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95강(민18:19-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19. 14:24

민수기 강해 제95(18:19-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4()

 

제사장들이 제물과 속전을 취하는 대신에 이 땅에서는 기업이나 분깃이 없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18:19-20)

 

민수기 제18장 제8-18절에 적혀 있는 제사장의 몫은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하여 충분한 것일까요? 아니면 부족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정말 영원한 생계지원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19-20).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답변을 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헌물과 제물을 드리고 제사장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그 거제물을 제사장의 몫으로 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18:19). 그런데 그것이 제사장들의 생계와 생활을 위하여 충분한 것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 땅의 분깃이나 기업을 바라보지 말고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기업과 분깃이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유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18:20). 그리하면 영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역사의 섭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제사장의 직분을 올바로 감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채워 주시는 그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께서 언약의 당사자가 되고 계시기에 그것이 영원히 변함이 없는 소금 언약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과 여호와 사이에 제사의 제도가 운영이 되고 있는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진 거제물을 제사장 집안에 영원한 몫으로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율법과 제례의식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적용이 되지 아니합니다;

1)    그때에는 누가 제사장이 되고 또한 제사장 집안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생계지원을 해주게 된다는 것일까요? 고대 중동사회에서 영원한 언약과 거래의 성립을 기념하여 자신들의 소금을 서로 나누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소금 언약’(a covenant of salt, 2:13, 18:19, 대하13:5) 곧 영원한 효력을 지니고 있는 언약이라고 여호와께서 강조하신 것인데 도대체 그 대책이 어떻게 마련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2)    그 점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20절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도 사라지고 제례의식도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생계의 보장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분깃과 기업을 주고 있는 당사자가 이스라엘 백성과 그 사회가 아니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그 사실을 믿고서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이 땅에서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영원히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18:20 의역).

(3)  셋째로, 제사장들은 땅에서 얻는 유한한 기업과 분깃을 포기하는 대신에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과 분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과 여호와신앙으로 살아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제사장들만이 아닙니다.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간 것입니다(11:13-16). 히브리정경에 등장하고 있는 많은 믿음의 인물들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신약에 등장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18: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18:19a); 여기서거제’(擧祭, 제물을 제사장이 두 팔로 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제사의 방법)라고 하는 것은 그 의미에 있어서 요제’(搖祭, 제사장이 제물을 들고 흔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제사의 방법)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제물 뿐만 아니라 요제물까지 여호와께서는 제사장에게 식용으로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론)게 돌릴 것은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18:11).

(2)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18:19b);

1)    고대 중동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언약을 하거나 거래를 성립시킬 때에 그것이 확실하며 결코 변경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의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소금 언약”(a covenant of salt)입니다(2:13, 18:19b, 대하13:5, 9:50). 계약을 할 때에 서로가 주머니에 소금을 넣어서 옵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거래가 성립이 되면 반드시 이행을 한다는 맹세의 의미로 자신의 소금을 상대방 주머니에 서로 넣어 줍니다. 그러면 그 소금이 서로 섞이어서 변함이 없는 하나의 맛을 내듯이 그렇게 결코 변질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한몸처럼 되었으니 이제는 같은 마음으로 그 언약이나 거래의 이행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한다는 맹세인 것입니다.  

2)    고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소금언약을 어기게 되면 위약을 한 자는 엄청난 보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그 계약의 당사자가 여호와 하나님과 제사장들입니다. 그 계약의 이행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서 창조의 능력으로 담보하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가장 강력한 보증을 받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사를 드리든지 더 이상 드리지 아니하든지 상관이 없이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제사장의 역할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성도들에게 그 소금 언약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말씀의 완전한 계시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확인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둘째로,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20);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18:20a);

1)    여기서 아론은 대제사장이며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는 제사장들의 최고 어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이 모든 제사장들에게 적용이 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2)    그것은 아론이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체에게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집안이나 가문 그리고 혈통을 떠나서 아론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면 누구나 여호와로부터 같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범주에 들어가는 개인들이 누구일까요? 모든 선민들과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19:6, 벧전2:9).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아론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그 다음 말씀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18:20b);

1)    제사장 뿐만 아니라 모든 레위인들에게는 자신의 기업을 일굴 만한 큰 땅을 분배하지를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였지만 레위인들에게는 땅을 배분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18:20b);

2)    그렇다고 하여 살집과 텃밭을 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제35장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를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35:2-3). 재산을 일굴 만한 땅이나 넓은 초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겨우 살 집터와 약간의 가축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땅을 주는 것입니다.

3)    더구나 12지파의 각 지역에 레위인들이 분산하여 살도록 그들의 거주지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치함으로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12지파의 백성들과 함께 살면서 종교교육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결국,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평생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12지파에 분산하여 살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종교교육만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기업을 이루고 재산을 일굴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사를 싫어하고 여호와께 제물을 규정대로 바치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당연히 생계의 위기에 내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상의 마지막 선지자로 불리고 있는 말라기가 여호와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10-12).

(3)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20c);

1)    히브리정경에 나타나고 있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만이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제도의 운영으로써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오늘날 여호와를 섬기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계의 위협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성도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아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20c).

2)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이 세상 모든 재산과 물질 그리고 모든 인간들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들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그 창조의 능력을 가지시고 앞으로 다음과 같이 역사를 섭리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간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챙기시고 보살피신 것과 같이 이제는 정직하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돌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이 땅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포기한 그 기업과 분깃을 하나님나라에서 대신 얻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18:20c 의역).

결론적으로, 로마서 제1-11장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제12장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한 마디로, 세상과 구별이 되는 거룩한 삶을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4:14) 이 세상에서 공생애를 통하여 어떻게 복음사역을 하셨는지를 깊이 묵상하고서 그대로 따라서 제자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22:28-30, 3:12).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의 삶이 결국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완성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공생애와 복음사역의 길을 정직하게 따라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