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99강(민19:1-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22. 08:58

민수기 강해 제99(19:1-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9()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치는 헌물과 제물 그리고 속전과 십일조 등으로 생계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백성들에게 크게 하나 선심을 쓰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한가?(19:1-10)

 

민수기 제15장 및 제18장의 율법과 본문이 들어 있는 제19장의 율법은 그 이전에 발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의 잘못을 시정하고자 하는 제도적인 개선책이며 일종의 율법적인 장치들입니다.

그와 같은 율법이 제도적인 장치로서 마련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제14장의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 16장의 고라 도당의 반역사건, 17장에서 레위 지파의 영적인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12지파 지휘관들의 분란 등이 더 이상 재발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제20장에 들어오게 되면 드디어 광야생활에서 마지막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기성세대가 전멸을 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이스라엘의 군대가 되어 이제는 새로운 각오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한다는 그러한 새 시대의 서막이 서서히 준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40년만에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해 정월에 여선지자 미리암이 죽음을 맞이합니다(20:1). 그리고 그해 5월에는 에돔 땅 변경 호르 산에서 대제사장 아론이 향년 123세로 죽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의 자리를 승계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20:22-29, 33:38-39).

그해가 끝나기 전에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인 모세가 모압의 느보 산에 올라가서 멀리 요단 강 서편에 파노라마처럼 전개가 되고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내려다 보고서 눈을 감게 됩니다(34:1-8). 그렇지만 모세가 죽기 전 6개월 동안 여호와의 놀라운 축복이 말년의 모세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이 여호와의 은혜로 요단 강 동편의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21:1-32:42, 2:13-3:22).

그와 같은 전체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율법규정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매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 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19:1-3);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19:1-2a);

1)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정상으로 불러서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말씀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운영방침인 법률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법률이 아니라 모세가 전해 준 하나님의 율법’(律法, Moses’ law)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역시 율법인 것입니다.

2)    그런데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아론까지 불러서 성막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론에게는 모세를 통하여 이미 전해준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지 그 방법을 일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여기서는 율례’(律例, 율법을 성취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규례나 구체적인 예문을 말함)라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시행규칙 정도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매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19:2b);

1)    여호와께 바치는 제물은 온전하고 흠이 없는 가축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깨끗한 소나 송아지 또는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사용합니다(18:17). 그 가운데 여기서는 특이한 제물을 하나 준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아직 밭을 매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어린 암송아지 가운데 특별히 붉은 색깔의 것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붉은 색깔의 암송아지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2)    그 붉은 색깔에 대한 의미를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25:25),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25:27),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25:30),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25:34). 한 마디로, 붉은 색깔은 인간의 죄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성이 강하고 본능적인 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제멋대로 힘을 숭상하면서 살아가는 에돔의 모습이 붉은 색으로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 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19:3);

1)    대제사장인 아론에게는 본래 30세 이상이 된 아들이 4명 있으며 그들이 모두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습니다(28:1). 그런데 장남인 나답과 차남인 아비후가 그만 여호와의 전에 다른 향불을 피우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죽게 됩니다(10:1-2). 그에 따라 삼남인 엘르아살이 제1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대제사장 아론이 수석 제사장인 엘르아살에게 그 붉은 암송아지를 제물로 삼기 위하여 도살을 하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2)    그런데 그 가축을 평소와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도살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가축을 잡고 제물로 준비를 합니다(29:11, 16). 그와 전혀 다르게 그 붉은 암송아지는 이스라엘의 진영 바깥에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지켜보는 앞에서 도살을 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19:3).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성이 강한 붉은 송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죄성을 없이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다음 구절에서부터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로,제사장 엘르아살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7 뿌리고,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19:4-5);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제사장 엘르아살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7 뿌리고”(19:4); 죄성이 강한 붉은 암송아지이지만 여호와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속죄의 제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입회를 하고 진영 바깥에서 도살을 하여 제물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쓰임새가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그 하나는 그 제물의 피를 제사장이 손에 묻혀서 회막 앞을 향하여 7번이나 뿌리는 것입니다(19:4). 그것은 비록 죄 많은 가축이지만 자신을 여호와께 제물로 삼았으니 그 피로써 자신의 죄를 속죄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제사장이 중보의 기도를 하면서 대속의 피 뿌림 의식을 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9:11-12).

(2)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19:5);

1)    그 쓰임새 가운데 ②두번째는 죄성이 강한 붉은 암송아지를 도살하여 속죄의 제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일반적인 속죄의 제사를 의미하고 있는 화제나(29:13-14, 기름과 내장 등을 태움)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의미하고 있는 번제(29:15-17, 사지와 머리를 절단하고 몸통을 잘라서 모두 번제단에 태워서 바침)보다 더욱 강력합니다. 왜냐하면, 붉은 암송아지 일체를 그 가죽과 피와 분비물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진영 바깥에서 모두 속죄의 제물로 태워서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9:5).

