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06강(민20:18-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31. 06:32

민수기 강해 제106(20:18-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6()

 

에돔 왕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자국 영토내 통과를 결코 허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20:18-21)

 

본문은 언뜻 보면 사해 남쪽 세일 산 및 그 아래의 넓은 들판을 차지하고 있는 에돔 족속과 그 땅을 지나가고자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의 이해의 충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제2장의 말씀과 대조를 하게 되면 다른 측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과거지사를 모두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두 민족 사이의 전쟁을 결코 원하지 아니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역력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2:4-8).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들의 조상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의 후손들인 것입니다(25:22-26). 자라나면서 에서는 그의 백부인 이스마엘과 비슷합니다. 야인(野人,  야성을 가진 들 사람)이며 사냥을 좋아하고 호탕한 사나이입니다(25:27, 21:20-21). 에서는 어머니 리브가의 장막에서 조용하게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야곱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입니다.

에서는 부친 이삭이 헤브론에서 별세를 하고 나자(35:27-29) 동생 야곱을 그곳에 남겨둔 채 얼른 아버지의 재산을 전부 차지하고서 그의 식솔을 이끌고 세일 산으로 이주를 하고 맙니다(36:6-9). 그 이유는 호리 족속인 처족이 살고 있는 세일 산과 그 넓은 들판이 그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지리적인 요인 때문에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호리 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그 옛날에 사라진 소돔과 고모라 등 5개 도시국가가 자리를 잡고 있던 곳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등이 그 옛날에 번영을 누린 이유는 그 지역이 다음과 같은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소금의 산지입니다. 염해와 그 주변에서 엄청난 소금을 쉽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19:26). 그 소금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애굽의 주민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생필품입니다.

(2)  둘째, 오아시스와 온천이 있는 지역입니다(36:24). 그러므로 광야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얻고자 몰려드는 곳입니다.

(3)  셋째, 동서교역의 중심지입니다.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서쪽의 애굽 지역을 오고 가는 대상들이 첩경인 에돔 족속의 땅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돔의 오아시스에서 잠시 쉬면서 짐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이 생산이 되고 있는 소금을 구입하여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에 팔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위치적인 잇점을 지니고 있기에 세일 산과 그 들판에서는 아브라함 시대에 벌써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등 5개의 도시국가가 성립이 되고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13:10, 14:8).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4개국 다국적 군대가 침입하고 있는 역사를 창세기 제14장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물질적인 번영 때문에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18:20-21, 19:5, 8, 1:26-32). 따라서 작은 소알 성을 제외한 4개의 도시국가들이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망하게 됩니다(19:23-25). 그후 세겜 성에 살고 있던 히위 족속의(34:2) 한 갈래가 남하를 하여 그 지역을 차지한 것으로 보입니다(36:2, 20, 25). 그들이 이름하여 호리 족속입니다(36:29). 그 가운데 아나 족장의 딸인 오홀리바마가 에서의 여러 명의 아내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36:2, 5, 25, 29, 41).

에서는 타고난 무인(武人)입니다. 그러므로 처가인 호리 족속 아나 족장의 엄청난 재산을 400명의 사병들을 이끌고 지키고 있습니다(32:6, 33:16). 그러나 에서는 야망이 크고 용맹이 출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호위대장 정도에 만족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장남인 엘리바스와 더불어 기회를 보아 호리 족속을 정복하고 그 땅의 주인이 되고 맙니다(36:43). 그 결과 세일 산 아래에 펼쳐져 있는 그 넓은 들판이 진작부터 모세에 의하여 에돔 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32:3).

그러므로 에돔 족속이라고 하는 것은 정복민인 에서의 자손들과 그 땅의 본래 주민이었던 피정복민인 호리 족속과의 혼혈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오래된 역사의 흐름을 전부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뿐만 아니라 에돔 족속들 역시 모두 같은 형제이며 동족이라는 것입니다(2:4). 그러므로 동족인 그들과 전쟁을 해서는 결단코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2:5)”.

