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1. 4. 11:25

가지를 뚫는 햇살9(손진길 소설)

 

콜롬보 장학금을 따기 위한 서운갑의 인터뷰는 성공적이다. 19539월말에 서운갑이 서울에 가서 영국공사관에 들러 담당 영사 토빈(Tobin)의 인터뷰에 응했더니 그가 상당히 놀라면서 개인적으로 질문한다; “Mr. Suh, Where did you learn English, here Korea or in America?”;

서운갑은 그 질문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대답했다; “Why do you say like that? I learned English just from Pastor David Ross who works for Korean people at Pohang near my hometown”.

그 말을 듣더니 토빈이 드디어 한국말로 천천히 말한다; “이번 인터뷰의 목적은 당신의 영어실력이 과연 영국계 대학에서 수강할 수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합격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지원한 대로 내년 봄학기부터 호주의 시드니대학교(University of Sydney)에 가서 정치학(Political Science)을 전공하세요. 그리고… “.

이번에는 영어로 말한다; “You are entitled to get the Colombo scholarship of three years so you have to do your best in order to get the Bacher degree of Political Science in next three years. I hope you’ll succeed in the course and then make a lot of contributions to your government, especially  in the field of Democracy”;

말을 끝내면서 토빈 영사가 서운갑에게 악수를 청한다. 악수를 하면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서운갑 자신과 비슷한 연령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운갑이 빙그레 웃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 방을 나서기 전에 한마디 질문을 한다; “How can I go to Sydney? I will prepare my passport in Seoul but, as you know, here is no airplane going to Australia directly”.

그 말에 토빈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Good question. I will prepare two airline tickets for you until the end of November this year. One is to board the American air force plane to go to Tokyo. Another one is from Tokyo to Sydney during January next year. I will get in touch with you in advance. And do not hesitate to ask me about your question!”.

토빈 영사는 상당히 친절하다. 그렇지만 1954년초에 호주 시드니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서운갑의 입장에서는 그 준비가 쉽지가 아니하다. 특히 그는 수도 서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 동남부의 바닷가 소도시 포항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그는 오천덕(David Paul Ross) 선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뜻밖에 오선교사가 참으로 도움이 되는 인물을 서운갑에게 말해주고 있다; “운갑, 축하하네! 자네가 나이 30이 넘어 호주로 유학을 간다고 하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흡족해. 특별히 크게 도움이 되는 인물을 내가 한사람 알려주지. 내가 이미 확인을 했는데 그 이름이 호주선교사 피터 클라크(Peter Clark). 그는 “.

서운갑이 경청하자 오선교사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데 지난 3년간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군인들을 위하여 군목으로 일했지. 그런데 그들 부부가 마침 내년초에 시드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요. 시드니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 (Paul)이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내게 말하더군. 내가 그들 부부의 항공편을 알아보아 줄 터이니 이왕이면 항공일정을 그들과 맞추면 좋을 것이야!”;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서운갑이 오선교사에게 특별히 부탁하자 그가 얼른 피터 선교사에게 연락하여 그들 부부의 항공일정을 알려준다. 서운갑이 재빨리 영국공사관의 영사 토빈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면서 같은 비행기편으로 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서운갑이 그들 부부와 함께 동경으로 이동하여 같은 비행기를 타고서 19541월 중순에 무사히 시드니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피터(Peter) 선교사는 나이가 50세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Sarah)48세이다. 두사람은 처음으로 해외에 그것도 호주 시드니로 함께 떠나고 있는 30세의 서운갑을 마치 조카처럼 여기고서 무척 친절하다. 그래서 서운갑은 아예 그 집에서 기숙하면서 시드니대학에 등록한다.

등록과정에 있어서는 시드니대학 의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들 부부의 아들인 (Paul)이 크게 도와준다. 22세인 청년 은 한국에서 온 서운갑을 신기한 듯이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처음으로 한국사람을 시드니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운갑이 나름대로 일상생활에 별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서 아주 기뻐하고 있다.

시드니대학은 시내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다. 다행히 피터 선교사의 집이 대학에서 크게 멀지가 아니하다. 따라서 서운갑은 중고자전거를 한대 구입하여 시드니대학에 등하교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수업이 끝나도 대학도서관에서 개인적으로 계속 공부한다. 참으로 읽어야 할 전공서적과 관련자료가 그곳에 많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운갑이 호주 시드니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여러가지를 실감하고 있다; 첫째로, 자연적인 환경이 정반대이다. 한국은 북반부인데 호주는 남반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이 완전히 반대이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면, 한국에 있는 북두칠성이 없고 그 대신에 남십자성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달의 모양이 정반대이다. 반달이 한국에서는 오른쪽에서 차올라 가는데 호주에서는 왼쪽에서부터 초생달이 나타나서 그것이 반달로 커져가는 것이다.

둘째로, 교통질서가 정반대이다. 한국은 미국의 교통제도를 도입하고 있기에 차량이 우측통행이다. 그러나 호주는 영국의 교통제도를 따르고 있기에 차량의 통행이 좌측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던 사람은 호주에서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정면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정치제도가 너무나 다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원수이며 실질적으로 대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국가원수는 영국의 국왕이 호주의 국왕을 겸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그가 호주에 총독을 파견하거나 현지의 명사를 총독으로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정치는 내각책임제이며 수상이 전권을 장악하고서 정치를 행하고 있다.

