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97강(민18:25-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21. 16:18

민수기 강해 제97(18:25-2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6()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몫으로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아름다운 첫 소출로 생각하여 제사장에게 바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18:25-29)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 제물과 헌물 가운데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몫이 있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18:8, 21). 그 결과 대제사장인 아론이 여호와의 지시대로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아론은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당부의 말씀을 확실하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주지(周知, 두루 알게 해줌)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2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18:24).

그런데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지시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책임자인 모세에게 지시를 내리시고 계십니다(18:25).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것을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의 몫 가운데 십일조를 떼어서 제사장들에게 주도록 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양쪽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되고 있는 대제사장 아론을 배제한 것입니다(18:26-29). 그러므로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불러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를 하실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18:25).

다음으로, 본문의 율법규정에서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소득의 십일조를 여호와께 바친다고 하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특권이자 의무라는 것입니다(18:25-26). 여호와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기업이 복을 받고 여호와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선지자 말라기의 지적인데(3:10-12) 그것이 선민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여호와께 바치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지고 있는 의무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기업과 분깃이 없는 레위인들도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자신들의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서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18:26). 그러한 말씀에 비추어보면, 성직자라고 하여 면세조치가 된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레위인들이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 십일조는 타작마당의 첫 수확을 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쳐야 합니다(18:27, 29). 백성들이 첫 수확을 얻는 경우 그것을 여호와께 헌물로 바칩니다. 그 경우에는 좋은 것으로 바치도록 율법이 정하고 있습니다(18:12, 23:19). 레위인들은 회막에서 여호와를 전적으로 섬기고 있으므로 토지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첫 수확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서 여호와께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에 레위인들은 백성들로부터 얻는 십일조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다시 여호와께 바치는 것입니다(18:29).  

(3)  셋째, 레위인들이 여호와께 바치는 십일조는 거제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화제나 번제로 태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는 것입니다(18:28). 레위인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제물과 헌물로 여호와께 바치게 되면 제사장은 두가지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①하나는 그 제물의 극히 일부를 태워서 레위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②또 하나는 그 가운데 대부분이 거제물이므로 그것을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몫으로 챙기는 것입니다.

(4)  넷째, 이스라엘 12지파가 십일조를 여호와께 바치는 이상 레위인들은 회막에서 여호와의 일꾼으로 일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고 추수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속전과 대속물을 바치는 이상 제사장들은 생계를 보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반대의 경우 다음과 같이 말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십일조가 사라지게 되면 레위인들이 회막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제사가 사라지고 추수감사의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며 속전과 대속물을 여호와께 바치지 아니하게 되면 제사장들은 계속 성막에서 제례의식을 집전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생존의 위기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믜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18:25-26);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18:25-26a);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대제사장인 아론이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정국가의 최고책임자인 모세에게 분부하십니다. 그 이유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 사이에 계산을 해야만 하는 미묘한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양쪽 당사자의 일방인 아론을 제외하고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를 승복시킬 수 있는 최고지도자인 모세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18:25). 그 내용은 레위인들의 급료와 관계가 된 지시 사항입니다(18:26a).  

(2)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18:26b);

1)    한마디로, 레위인들의 급료에 대한 원천징수와 비슷한 명령입니다. 레위인들이 여호와로부터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자신들의 급료로 지급 받을 때에 그것의 십일조를 먼저 여호와께 거제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예 십일조의 십일조를 공제하고서 레위인들에게 지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원천징수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일단 십일조를 보수로 받은 다음에 그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그것의 십일조를 떼어서 다시 여호와께 거제로 바치고 있으므로 그 효과는 원천징수의 경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강제가 아니라 일단은 자원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는 헌물(獻物, offering)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급료의 십일조를 떼어서 여호와께 기쁜 마음으로 헌물이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 명분이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①첫째,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이라면 당연히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선민의 권리라고 한다면 여호와께 제물과 헌물을 바치는 것이 선민의 의무입니다. ②둘째, 레위인들이 회막에서 전적으로 여호와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권리와 의무를 등한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받은 바 급료에서 십일조를 떼어서 여호와께 제물과 헌물로 바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인 것입니다.

