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2. 27. 07:31

가지를 뚫는 햇살6(손진길 소설)

 

3. 군청 주사보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하는 서운갑

 

서운갑(徐運甲)1948627일 주일에 오천덕(David Paul Ross) 선교사와 나눈 대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날 오선교사가 서운갑에게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보라고 다음과 같이 권면했기 때문이다; “운갑, 곧 대한민국정부가 수립이 될 것이야. 그러니 아직 젊은 자네는 국가공무원으로 일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동안 일년 반이나 정치학을 배웠으니 공무원생활을 잘 할 것 같은데…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자전거 및 리어카 수리와 판매업에만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저희 가족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일을 떠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다고 하면 먼저 부모님과 상의를 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집사람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하고요!... “.

그 말에 오천덕 선교사가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당장 결단을 내리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물론 집안식구들과 두루 의논해보아야 하겠지. 그렇지만 내가 판단하기로는 운갑 자네가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또한 머리가 뛰어나니 장차 정치학자나 행정관료로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권해보는 말이야”.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서운갑이 평소 궁금한 점을 질문한다; “그런데 오선교사님, 미군정에서는 앞으로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대한민국정부에게 정권을 이양하게 되는 것입니까? 행정상의 공백이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오선교사가 먼저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요점만 설명한다; “좋은 질문이야. 사실 194598일에 38도선 이남에 진주한 미육군의 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 중장은 일본인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으면서 총독부의 행정조직을 접수했어요. 당시 하지 사령관으로서는 일제의 조선총독부 조직을 장악하고 그것을 미군정청의 하부조직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시급했지요. 따라서 그는… “;

처음 듣는 자세한 이야기이다. 서운갑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오선교사가 알기 쉽게 요점만 설명한다; “휘하의 아놀드(A. V. Arnold) 소장을 군정장관(軍政長官) 임명하고 그에게 그 작업을 지시했어요. 그러자 아놀드가 한국인 김성수(金性洙) 11명의 도움을 받아 그 일을 재빨리 마무리했지요. 그후“.

그 다음 설명은 더욱 간결하다; “이듬해 19463월에는 미국인 군정장관 아래에 16개 부처를 두고 남한을 통치하였는데 그 손발이 되고 있는 행정조직은 전부 한국인 민정장관(民政長官)이 관리했어요. 그러다가… “.

역시 간단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그 다음해 19476월에는 이른바 남조선과도정부를 수립하였는데 그것은 한국인 민정장관이 전면에 나서고 미국인 군정장관은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군정장관이 서명하지 아니하면 군정법령(軍政法令)이 전혀 효력이 없기 때문이니까요. 그런데… “.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오선교사가 흥미로운 실제문제를 이야기한다; “최근 1948510일에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제헌의원 198명을 선출하였는데 그 선례는 사실 민선 입법의원 45명의 선출이었지요. 비록 호주(戶主)에 한하여 투표권을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입법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남한에서 제헌의원 총선이 잘 시행이 되었어요. 그리고 “;

그가 이제는 사법부의 구성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지난 54일에는 군정법령 제192호에 의거하여 재판소 조직관련법을 제정하여 공포했지요. 그에 따라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이라는 3심제 사법부가 구성되고 재판권의 독립이 이루어졌어요. 그러므로 이제 제헌헌법이 마련되고 한국정부가 수립되면 실제로 남한에서는 3권분립에 따른 민주정부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한가지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오선교사님, 대한민국정부는 언제쯤 출범하게 되는 것일까요?”. 오선교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조용히 대답한다; “내가 알기로는 지난 610일에 일단 국회법이 제정되었으니 다음달에는 헌법이 제정되고 공포가 되겠지요. 그러면 헌법에 의거 초대대통령을 제헌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고 곧이어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을 선포하겠지요. 그런데“.

