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2. 28. 05:08

가지를 뚫는 햇살7(손진길 소설)

 

미국이 일본제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선택한 전략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소련군의 참전이다. 또 하나는, 원자폭탄의 투하이다. 남쪽 태평양바다에서는 미군이 일본군을 치면서 성공적으로 북상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중국대륙에 진출하고 있는 일제의 막강한 지상병력 관동군(關東軍)의 존재이다.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蔣介石) 군대가 일제의 관동군을 상대하고 있지만 계속 밀리고 있다. 그대로 가면 중국이 완전히 관동군에게 점령이 될 것만 같다. 따라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蘇聯)의 군대를 끌어들이더라도 관동군을 격파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만주와 북한의 땅까지 소련군에게 미끼로 제공하고자 결심하고 있다.

필리핀을 되찾고 일본 열도로 북상하고 있는 미국의 해군력을 일본제국의 해군과 공군이 결코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일본제국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군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비참한 옥쇄작전(玉碎作戰)을 선택하고 있다. 그 핵심은 미군의 일본열도 상륙을 결사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충성스러운 일제의 신민들에게 죽창(竹槍, 대나무를 깎아서 날카롭게 만든 창)사용법을 훈련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의 해군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함선을 이용하여 일본 열도를 점령하고자 하면 결국에는 해병대와 육군이 대규모 상륙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그 수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수십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7천만명에 달하고 있는 일본사람들이 죽창만 들고 해변가에 집결하여 인해전술로 밀어붙인다고 하면 상륙하고 있는 미군은 다시 바다로 내쫓기고 말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하지만 일본 열도에 상륙하게 되는 미군의 피해는 생각보다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인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그러한 미래만은 피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지도자들이 선택하고 있는 것은 갓개발한 원자폭탄을 폭격기 B29에 싣고 가서 일본의 주요도시에 떨어뜨리는 충격요법이다;

실제로 그 작전이 19458월에 2차례나 실시가 된다.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뜨렸는데 처음에는 우라늄235 핵폭탄이고 두번째는 플루토늄239 핵폭탄이다. 그 위력은 처음보다 둘째가 더욱 센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원자폭탄의 공격에 직면하자 그때서야 일제의 군부는 정신이 번쩍 들고 있다.

그 이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그 옛날 명치원로들은 물론 그들의 정치적 후계자인 군부지도자들의 고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박살낸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협박이다. 만약 일제의 천황과 서남부 출신의 정치지도자들이 즉시 항복하지 아니하면 그 다음에는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동경 한복판에 원폭을 투하하고 말겠다는 경고인 것이다.

따라서 일제의 군부는 미군에게 시간을 달라고 비밀리에 요청하고 마침내 1945815일 정오에 천황을 내세워서 방송으로 무조건 미국에게 항복한다고 발표하고 만다. 그것으로 극적으로 태평양전쟁이 미국의 의도대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선택한 전략 가운데 소련군을 막판에 끌어들인 그것이 굉장한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돌이켜보면, 유럽전쟁의 막바지에 있어서 소련군이 동에서 서로 진격함에 따라 동구권이 모두 소련에게 넘어갔다. 그러한 일이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그대로 재현이 되고 만다. 소련군의 남진으로 일제의 관동군이 무장해제가 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대신에 그만 만주와 북한을 소련군이 점령하고 만 것이다.  

북한에는 소련군이 남한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의 대치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만약 소련군이 남침을 감행한다고 하면 미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소련군은 육군을 앞세워서 그대로 밀고 내려오면 된다. 하지만 하와이에 태평양사령부를 두고서 해군을 지휘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그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함선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미군의 수가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련군의 수와 미군의 수는 한반도에서 비대칭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현실 때문에 미국이 선택하고 있는 전략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제의 군부가 사용하고자 한 바로 그 전략이다. 일본의 신민으로 하여금 죽창을 들고서라도 대 옥쇄작전을 실행하게 한 그것이다.  

그와 같은 결사적인 방어태세만 갖출 수 있다고 한다면 남한의 인구 3천만명으로 충분히 남진하는 소련군을 상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련과 북한의 공산주의자와 자유 대한민국의 백성이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일이 실제로 역사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의미인 것이다;

1950625일 새벽에 북한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따발총을 쏘면서 일시에 남하하였을 때에는 서운갑이 그러한 이치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선명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변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기 때문이다.

월성군청에서 농정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운갑(徐運甲) 주사는 3명의 계장으로부터 보좌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한 주사보가 바로 최현수(崔賢洙)이다. 그가 하루는 무단결근을 하고 있다. 상사인 서운갑은 어떤 일이 그에게 발생한 것인지 걱정이 되어 군청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최현수의 집을 방문했다.

