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2. 18. 11:36

가지를 뚫는 햇살3(손진길 소설)

 

2. 오천덕 선교사와의 대화

 

서운갑은 자신의 중학교 동창인 오요한(John Ross)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시점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가 194111월말이다. 이듬해 1월에 졸업식이 잡혀 있었지만 오요한은 참석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1942년 봄학기부터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예정되어 있기에 그가 서둘러 조선을 떠났기 때문이다.

만약 오요한이 그해 12월달에 미국의 여객선을 타고 북아메리카로 떠나고자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점에 대하여 서운갑1943년 봄에 오천덕 선교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요한이가 일찍 미국으로 출발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야. 만약 조금 늦었더라면 미국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야. 일본이 1941127일에 하와이를 공습함에 따라 양국은 서로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서운갑이 오요한을 처음 만난 때는 그가 대구에 있는 그 명문 사립중학교에 입학한 직후이다. 신기하게도 그는 요한이와 같은 반에서 짝이 되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두사람이 포항출신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저절로 절친이 되었다. 하기야 5년간 대구에서 유학생활을 같이하고 있으니 친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두사람이 다니고 있던 사립명문은 그 역사가 참으로 오래이다. 1906년과 그 이듬해에 선교사들이 서구식 건물을 짓고 1908년부터 신입생을 받았다. 5년제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중학과정의 학교인데 건물은 거의 대학수준이다;

 그리고 대구의 서부인 그 학교 주위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구시내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큰 시장이 1923년경 그 학교 인근으로 이주한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1919년에는 대구시내 중구에 있던 기독교의 큰 병원이 그 사립학교 앞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오요한의 외모는 서양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일본말 비공식적으로는 조선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말에 있어서 그는 발음상 조선 토박이와 전혀 차이가 없다. 경상도 사투리가 투박하다.

그렇지만 그가 서운갑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한번은 영어를 사용하는데 그것 또한 미국인 그대로이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이 한마디를 했다; “, 요한아, 내가 너와 5년간만 학교에서 짝지를 하면 나도 너처럼 영어에 능통하게 될 것 같다!... “.

그 말을 듣자 오요한이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운갑아, 나는 짝지인 네가 좋다. 그래 내가 한번 인심을 썼다. 우리 5년간 같이 어울려 다니자. 방학이 되면 포항에 있는 우리집에서 만나자. 주일날 우리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도 나가자고. 그렇게 함께 지내게 되면 너도 영어가 많이 늘게 될 것이야!... “.

서운갑은 친구 오요한을 만나게 됨으로써 영어를 듣는 귀가 생기고 견문이 넓어졌으며 국제정세에도 눈이 트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요한의 부모가 보통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천덕 목사 부부는 조선에 선교사로 오기 전에 미국의 대학에서 다른 분야를 공부한 지식인들이다.  물론 두사람은 신학과정을 이수하고 교회에서 부교역자생활을 한 후에 정식으로 목사가 되고 그 다음에 선교사로서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렇지만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젊은 시절 오천덕의 대학에서의 전공은 국제정치이다. 그리고 부인 헬렌(Helen)은 기계공학이다. 그러므로 두사람의 아들인 오요한과 요한의 여동생인 오한나(Hanna Rose)는 집에서 부모로부터 여러가지 학문이야기를 듣고서 자라나고 있다. 거기에 요한의 절친인 서운갑이 다소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오요한194111월말에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자 2년후인 19431월에는 그의 여동생 한나가 포항의 부모님을 떠나 경성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자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1943년 봄에 서운갑이 다시 오천덕 선교사의 집에 출입하게 되었을 때에 한번은 그집의 딸 오한나의 근황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선교사님, 그런데 한나는 경성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나요?”. 그 대답이 생각밖이다; “우선은 여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지. 하지만 몇 년 후에는 미국에 유학을 보낼 생각이야!”.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지금 미일(美日) 양국관계는 전쟁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몇 년 후에 한나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수가 있지요?... “. 그 말에 오천덕 선교사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허, 이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거야. 당연히 미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겠지. 그러면 한나가 당당하게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가 있어요!”.