그 다음 오선교사의 설명은 서운갑이 전혀 생각해보지 아니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이 선포되면 비로소 그때부터 한미(韓美)간에 행정권 이양이 이루어질 거예요. 그 일이 확실하게 마무리되어야 실질적으로 남한 땅에서 미군정이 청산되고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이 출범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서운갑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따라서 그의 질문이 다음과 같다; “그렇군요. 힘이 없으면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해보아야 실효성이 없겠네요. 그렇다고 하면 대한민국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는 국군의 창설과 국방력의 강화가 무엇보다 급선무이겠군요. 그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

크게 기대를 하고서 대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궁금하여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오선교사의 답변이 의외로 진지하다; “그것이 남북한 사이에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야. 내가 듣기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전국적으로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벌써부터 인민군의 무장에 매진하고 있다고 해요. 더구나… “;

그의 설명이 구체적이다; “소련의 스탈린이 일제의 관동군(關東軍)에게서 수거한 무기를 북한인민군에게 대거 제공하였거든. 그러니 남북한 사이에 군사의 수와 무력의 차이가 엄청 크다고 보아야지. 실질적으로, 어떻게 그 간격을 메꾸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 점에 유의하여 앞으로 미국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해요!”.

오선교사의 대답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 이유는 2년이 지나자 금방 그것이 현실문제로 대두되고 그에 따라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래를 미처 알지 못한 채 당시에 서운갑대한민국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를 생각하고서 그저 자신이 자전거포의 운영에만 매어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어쨌든 그러한 주요한 설명을 들었기에 서운갑은 미군정이 청산되면 자신은 새로 출범하는 대한민국에서 지방공무원으로 한번 일해볼 생각을 가진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부모님과 아내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그러자 일주일 후인 194874일 주일에 다시 오선교사를 만나자 먼저 그 소식을 전한다.

서운갑의 이야기를 듣자 오선교사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참 잘 되었어요. 이제부터 부친이 자전거포를 운영하시겠다고 하니 운갑이는 공무원생활을 시작하면 되겠군요. 그래 내가 이왕 공무원생활을 하도록 권유했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고서 한번 좋은 자리를 알아보아 주지요!. 어디가 좋을까? 여기 포항에서 가까운 지방관청이 아무래도 좋을 것이야, 하하하“.

그 말에 서운갑은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공무원생활을 하겠다고 하니 오선교사님이 기분이 무척 좋으신 모양이지. 그렇지만 시험도 치지 아니하고 면접도 보지 아니하고 나를 곧바로 지방관청에 공무원으로 집어 넣을 수는 없을 것이야. 평민인 미국인 선교사에게 그 정도의 힘이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그 다음주일 곧 714일에 오선교사를 만났더니 대뜸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갑이, 정말 잘 되었어. 마침 여기서 80리밖에 떨어지지 아니한 월성군청에 주사보 자리가 하나 비어 있더군. 그러니 내일 경주로 가서 시내 중심지에 있는 월성군청에 들리도록 하게나!… “;

크게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서운갑에게 오선교사가 부연설명을 한다; “비록 4() 주사보(主事補) 자리이지만 자네가 열심히 일하면 금방 주사(主事)로 진급이 가능할 것이야. 내가 군수(郡守) 양반에게 확실하게 말해 두었으니 곧바로 발령이 날 것이야! 그러니 반드시 내일 오후 2시에 군수실로 찾아가보도록 하라고. 내 이름을 대면 알 것이야!”.

서운갑은 오요한(John Ross)의 부친 오천덕 목사를 아버지로 알고 그의 말을 신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그 말 그대로 실천한다. 실제로 그가 경주시내에 있는 월성군청을 방문하였더니 군수가 당장 인사과장을 불러서 지시한다; “강과장, 서운갑을 비어 있는 수리계장(水利係長) 자리에 발령하게!. 대구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야. 자 그러면 서계장, 잘 부탁하네!”.

월성군수가 그날 서운갑에게 악수까지 청하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이다. 당장 다음날부터 서운갑이 월성군청에서 수리계장으로 근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포항집에서 경주시내까지 매일 아침에 오토바이를 타고서 출근한다.

