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01강(민19:20-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25. 13:10

민수기 강해 제101(19:20-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31()

 

부정함을 씻어내기 위하여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잿물은 어떻게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가?(19:20-22)

 

본문은 다음 세가지 질문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첫째, 정결하게 하는 물로 잿물을 사용하게 하신 여호와의 의도가 무엇인가?(19:20) ②둘째, 잿물을 사용한 자는 그 독성을 어떻게 제거하고 있는가?(19:21) ③셋째, 잿물보다 더 독한 부정함의 전파를 어떻게 차단시키고 있는가?(19:22)

그 세가지 질문을 가지고 본문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정결하게 하는 물로 잿물을 사용하게 하신 여호와의 의도는 언뜻 생각하면 편리성과 경제성을 감안하여 그렇게 율법의 규례를 정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정식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면 그 절차가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는 그 진영의 바깥 일정한 장소에 그 재를 보관하게 하여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19:9). 부정을 입은 백성들이면 누구나 정결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그 재를 흐르는 물에 타서 우슬초로 자신에게 뿌려주게 하면 됩니다. 그것은 부정을 빨리 씻어내어야만 하는 현실적인 요구에 참으로 잘 부응하고 있는 신속하면서도 편리한 제도입니다.

(2)  둘째로, 그렇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독성을 지니고 있는 잿물을 사용하게 하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면 여호와께서 그 정결의식에 영적인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죄성과 야성이 가장 강한 것으로 보이는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암송아지를 골라서 그것을 완전히 태워서 얻은 그 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영 바깥에서 제사장이 책임을 지고 레위인들로 하여금 그 붉은 암송아지를 도살하고 그것을 모조리 태우도록 한 것입니다(19:1-9). 그 붉은 암송아지가 완전히 죽고 남긴 것이 바로 그 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재를 흐르는 물에 타서 그 옛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릴 때에 사용한 그 우슬초에 묻혀서 부정한 사람에게 뿌리게 되면(12:21-22) 그 영적인 의미가 그 사람에게 스며들게 됩니다; “그 깊은 의미는 죄 많은 자신이 죽고 재가 되어 이제는 하나님의 깨끗한 물로 죄의 씻김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붉은 암송아지를 태울 때에도 우슬초를 함께 넣고 있습니다(19:6). 그러한 영적인 각성은 훗날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영적인 비밀을 생각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3)  셋째로, 정결한 자가 그 잿물을 부정한 자에게 뿌려줍니다. 우슬초에 묻혀서 그 잿물을 뿌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 뿐만 아니라 정결한 자에게도 그 잿물이 튀게 됩니다. 그 잿물은 독성이 강하고 세척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옷을 벗어서 빨고 몸을 곧 바로 씻어야만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잿물의 독성이 몸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19:21).

(4)  넷째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은 서로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①첫째, 창조주께서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마치 자식처럼 사랑하여 그 생명을 모두 돌보고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산 것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 곧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②둘째, 그 반면에 사탄은 하나님을 미워하여 이 세상의 것들을 모두 죄와 죽음 가운데로 끌고가고자 합니다(6:12, 8:2). 특히 사탄이 이 땅에서 천하를 꾀는 마귀가 되어 세상사람들에게 죄와 죽음의 기운을 얼마나 빨리 전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누룩과 같습니다.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되고 그것을 만지는 자도 곧바로 부정하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19:22). 그러므로 그 부정이라고 하는 누룩의 전파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 간편하게 잿물을 사용하는 정결의식을 구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19:2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니라”(19:20a);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며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은 정결하며 창조주의 생명을 계속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1:1-4, 3:16, 8:21).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끊어서 더 이상 깨끗하지도 못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도 받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는 악한 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이 이 세상에 내려와서 사람들을 꾀어서 죄와 죽음의 노예로 살아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2:2-3, 6:12, 8:2).