서운갑은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에서 듣고 있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래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기가 딱했든지 오천덕 선교사가 그때부터 틈이 나면 국제정세를 위시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오천덕 선교사의 아내 헬렌서운갑에게 기계공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들 부부는 자녀들이 집을 떠나 있기에 서운갑이 마치 아들 요한처럼 생각이 되어서 그러한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서운갑이 당시 헬렌 사모님을 통하여 들은 지식도 상당하다. 그 중에 100세가 된 202312월 지금까지 그의 뇌리에 남아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증기선모터선박과의 차이이다. 그 당시 헬렌의 말이 다음과 같다; “1914년에 유럽전쟁이 발생하자 미국은 영국에 많은 군수물자를 수출했어요. 그런데 증기선으로 대서양을 통과하는데 있어서 그 속도가 너무 느렸지요. 그래서… “.

그녀의 설명의 핵심이 다음과 같다; “1897년에 독일의 과학자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 모터엔진을 발명했어요. 그것을 이용하여 미국이 모터선박을 가장 먼저 건조하여 유럽전쟁중인 영국을 지원하기 위한 대서양 항해에 사용했지요. 그 결과 모터엔진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가진 선박은 연료를 얻기 위하여 항해 도중에 여러 도시에 들릴 필요가 없고 또한 그 속력이 대단했어요. 한마디로, 운송수단의 대혁명이 발생한 것이지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질문을 했다; “그러면 요한이가 타고간 선박은 내연기관을 가진 배이겠군요. 그러므로 그 항해의 방향이 달라졌겠습니다”. 그 말에 헬렌이 호호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호호호, 운갑이는 역시 머리가 좋아. 그렇지요. 그 옛날에는 미국에서 조선으로 오자면 증기선이 연료의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서양과 인도양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오느라고 실로 기간이 많이 걸렸지요. 그러나… “.

잠시 숨을 쉬고서 헬렌이 진지하게 설명한다; “1920년대부터는 모터선박이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곧바로 항해하고 있기에 조선에서 미국으로 가는데 시간이 많이 절약되고 있어요. 그러니 요한이는 2달도 되지 아니하여 미국에 도착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

헬렌이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장차 선박이 아니라 항공기가 여객기로 사용되면 더 빨라지겠지요. 1939년에 발생한 유럽전쟁과 1941년에 발생한 태평양전쟁에 있어서는 벌써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항공기가 전투에 참여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미국의 대형폭격기 B29가 그러하지요. 그런데… “;

그녀가 서운갑을 똑바로 보고서 설명한다; “그것이 전후에는 민간인과 많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여객기와 화물수송기로 발전하게 될 거예요. 그때에는 운갑이도 미국에 가서 한번 공부를 해보기 바래요.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할 수가 있을 거예요”.

서운갑헬렌 사모님께 감사했다. 1943년에 그녀의 말을 진작에 들었기에 그는 일본제국 시대의 지배하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조선의 미래를 꿈꿀 수가 있었다. 더구나 그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 자는 오천덕 선교사이다.

1944년에 들어서자 일본제국에서는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에게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총동원체제를 갖추고 모든 인적 물적인 지원을 다하라고 강요했다. 강제 징집과 징용은 물론이고 젊은 처녀들을 군수공장으로 그리고 전쟁터로 끌고 갔다. 세계의 전쟁 역사에 그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아니한 위안부 정신대의 운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본제국이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이 중동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일제의 원유수송로를 말라카 해협에서 봉쇄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관동군이 중국을 점령하기 위하여 그 동해안지역에서 총공세를 펴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이 원유수송로를 차단하였기에 일본정부는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 열도에서는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그들은 마냥 대동아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선전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조선의 백성을 착취하고 있는 정도가 자꾸만 심해지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1945년 초여름에 서운갑이 조심스럽게 오천덕 선교사에게 질문했다; “과연 일본제국이 대동아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

오선교사의 집에서는 지금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가 두 사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천덕은 습관처럼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그 다음에 천천히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말한다; “운갑이는 그것이 미심쩍기에 내게 질문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래 실제상황과는 다르다고 보아야지. 왜냐하면… “.

