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23강(민23:6-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8. 23:30

민수기 강해 제123(23:6-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26()

 

여호와의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신탁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은 제주(祭主, 제사의 물주로서 신탁을 받고자 하는 자)인 모압 왕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가?(23:6-12)

 

모압 왕인 발락이 멀리 아람 왕국에 살고 있는 선지자 발람을 모압 땅에 초청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신탁의 말씀을 받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가 원하는 신탁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는 것입니다(23:7). 그런데 발락 왕의 기대와는 다르게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께로부터 얻어서 그에게 전해주고 있는 신탁의 말씀은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23:8).

그와 같은 결론은 이미 선지자 발람이 아람 왕국에 있는 그의 고향 브돌에서 여호와께로부터 얻은 다음과 같은 최초의 신탁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22:12b).

물론 최초의 신탁의 말씀 가운데서 달라진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22:12a)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분명히 처음 받은 신탁의 내용은 선지자 발람이 모압에서 온 사절단과 함께 모압 땅으로 가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차 사절단이 왔을 때에는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22:20)고 동행을 허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압 왕이 재차 사절단을 발람에게 보내면서 엄청난 상급과 보상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혹에 선지자 발람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세상적인 유혹과 재물에 대한 탐심을 발람이 이기자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압 왕이 생각하는 그러한 수호신이나 우상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모압 사람들에게 똑똑하게 인식시켜주자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선지자가 현지를 방문하여 그들의 눈앞에서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많은 재물로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거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물욕에 유혹을 받고 있는 선지자의 마음도 바로 잡아져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발람의 모압 행이 허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발람이 더 이상 재물욕이나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하는 모압 왕의 유혹 때문에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변형시켜서는 절대로 안되며 그것이 참으로 중요한 사항입니다. 따라서 길을 가는 도중에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발람에게 단단하게 그 사실을 각인 시키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22:35).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이해가 한결 깊어지고 또한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23:6-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23:6);

1)    모압의 북쪽 국경은 아르논 강입니다. 그 강 남쪽 유역에 왕의 대로가 있는데 그 근방에 기럇후솟이라는 성읍이 있습니다(22:39). 그곳에서 모압 왕이 선지자 발람과 그를 데리고 온 사절단을 대접했습니다(22:40).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그 근처에 있는 높은 산으로 발람을 데리고 갑니다(22:41a). 바알 산당이 있는 신령한 장소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모압 왕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22:41b).

2)    발람은 바알 신께 제사를 드리는 그 제단에서는 여호와를 섬길 수가 없으므로 별도로 제단 7개를 쌓고 각각 수송아지와 숫양 한 마리씩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합니다(23:1). 그렇게 엄숙하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발람은 모압 왕과 신하들을 그곳 제단 옆에서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말합니다(23:3a). 선지자 발람 자신은 언덕을 하나 넘어 조용한 곳에 가서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고 발람 왕을 위한 신탁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해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23:3b).

3)    발람의 말을 믿고서 발락 왕과 모압의 고관들은 한 사람도 번제단을 떠나지 아니하고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23:6).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의 소원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질책하고 저주하는 여호와의 신탁만 얻어 온다고 하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승리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2:6, 11, 17, 23:4). 그래서 큰 기대를 가지고 발람이 돌아와서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특히 여기서 모압의 모든 고관이”(23:6) 모압 왕과 함께 번제단 곁에서 선지자 발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듣고서 군사행동에 나서는 것이 모압으로서는 거국적인 행사이며 국가발전의 동인이 된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반대의 경우를 예상해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이 모압 왕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나왔다고 한다면 그들은 결코 이스라엘 자손들을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여호와께서는 방침을 변경하여 선지자 발람이 모압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신 것으로 보입니다(22:12, 20, 35).

(2)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23:7a);

1)    언덕을 넘어 조용한 곳에 가서 한동안 여호와께 기도를 드린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얻어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모압 왕과 고관들에게 와서 전하고 있습니다(23:7aa). 그 첫머리가 모압 왕 발락이 아람의 선지자인 발람 자신을 모압으로 초청을 했다는 것입니다(23:7ab). 그 말을 하면서 발람은 자신의 고향을 동쪽 산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로 미루어 보아 발람의 고향인 브돌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이면서 동시에 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브돌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중류와 하류로 내려가게 되면 그곳이 동방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그 메소포타미아의 문화가 북부 시리아 아람 왕국의 변경인 브돌까지 미치고 있으므로 여기서 발람이 동쪽 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모세가 먼저 기술하고 있는 창세기의 기록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브돌의 인근지역으로 보이는 하란 땅에 대하여 창세기에서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24:10),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사람의 땅에 이르러”(29:1)라고 벌써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23:7b);

1)   선지자 발람이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정확하게 모압 왕 발락의 소원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얼마나 여러 번 여호와께 말씀을 드렸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여기서 한번은 야곱을 저주하라”, 또 한번은 이스라엘을 꾸짖으라고 재차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3:7b).

2)   참고로, 야곱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로 불리게 됩니다(32:28, 35:10). 그때부터 야곱의 운명이 달라져서 장남이 아니지만 스스로 족장이 됩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세겜 성을 정복하여 대 족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37:13, 17, 48:22). 그러한 야곱의 영광스러운 새로운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둘째로,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23:8-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23:8);

1)    선지자 발람이 언덕 넘어 조용한 곳에서 모압 왕 발락의 소원을 정확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말씀 드렸다는 사실을 먼저 발락과 그의 신하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23:7). 그 다음에 그는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의 요지를 자신의 입장과 관련하여 아주 확실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23:8).