30분이 걸리는 거리이다. 그리고 그가 맡고 있는 수리업무를 살피는데 있어서도 그의 오토바이는 참으로 유용하다. 왜냐하면, 오토바이를 타고서 서운갑은 빠르게 여러 시골 면()지역의 현지를 직접 답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해 194812월 초순에 서운갑25세 생일을 맞이한다. 그 정도로 그는 아직 젊은 나이이다. 그러므로 그는 월성군내에 있는 그 많은 면지역의 이조천을 방문하고 수리사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한다. 농촌에서는 ()를 만들고 농수로를 만드는 일이 논농사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농촌에서는 수리조합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것을 군청에서는 행정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탁상행정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현장에서 직접 관리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서 발로 뛰고 있는 공무원이 바로 서운갑이다.

그래서 그런지 1년반이 지나자 서운갑19502월에 농정과장으로 진급한다. 이제는 4()의 직급이며 소위 주사이다. 일제시대에는 시골에서 어른들이 주사계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았는데 대한민국의 지방관청에서 서운갑 자신이 주사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더욱 열심히 월성군청에서 공무원생활을 하고 나중에는 진급시험을 보고서 한번 3급 을인 사무관이 되어보고자 하는 청운의 꿈을 꾸고 있다. 사무관이 되면 바로 지방관청장인 군수영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자신의 문중에서도 군수가 한사람 탄생했다고 경축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것이 꼭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해 1950625일 아침이 되자 대대적으로 북한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포격소리가 38도선 근방에서 들리더니 단지 3일만에 곧 628일 새벽에 북한인민군의 탱크가 서울까지 밀고 들어온다;

그런데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이승만 정부가 급히 피난하고 말았는데 그 뒤를 바로 뒤쫓지 아니하고 북한인민군이 서울에서 630일까지 3일간 지체하고 있다. 그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훗날 그 일에 대하여 서운갑이 주일날 오선교사를 만나서 질문했더니 그의 대답이 굉장히 흥미롭다.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오판을 했다고 보아야지요. 그는 미군만 물러가면 남한의 국군은 잘 무장이 된 인민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보았지요. 게다가 남한의 수도인 서울만 점령하면 지방에서는 남노당이 득세하고 이승만 정권이 곧 붕괴할 것으로 판단했어요. 그런데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미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고 말았지요. 그것이 그의 패착입니다!”.

그해 19507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충청도 지역에서 많은 피난민들이 경상도로 밀려들고 있다. 경주와 월성군 그리고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기에 대구와 부산 사이의 경상도에서는 피난 온 친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서울의 부자들은 역사가 오래이고 조용한 양반도시 경주를 선호하여 많이 피난 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월성군 시골에도 피난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군청의 공무원들이 그 실정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지원사업에 나서느라고 바쁘다. 그런데 서운갑이 수리계장을 거쳐 농업과장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보니 해방후부터 계속 흉년이 들고 있다. 겨우 3년 연속 흉년이 끝나고 숨을 돌리고 있는데 그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만 것이다.

남한 땅에서 생산한 곡식으로는 식량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미국정부에서 신생국 대한민국에 많은 원조를 주고 있다. 특히 전쟁으로 피난민들이 대거 발생하자 미국정부가 큰 선박으로 미국에서 생산한 밀을 원조물자로 가지고 온다. 군청에서는 그것을 받아서 골고루 배부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오천덕 선교사가 요로를 통하여 미국의 기독교계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그 내용이 중고 의류와 생필품 등의 원조물자를 보내어 달라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를 통하여 미국의 옷가지와 모포 등이 한국사람들에게 엄청 분배가 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은 전후의 미국시민은 참으로 그 심성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서운갑이 알기로는 1910년대와 1940년을 전후한 양차 유럽전쟁 당시 미국은 군수물자를 수출하여 엄청난 국부를 축적한 나라이다. 게다가 오선교사의 설명에 따르면 1776년에 모국인 유럽의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1880년대에 벌써 그 산업생산력이 세계의 (Top)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국인 영국과의 독립전쟁의 경험 그리고 유럽에서의 박해와 두차례 전쟁을 피하여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들의 생각이 공통적으로 유럽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가급적 국제문제에 개입하지 아니하려고 했다. 그것이 미국정치의 현실론이며 국제적인 고립주의이다;

그와 같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어떻게 세계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국제주의로 완전히 변화하게 된 것일까?’, 그것이 서운갑이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해하고 있는 의문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