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82강(민16:12-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12. 03:52

민수기 강해 제82(16:12-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10()

 

모든 자신들의 잘못과 허물을 최고지도자 모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다단과 아비람의 행태는 누구와 닮아 있는가?(16:12-16)

 

히브리정경이 바이블일 수가 있는 이유는 그 글속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태도가 오늘날 인간들의 행태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무섭도록 그 사고와 행동의 원형이 닮아 있기 때문에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과 행실을 깊이 묵상하게 되면 오늘날의 인류가 비록 과학이 발달한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21세기의 현대인들 역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그 수천년 전의 인간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발전이 되지 못한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그러한 책임전가(責任轉嫁,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떠다 넘기고 오히려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와 적반하장(賊反荷杖, 쫓기던 도둑이 막대기를 들고서 도리어 주인을 도둑이라고 몰아 부치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들을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고 어떠한 심판과 처벌을 내리시는지 그 결과에 대하여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르우벤 지파의 2장로인 다단과 아비람의 경우가 그러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들의 항변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째서 적반하장의 말도 되지 아니하는 내용인지를 한번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서 너무나 억울한 모세가 분노하여 어떠한 답변을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그 진풍경을 돌아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처벌을 내리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째서 르우벤 지파의 장로로서 역시 고라의 당에 가입한 온이 여기서 빠져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이번 강해에서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판정과 관련하여 미리 말씀을 조금 드리자면, 그들의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그 책임의 소재가 어떻게 되는지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호와의 심판과 처벌이 그들의 장막 앞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끝까지 우기면서 뻔뻔하게 장막 앞에  서 있던 그들에게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것)할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름이 끼치는 엄청난 처벌이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다치지 아니하게 하고자 조심스럽게 매우 국지적(局地的, 좁은 땅에 한정이 되는)인 지진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16:27-34). 구체적인 그 처벌에 대해서는 나중의 강해에서 자세하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16:1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16:12a);

1)    본문에 들어오기 전에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자신의 사촌이며 금번 반역사건의 주모자인 고라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옳다고 하면 여호와의 판정을 받기 위하여 내일 자신들의 향로에 가루향을 태우면서 모두들 회막 앞으로 그 향로를 들고서 집합을 하라는 것입니다(16:5-8). 그러자 주모자인 고라와 그에게 동조하고 있는 250명의 지휘관들은 내일 회막 앞으로 자신들의 향로를 들고서 나아오겠다고 답변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16:17-18). 하지만 고라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르우벤 지파의 유명한 장로인 다단과 아비람은(16:1) 그 답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내일 회중 모임에 그 두 장로가 참석할 것인지 여부를 사전에 파악하기 위하여 자신의 수하를 그들의 천막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16:12a).

2)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민수기 제16장 제1절에서는 분명히 르우벤 지파의 장로들 가운데 고라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자가 3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벨렛의 아들인 온 장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어째서 그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전에 모세를 찾아와서 사죄를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더 이상 온 장로의 이름을 거명하지를 않습니다. 온 장로가 고라의 도당에서 이탈을 해버렸기에 더 이상 여호와의 처벌과 심판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열거가 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이 일찍 자신의 잘못과 과오를 깨닫고 여호와 앞에서 그리고 모세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을 하는 것이 살길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회개의 효과라고 하겠습니다.

(2)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16:12b); 르우벤의 장로인 다단과 아비람은 아예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명령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말해도 그 말을 신용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말에 따르지 아니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장막에 남아 있겠다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부하가 자신들을 찾아 왔기에 차제에 그들이 어째서 모세의 지시에 항명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둘째로,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16:13);

(1)  다단과 아비람이 주장하고 있는 그들의 불만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출애굽과 광야생활이 모세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16:13). ②또 하나는 악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모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16:14).

(2)  그 가운데 첫번째 불만에 대한 그들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애굽은 그야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입니다. 나일 강변에서 농사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와 같은 풍요로운 땅을 떠나도록 바람을 넣은 자가 모세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준다고 하면서 억지로 끌고서 광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고 있는데 비해서 모세는 마치 이스라엘의 왕과 같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통해서 죽어가고 있는데 모세 혼자서만 왕의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 출애굽의 저의가 과연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16:13 의역).

(3)  만약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모세오경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성립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정경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들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러한 여호와의 역사를 자세하게 글로 적어서 그것을 후세에 남기게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단이나 아비람과 같은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궤변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24:44-49).