2)    선지자 발람을 통하여 모압 왕 발락의 소원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확인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역시 발람을 통하여 여호와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발락 왕에게 전달하십니다. 그 내용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꾸짖거나 저주하실 생각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23:8). 그와 같은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듣게 된 선지자 발람은 그 자리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대로 발락 왕에게 전달할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전달할 것인가?

3)    만약 반대로 그 신탁의 내용을 전달한다면 자신은 모압 왕으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뒷감당 두가지가 큰일입니다; ①첫째, 먼저 여호와께서는 거짓신탁을 전하고 재물을 얻은 선지자 발람을 죽여 버리실 것입니다. 벌써 모압으로 오는 도중에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만약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께서 주시는 신탁의 말씀이 아니라 다른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모압 왕에게 전달하는 경우에는 그 목숨을 거두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22:33-35).

4)    ②둘째, 혹시 발람 자신이 살아 남는다고 하더라도 거짓선지자라는 오명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선지자가 아니라 무당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거짓선지지와 무당의 종말이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영벌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선지자 발람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22:18, 20:27, 19:20, 20:10). 그는 재물도 탐이 나지만 그러나 자신의 목숨이 담보가 되어 있는 일에 거짓선지자로 나서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 결과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 가운데 자신의 입장까지 그렇게 반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23:8).

(2)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23:9); 발람은 선지자입니다. 그는 영적인 측면에서 사람이나 백성들의 미래를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다음 그 산 정상에서 멀리 북쪽에 전개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진지를 내려다 보고서 다음과 같이 영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거나 패망하게 할 수 있는 신이 없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타락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렇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민족 가운데 그 백성을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자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23:9 및 레19:4-6 의역).

셋째로,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4분의 1 누가 능히 셀꼬.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23:10);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4분의 1 누가 능히 셀꼬”(23:10a);

1)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선지자 발람이 자신이 받은 그대로 모압 왕에게 계속 전달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항이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계속 번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손의 수가 얼마나 많아지는지 능히 셀 수도 없을 것이라는 신탁의 말씀입니다(23:10aa, 13:16). ②또 하나는 모압 왕이 다스리고 있는 모압의 백성들의 수는 이스라엘의 4분의 1정도 밖에 되지를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23:10ab).

2)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번성과 그 영광이 어느 정도일지를 선지자 발람이 미리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훗날 다윗과 솔로몬의 제국은 모압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합니다(삼하8:1-14). 그후 이스라엘 제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지만 이스라엘 12지파와 레위인 가운데 단지  2지파와 레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만 하더라도 그 군사의 수가 18만명이며 모압보다는 더 강한 것입니다(왕상12:16-24).

(2)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23:10b);

1)    선지자 발람은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그가 들은 그대로 모압 왕 발락과 그의 대신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뜻은 발락 왕의 뜻과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기대가 컸던 발락 왕이 크게 실망하여 선지자 발람 자신을 해칠지도 모릅니다. 그 염려가 큰 발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23:10b).

2)    참고로, 발람이 그러한 각오와 신앙태도를 끝까지 지니고 살아갔으면 오늘날 선지자 발람의 이름은 찬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에(24:25) 다시 남하하여 훗날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재물을 탐하며 무당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발람은 비참하게 이스라엘과 미디안과의 전쟁에 휘말려 희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31:8).

넷째로,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23:11-12); 다음과 같이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23:11); 아니나 다를까 크게 실망한 모압 왕 발락의 질책이 선지자 발람의 귀를 울리고 있습니다. 발락 왕이 기대한 결과와 정반대의 말씀을 여호와의 신탁이라고 전달하고 있으니 그것은 당연한 비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하도록 여호와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많은 희생제물만 바치게 하고 결과는 전혀 효력이 없는 허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발락 왕은 선지자 발람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는 말을 골라서 하고 있다고 역정을 내고 있습니다(23:11).

(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23:12);

1)    이미 의인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선지자 발람의 답변이 나름대로 당당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자신은 그대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23:12). 그러므로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 방법을 모압 왕 발락과 대신들이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2)    참고로, 그러한 맥락에서 그 다음에 두번의 시도를 더 하게 됩니다(23:13, 27). 그러나 여호와의 신탁에는 여전히 변화가 발생하지 아니하게 되자 발락 왕은 단념을 하고서 순순히 선지자 발람을 고향으로 돌려 보냅니다(24:25).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래도 약속을 지킨 발람을 지켜 주신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모압 왕이 이스라엘 자손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발람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니 그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선지자 발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듣게 된 그는 그 자리에서 고민을 합니다.  

선지자 발람 자신은 어느 편에 서야만 하는 것일까요? 만약 모압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왜곡하고 변형을 시켜서 답변을 하게 되면 그것은 재물을 얻는 길이 되지만 그 대신에 자신은 거짓선지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재물도 탐이 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목숨이 담보가 되어 있는 일에 거짓선지자로 나서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한 선지자 발람의 입장을 부귀영화를 준다고 하는 유혹으로 얼마든지 변경시킬 수가 있다고 사고하는 자가 바로 발락 왕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집요하게 계속 제사를 드리고 새로운 신탁을 받아 오라고 발람을 몰아 부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세상의 유혹은 성도들이 여호와를 모시고 살아가는 동안에 항상 있을 것임을 본문에서 벌써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늘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성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여 이익을 취하는 거짓선지자로 살아갈 것인가?

만약 믿음의 길에서 실족을 하게 된다면 자신의 타락과 영벌은 물론 그 무당행위로 말미암아 믿음이 약한 자들을 많이 실족시키고 말 것입니다(18:6-7). 그러므로 아무쪼록 끝까지 세상을 이기는 왕같은 선지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