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2. 21. 02:53

가지를 뚫는 햇살4(손진길 소설)

 

서운갑은 사전에 미국선교사인 오천덕(David Paul Ross)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1945815일 정오에 일본제국의 천황이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한다고 방송하였지만 그것이 곧바로 한민족에 대한 해방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의 입장은 그것이 아니다.

이제는 천황이 미국에게 항복을 발표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폐지된 것과 진배가 없으며 그들이 조선사람을 어찌할 수 없다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마치 26년전 1919기미년(己未年)에 만세를 부른 것과 같이 재빨리 바깥으로 뛰어나가 감격에 겨워서 시가지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정부상태와 같다. 따라서 조선총독부에서는 헌병대에 지시하여 재물의 파괴나 일본인에 대한 상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엄중하게 감시를 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일은 지방 중소도시인 포항(浦項)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을 보면서 서운갑은 군중심리에 휘말리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포 운영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는 만삭이 된 아내 황옥주가 무거운 몸을 가누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살고 있다. 그녀는 나이 스물인 20세에 불과하지만 살림솜씨가 야무지다.

그것을 보면서 시어머니 장화련이 다시 한마디를 하고 있다; “며늘아, 방에 들어가서 좀 쉬도록 해라. 그런 무거운 몸으로 장독대를 닦고 있으면 애기가 어떻게 될까 나는 걱정이 된다. 그러니 그만 두거라. 내가 너를 대신하여 반들반들하게 장독대를 닦아 놓도록 하마”;

그 말을 듣자 황옥주가 허리를 펴고 웃으면서 대꾸를 한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 일은 운동삼아 해야 나중에 순산할 수가 있어요. 너무 쉬게 되면 오히려 해산할 때에 힘이 든다고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그래서 하는 일이니 아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 말에 장화련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며늘아, 그런 이야기도 네가 다닌 중등학교에서 가르쳐주었던 모양이구나.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된다. 내가 평생 아기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 모양이다”.

그 말을 듣자 그때서야 황옥주가 행주를 부엌에 가져다 두고서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말씀대로 이제 좀 쉬고자 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해산일이 한달이나 남아 있으니 그저 조금씩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일찍이 장화련은 시집을 와서 수년간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자 처음에는 남편 서달호에게 첩이라도 얻어서 아들을 얻으라고 권했다. 500석지기 부호인 외아들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서달호의 마음이 요지부동이다. 그는 오로지 아내 장화련만을 사랑하면서 10년 세월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장화련은 용하다는 한의원을 여럿 찾아보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을 만든다고 한약도 많이 지어서 먹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본 남편 서달호10년이 훨씬 지나서야 자신의 내심을 밝히고 있다.

그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허허허, 자식이 없으면 어때요. 나는 당신이 좋아요. 그리고 첩을 들이게 되면 집안이 시끄럽고 당신이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재물이 있으니 아들은 양자를 들이면 됩니다. 그것도 친척 가운데 아주 건강하고 머리가 좋은 조카를 양자로 택하면 되지요. 허허허“.

10년의 세월이 더 지나자 42세가 된 남편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4촌 동생과 재종인 6촌 동생 그리고 나중에는 멀리 가서 살고 있는 3종인 8촌 동생까지 전부 만나서 그들에게 아들을 양자로 줄 수가 있는지를 타진한 것이다.

서달호 부부가 살고 있는 고장은 달성 서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기계면(杞溪面)이다. 그곳 기계천(杞溪)의 물줄기가 경주에서 흘러오고 있는 큰 강 형산강(兄山江)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서달호는 형산강(兄山江)을 따라 올라가서 그 강이 지나고 있는 천북면(川北面)에 살고 있는 3종동생 서달수를 만났다;

그에게 마침 두 아들이 있기에 그 가운데 차남 서운갑을 자신에게 양자로 달라고 사정했다. 서달호가 서달수에게 매달린 이유는 11살짜리 서운갑이 매우 영특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이왕 양자를 얻는다고 하면 그렇게 똑똑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서달호 부부는 1934년에 서운갑을 양자로 입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자 1944년 봄에 결혼을 시키고 이제는 며느리가 아들을 순산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손이 귀한 서달호 부부의 간절한 바램이다. 그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장옥주가 떡 두꺼비와 같은 아들을 낳아서 시부모의 품에 안겨주고 싶어한다.