3)    그런데 모세는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18:26b)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물을 몽땅 태워버리는 번제 또는 많이 태워버리는 화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바친 십일조는 꼭 필요한 부분만 화제나 소제로 제사를 드리고 나머지는 전부 거제물로 삼아서 제사장의 몫으로 주라고 하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레위인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생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거제물로 드린다고 하더라고 속죄의 제사라는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일부 제물을 화제나 소제로 태워서 여호와께 올려 드리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제사의 절차인 것입니다.    

둘째로,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같이 여기리니,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18:27-28);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같이 여기리니”(18:27); 레위인들은 회막에서 전적으로 여호와의 일꾼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업이나 목축업을 경영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땅에서 나는 소출을 첫 수확으로 여호와께 바치는 기쁨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레위인의 처지를 잘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급료의 십일조를 거제로 드리는 것을 마치 일반 백성들이 타작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같이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18:27).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18:28a); 레위기 제27장과 마태복음 제23장을 참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치는 십일조는 세가지 종류입니다; ①첫째, 곡식과 열매의 십일조입니다(27:30). ②둘째, 소와 양의 십일조입니다(27:32). 여기서 양은 염소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③셋째, 채소류와 허브의 십일조입니다(23:23). 그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로부터 여호와를 거쳐서 자신들의 급료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나 레위인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아니하면 한두가지 목록을 빠뜨리고 십일조를 여호와께 바치게 됩니다. 그러한 과오를 범하지 말고 정확하게 모든 품목의 십일조를 바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18:28a).

(3)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18:28b); 레위인들이 급료의 십일조를 떼어서 여호와께 거제로 바치고 있습니다. 제물의 일부는 속죄의 제사를 위하여 번제나 화제 또는 소제로 사용이 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거제물로 제사장들의 몫으로 배정이 됩니다. 제사장들의 대표가 대제사장 아론이므로 그 표현이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18:28b)입니다.

셋째로,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18:29);

(1)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 앞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반드시 일년에 세 차례 여호와께 예물을 가지고 나아와서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23:14-17). 그 세 절기는 모두 추수와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①첫째, 유월절에는 추수한 보리의 첫 열매를 바치게 됩니다(23:15, 9:31). ②둘째 오순절에는 처음 수확한 밀의 열매를 바칩니다(23:16a). ③셋째, 수장절에는 가을 모든 수확을 끝내고 그 각종의 열매들을 모두 바치는 것입니다(23:16b).

(2)  그렇게 일년에 세 차례 절기를 지키고 예물을 바치는데 있어서 두가지 명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반드시 첫 수확한 것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께 바쳐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빈손으로 와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23:15). ②둘째, 첫 수확물 가운데 적당한 것을 골라서 그냥 바치면 안됩니다.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께 바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3:19). 그와 같은 취지를 여기서는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18:29)고 다시 한번 주지를 시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땅을 흔히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땅을 기경하여 농업이나 목축업 등을 경영하면 그 소출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매년 얻을 수 있는 소득을 자신의 분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주시고 그것을 경작할 수 있는 체력을 주셔서 이제는 가족과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자신의 양식을 얻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은 회막에서 전적으로 여호와만을 섬기고 있으므로 땅을 경작하여 소출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기업도 없으며 그로부터 수확을 얻어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분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생계는 여호와께서 책임을 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20).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12지파로부터 헌물과 제물을 거두어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급료를 지급하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하겠습니다; “피조물인 땅과 자연에서 얻는 소득이 확실한 것일까요? 아니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득이 확실한 것일까요? 어느 것을 의지하여 유한한 인생을 살고 또한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방인 선지자로 살아가기로 굳게 결심을 했기에 사도 바울에 의하여 선민은 물론 모든 이방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15:6, 20:7, 4:16). 그러므로 아무쪼록 더 확실한 여호와의 기업과 분깃을 믿고서 그 종으로 한평생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