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00강(민19:11-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25. 13:08

민수기 강해 제100(19:11-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30()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사용하는 자는 어떠한 백성들인가?(19:11-19)

 

잿물은 비누가 없던 시절에 비누 대신으로 사용하던 것이기에 나이가 드신 한국사람들에게 상당히 친숙합니다. 흔히 콩깍지나 볏짚을 태워서 얻은 재에 물을 붓게 되면 노란 물이 생기는데 그것이 잿물입니다.

그 주성분이 알칼리성인 탄산칼륨(炭酸칼륨, potassium carbonate)인데 강한 독성과 세척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를 채소밭에 뿌려주면 벌레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짚에 재를 묻혀서 놋그릇을 닦으면 새것처럼 광택이 나는 것입니다.

그 독성 때문에 옛날 사람들이 잿물을 가지고 곧바로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지 않습니다. 먼저 끓는 물에 빨래감을 넣고 그 잿물을 일부 넣어서 함께 솥에서 삶습니다. 그렇게 하여 묵은 때가 빠지게 되면 그것을 빨래터에 가지고 가서 흐르는 물에 헹구고 방망이로 두들겨서 빨래를 마칩니다. 그 다음에 햇빛에 말리게 되면 헌 옷을 새 옷처럼 상쾌하게 입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비누나 세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주성분이 역시 그 옛날 재와 같은 탄산칼륨입니다. 그런데 서양문물이 동양에 들어오게 될 때에 비누나 세제가 먼저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19세기와 20세기초에 서양에서 사용하던 양(, 서양을 말함)잿물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화기 이후 조선사람과 한국사람들은 전통적인 잿물 대신에 양잿물을 시장에서 사서 간편하게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잿물보다 세척력이 훨씬 강합니다. 그 주성분이 수산화나트륨(NaOH)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가성소다라고 불리고 있는 양잿물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 취급과 보관에 있어서 특히 주의를 요합니다.

잘못 만지게 되면 부상을 입고 사람이 잘못 양잿물을 먹게 되면 죽게 되므로  빨래감을 삶을 때에도 조심스럽게 집게로 양잿물 덩어리를 일부 떼어서 사용합니다. 솥에서 빨래를 끄집어 낼 때에도 직접 손으로 작업을 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막대기나 집게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독한 잿물을 달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잿물을 몸에 뿌려서 부정을 면하고 정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에서 살펴본 잿물과 양잿물의 독성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무모한 율례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용의 경우가 다음과 같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1)  첫째, 시체를 만진 사람이 정결함을 얻기 위하여 그 잿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3일과 제7일에 그 잿물을 그 사람에게 뿌리게 되면 7일 동안의 부정이 깨끗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19:11-13).

(2)  둘째, 시신이 있는 장막에 출입을 한 자들 역시 7일 동안 부정합니다(19:14). 그 부정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그 잿물을 우슬초에 찍어서 부정한 사람에게 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19:14, 18-19).

(3)  셋째, 들에서 살해를 당한 자의 시신이나 무덤의 유골을 만진 자 역시 부정을 탓으므로 위와 같이 잿물로 정결의식을 행하여야 깨끗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19:16-18).

(4)  넷째, 죽은 자의 장막에 있는 물건 가운데 뚜껑을 열어 두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그 내용물과 함께 부정을 탄 것입니다(19:15). 그러므로 그 속죄의 잿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5)  다섯째, 속죄의 잿물을 두 차례 뿌려서 7일만에 정결함을 얻게 된 사람은 반드시 후속조치로서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정결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19:1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그는 셋째날일곱째날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날과 일곱째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19:11-12);

(1)  붉은 암송아지를 속죄의 제물로 삼아 이스라엘의 진영 바깥에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레위인들을 진두지휘하여 그 제물을 도살하고 모조리 불로 태우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재를 취하여 진영 밖 깨끗한 장소에 보관하도록 합니다(19:9a). 그 재를 흐르는 물에 타서 우슬초로 부정한 자에게 뿌리게 되면 정결함을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것은 속죄의 제사를 대신하고 있는 참으로 간편한 방법입니다(19:9b).

(2)  그 잿물이 사실은 상당히 독성이 강하고 세척력도 엄청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종교적인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용처가 한정이 되고 있습니다; ①첫째로,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에게 정결의식을 위하여 사용합니다(19:11).

