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2. 14. 10:02

가지를 뚫는 햇살1(손진길 소설)

 

1.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서운갑(徐運甲)의 회고록

 

달성 서씨인 서운갑(徐運甲)은 조선의 경상도에서 192312월 초순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서 성장한 시기는 불행하게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그 백성들이 일본제국의 식민지 한반도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절이다.

서운갑이 철이 들어서 주위를 살펴보니 국가라고 하는 울타리가 없다. 그 옛날에는 조선의 임금과 조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외세에 의하여 19108월에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대신에 조선총독부라고 하는 일본인의 통치기구가 경성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조선의 시골인 고향에서는 무서운 헌병대와 경찰이 무자비하게 조선인들을 총칼로 다스리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일제(日帝)군정(軍政)이다;

따라서 달성서씨 문중에서는 일본인 경찰서장과 헌병대장 그리고 일본의 앞잡이를 하고 있는 완장을 찬 조선인을 무서워하면서 그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고 있다. 물론 시골 양반에 불과한 달성서씨 어른들이 주로 만나고 있는 인물은 높은 일본인 관리가 아니다.

그들은 일본인 기관장이나 부서장을 보조하고 있는 조선인 출신 순사와 면서기를 만나서 자신들의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부디 해결을 해달라고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읍소를 듣고 있는 조선인 순사와 면서기들은 자신들의 위세가 실로 대단한 줄 알고서 거들먹거리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촌부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돈을 좀 집어주고서 아무쪼록 권세가 있는 주사나리께서 힘을 써달라고 애걸복걸하면 그것이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 말단공무원 서기보나 서기에 불과한 그들을 높여서 주사’(主事)라고 부르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높은 나리라고 치켜세워주고 있으니 그들은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애로사항을 손쉽게 해결하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서운갑은 마을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사라고 하는 벼슬이 가장 높은 벼슬이며 힘이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운갑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 공무원생활을 해보니 그것이 아니다. 주사 위에 사무관이 있고 그 위에 서기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회고를 하자면, 19458월 해방 후 3년간의 미군정이 있었고 1948년에 이승만 정부가 들어섰다. 그때 남한의 지방조직에서는 한국사람이 일선기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시장과 군수가 사무관이고 세무서장이 또한 사무관이다. 그리고 경찰서장도 무궁화가 4개나 번쩍거리고 있는 총경인데 그의 벼슬이 사무관에 해당하고 있다.

물론 그 아래에 일선관청장을 보좌하는 부하로써 주사(主事)들과 서기(書記)들이 줄줄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이승만 대통령시대에 경상도의 지방도시에서 군서기로 근무하게 된 서운갑은 주사보다 더 높은 관직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된다. 그는 얼른 주사가 되고 그 다음에는 사무관으로 진급하여 자신도 한번 일선기관의 기관장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192312월에 서운갑이 태어난 곳은 분명히 달성서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경주군 기계면이다. 그런데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태자리에서 제법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경주군 천북면이다. 그 이유는 그의 부모가 천북으로 이사하여 그곳 형산강 개천가에 싸게 나온 전답을 사서 한번 자작농이 되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크게 잘못된 선택이다. 왜냐하면, 1925을축년(乙丑年)에 큰 홍수가 발생하여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형산강이 그만 범람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천북 개천가의 농토가 큰 물에 휩쓸려가면서 그 대신에 떠밀려온 토사와 자갈이 그곳을 뒤덮고 만 것이다.

그때문에 그의 부모는 다시 소작농 신세가 되어버리고 서운갑은 어려서부터 가난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는 고달픈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배가 고픈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서운갑에게 있어서는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일한다 또는 고상한 큰 포부를 가진다고 하는 따위의 일은 전부 배부른 자의 흰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던 서운갑에게 뜻밖에 1934년이 되자 하나의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기계면에 살고 있는 서씨마을의 부자인 9촌 숙부가 어린 서운갑을 눈여겨보고서 그를 양자로 삼은 것이다;

서운갑은 부친 서달수(徐達壽)와 모친 우연희(禹蓮姬)의 둘째아들이다. 집안에는 장남 서운석(徐運錫)이 있기에 그의 부모가 차남인 11살의 서운갑 8촌 형님인 부자 서달호(徐達鎬)에게 양자로 보낸 것이다.

사실  서달호는 은밀하게 8촌 동생이 살고 있는 천북을 여러 번 방문했다. 그는 서운갑이 다니고 있는 서당을 찾아가서 훈장을 만났다. 그리고 11살인 서운갑이 어느 정도로 총명한지를 묻고 또 직접 확인했다. 생각보다 어린 서운갑이 영리하고 똑똑하다. 서달호는 이왕 양자로 삼을 것 같으면 어려서부터 영특한 서운갑이 마음에 든 것이다.

