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21강(민22:36-4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8. 01:20

민수기 강해 제121(22:36-4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23()

 

모압 왕 발락은 십볼의 아들인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선지자 발람을 엄청나게 환대하고 있으며 그 환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 마을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인 발람의 대답은 무엇인가?(22:36-40, 4-5)

 

출애굽 제4011월경 모압 왕 발락은 두 차례나 고관들을 북부 시리아 브돌로 파견하여 선지자 발람을 정중하게 초청하고 있습니다(22:5-20).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영통한 무당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람의 신통력이라면 여호와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관직과 많은 사례를 약속하면서 선지자 발람에게 부디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22:6, 17).

마침내 발람이 모압의 사절들과 함께 북쪽 국경이 있는 아르논 강 유역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22:36a). 모압 왕 발락은 마음이 급하여 북쪽의 국경도시까지 마중을 나갑니다(22:36b). 그리고 왕의 대로가 지나고 있는 북쪽 국경지대의 큰 성읍 기럇후솟에서 선지자 발람은 물론 그를 데리고 돌아온 사절단인 모압의 귀족들을 환대하고 그 노고를 치하하며 큰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22:39-40).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이 모압까지 사절단을 따라서 도착했다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제안을 수락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22:36). 따라서 약속한 대로 부귀영화를 줄 터이니 자신의 요구대로 해달라고 은근히 부탁하고 있습니다(22:37).

(2)  그러나 오는 도중에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혼이 난 경험이 있는 선지자 발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신탁 외에는 자의적으로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22:31-35). 그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22:3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는 선봉장으로 사용하십니다(4:12-17). 그리고 시내 산 앞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신정국가를 시작하십니다(19:4-6). 그 자리에서 모세는 여호와를 독대할 수 있는 무상의 권력자가 되고(19:19-21, 20:18-21, 33:7-11) 아론은 최초의 대제사장이 됩니다(19:22-24, 28:1, 29:29).

신정국가의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모세 그리고 종교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대제사장 아론 그 두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여호와의 영광과 기적을 이방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반년 동안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요단 강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남왕국과 북왕국을 정복하는 대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모압 왕 발락은 모세에게 대제사장 아론이 있듯이 자신에게도 신통력이 있는 선지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발락은 요단 강 동쪽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아람의 선지자인 발람을 모압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무당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당인 발람의 신통력을 빌려서 여호와의 축복이 아니라 이제는 여호와의 저주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임하게 하여 그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고자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압 왕인 발락의 군대는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를 격파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22:6).

모압 왕 발락의 책략은 뛰어난 것입니다. 그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을 돕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에게서 돌려 세우지 아니하는 한 이스라엘을 쳐서 승리를 얻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떠한 선지자나 무당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뜻을 벗어나서 설득을 하거나 그 마음을 돌려세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3:14). 그러므로 선지자 발람을 의지하고 있는 모압 왕의 책략은 처음부터 실패작입니다.

만약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께서 주시는 신탁의 말씀과 다른 말을 제멋대로 꾸며서 모압 왕에게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효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은 아무리 모압 왕이 약속한 그 부귀영화가 탐이 난다고 하더라도 곧 무효로 판명이 날 수밖에 없는 가짜 예언을 발락에게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발람이 처하고 있는 진퇴양난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22:36);

(1)  한국 속담에 반가운 손님이 오면 버선 발로 마당을 뛰어가 대문 간에서 맞이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반가운 손님이 저 멀리 북방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부터 남방의 모압에까지 오고 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학수고대하고 있던 아람의 선지자 발람입니다. 따라서 그는 왕의 체면도 내려 놓고 멀리 북쪽 국경지대까지 마중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아르논 강은 동쪽에서 흘러와서 사해의 허리 부분으로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 모압은 본래 아르논 강을 사이에 두고서 남쪽과 북쪽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모리 족속의 한 지파의 족장인 시혼이 군대를 끌고서 남하하여 모압을 아르논 강 이남으로 몰아내고서 그 땅에 시혼 왕국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고토를 회복하기 위하여 군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갑자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타나 단숨에 시혼 왕국을 무찌르고 그 땅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수호신인 여호와 하나님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이제는 모압 왕 발락이 모세의 군대를 물리쳐야만 북쪽의 잃어버린 땅을 수복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와 모세 사이에 이간을 하기 위하여 신통한 무당 발람을 아람에서부터 초청하여 오고 있습니다. 그는 멀리 북쪽 국경마을까지 행차하여 그의 소원을 이루어 줄 귀한 손님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둘째로,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22:3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22:37a);

1)    모압 왕인 발락은 640km나 멀리 북방에 떨어져 있는 아람의 브돌로 사절단을 파견합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유명한 선지자 발람을 모압으로 초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복채를 들고 모압의 장로들이 미디안 대상들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 도착하여 발람에게 모압 왕의 예물과 초청의사를 전달합니다(22:7).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께 신탁을 받아보고나서 결정을 하겠다고 말합니다(22:8). 여호와의 선지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는 발람입니다.

2)    그날 밤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들은 발람이 그 내용을 사절단에게 다음날 전달합니다. 그들을 따라 자신은 모압에 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결코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지도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2:12-13). 그것이 여호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사절로부터 발람의 대답을 듣게 된 모압 왕 발락은 포기하지를 않습니다. 더 높은 고관들을 다시 발람에게 보내고 더 높은 관직과 재물을 발람이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22:15-17).