2)    도대체 얼마나 죄가 많아야 그 정도로 모든 육신을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완전한 번제 중의 번제라고 하는 속죄의 제사이기에 그 재가 대속의 효력을 지니게 된다고 하겠습니다(19:9).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따라서 다른 처방이 더하여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셋째로,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우슬초홍색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19:6);

(1)  붉은 암송아지를 도살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그 분비물까지 일체를 불로 태우게 됩니다(19:5). 그 재가 속죄의 효력을 더 크게 가질 수 있도록 비방으로 세가지를 함께 태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입니다(19:6).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2)  첫째, 백향목은 나무 가운데 순결한 흰색이며 또한 거룩한 향내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마라의 쓴 물을 고치고자 하실 때에 모세에게 나무를 취하여 그 물에 던지라고 명령하신 바가 있습니다(15:25).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나무에는 치유의 능력이 전이가 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는 완전한 대속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1:29) 그 속죄의 제사가 이루어진 곳이 십자가 나무입니다(23:33). 그러한 의미에서 여기서는 백향목 나무를 속죄의 송아지를 태우는데 함께 넣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둘째, 우슬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세가지의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①첫째가 약용, ②둘째가 향신료, ③셋째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붓입니다(12:22). 그러므로 백성들의 죄를 씻어줄 수 있는 잿물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러한 치유와 피 뿌림을 상징하고 있는 우슬초를 함께 넣어서 태우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4)  셋째, 붉은 홍색실은 창세기 제38장에서 산모 다말에게서 쌍둥이 아들이 태어날 때에 먼저 세상으로 나온 아기의 손에 장자의 표시로 묶어준 것입니다(38:28-30). 그 홍색실은 그 손과 함께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두번째로 태어나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누가 장자인지 알 수가 없지만 여호와께서는 홍색실을 가지고 장자의 표시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의 것과 구별이 되고 있는 성막의 귀한 휘장을 짤 때에는 삼색실을 시용하는데 그 가운데 반드시 홍색실이 들어 있습니다(26:1, 31, 36). 그렇게 거듭난 인생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장자의 의미가 그 홍색실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붉은 암송아지를 제물로 태울 때에 함께 태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9:6).

넷째로,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을 것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19:7-8);

(1)  붉은 암송아지의 죄성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송아지를 도살하고 전부 태우는데 참여한 레위인들은 모두 자신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지켜본 제사장 엘르아살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날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다음날이 시작이 되는 저녁까지 부정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다음날이 시작이 되기 전에 부정을 가시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가 그 가운데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2)  그와 같이 부정을 씻는데 있어서는 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의 경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민수기 제12장에서 뚜렷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리암이 여호와의 진노로 일주일간 나병환자로 살게 될 때에 그 회복의 기간으로 7일이 소요가 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7일동안 가두고 그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12:13-14).

다섯째로,이에 정결한 자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 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19:9-10);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에 정결한 자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19:9);

1)    속죄의 제사는 반드시 번제단에서 제물을 번제나 화제로 드림으로써 이루어지고 있습니다(4-6). 그런데 여기서는 붉은 암송아지를 번제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진영 바깥에서 도살하여 그것을 회막 바깥에서 전부 태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를 수거하여 백성들의 진영 바깥에 두고서 필요한 경우 속죄의 잿물을 만들어서 간편하게 사용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번제단에서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를 대신한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2)    그것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주고 있는 참으로 간편하면서도 경제적인 속죄의 제사의 방법입니다. 누구든지 그 재를 물에 타서 뿌리기만 하면 속죄의 제사를 번제단 앞에서 드린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사를 드리고 거제물을 얻어서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생계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속죄의 방법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는 귀한 제례 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2)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 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19:10);

1)    그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기 위하여 투입이 된 레위인은 본래 정결한 자입니다(19:9). 하지만 그 재를 거둠으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으니 옷을 빨고 그날 저녁이 될 때까지 자신을 부정한 자로 여기고서 스스로 근신하라는 것입니다(19:10a). 그렇게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그 제물의 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속죄의 효력을 지니게 되는 것일까요?

2)    그 해답은 앞 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19:9b).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씻겨 나가듯이 그렇게 타고 남은 재가 물을 만나서 깨끗하게 씻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속죄의 능력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물의 능력이며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선민이든지 선민들에게서 그 말씀을 전해 듣게 되는 이방인이든지 아무쪼록 대대로 영원토록 기억하라고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뒤따르고 있습니다(19:10b).

결론적으로, 붉은 암송아지처럼 참으로 죄성이 강하고 죄가 많은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태워서 온전히 여호와께 바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속죄를 위하여 쓰임을 받게 되는 재가 되라고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물론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여호와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고 있는 물이 그 재와 같은 성도들에게 함께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성도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고 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영적인 예배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12:1-2). 그러할 때에 재와 같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의 능력이 물과 같이 더하여져서 많은 자들을 회개의 자리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복음의 사역자로 살아가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