이상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이 관점을 가지고 우리 한반도의 두 나라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에돔 족속 사이의 혈연적인 관계보다 더욱 진하고 가까운 것이 남한과 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의 전쟁은 어떠한 좋은 명분을 동원하더라도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간의 전쟁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본문의 성경말씀을 공부하게 되는 성도들의 기도의 제목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모세가 요청하고 있는 차도(借道)의 요구를 에돔 왕이 결사항쟁의 각오로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가의 안보와 직결이 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20:18-21). 주권을 지니고 있는 정상적인 국가라고 한다면 외국의 군대가 자신들의 영토를 지나가겠다고 하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언제 말머리를 돌려서 마치 그 옛날 에서와 그의 장남 엘리바스처럼 자신들의 땅을 점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20:18);

(1)  고대국가에서 왕국의 주인은 국왕입니다. 국왕 한 사람이 국가의 주인이며 주권자입니다. 오늘날 민주국가에 있어서는 나라의 주권이 백성들에게 속하고 있지만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주인이 왕이기에 모든 백성과 땅 그리고 그들의 재물은 모두 왕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에돔의 모든 땅의 주인인 왕에게 자신의 사신들을 보내어 에돔 지역의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20:14-17).

(2)  에돔의 왕인 그가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것은 가능합니다. 반면에 에돔의 왕이 반대를 하게 되면 그것은 에돔의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길을 빌려주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막강한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에돔의 왕이 한 마디로 강력하게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20:18). 항목을 달리하여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3)  에돔 왕의 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들의 영토에 들어서게 되면 무력으로 제지를 할지 아니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이스라엘 자손들이 에돔의 땅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선제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들이 에돔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무력으로 제지를 아니하고 있지만 만약에 한발자국이라도 발을 들여놓게 되면 칼로써 반드시 제재를 하고 말겠다고 하는 강력한 선전포고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둘째로,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 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20:19);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20:19a);

1)    바란 광야의 북단인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 동쪽에 있는 에돔의 왕에게 사절을 보낸 자는 모세입니다(20:14). 그는 여호와를 섬기는 인류최초의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지위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국왕과 같습니다. 그러한 지위의 모세가 여기서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을 빌려서 에돔 왕에게 하나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20:19a).

2)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전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동의를 하여 에돔 왕에게 전체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에돔 땅을 빨리 통과하여 사해 동쪽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과 전쟁을 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망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들은 출애굽 후 40년간의 광야생활이 끝나는 해에 여호와께서 드디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의 땅을 정벌하여도 좋다고 하는 그 허락의 말씀에 크게 고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2:13-18). 이제는 요단 강 동편에서도 경작할 자신들의 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우리가 큰 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20:19b); 에돔 땅에는 동서간의 대상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역품을 나귀와 수레에 잔뜩 싣고 동서로 뻗어 있는 에돔의 넓은 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모세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지금 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는 도중에 필요한 물은 반드시 돈을 내고서 사 먹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20:19c); 그렇지만 이스라엘에는 60만명이 넘는 엄청난 군대가 있습니다(1:46). 그들이 말을 타고서 그 넓은 길로 통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에돔 사람들에게 현존하는 위협이 될 것입니다. 도중에 마음이 변해서 말머리를 에돔 백성들에게 돌려서 해치기라도 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한 마디로, 에돔 족속들은 길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보장 자체를 이스라엘 자손들의 군마(軍馬)에 맡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은 에돔 왕의 우려를 모세가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서 확약을 해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말을 타지 아니하고 걸어서 조용하고도 겸손하게 그 길을 지나가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현지의 주민들은 안심을 하셔도 됩니다”(20:19c 의역).  