(3)  구체적으로, 3일과 제7일에 각각 우슬초에 그 잿물을 찍어서 그 부정한 자에게 뿌리게 되면 7일만에 정함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19:12a). 만약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두 번 뿌리지 아니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원히 부정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19:12b).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음 구절에서 설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로,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19:13);

(1)  성막의 지성소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십니다(4:24).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에게 그 감찰의 눈과 보호하심이 동시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선적으로 여호와의 통찰하심이 자신의 백성으로 삼은 바가 있는 이스라엘의 진중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시체를 만지고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하는 잿물 뿌림의 의식을 받지 아니한 채 그대로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께서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생명의 기운이 그 부정한 자에게 머물고 있는 죽음의 기운을 싫어하여 그에게 생명살림의 역사를 베풀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2)  그 결과 그 부정한 자는 거룩한 백성 가운데서 뿌리가 뽑히게 되고 맙니다. 그 부정한 자를 제거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에게 머물고 있는 죽음의 기운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누룩처럼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막에 계시는 여호와의 생명력까지 잠식하고자 획책할 것입니다. 따라서 부정한 자가 정결하게 하는 잿물 뿌림이라고 하는 가장 간편한 속죄의 의식마저 회피를 하게 된다면 여호와께서는 성막과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전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그 자를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장막에서 사람이 죽은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19:14-15);

(1)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뿌려야만 하는 경우는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장막에서 사람이 죽은 경우입니다(19:14-15). ②또 하나는 장막 바깥 들판에서 사람이 죽은 경우입니다(19:16).  

(2)  그 가운데 첫번째의 경우를 본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장막에서 사람이 죽은 경우 부정함을 입게 되는 세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①그 장막에 있는 자, ②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 ③뚜껑을 닫지 아니하고 그 장막에 놓여 있는 그릇의 내용물 등입니다(19:14-15).

넷째로,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사람의 뼈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19:16); 두번째의 경우는 장막 바깥인 들에서 사람이 죽은 때입니다. 그때 부정함을 입게 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들에서 살해가 된 자, ②그 시신을 만진 자, ③무덤을 파헤친 자, ④유골을 만진 자 등입니다(19:16a). 그들은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제3일과 제7일에 뿌림을 받아야 7일만에 비로서 자신들의 부정을 씻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19:16b).

다섯째로,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날일곱째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19:17-19);

(1)  장막에서 죽은 자 및 그 시신과 접촉을 한 자 그리고 그 죽음의 기운이 들어온 그릇의 물건 등에 대해서는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뿌려서 부정을 씻어 내야 합니다. 또한 들에서 살해를 당한 시신과 그것에 접촉을 한 자 또한 무덤을 만지거나 유골을 만진 자들도 전부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가지고 속죄의 의식을 치루어야만 합니다.

(2)  구체적인 정결의식의 방법은 심히 간단합니다. 그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흐르는 물에 조금 풀어서 우슬초를 사용하여 부정한 자에게 뿌리는 것입니다. 3일과 제7일에 그 잿물을 뿌리게 되면 7일만에 부정이 사라지고 깨끗함을 입게 됩니다(19:19a). 실로 간단한 속죄의 의식이지만 그 효과는 속죄의 제사와 맞먹는 것입니다(19:9).

(3)  잿물은 독성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잿물의 뿌림을 당한 자는 그 옷을 벗어서 빨래를 하고 자신의 몸을 깨끗한 물로 씻어야만 합니다(19:19b). 그렇게 친절하게 율법이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세하게 규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에서도 근대화가 되기 전에는 재를 이용하여 묵은 떼를 제거하거나 빨래를 했습니다. 잿물의 용도는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채소밭에 뿌려주면 벌레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놋그릇을 닦고 광택을 내는 데에도 그 재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는 재의 성분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잿물로 속죄의 제사를 대신하는 기능으로 발휘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재는 붉은 암송아지를 제사장이 백성들의 진영 바깥에서 몽땅 태워서 얻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입회를 하고 레위인들이 그 제물을 도살하고 완벽하게 번제로 태운 것이기에 그 재가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독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사용이 제한적입니다;

(1)  첫째, 시신을 만진 자나 죽은 자가 있는 장막에 출입을 한 자들의 부정을 7일만에 씻어내기 위하여 잿물을 우슬초에 묻혀서 제3일과 제7일에 그 사람에게 뿌리는 것입니다.

(2)  둘째, 들에서 살해를 당한 자의 시신을 만졌거나 무덤의 유골을 만진 자 역시 위와 같은 정결의 의식을 거쳐야 깨끗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뿌림으로써 속죄의 제사를 대신하고 있기에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가난한 백성 그리고 먹고 살기에 바쁜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경을 쓰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 고마움을 알아서 자신의 부정함을 씻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세심하신 하나님의 배려에 항상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