3)    그 결과 선지자 발람이 마음이 바뀌어 모압에 온 것으로 발락은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발락의 생각은 아람 땅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이름이 높은 발람 역시 무당이라는 것입니다. 일국의 왕이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하는데 넘어오지 아니할 무당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무당을 통하여 수호신이나 우상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모압 왕 발락이 비로소 그동안 발람을 초청하기 위하여 애를 태운 자신의 속마음을 발람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22:37a);

(2)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22:37b);

1)    발락은 모압의 왕입니다. 모압의 재물과 부귀와 영광이 모두 왕인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에게는 그 부귀영화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줄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신의 권능을 가지고 발락은 선지자 발람의 마음을 완전히 회유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강력한 유혹의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22:37b). 그와 같은 일국의 왕의 말에 흔들리지 아니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2)    그렇지만 선지자 발람에게는 하나의 크나큰 제약이 있습니다; “그러한 부귀영화의 제공이 조건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제사를 드려서 여호와의 마음을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으로 만들었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22:17). 그것은 발람 자신의 뜻과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비록 선지자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심으로는 발람의 고민이 깊어만 갑니다.

3)    발람의 마음의 한편은 모압 왕이 약속한 그 부귀영화를 취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욕심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압으로 오는 도중에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발람 자신의 길을 막아 서신 것입니다(22:22-23, 32). 모압에 가서 여호와의 뜻대로 정확하게 실천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 천사의 칼로 요절을 내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22:32-33, 35). 그러므로 발람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셋째로,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22:38);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22:38a);

1)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솔직하게 영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락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발람 자신이 모압 땅에 왔으므로 이미 발락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과 진배가 없다고 섣불리 판단하시지를 마시라는 충고입니다(22:38a).

2)    실제로 사람인 선지자가 할 수 있는 일에는 그 능력의 한계가 뚜렷합니다. 그러므로 모압 왕인 발락이 소원하고 있는 그 일을 발람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여 성공할지 못할지는 지금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발람은 자신의 능력 바깥의 일이므로 그 성공을 장담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이해를 해달라고 모압 왕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22:38b); 그렇다면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여 모압 왕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받아서 정확하게 모압 왕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22:38b). 그와 같은 솔직한 발람의 말을 들은 모압 왕 발락은 어떻게 대처를 하고자 할까요? 그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이 무당인 발람의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성을 최대한 보이고자 발람에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넷째로,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22:39-40);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22:39);

1)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데리고 사절단과 함께 모압의 북쪽 국경에 있는 가장 큰 성읍으로 이동을 합니다. 모압의 중심부를 남에서 북으로 달리고 있는 군사도로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왕의 대로입니다. 그 왕의 대로를 모압의 군대가 엄중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2)    그리고 대상들이 그 길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모압 왕에게 많은 통행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편하며 남북을 관통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통행료를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연히 왕의 대로의 중간에는 쉴 만한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춘 오아시스와 성읍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북쪽 국경 아르논 강 남쪽에 유명한 성읍이 있는데 그 이름이 기럇후솟입니다(22:39).

(2)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22:40);

1)    모압 왕 발락이 기럇후솟에서 선지자 발람과 그를 초청하기 위하여 모압에서 북부 시리아 유프라테스 상류 브돌까지 640km를 왕복한 바 있는 사절단 곧 그의 고관대작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고 있습니다.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 그 접대잔치를 통하여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소도 잡고 양도 잡아서 큰 잔치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2)    모압은 목축국가이며 농업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소와 양을 많이 키우고 있으며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소를 잡는 것은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융숭하게 대접하고자 하는 경우입니다. 그 옛날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이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한 여호와와 두 천사를 대접하기 위하여 좋은 송아지를 잡고 있습니다(18:7-8).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돌아온 탕자를 다시 아들로 맞아 들이면서 아버지가 너무 기뻐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15:23-24).

3)    모압 왕 발락이 소와 더불어 양까지 잡아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유는 그 잔치에 참여하는 귀족의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이제 발람이 모압에 들어 왔으므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여호와의 마음을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하도록 돌려세우기만 한다면 모압의 군대로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그 잔치자리에서 귀족들에게 선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으므로 소도 잡고 양도 잡아서 푸짐하게 발람과 사절단 그리고 모압의 귀족들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모압의 왕은 선지자 발람을 대접하기 위하여 소와 양을 잡아서 그 고기를 사용하고 있지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 땅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선지자 발람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에서는 염소를 넓은 의미에서 양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염소고기 역시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양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인도문명권에서는 염소 고기를 많이 즐겨 먹습니다.   

결론적으로, 모압 땅에까지 따라온 선지자 발람이 만약 모압 왕 발락의 요구대로 여호와를 움직일 수가 있으면 발락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벌써 그러한 전모를 아시고 다음과 같이 행동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22:20, 35).

사실 약탈자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모압 왕 발락과 그 약탈한 재물을 나누고 싶어하는 실력 있는 무당발람이 만났으면 큰일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호신이나 우상을 움직이는 일에 국한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합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변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피조물에 불과한 이 세상의 정치적인 권력과 종교적인 권력의 합작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정치적인 권력과 종교적인 권력을 사용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