서운갑은 사랑하는 아내 장옥주가 만삭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는 거리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그저 착실하게 자전거포 운영에만 전념하고자 마음을 다잡고 있다. 젊은 혈기에 군중심리에 휩쓸리게 되는 것을 나름대로 적극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서운갑이 일찍이 미국선교사 오천덕 목사에게서 들은 그대로 소위 해방정국이 움직이고 있다. 오선교사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 바가 있다; “내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일본제국의 항복을 확실하게 받기 위하여 두가지 조치를 마련하고 있어요. 하나는, 소련군에게 참전을 권유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일제의 지도부를 폭격으로 날려버리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질문을 했다; “만약 일본제국이 항복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오선교사가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다; “정식으로 항복문서에 사인을 받고 그 다음에는 일본에 미군정(美軍政)을 실시할 것입니다. 지금 필리핀에서 군정사령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맥아더(MacArthur) 장군이 적임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조선반도이지요… “;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긴장하고 있는 서운갑의 귀에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온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조선반도를 완전 점령하여 남진하는 소련의 세력을 막고 싶지만 그것이 어려워요. 왜냐하면, 소련의 스탈린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하여 만주와 조선땅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오선교사가 서운갑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한다; “미국은 우선 소련군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하여 만주와 북조선을 그들에게 내주는 것으로 협상을 하고 있어요. 사실 소련군의 힘을 빌리고 싶은 이유가 또 하나 있어요. 그것은 일본제국이 중국에 파견한 관동군(關東軍)의 무력이 막강하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그들을 무장해제하는 일을 소련군에게 맡기고 싶어해요. 그 결과… “.

오선교사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조선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하고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여 군정을 실시하는 것으로 벌써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소련군이 생각보다 빨리 남진할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였다고 하는 오천덕 선교사의 설명이 상당히 정밀하다. 그는 조선의 동해안 남부에 있는 중소도시 포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역할은 아무래도 또 하나가 있는 것만 같다. 그는 조선의 상황에 대하여 미국의 해외정보기관에 현지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서운갑이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오선교사의 이야기에서 별로 벗어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 1945815일 이후 조선반도의 상황전개이다. 202312월에 백세가 된 서운갑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당시 해방정국의 전개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조선사람들이 멋모르고 미국의 전쟁승리로 말미암아 이제 조선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미리 좋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그와 같은 축제의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는 자들이 사실은 일제치하에서 암행하고 있던 극소수의 민족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조선총독부와 헌병대의 철저한 감시로 인하여 무장세력으로 성장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군중을 선동하는 전술만은 탁월하다. 그들이 이제는 해방(解放)을 맞이했으며 광복(光復)의 시대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 말을 무작정 따르고 있는 자들이 일반인 조선 사람들이다.

둘째로, 서운갑이 어른들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1919기미년(己未年)에 감격스러운 만세사건이 전국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이 다시 발생하고  있는 것이 1945815일 오후부터 9월 중순 무렵이다.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그 이북을 북한(北漢)이라고 부르고 그 이남을 남한(南韓)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이북지역을 소련군이 먼저 점령했기 때문이다. 194588일에 소련이 일본제국에게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만주로 쳐들어와서 관동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815일에는 벌써 조선반도에 상륙하고 있다. 8월말에 38도선에 이르게 되자 소련군은 더 이상 남진을 하지 아니하고 이북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는데 주력한다;

 그 후 98일에 미군이 조선에 들어와서 38도선 이남을 점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38도선 이북에서는 소련의 군정이 그 이남에서는 미국의 군정이 실시가 된다;

 따라서 북한남한이라고 하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용어가 서운갑100세를 맞이하고 있는 2023년말까지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조선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세월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미군이 남한 땅에 들어올 때까지 조선총독부와 그들의 헌병대가 질서를 유지한 것이 사실이다. 오선교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정부의 부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사람들이 해방과 광복이라고 부르짖으면서 태극기를 만들어 흔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21세기에 들어서서 월드컵 축구게임에서 한국팀이 4강에 올라갔다고 국민들이 시가지에서 축제를 벌인 것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조선인의 자축과는 전혀 상관없이 냉정한 미소 양국의 군정이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실시되고 말기 때문이다. 미군정의 사령관이 하지(Hodge) 장군이다. 그는 1919년 상해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의 중경(重慶)에서 남한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김구(金九) 등 임정요인들은 19451123일이 되어서야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개인적으로 외교활동을 벌였다고 하는 이승만(李承晩)은 그보다 일찍 일본에 들린 다음에 19451016일에 입국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개인자격이다. 그가 그 옛날 상해임시정부에서 대통령으로 피선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미군정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표기하여 국무성에 보낸 문서도 아무 효력이 없다.