2)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게 되면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부정한 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된 이스라엘 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시체를 만지거나 부정한 것에 노출이 되게 되면 죽음의 기운이 파고 드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재빨리 정결하게 하는 잿물의 뿌림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정결의식을 치르지 아니한 채 그냥 살게 되면 여호와 앞에 설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더 이상 거주할 수가 없게 됩니다(19:20a).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성막과 그 성막을 바라보고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정결의식을 거부하고 있는 부정한 자를 그냥 둘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2)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19:20b);

1)    혹시 백성들이 가난하여 비싼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릴 수가 없다고 하면 부정을 제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경우에는 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인이 되고 만다는 것)의 비극적인 선민사회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그러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결의 의식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2)    그것이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사용하는 참으로 경제적이고 편리한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 제멋대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여 손쉬운 정결의식마저 거부하고 있는 부정한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정을 씻어내지 못하여(19:20b) 여호와의 성막과 거룩한 백성들의 진중을 더럽힌 죄로 여호와에 의하여 죽거나 축출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19:20a).

둘째로,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19:21);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19:21a);

1)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성전제사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전이 불타게 되자 역사적으로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 현실로 드러나고 맙니다. 주전 586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솔로몬의 성전이 불탔으며 주후 70년에는 제2성전마저 로마군대에 의하여 잿더미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막과 성전에서 드리고 있는 선민들의 속죄의 제사의 방법은 더 이상 존재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 그것은 그들의 영구한 율례가 아닌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번제단에서 정식으로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가 아니라 간편하게 마련이 되어 있는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뿌리는 속죄의 제사는 그 효력이 언제까지 미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막이나 성전이 없다고 하더라도 제사장이 붉은 암송아지를 레위인들과 함께 도살하여 그것을 완전히 태워서 그 재를 얻어 사용하게 되면 작동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생명력이 더 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선민사회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 효력을 대속의 십자가로 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3)    가축을 제물로 사용하여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제사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매년 대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반복적으로 여호와께 백성들의 죄를 고하여 대사면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16:29-34). 그 대신에 이 세상에 완전한 큰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온전한 속죄의 제물로 오신 유월절 어린양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29, 7:27-28).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셨기에 그때부터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대신하고 있으며 오늘날 온전히 부정함을 씻어내는 방법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19:21a)고 하는 말씀의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19:21b); 잿물의 독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정한 자는 제3일과 제7일 이틀간 정결하게 하는 잿물의 뿌림을 받고 있습니다(19:12). 그때마다 그 옷을 벗어서 빨고 그 몸을 깨끗한 물로 씻어야만 합니다(19:19). 그리고 그 잿물을 우슬초로 부정한 자에게 뿌리고 있는 정결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잿물이 정결의식 도중에 자신에게도 튀었을 것이므로 옷을 벗어서 빨고 그 몸을 깨끗한 물로 씻어야만 합니다(19:21b). 그것이 완벽하게 잿물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방법까지 율례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백성을 참으로 끔찍하게 아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라”(19:22); 죄와 죽음의 기운은 악한 영들로부터 그들의 악한 꾀임에 빠진 인간들에게로 전이가 되고 있습니다. 일단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되면 그 부정한 자는 마치 병원균과 같습니다. 그가 만지는 물건이나 접촉하는 사람을 통하여 그 병원균은 삽시간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마치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8:15).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그 악한 누룩의 퍼짐을 차단할 수가 있을까요? 가장 편리하고 손쉬운 방법이 정결하게 하는 잿물의 뿌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 이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사장을 통하여 번제단에서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는 비싸고 시간도 걸립니다. 제물의 값이 만만하지가 않고 그 제사의 준비에 시간이 상당히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진영의 구별된 장소에 보관이 되어 있는 재를 얻어서 흐르는 물에 담아 우슬초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정결하게 해주고 있는 속죄의 방법은 참으로 편리하며 경제적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정결의 잿물을 사용하는 간편한 율례를 정하고 있는 이유는 부정한 자이면 누구나 돈이 없더라도 그 방법을 이용하여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대신하고 깨끗함을 회복하라고 하는 취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방법에 의하여 부정한 누룩이 여호와의 성막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회에 번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까지 마련하셔서 자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보전하시며 창조주의 생명구원의 마음을 온세상에 전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회개의 복음이 온세상에 전파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간단한 본문이지만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시고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