셋째로,그는 이르되,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20:20-21);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는 이르되,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20:20);

1)    말로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영토를 한 뼘이라도 침범을 하게 되면 우리는 전군을 동원하여 천 배 만 배로 반드시 응징을 하고 말 것이다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엄포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적이 영토를 침범하는 경우 말 그대로 결사항쟁의 각오로 대적하고자 군사행동으로 직접 나서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    무엇보다도 내침하고 있는 적군과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과의 비교가 우선입니다. 상대방의 군사력이 월등하게 강하다고 한다면 군사적인 충돌보다는 외교적인 해결을 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냥 저돌적으로 군사충돌을 하여 전쟁에서 패배하는 경우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국토의 상당 부분을 빼앗길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3)    지금 에돔의 군대를 동원하고자 하는 왕의 심정은 착잡합니다. 그는 사실 두렵습니다(2:4). 40년 전에 애굽에서 갓 출애굽을 했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란 광야의 무법자이며 약탈자인 강력한 아말렉 족속의 기습을 물리치고 그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힌 장본인들입니다(17:8-13). 이제 그들은 광야에서 40년간 단련을 거쳤기에 이스라엘 군대와 정면으로 싸워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민족은 중동 땅에서 별로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돔 왕은 전군을 동원하여 국경의 수비를 강화하고 특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들어오고자 하는 길목을 전부 봉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에돔 땅에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땅을 지나가고자 하는 대상들이 모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군사적인 대치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에돔은 경제적인 엄청난 손실을 입고 말 것입니다. 중개무역으로 먹고 살고 있는 에돔의 장래가 어두워집니다.

5)    그렇다고 하더라도 에돔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돔의 땅을 그냥 넘겨줄 수가 없습니다(20:20). 바야흐로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에 전면전이 시작되려고 하는 중대한 국면입니다. 바로 그 일촉즉발의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가 모세의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2:4-6).

6)    한 마디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그 옛날 에서의 자손들에게 주신 땅이 세일 산과 에돔 들판이므로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침범하는 것은 여호와의 뜻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에돔 땅을 건드리지 말고 그곳의 양식이나 물이 필요하면 돈을 지불하고 사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서 다른 길로 사해 동쪽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에 모세가 순종하고 있습니다(20:21). 그러나 그 깊은 속내를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불만이 여전합니다(21:4-5).

(2)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20:21);

1)    모세가 참으로 에돔 왕의 체면을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에돔 왕이 강력하게 길을 빌려 주지 아니하겠다고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의 땅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막을 것이라고 하는 답변을 해오고 있습니다. 에돔 왕은 엄포에 그치지 아니하고 실제로 결사항쟁의 심정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국경을 봉쇄하고 있습니다(20:20-21a). 그러므로 모세는 에돔 왕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남쪽으로 우회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20:21b).

2)    그러나 그것은 더 큰 이유를 생략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만약 에돔 인들의 땅에 들어서게 되면 두 민족 사이에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 벌써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같은 조상을 지니고 있는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 사이의 골육상쟁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개입을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엄청난 불평과 불만을 무릅쓰면서도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여 에돔 땅을 우회하고 있는 것입니다(20:21, 21:4-5).

결론적으로, 사실 깊이 따지고 보면 에돔 족속은 순수한 에서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일 산과 그 들판을 차지하고 있던 원주민인 호리 족속과 에서의 후손들이 혼혈을 이룬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 자손들을 동족(同族, 같은 민족)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2:4). 그리고 동족인 그들 두 민족 사이의 전쟁을 결코 좌시하시지 아니하십니다(2:5-6, 20:21).

주전 530년대에 페르시아 제국에서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제2성전을 함께 건축하자고 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맙니다(4:1-4). 그 이유는 앗수르 사람들과 혼혈이 되어버린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들과는 여호와 신앙도 민족적인 행사도 결코 함께할 수가 없다고 하는 입장 때문입니다.

그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심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남보다도 못한 견원지간이 되고 맙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라고 취급하고 만 것입니다(4:9, 20). 그와 같은 생각과 통념은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며 역사섭리의 방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고(10:30-37)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과 그곳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4:23-42).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한반도와 한민족의 장래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의 전쟁을 막으셨듯이 그렇게 남북한 사이의 전쟁을 막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희생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사이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복음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조속히 이루어질 때에 부산에서 신의주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복음의 대로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역사를 내다보면서 복음적인 민족통일을 함께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