넷째로, 미군정은 미국 국무성의 훈령에 따라 대한민국을 건립해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정책은 해방정국에 있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 점에 대하여 서운갑오천덕 선교사와 때로 깊숙한 이야기를 나눈 바가 있다. 그와의 대화 가운데 서운갑이 얻어 들은 내용이 다음 세가지이다;

(1)  첫째, 미국은 애초에 조선의 통치를 유엔(United Nations)에 넘겨서 신탁통치를 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면 미국과 소련이 유엔의 이름으로 하나의 조선을 신탁 통치하게 되니 미국의 입장에서는 편리한 것이다. 왜냐하면, 유엔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유엔의 재정을 대부분 미국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련의 스탈린은 그 제안을 당연히 거절했다.

(2)  둘째, 미국은 조선을 나누어서 다스리고 있는 미군정과 소련군정이 하나의 공동위원회를 만들어서 통치를 하다가 조선사람들이 자치능력을 보이게 되면 그때 가서 하나의 조선정부를 수립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스탈린이 반대하고 있다;

(3)  셋째,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의 속셈을 알아채고서 선수를 치고 나온다. 그들은 소련에서 정치교육을 받은 젊은 조선인 장교 김일성(金日成)을 수반으로 하는 단독정부를 북한에 구성하고서 은밀하게 북한인민군을 양성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미국은 남한에도 단독정부를 빨리 구성하고자 한다. 어쩔 수 없이 미군정의 사령관을 지낸 하지(Hodge) 군정장관은 친미노선을 재강조하고 있는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1945년 가을에 접어들자 서운갑의 아내 황옥주가 아들을 순산한다. 젊은 그들 부부 뿐만 아니라 양부모인 서달호장화련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때 서운갑의 나이가 22살이고 그의 아내인 산모 황옥주20살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는 서달호53세이고 할머니가 되는 장화련52세이다.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손자가 탄생을 했으니 그 기쁨이 대단하다. 산모 황옥주는 가슴이 뿌듯하다. 남편 서운갑이 황옥주에게 속삭이고 있다; “여보, 정말 수고했어요. 이렇게 튼실한 아들을 낳아주었으니 내가 당신을 평생 업고 다녀야 하겠어요. 산후조리를 잘 하세요. 내가 맛있는 것을 많이 사다 줄께요”;

아직 52세인 시어머니 장화련이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산모인 며느리에게 맛있는 쇠고기 미역국을 계속 끓여다 준다. 흰 쌀밥에 쇠고기 미역국을 일주일이나 먹으면서 황옥주가 시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고마워요. 제가 부엌에 나가봐야 하는데 이렇게 염치없이 연일 미역국만 얻어 먹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장화련이 호호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며늘아, 내가 언제라도 흰 쌀밥에 쇠고기 미역국을 해다 바칠 테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산후조리를 잘 해라. 그래야 또 훗날 아들을 생산할 것이 아니냐, 호호호“.

그 말에 황옥주가 대답한다; “하나는 외로우니 둘은 되어야 하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들 둘은 책임지고 낳아서 어머니 품에 안겨드릴 것입니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고부지간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달호서운갑이 부자간에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하기야 산모인 황옥주가 아직 스무 살에 불과하니 마음만 먹는다고 하면 자식을 여럿 생산할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서달호 부부가 흐뭇해 하고 있다. 그리고 서운갑은 장남의 이름을 서경일’(徐經日)이라고 지은 후에 양아버지 서달호에게 보여주고 있다.

서달호가 그 이름자의 뜻을 한참 생각하다가 말한다; “운갑아, 금년에 우리가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우리 조선이 발전하여 훗날 일본을 경영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네가 장남의 이름자를 이렇게 지은 모양이구나. 내 생각이 맞는 것이냐?”.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공손하게 대답한다; “아버지, 제 생각이 그러합니다. 우리 조선도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출발을 해야지요. 그리고 훗날 크게 발전하여 일본에게 뒤떨어지지 아니하는 선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에 우리 경일이가 앞장을 서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부자간에 그렇게 서경일의 이름자의 뜻을 새기고 있는 사이에 19459월이 어느덧 저물고 있다. 앞으로 서운갑의 신상에는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