그 점은 그의 아내 장화련(張華蓮)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무리 친척간이라고 해도 8촌 동생의 차남을 그냥 양자로 데리고 올 수는 없다. 따라서 서달호는 3종동생인 서달수에게 소작농이 아니라 자립농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논 10마지기나 살 수 있는 거금을 주었다.

영리한 서운갑은 양부 서달호가 자신의 친부모에게 베풀고 있는 그 큰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 기계면에서 5백석 지기의 대농으로 살고 있는 양부모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논 10마지기를 살 수 있는 거금을 생가에 준다고 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서운갑은 양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열심히 하고자 작심하고 있다.

서운갑의 결심은 양부모가 보내어준 그의 소학교(小學校)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6년제 소학교에 그는 12살이 되는 해에 4학년 학생으로 들어갔다. 소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그가 4학년으로 편입학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인 교장과 교감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간단하게 시험을 치루었는데 뜻밖에 합격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에 소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교과서를 전부 빌려서 그것을 독파한 것이다. 스스로 한글과 일본어를 깨우쳤으며 저학년 과목을 집에서 전부 공부하여 그 내용을 벌써 알고 있으니 교장과 교감은 안심하고 서운갑4학년에 넣어준 것이다;

그렇지만 서운갑은 자신의 나이가 급우들보다 한살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한해를 월반하고 14살에 소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다. 그 다음에는 대구에 있는 5년제 중학과정에 들어가서 공부한다. 19살이 되던 1942년에 서운갑은 대학으로 진학할 것인지 아니면 집안일을 도울 것인지를 깊이 생각한다. 그때 그가 선택한 길은 양부모를 돕는 것이다.

서달호(徐達鎬)장화련(張華蓮)1934년까지만 해도 기계면에서 500석지기 대농이며 부호였다. 그들 내외는 자식이 없어서 8촌 동생인 서달수(徐達壽)의 차남 서운갑을 양자로 데리고 오면서 10마지기의 논을 살 수 있는 거금을 희사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부농인 그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인의 논에서 생산한 추곡을 전부 강제로 공출하여 일본으로 보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대신에 만주에서 생산한 잡곡을 조선의 농민들에게 배급하여 주고 있다. 따라서 조선의 농가에서는 일년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보아야 쌀밥 구경을 못하게 된다;

그에 따라 농지의 값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500석 지기의 부농인 서달호의 가정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그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5년제 중학을 마치자 양자인 서운갑1942년부터 집안을 다시 일으키고자 결심한다. 그가 양부모와 의논하여 가장 먼저 실시한 일은 농토를 한꺼번에 팔고서 포항시내로 이사한 것이다.

시내에서 그는 자전거와 리어카를 조립하여 판매하는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술자를 고용하여 그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본과 기술자의 기술을 합작하여 자전거포를 운영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직접 기술자들에게서 그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중고 자전거를 수리하고 새로운 부품을 교체하여 새것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일은 상당한 수익을 얻는 일이었다. 그리고 리어카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한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서운갑의 사업은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2년간 서운갑의 장사수완을 말없이 가까이서 지켜본 양부 서달호1944년 봄에 저녁식사자리에서 말한다; “운갑아, 네 나이가 만으로 20살이 지나고 금년 12월에는 벌써 21살이 되겠구나. 우리 내외가 그동안 지켜보니 너의 장사수완이 상당하다. 그러니 이제는 성가하고 우리에게 손주를 안겨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그 옆에서 양모 장화련이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맞아요. 운갑아, 네 아버지 말씀이 옳다. 이제 자전거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금년에는 결혼을 하도록 해라. 마침 이웃에서 좋은 처녀를 가진 집에서 너를 사위로 삼고 싶다고 매파를 벌써 보내오고 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딱 한마디를 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저의 자전거포 맞은편 양장점에서 일하고 있는 처녀 황옥주(黃玉珠) 정도의 참한 처녀이면 장가를 갈 생각이 있습니다. 금년 가을에 결혼하면 금상첨화이겠지요!... “.

그 말에 장화련이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그 참 잘 되었다. 안 그래도 그 집 황사장 집에서 너를 사위로 삼고 싶다면서 이미 매파를 보내오고 있구나. 내가 너의 생각을 알았으니 한번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마. 이미 운갑이 네가 확실하게 말했으니 다시 무르기는 없다. 호호호낙장불입(落張不入)이야, 알았지!... “.

그 말을 듣자 그 옆에서 서달호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그 참 뜻밖에 일이 잘 풀리고 있구만! 당신이 황사장네 규수 정도이면 운갑이가 좋아할 것이라고 벌써 말하더니 그것이 사실이군요, 허허허당신 선견지명이 있어요, 하하하“.

과연 202312월에 백세를 맞이하고 있는 서운갑 ()의 당시에 대한 회고의 내용은 또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