넷째로, 법제도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법제도는 일제시대를 거쳐오면서 유럽대륙의 성문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것을 국회에서 한국의 법률로 채택하고 있으며 또한 필요한 내용은 국회입법으로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는 영미의 보통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것은 상식법(Common Law)이며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만들어진 수많은 사례법이 그 기초이다. 지금도 그러한 전통적인 관습법이 통용되고 있으므로 그것을 불문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로, 경제발전의 단계가 현저하게 다르다. 한국은 3년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괴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전후의 한국은 아프리카의 빈민국 수준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불도 되지 아니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후진국이며 경제적인 최빈국에 속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는 그와 전혀 다르다.

2차세계대전 그것도 유럽전쟁에 있어서 서구의 열강들이 피폐해지고 있는 반면에 그 옛날 영국이 개척한 신대륙의 국가들 곧 미국과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는 각종 자원을 모국인 영국에 수출함으로써 경제적인 번영을 크게 누리고 있다. 따라서 전후에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져서 세계의 1등이 미국이고, 2등이 호주이며, 3등이 뉴질랜드인 것이다;

그들 국가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국토의 개발을 위한 국도와 고속도로를 대부분 완성했다. 서운갑은 호주의 시드니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시간을 내어 호주대륙의 이곳저곳을 자동차로 여행했다. 한반도의 30배가 넘는다고 하는 호주대륙이 넓고도 넓다. 그런데 인구는 한국보다 훨씬 적다.

그것을 보면서 서운갑은 내심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호주는 사실 지리적으로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속한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진작에 호주로 진출했다고 하면 얼마나 크게 발전했을 것인가? 너무나 늦게 내가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이곳 호주에 와서 보니 실로 만시지탄이다. 영국사람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해가 지지 아니하는 대영제국을 건설하는 동안에 우리 조선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한 것일까? 그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제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시드니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하지만 처음 1년동안은 교양과정부인 셈이다. 정치학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과학을 나름대로 공부한다. 그런데 1학년 과목을 전부 패스해야 2학년으로 진급하여 전공과목을 공부할 수가 있다. 서운갑은 그 옛날 대구에서 명문 사립중학교에서 5년간 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

그의 영어는 오천덕 선교사의 지도로 정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가 구축되어 있기에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따라서 서운갑은 영어권에서 공부할 수 있는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기 위하여 아예 집에서 교실로 그리고 도서관으로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공부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방학이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렇게 전력투구를 하였기에 무사히 1년 공부를 하고 2학년 전공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는 그 2학년 1년 동안에 영미(英美)의 정치제도와 호주(濠洲)의 정치제도 그리고 영미법(英美法) 체계에 관하여 자세하게 배운다. 그리고 3학년이 되자 국제정치(國際政治)를 많이 공부한다.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소련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대하여 미국과 영국 그리고 호주가 어떠한 연구를 하고 있는지 그 내용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연합(UN)과 각종 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배우고 공부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현대 영국과 미국 그리고 호주를 이끌었던 정치지도자들에 관하여서도 공부를 한다. 서운갑은 시드니대학교의 도서관이 수많은 전공서적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한번을 집에서 (Paul)을 만나 그 점을 말했더니 그가 한마디를 한다; “두 차례의 유럽전쟁 덕분에 호주의 학문이 진일보했어요. 유럽열강들이 전란에 휩싸이자 유태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서구의 학자들이 보따리를 싸서 안전한 미국과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로 피난한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책자들이 대부분 대학도서관에 기증되어 있으니 그 자료가 실로 방대하지요, 하하하“.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그 점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서운갑은 늦은 나이에 시드니대학교에서 정치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학년 졸업반이 된 서운갑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마크(Mark)를 사귀어서 그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다.

서운갑이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마크를 만나게 된 곳은 사실 시드니대학이 아니라 시드니에 있는 교회였다. 아무리 공부가 바빠도 서운갑은 주일이 되면 피터 선교사 부부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곳에는 을 비롯한 시드니대학의 학생들이 상당수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한번은 그곳 대학부에 마크가 참석한 것이다. 그를 만난 이 반갑게 인사하면서 아예 마크서운갑에게 소개한다; “Ungap, this is Mark. He does a graduate work at Sydney Uni. I mean the Political Science like you”.

깜짝 놀라서 서운갑이 물었다; “Which degree do you do, Mater or PhD? “. 마크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Ungap, I am doing the Master course in Sydney but I am going to go America to do my PhD course in the near future”.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은 그에게 자신의 소개를 자세히 한다. 그의 소개를 듣자 마크가 신기한듯이 서운갑을 쳐다보면서 영어로 말한다. 그의 조언이 대충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여기 호주까지 정치학을 공부하러 왔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왕 국제관계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나중에 미국에 가서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아요. 역시 세계 제2차대전 이후의 학문의 중심은 미국이니까요. 그것도 뉴욕이나 수도인 워싱턴DC로 가는 것이 좋아요!”;

그때부터 서운갑은 학문적으로 궁금한 것이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일예배에 참석한 마크에게 묻는다. 그는 굉장히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기를 그가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덧 3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3년 과정을 수료하자 서운갑마크를 따라 그의 고향이 있는 북쪽 Queensland 주의 수도인 브리즈번(Brisban)을 방문했다. 세계 제2차대전 후반기에 맥아더(MacArthur)의 남서태평양 군사령부가 설치된 적이 있다고 하는 도시이다;

서운갑19573월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2년간 월성군청에서 조용하게 공무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일년에 두차례  서울에 가서 미국대사관에 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호주를 다녀온 서운갑이 미국의 대학원에 유학하였으면 좋겠다고 토빈(Tobin) 영사에게 말했더니 그가 미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 제임스(James)를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다.

과연 서운갑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