셋째로,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16:1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16:14a);

1)    여기서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16:14a).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으로 들어가고자 광야생활의 어려움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데스 바네아에 들어와서 멀리 신(zin) 광야 넘어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만 그 땅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진격을 하다가 패전을 하고 맙니다(14:42-45).

2)    아말렉 족속에게 이스라엘의 군대가 패배를 맛본 것은 모세가 그 옛날처럼 바위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승리를 달라고 간구하면서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지를 아니했기 때문입니다(17:10-11). 모세는 여호와가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북진을 하지 아니하고 가데스 바네아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14:44). 그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그렇게 다단과 아비람이 진실을 외면한 채(14:40-45) 모세를 해치고자 고의로 억지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 역사가 오래된 인류의 발명품인 마타토어이며 흑색선전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애매한 억지소리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행태는 34백년 전이나 현대에 있어서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2)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16:14b); 강제로 사람들의 눈을 빼거나 뚫게 되면 그만 소경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올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을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다단과 아비람의 주장입니다(16:14ba). 그렇게 모세가 백성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가 없도록 여호와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달하고 있으니 그의 말을 따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전달하고 있는 내용 곧 자신들의 향로에 불을 붙여서 회막 앞으로 모이라고 하는 전언에 대하여(16:6-7) 그것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6:14bb).  

넷째로,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이에 모세가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희 온 무리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16:15-16);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16:15a);

1)    반성할 줄을 모르고 있는 다단과 아비람의 모세에 대한 험담과 흑색선전은 그 도가 지나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 모세는 그들이 최고지도자인 모세 자신만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들의 안중에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이 부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한 불신앙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차마 눈뜨고는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격노하고 있습니다(16:15aa).

2)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다단과 아비람의 죄악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마시고 그대로 처벌을 하시라는 말씀을 올리고 있습니다(16:15ab). 지금까지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끊임없이 드리고 있던 모세입니다. 그러나 다단과 아비람의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워할 줄을 모름)한 답변에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유례가 없는 강력한 진언을 드리고 있습니다;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16:15ab). 그것은 그들이  어떠한 봉헌물과 제사를 여호와께 바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조금도 용서나 죄 사함을 주지 말아 달라고 하는 뜻입니다.

(2)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16:15b);

1)    모세가 자신의 결백을 여호와 앞에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모세 자신은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16:15ba). ②또 하나는 무죄한 자를 해친 경우가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16:15bb). 그것은 세상 왕들의 행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아니하는 내용입니다.

2)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왕들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말을 듣지 아니하면 그들을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삼상8:14-18). 그렇게 왕들이 백성들 위에 두려운 존재로 군림을 하고 있는데 모세는 자신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나라가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모세는 제사장나라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서 그대로 사심이 없이 집행할 따름입니다. 그 말씀을 벗어나서 백성들로부터 재산을 착취하거나 그 생명을 해친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모세가 아뢰고 있는 자신에 관한 변명입니다.

4)    만약 모세의 말이 거짓이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천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여호와 하나님 바로 앞에서 모세가 진술하고 있는 자신의 변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그렇게 자신에 관하여 여호와 앞에서 진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합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하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3)  이에 모세가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희 온 무리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16:16);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가 수하를 보내었지만 내일 회막 앞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겠다고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 온은 이미 고라의 도당에서 탈퇴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고라와 250명의 군부의 지도자들만이 내일 회막 앞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참석여부가 사전에 파악이 되자 모세가 고라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모세가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희 온 무리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16:16). 고라 도당과 아론 가운데 어느 쪽을 여호와께서 지지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내일 각각 자신들의 향로에 불을 붙이고 가루향을 태우면서 회막 앞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일 그 앞에서 여호와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일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과연 고라의 민주개혁의 요구가 하나님께 받아 들여질까요? 아니면 모세와 아론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시는 것이 여호와의 뜻일까요?

결론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에서의 정책결정은 그 백성들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창조주의 주권에 의하여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잊어버리고 고라가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심에 빠져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론의 가문만이 제사장이 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한 이스라엘 군대가 대패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죄 때문이라고 강변하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지도자로서 백성들에 대한 배신 행위입니다”.

고라의 도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신정국가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그리고 다수결로써 정책결정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뜻이 여호와에 의하여 받아 들여질까요? 민수기는 계속 그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론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결정을 내리지만 여호와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살리기 위한 결정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인간의 요구대로 역사를 섭리하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공의의 이치를 생각하시면서 아무쪼록 구약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하시는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