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03강(민20:6-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27. 17:43

민수기 강해 제103(20: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3()

 

모세는 자신의 능력으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240만명과 그들의 가축이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할 수가 없으므로 어떻게 그 처방을 구하고 있는가?(20:6-9)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되면 사람들은 세가지의 방안을 강구하게 됩니다; ①첫째, 그 문제의 해결을 포기하고 다른 방안을 강구합니다. ②둘째,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③셋째,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는 그러한 세가지 방법이 어떻게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1)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다시 돌아 왔더니 마실 물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38년 가까이 세월이 지났기에 바란 광야와 신(zin) 광야 사이에 있는 그곳 가데스의 산천이 변한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240만명의 백성과 그 가축들이 마실 수 있는 분량의 물이 없습니다. 참으로 낭패입니다.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물을 찾아보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며칠을 이동할 수 있는 사람과 가축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출애굽한 때부터 지난 39년의 세월 동안 광야에서 물 문제를 해결한 당사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소연을 하다가 끝내는 원망을 늘어놓게 됩니다. 진작에 염탐꾼을 먼저 보내어 물 문제를 해결해 놓고서 백성들을 인도하였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인데 모세는 전혀 그러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무모하고 무대책한 모세를 따라서 출애굽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때늦은 후회까지 하고 있는 그들입니다. 백성들로부터 그러한 애꿎은 모함과 불평을 듣고 있는 모세는 억울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 광야에서 물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는 당장 그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3)  셋째, 모세는 원망과 불평만을 늘어놓고 있는 백성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점은 그를 보좌하고 있는 친형이자 대제사장인 아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생존과 생활의 문제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해결을 하실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그들이 철저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안문제는 여호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그 도우심을 받아야만 해결이 가능합니다. 돌이켜보면, 출애굽의 역사, 홍해의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의 공급, 지난 39년 동안 광야에서 물을 만들어 내신 일 등 그 모든 꿈같은 기적과 이적이 전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의 무능력을 정직하게 아뢰고 그 도우심을 간구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성막을 찾아가서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20:6).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20:6);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20:6); 이미 모두(冒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가지의 문제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현안문제의 해결을 할 수가 없을 때에는 우회하여 다른 방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백성과 가축들이 이동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다른 지역에서 물을 구할 때까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막상 다른 지역에서 물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평생 그곳에 머물러 살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되면 동일한 문제가 다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있는 지역을 찾아서 계속 이동한다는 것이 결코 완전한 문제해결의 방법이 아닙니다. 물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땅을 파고 샘물을 찾아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2)    둘째,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을 때에는 빨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고 자신들을 잘못 인도한 책임을 추궁하게 되면 모세가 꼼짝 없이 책임을 지고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9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백성들이 그와 같은 구태의연한 행패를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20:2-5).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처럼 그렇게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자가 사람 가운데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가서 현안문제의 시급성을 말씀드리고 또한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그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살길을 열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원천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모세와 아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이 회막 앞에 엎드려서 지성소에 임재하여 계신 여호와께서 응답해주시기를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20:6a).

(2)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20:6b);

1)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도저히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서 성막 앞으로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그 창조적인 능력으로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절반입니다. 그 나머지 절반은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제 영광 가운데 여호와께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나타나십니다(20:6b). 이제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그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벌써 창세기 제17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이 항상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사람이 정직하게 여호와 앞에 서서 그 도우심을 구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여호와의 언약이 사실은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모세와 아론이 그 전능하신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20:7-8);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0:7);

1)    회막 앞으로 여호와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입니다(20:6).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람의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은 한 사람 모세 뿐입니다(20:7).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4:15-16),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19: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20:19).

2)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①첫째, 하나님께서는 최고책임자인 모세와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론이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함으로써 신정국가의 지휘체계와 영적인 질서를 바로 세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면 잘못하여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모세 혼자서 시내 산에 올라가서 듣고서 하산하여 자신들에게 가르쳐주면 그대로 지키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간접신앙의 전통이 유대교사회에서 계속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20:8a);

1)    모세가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만나 출애굽의 사명을 맡게 되었을 때에 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만이 들려 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이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4:17).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영적인 권위가 함께하고 있는 통치자의 홀과 같은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출애굽의 역사를 시작할 때에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서 여호와의 능력을 아론에게 먼저 보여줍니다(4:28). 그러자 아론은 신이 나서 모세 앞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소집한 것입니다(4:29).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모세가 그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합니다(20:8aa). 그 말을 들은 아론이 이스라엘 회중을 모세 앞에 소집하고 있는 것입니다(20:8ab).

(3)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20:8b);

1)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기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제17장에서는 그 지팡이로 호렙 산 아래의 반석을 내리쳐서 물이 터져 나오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17:6).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지팡이를 휘두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로지 그 반석에게 말로 명령하여 곱게 물을 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20:8b).

2)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의 중심을 먼저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분노를 보신 것입니다(20:10). 그 분노가 지팡이를 통하여 반석을 강하게 치는 것으로 표출이 되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습니다(20:11). 신정국가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면 백성들을 원망하거나 그들의 미숙함에 대하여 분노해서는 안됩니다. 그들 백성 역시 모세나 아론처럼 구원의 대상이며 여호와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신정국가의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주시도록 죄인의 심정으로 여호와께 간구하는 중보자이며 대속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속죄의 제사를 자신의 인생으로 드리는 성도의 대속의 삶이며 동시에 영적인 예배자의 신앙의 자세라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4)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20:8c);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꼭 그대로 피조세계에서 시행이 됩니다. 피조물이라고 하면 창조주의 절대적인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모세가 말로써 반석에게 물을 내도록 조용히 명령을 하게 되면 피조물인 그 반석은 항거하지를 못하고 틀림없이 샘물을 펑펑 내게 되는 것입니다(20:8ca). 그리하면 모든 백성들과 가축들이 충분하게 마실 수가 있게 됩니다(20:8cb).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셋째로,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20:9); 그와 같은 여호와의 지시사항을 자세하게 들은 모세는 그대로 시행하기 위하여 엎드린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여호와의 말씀과 그 능력의 지팡이만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입에 그리고 그 지팡이에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기에 모세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현안문제인 마실 물을 만드는 것도 이제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다만 남은 문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받은 그 말씀과 지팡이를 여호와의 지시사항 그대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 지시사항 그대로 행동을 하게 되면 현안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며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처럼 하나님의 일꾼이 여호와의 지시사항을 어기고 자신의 감정대로 지팡이를 휘두르기 때문에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경계를 해야만 하는 사항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살피시고 깨닫은 말씀 그대로 정직하게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