그때 서운갑최현수로부터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과장님, 저의 장모님이 그만 깨어나지 못하시고 갑자기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딸은 여럿이지만 아들은 하나인데 그 아들이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전사하고 말았다는 통지서를 받자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이지요. 별안간 그렇게 되었기에 사위인 제가 직장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전통적으로 핏줄을 중시하고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자손의 도리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끌고가서 희생시키고 있다. 그 결과 가문의 대가 너무나 많이 끊어져 버리고 있다. 그 슬픔과 절망감이 노인들에게는 인생의 허무함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서운갑은 아내 황옥주로부터 더욱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다. 그녀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여보, 제가 처녀시절에 근무하고 있던 양장점 모던 걸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연수생이 있었어요. 아마 당신도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이름이 유선미(兪善美)이거든요… “.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당시에 유선미라고 하는 처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서운갑이 말한다; “그래요, 이제 기억이 나네요. 참한 처녀인 것 같던데. 그런데 어째서 그래요?... “. 그 말에 황옥주가 슬픔이 깃든 어조로 말한다; “젊은 나이에 선미가 그만 과부가 되고 말았어요. 그 남편이 이곳 포항에서 경찰이었는데 빨치산의 야습으로 희생이 되고 만 것이지요. 그러니 이 일을 어떻게 해요?... “;

그 다음 황옥주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서운갑이 듣기에 가슴이 아프다;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선미가 그만 과부가 되고 말았기에 모녀간에 먹고 살 방도가 막막한가 봐요. 정부에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선미가 옛날에 다니던 양장점을 찾아왔다고 해요. 제가 친정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예요”.

서운갑이 물어본다; “그러면 모던걸에서 다시 근무하게 된 거예요?”. 황옥주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에 양장점도 잘 운영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선미의 처지가 하도 딱하여 친정에서는 그냥 근무하라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요. 정말 앞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선미가 살아갈 일이 걱정이예요. 이 골육상쟁의 전쟁이 언제나 끝날 련지!... “.

당시 서운갑은 아내 황옥주와의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장남이 1945년 가을에 태어난 서경일(徐經日)이다. 차남은 1949년 봄에 태어난 서한국(徐韓國)이다. 그리고 장녀의 이름이 서민경(徐敏慶)인데 1952년 여름에 태어났다. 딸이 태어났을 때에는 장남 경일이가 벌써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일학년으로 다니고 있다;

아내 황옥주3자녀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고 바쁘다. 남편 서운갑은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경주시내의 월성군청으로 출근하고 나면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그리고 시부모님은 자전거포에서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시기에 자주 집을 비우고 있다. 그렇게 다들 잘 지내고 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고 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전쟁의 아픔과 그 상처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19509월에 맥아더(MacArthur) 사령관이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에 성공하였기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인민군은 퇴로가 끊기고 만다. 그 때문에 그들이 산악을 타고서 북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미처 북으로 탈출하지 못한 인민군들이 양식과 물자를 조달하기 위하여 민가에 내려오고 또한 도시를 점령하기 위하여 기회를 보아 경찰서를 야습하고 있다.

수년간 빨치산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후방의 군과 경찰병력이 총출동을 하고 있다. 그러한 전투가 포항과 경주를 잇고 있는 산악지역에서 크게 발생하고 있다. 그 산아래에는 서운갑이 포항에서 경주로 출퇴근할 때에 이용하고 있는 신작로가 길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므로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서 매일 아침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서 아내 황옥주는 언제나 무사귀가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다.  

한편, 전쟁의 상흔이 국민들의 가슴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그러한 비극적인 시대에 군청으로 출근하면서 서운갑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가 사색하고 있는 주제는 나름대로 상당히 학문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서운갑이 개인적으로 오천덕(David Paul Ross) 선교사에게 사사하여 국제정치에 관하여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세계의 유일한 패권국이 되어버린 미국이 더 이상 예전의 고립주의를 고집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좋든 싫든 소련의 서진 및 남진정책에 따라 공산주의 국가가 계속 발생하는 것을 앞장서서 막아야만 한다. 그것이 벌써 1900년에 하와이를 미국의 영토로 편입하고 나날이 태평양국가로 발전하고 있는 미국의 당면과제이다;

그러므로 미국정부는 공식적으로는 1948 8월에 대한민국정부가 성립되자 9월부터 미군정을 끝내고 모든 통치권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그것이 아니다. 소련군의 무기를 받아서 급성장하고 있는 북한인민군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장개석(蔣介石)의 국민당의 군대와 모택동(毛澤東)의 공산주의 인민군과의 대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드디어 1949 10월에 장개석이 패하고 중국에서 모택동의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만다. 이제는 때를 보아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중국을 옥죄어야 한다. 그것이 패권국 미국의 공산권 대봉쇄(大封鎖)전략(Containment Policy)이다. 그 방법이 한마디로, 남진하는 북한인민군을 북으로 쳐올리면서 남한에 견고한 미군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긴박한 스토리를 서운갑이 당시에는 깊이 있게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그가 미국에 유학하여 국제정치를 심층 연구하게 되자 그와 같은 미국의 정책과 대전략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군청공무원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서운갑의 그 다음 인생의 행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