만 중부전선에서 허리가 잘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으로부터의 보급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후퇴하는 경우 퇴로마저 차단 당하고 만 것이다.

김일성은 인민군에게 급히 퇴각하여 군을 재정비하라고 명령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그 이유는 1950101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으로 하여금 38도선을 넘어 북한군을 계속 추격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일성 일행은 겨우 강계의 산속으로 피난하고 한국군은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다.

둘째로, 북한정권의 존립이 위태롭다. 그것을 종주국 소련이 본체만체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얼마후에 그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중국대륙에 공산정권을 세운지 1년남짓된 모택동이 국가안보의 위기를 크게 느끼고서  대규모 원군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만주를 공격하고 중국내륙으로 쳐들어오게 되면 모택동의 공산정권이 존폐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모택동은 눈물을 머금고 만주에서 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긴급하게 북한인민군을 지원하기에 이른다. 그것을 보면 소련의 스탈린이 보통 노련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급조된 중국인민지원군은 그 무기체계가 빈약하다. 그저 따발총과 막대 수류탄을 가지고 인해전술로 그 추운 계절에 유엔군과 한국군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따라서 중공군의 시신이 대지를 덮고 있다. 그 희생이 엄청나다. 그것을 보고서 한국군과 유엔군에서는 참전한 중공군의 수가 적어도 45만명이며 많게는 5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그와 같은 전쟁의 흐름을 서운갑이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와 관련하여 한번은 서운갑이 국제정치에 밝은 오천덕 선교사를 찾아가서 질문했다. 그때 들었던 오선교사의 답변이 두가지이다; 첫째로, 미국의 입장을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우선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있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돌연 1945412일에 뇌출혈로 서거하고 말았지요. 그 후임이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지요. 그런데“.

서운갑이 경청하자 오선교사의 설명이 계속된다; “트루먼 대통령은 취임하자 마자 430일에 독일의 지도자 히틀러가 자살하고 유럽전쟁에서 승리하여 축배를 들게 되지요. 그는 그 여세를 몰아 일본제국의 항복마저 받아내고자 노력했어요. 그 결과 8월초순에 일본의 후방도시 두 곳에 원폭이 투하된 것입니다. 그리고… “.

잠시 숨을 쉬고서 오선교사가 설명을 계속한다; “그때를 전후하여 소련의 스탈린이 뒤늦게 전임 루즈벨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갑자기 소련군을 만주와 북한에 진출시키고 있어요. 그런데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그것은 소련군이 가는 곳마다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후유증을 미국의 지도자가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

그 다음 이야기는 서운갑도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자본을 국유화하고 독재정권을 수립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팽창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는 결코 용인할 수가 없었겠지요.  따라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구미의 대표들은 전격적으로 유엔군을 한국에 파견하기로 의결했지요. 그런데 어째서 소련의 스탈린은 한발을 빼고 있는 것일까요?”.

그 말을 듣자 오선교사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운갑이가 이제는 상당히 많이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두번째 내용만 간단하게 말해주지. 소련의 스탈린은 사실 건강이 좋지 아니했고 늘 암살위협에 시달린 독재자야. 특히 1945년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급서하는 것을 보고서 그는 조심에 또 조심을 거듭했지. 따라서… “.

오선교사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그는 배후에서 북한인민군의 무력증강을 크게 도왔지만 직접 전장에서 미국과 부딪히는 것을 회피한 인물이야. 자칫 자신의 절대권력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아니했다고 보아야지. 더구나 독재자 스탈린19533월 초순에 뇌졸증으로 죽고 그의 후계자들은 권력암투에 바빠서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야!”;

오선교사의 설명에 서운갑은 감사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자유진영의 리더인 미국과 공산진영의 지도국인 소련이 직접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싶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알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하면 한국전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비무장지대는 두 강대국을 대신하여 동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 사이의 최전선이 되고 말 것이다.

미소 양진영을 대신하여 한국군과 북한인민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서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 한민족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불쌍한 민족이 되고 말 것이다. 고려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온 백성들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허리가 끊어진 불구자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서운갑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그날 오선교사가 추가로 설명해준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서운갑은 그 의미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 내용이 대략 다음과 같다; 지금 유엔은 그 본부가 뉴욕에 있고 또한 거의 미국의 재정지원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므로 미국이 보기 좋게 유엔을 앞장세워서 국제관계를 처리하고 있지요. 그것이 당장은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훗날에는 그것이 어려워질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 있다; 핵무기는 소련이나 다른 강대국들이 차례로 개발할 가능성이 커요. 그만큼 그들 국가들이 국방상 절실하니까요. 그리고 천연자원이 많은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유엔에서 그 영향력을 키우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은 세월이 흐르게 되면 그렇지가 못하게 될 거예요. 그때에는… “.

