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바이블스타디 교재 10권 안내

내 영혼의 묵상(시편, 요한 1•2•3) 저자 서문 등

손진길 2023. 12. 8. 00:50

내 영혼의 묵상 

-Open Bible Study 교재  

(시편요한 123) 

손진길 지음 

 

 

<손진길 약력

 

1952 경주출생(字는 知五호는 토담

1973 서울공대기독학생회장 

      나먼저모임 6 

      화요기도회(예수전도단 전신초기 멤버  

1981 입법고등고시 제5회 합격 

1994 정치학박사 

1995년초까지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집사 

1996년부터 Open Bible Study 인도자(오클랜드시드니

2004 하나님의 발견(창세기,마가복음출간 

2005 구원의 의미(출애굽기,로마서출간 

2008 의인의 삶(이사야,베드로 전•후서출간 

 

<저 자 서 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1). 누구나 알고 있는 위의 노래처럼 이미 여러 시편말씀이 교독문에 실려있을 뿐 아니라 복음송으로도 불리어지고 있어 많은 크리스천들이 시편말씀에 매우 친숙합니다그리고 시편말씀을 암송하거나 노래 부를 때 마음이 평안을 얻게 되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 같은 벅찬 감동을 맛보기도 합니다그래서 시편의 시가 신앙의 고백이요 기도이며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편의 시가 사실은 하나님의 신비와 인생의 비밀에 대하여 그 깊은 내용을 노래하고 있는 일종의 ‘깨달음의 노래’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아니한 것 같습니다따라서 이 책을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다음 몇 가지 사항을 말씀 드려 두는 것으로 서문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1.      참선하여 깨우침을 얻은 고승들의 이야기를 접해 보면 그들은 나름대로 심각한 화두를 가지고 오래 명상한 끝에 마침내 그 답을 얻어낸 자들입니다그들은 모든 의문의 조각들을 하나로 꿰고서 번뇌의 구름바다를 벗어났을 때 그 곳 청명한 깨달음의 정상에 올라서서 거기서 바라본 풍경을 하나의 시의 구절로 표현합니다그것이 일종의 오도송(悟道頌)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시편의 저자들은 유한한 인생에게 주는 영원한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처절한 고난의 삶 속에서 오랜 묵상을 통하여 깨달아 마침내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지식에 이르는 길을 시편에 하나의 노래와 시로서 남겨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시편을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내 영혼의 묵상’이 될 것입니다이미 신앙의 선배들이 얻었던 깨달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것으로 얻게 되는 벅찬 순간이 될 것입니다그 작업은 하나님의 깨달음의 은혜가 함께하는 것이기에 흔히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 없이 자신의 영적 능력만으로 득도하겠다는 이른 바 명상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      말씀의 세계가 깊고도 오묘하여 올바른 깨달음을 얻기에는 백 년 인생을 모두 투자한다고 해도 빙산의 일각밖에 얻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모두 깨달은 것처럼 오만하게 대중 앞에 서서 반말로 그리고 큰 소리로 꾸지람하듯이 설교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더구나 하나님 말씀의 속뜻을 인간의 교훈이나 지혜와 구별하지도 아니한 채 자신의 인간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마구 활용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그러한 현실을 바라볼 때 마음이 심히 답답합니다그와 같은 영적 권위주의 풍조는 말씀의 깊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결과 발생한 것입니다그러므로 부디 시편말씀이라도 깊이 있게 공부하여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정한 자신의 깨달음 위에 자신의 개인적 신앙과 기독교인 전체의 의식과 문화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3.     끝으로사도 요한의 서신서를 함께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왜냐 하면사도 요한이 AD 70년경부터 남은 생애를 모두 바쳐서 헬레니즘 철학과 사상을 공부했으며 그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드디어 제4복음서를 저술하는 한편 요한 1, 2, 3서를 작성했기 때문입니다비록 길지 아니한 글들이지만 그 내용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시편의 말씀과 함께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기독교가 깨달음을 강조하는 여타의 종교들보다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하나님의 은혜로 올라서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 할 수 있을 것입니다아무쪼록 많은 성취가 있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주후 2009 9월 시드니에서 토담 손진길 올림

 

 

 시편 제 1(1:1-6)(손진길 작성

 |OBS 8-1| 

 

 Q1. 150편의 시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편의 서론부분을 전체적으로 ‘제1편’이라고 볼 때서론에서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2가지는 무엇이며 그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3가지 명제는 무엇인가

·         2가지 개념은 (blessing, 1:1) (the righteous, 1:5-6)라고 할 수 있음먼저 ‘복’을 사용한 명제는 복 있는 사람은 ①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②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1:2)라는 진술임다음으로 ‘의’의 개념을 사용하여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1:6)라고 서술하고 있음끝으로, ‘복 있는 사람’ 또는 ‘의인’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3)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임

 

 Q2. 그렇다면 ‘복’과 ‘의’의 개념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뜻인데 복과 의를 연결하는 매개변수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는가

·         ‘창15:5(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자손번성의 복) ‘창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말씀을 참고할 때 ‘복’과 ‘의’를 연결하고 있는 매개변수는 믿음’이 되는 것임여기서 아브라함이 믿은 사실은 ①복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것②주시는 때는 알 수 없으나 장래 주신다는 사실은 확실한 약속이라는 것③따라서 자신은 여호와의 판단과 결정을 받아들이는 인생을 살 것이라는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여호와의 주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부분과 피조물의 자리에서 겸허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分福2:10-11, 24, 9:9)에 만족할 줄 아는 부분이 ‘의인의 조건’(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근거)이 되고 있는 것임

 

 Q3. 여기서 알 수 있는 2가지 복의 개념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장차 주시기로 약속하신 큰 복(12:2)과 현재 내가 받아서 누리고 있는 분복(1:28-30)으로 나누어짐여기서 복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인 믿음에 따라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1:6)이 갈라지는 것임먼저 의인의 길은 철저하게 큰 복은 하나님 소관이며 내가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지만 악인의 생각은 그와 다름악인은 ①큰 복은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②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내 뜻대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기에 일종의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불신앙으로서 처벌대상이 되고 있는 것임(1:6 후반삼상2:30). 

 

Q4. 악인의 길에 서지 않기 위하여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큰 복과 분복을 구분하기가 쉽지 아니하기 때문임① 장래의 성취② 후사와 자손의 번성③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④ 널리 영혼과 생명을 살리는 일 등이 큰 복에 속하겠지만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나에게 허용된 분복과 그 구분이 쉽지 아니하기에 매사 하나님께 여쭤보고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만 하는 것임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하나님의 방법과 나의 방법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욕심이나 고집 등)을 확실하게 구별하기 위해서는 주야로 묵상하며 기도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임(12:1-2). 

 

 Q5.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았는지(1:1) 그리하여 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져 버릴 것인지(1:4)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첫 번째 방법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선 두려움으로 의사결정을 한 것인지 살피는 것임(17:1).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인생살이를 긴 안목으로 살피는 한편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피는 것임(45:7). 세 번째는 Plus Sum Game’인지 아니면 Zero Sum Game’인지 살피는 것임왜냐하면, Plus Sum Game’만이 하나님의 게임의 방식이며 그것만이 영원토록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