오선교사가 서운갑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의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다. 우물안의 개구리신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엿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조용히 설명한다; “얼마전 19454월말에 유럽전쟁이 끝났어요. 4면초가에 몰린 히틀러(Hitler)가 마침내 자살하고 말았지요. 그러니 지금은 미국이 전력을 다하여 일본제국을 공격하고 있어요. 멀지 아니하여 전쟁이 끝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일본제국은 천황을 수호하기 위하여 미군이 열도에 상륙하게 되면 모든 신민이 죽창이라도 들고 나가서 적들을 참살하자고 그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일본제국의 인구가 조선인과 만주인까지 합하면 1억이 훨씬 넘지요. 그러니 선박을 이용하여 미국군인이 수십만명 상륙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승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오선교사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것이 지금 가장 큰 현안문제이지요. 그런데 운갑이는 장기를 둘 때에 적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벌써 알고 있지요? 그것은 적의 왕을 사로잡으면 게임이 끝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무지막지하게 상륙작전을 수행할 것이 아니라 천황(天皇)만 잡으면 되지요!... “.

금시초문이다. 서운갑이 귀를 기울인다. 그때 오선교사의 설명이 들려온다; “출애굽기 제12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애굽인의 장자를 여호와께서 하룻밤에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에 바로와 신하들이 모세를 불러서 항복을 하지요. 그 이유는 그대로 있다가는 그 다음에는 바로와 신하들이 천사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서운갑은 숨도 크게 쉴 수가 없다. 엄청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일본제국의 지도자들의 고향을 융단 폭격하면 되지요. 두개의 도시 정도를 초토화한 다음에 그래도 항복하지 아니하면 그 다음에는 동경에 있는 천황가와 의사당 그리고 정부청사를 모두 박살을 내면 전쟁은 끝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성이 가장 높은 지금의 미국의 전략이라고 보아야지요!”.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은 전신의 모골이 송연하다. 미국의 거대한 B29폭격기가 동경에 있는 천황의 황궁을 초토화하는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에 정치지도자들의 고향이 있는 서남지역에 두개의 도시가 미군기의 폭격으로 사라진다고 하는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당시에 오선교사의 설명은 그 정도에서 끝나고 있다. 그러나 그해 1945년 여름 815일 정오가 되자 서운갑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금방 깨닫게 된다. 그것은 미국이 비밀리에 개발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지고 그 피해가 막심하여 천황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에 집에서 서운갑은 몇 달 전에 오선교사가 은밀하게 전해준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 ‘만약 천황이 815일 정오에 방송을 통하여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아니했다고 하면 그 다음 원폭은 동경의 중심에 떨어졌을 것이야. 그러면 천황가와 일제의 정치기구가 모조리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지. 그것 참 무서운 일이야!... ‘.

그렇다고 하면 해방후의 정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실은 전쟁이 끝나기 전 그해 초여름에 서운갑이 그 점을 오선교사에게 개인적으로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의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따라서 백 살이 된 서운갑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운갑, 그대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쏘련의 스탈린, 중국의 장개석과 비교할 때 조선의 누가 미국의 대화상대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도 없다고 보아야지. 그러므로 조선은 해방과 독립의 대상이 아니라 일본제국의 한 부분으로서 미군정(美軍政)의 통치대상에 불과한 것이야!”;

그 당시 서운갑1919년 중국의 상해에서 발족한 임시정부의 존재를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이승만 박사의 얼굴도 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제국의 군대를 현지에서 격퇴하고 있는 장개석 군대나 나치군을 쳐부순 쏘련군의 존재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가 없는 미미한 것이다.

그러한 현실이므로 미국은 독립의 의지와 항일의 의지가 거의 없는 조선을 일본제국의 앞잡이로 보고서 그대로 조선반도에서 군정을 실시하고 말 것이다. 그것이 해방정국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서운갑은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밖에 서운갑오천덕 선교사로부터 개인적으로 들은 이야기가 또 무엇일까? 그의 이야기가 해방후에 서운갑의 진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