오천덕 선교사가 보고 있는 미래가 다음과 같다; 미국정부가 직접 정전협정에 사인한 것이 아니므로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어요. 훗날에도 미국은 유엔참전 16개국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북한과 중국이라는 공산진영을 상대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이지요. 유엔연합군이 해산된 지 오래인데 여전히 미군이 그 명분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그것이 영 이상한 것이지요.

그 당시 서운갑오천덕 선교사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21세기에 들어서고 또 한참의 세월이 지나가자 마침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구체적으로 남한과 북한 사이에 화해의 움직임과 교류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미국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저지하고 있는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53년에 한국전쟁의 끝을 바라보면서 황옥주가 남편 서운갑에게 한마디를 하고 있다; 여보, 개성이 전쟁 전에는 한국의 영토였는데 그만 이제는 북한의 것이 되고 말았어요. 유엔군이 서부전선에서 적극적으로 전투를 하지 아니하여서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해요. 반대로 동부전선에서는 한국군이 죽기 살기로 고지전을 수행하여 강원도 땅을 많이 얻었어요!... “;

그 말이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 9월말에 서울을 수복하자 유엔군이 38도선에서 휴전을 하고자 하는 낌새를 알고서 얼른 한국군에게 독자적으로 북진을 하라고 명령했다. 차제에 북한을 차지하는 것이 동족상잔이라는 피의 값을 김일성 공산당에게서 받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모택동이 급히 만주에서 동원한 인민지원군을 수십만명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남하하게 하는 바람에 이승만의 꿈은 좌절이 되고 만다. 유엔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당해내지 못하고 이듬해 1951 1 4일에는 서울까지 적에게 내어주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그해 5 15일에 서울을 다시 탈환한다. 그리고 전선은 38도선 근방에서 교전이 계속되는 모양새이다. 그만큼 모택동이 내려 보낸 중공군 50만명의 위력이 대단하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은 그 옛날 조선의 임금 선조가 명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서 일본의 침략군을 물리친 역사와 무척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쨌든 3년간의 한국전쟁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그 직후에 서운갑이 포항과 경주 등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 세가지이다;

첫째, 상이군경이 떼를 지어서 몰려다니고 있다. 초상집과 잔칫집을 가리지 아니하고 찾아 들어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자신들이 병신이 되었으니 여러분들이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것이다;

둘째, 젊은 과부들이 많이 생겨나 있다. 살아갈 방도가 없어서 피난 온 부자의 첩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여인들이 너무 많다. 하루는 학교에서 다녀온 장남 서경일이 부모에게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반에서는 첩의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주먹이 세거나 해요. 깡다구가 장난이 아니예요!.

셋째, 신분의 귀천과 직업의 귀천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북한에서 지주와 지식인들이 대거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거제도에서 풀려난 반공포로들의 수가 많다.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근성을 발휘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양반과 상놈이라고 하는 신분이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만다. 모두가 난민이 되어 있는데 양반 상놈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이 훗날 1960년대에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요컨대, 전쟁으로 말미암아 형성이 된 완전히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 그리고 높은 교육열 더구나 무슨 일이든지 해서 먹고 살 수만 있다고 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 등 그 3가지가 자원이 없는 한국을 20세기 후반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국으로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동인인 것이다. 그러한 당시의 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훗날 서운갑이 미국에서 자신의 논문에 게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끝난 19538월에 월성군수가 과장들을 모아 놓고 조회시간에 한가지 제안을 한다; “한국전쟁 중에 영연방의 외무장관들이 모여서 소위 콜롬보 계획을 수립했다고 해요. 동남아 여러 나라를 원조하는 계획인데 젊은 인재를 영어권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한국이 추가로 포함되어 있어요. 나는 그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관심이 있는 과장은 나중에 내게 문의를 해주세요!... “;

당시 서운갑30세이다. 그는 주사로 벌써 3년 이상 근무하였기에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지방직 사무관으로 진급하는 시험을 치르고 싶어한다. 그래야 일선관청의 장으로 근무할 수가 있다. 그런 반면에 더 나이가 들기전에 영어권 선진국에 가서 오선교사의 말씀대로 한번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아내 황옥주에게 말했더니 그녀의 반응이 다음과 같다; “여보, 지방직 사무관은 당신이 생각만 있으면 다음에라도 단단히 공부하여 시험에 합격하면 가능해요. 그렇지만 영어권 선진국의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어려워요. 그러니 한번 부딪혀 보세요. 저는 당신이 선진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에 찬성이예요!”.

일단 아내의 말을 듣고 다음날 서운갑이 군수영감에게 상의를 한다. 그러자 김군수의 대답이 다음과 같다; “서과장, 잘 생각했어요. 내가 호주에 가서 3년간 대학에서 공부하는 프로그램에 서과장을 추천할 테니 인터뷰를 잘해서 합격하도록 하세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사람의 일이란 것이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열심히 근무하고 공부하여 한번 지방직 사무관이 되어보겠다고 말하던 서운갑이 이제는 호주로 유학을 가는 티켓을 따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그의 장래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