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80강(민16: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10. 17:27

민수기 강해 제80(16: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6()

 

모세의 사촌인 고라와 르우벤의 족장들이 당을 지어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지도체제에 대하여 반역을 도모한 이유가 무엇이며 모세는 어떻게 대처를 하고자 하는가?(16:1-5)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스토리는 신정국가와 민주국가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 점을 그 스토리와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같은 고핫의 손자이며 모세의 사촌인 고라가 불만이 가득합니다(16:1, 6:21).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당시의 고대사회가 장자상속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부친인 아므람과 고핫 자신의 부친인 이스할은 친형제입니다(6:18). 그렇지만 아므람이 장남이고 이스할이 차남입니다. 그 때문에 고라의 할아버지인 고핫의 가문을 이끌고 있는 족장은 장자인 백부 아므람입니다. 그리고 아므람의 장남인 종형 아론이 역시 그 뒤를 이어서 족장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라는 비록 이스할의 장남이지만 장손이 아니므로 고핫 자손들의 족장이 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고라는 언제나 사촌 형인 아론에게 눌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라가 지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에 대한 불만입니다. 요컨대, 고라는 그 옛날 쌍둥이 형인 에서의 장자권을 시기한 동생 야곱의 불만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25:24-34, 16:1).

2)    둘째, 고라는 사촌인 모세만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에서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자신도 상당히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70인의 장로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예언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11:24-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이후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는 항상 모세입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회중 가운데에서 적임자를 선출하지 아니하시고 늘 모세만을 편애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영 불합리하게 보이는 고라입니다. 따라서 그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을 회중모임에서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로 뽑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고라는 매우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영리하며 자신의 세력을 규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처럼 모세와 아론의 지도체제에 대하여 불만을 지니고 있는 르우벤 족속의 장로들과 12지파의 지휘관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1)    첫째, 장자상속의 사회라고 한다면 12지파의 으뜸은 야곱의 맏이인 르우벤입니다(29:31-32). 그러므로 르우벤 자손의 족장들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인 모세가 최고지도자가 되어 있으니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라의 주장이 일부 르우벤의 장로들에게 먹히고 있습니다(16:1). 동시에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경험한 바가 있는 12지파의 지휘관들에게도 자신들의 잘못을 모세에게 전가할 수 있는 교묘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최고지도자를 민족의 대표자 회의인 회중의 자리에서 민주적으로 결정하자고 하는 고라의 주장이 12지파의 사령관들과 천부장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회막 앞에 참석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의 수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 70인의 장로들, 12지파의 사령관, 그리고 600명이 넘는 천부장 등입니다. 그들이 투표를 한다면 그 수가 많은 군부의 리더가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고라의 제안에 대하여 군부의 지도자 전체 수의 40%나 되는 250명이 찬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16:2).

고라의 개인적인 불만과 그 선동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합니다. 그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모세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세는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께 그 처분을 맡겨 드리고 있으며 엎드려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이 당을 짓고”(16:1);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16:1a);

1)    소위 고라 당의 반역사건은 고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고라는 아론과 모세의 사촌입니다. 아론과 모세는 친형제이며 다른 남자형제가 없습니다(6:20). 따라서 남자로서는 사촌인 고라가 가장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고라가 모세와 아론의 큰 삼촌인 이스할의 장남이기 때문입니다(6:18, 21).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은 성막을 섬기는 직분을 레위 인들에게 분담시킬 때에 큰 숙부의 장남인 고라에게 큰 권력을 맡기게 됩니다. 고핫의 자손들이 성막 내의 지성물을 운반하는 일을 전담하게 될 때에 그 운반의 총책임을 고라에게 맡긴 것입니다(4:4). 따라서 고라의 권력이란 제사장 다음으로 막강합니다.

2)    그러한 특혜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고라는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 이유는 그와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가 모세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고 아론의 아들들이 모두 제사장이 되는지 고라는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28:1). 고라 자신과 그의 아들들도 엄청 똑똑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신앙도 깊습니다. 고라는 이스라엘 70인의 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예언도 하고 선지자로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11:24-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못내 불만인 것입니다.  

(2)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이 당을 짓고”(16:1b);

1)    고라가 모세와 아론의 지도체제에 불만을 품고서 가장 먼저 접촉한 인물들이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의 후손들입니다. 그 이유는 장자 집안이지만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지도세력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그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    르우벤의 족보를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인 야곱의 장남은 르우벤입니다. 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과 발루 그리고 헤스론과 갈미입니다. 그 가운데 발루의 아들이 엘리압이고 엘리압의 아들들이 느무엘 및 다단과 아비람입니다”(46:9, 26:5-9). 르우벤의 아들이 4명인데 그 가운데 차남인 발루의 손자가 다단과 아비람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광야에서 두번째 인구조사를 할 때에 발루의 아들인 엘리압의 3아들 가운데 차남과 3남으로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26:9).

3)    그로 미루어 보아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장로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르우벤 장로 가운데 또 한 사람인 벨렛의 아들 온에 대해서는 히브리정경에서 별도의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벨렛의 아들인 온은 다단이나 아비람만큼 유명한 장로는 아닌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16:1b). 하지만 온도 고라의 반역에 적극 가담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16:2);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16:2); 민수기에서 자주 사용이 되고 있는 회중’(會衆, 한 장소에 모여 있는 예배자들인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임)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문장입니다. 회중이란 모세의 회막 앞에 모여서 민족의 진로에 대하여 협의를 할 수 있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총회에서 결정하여 지도자로 세운 인물들입니다(16:2). 그들이 모세와 아론과 함께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라는 그 회중 가운데에서 자신처럼 모세와 아론의 지도체제에 대하여 불만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을 포섭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16:2);

1)    군부의 지도자들의 수가 민간인 지도자인 장로 70인보다 훨씬 많습니다. 70인의 장로에 최고지도자인 모세와 대제사장인 아론 그리고 아론의 아들 가운데 여전히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고 있는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전부 합해도 민간인 지도자는 74명입니다. 그에 비해서 12지파 군대의 지휘관은 12명의 사령관과 600명이 조금 넘는 천부장들이며 그 수가 적어도 612명이나 됩니다. 따라서 고라는 군부의 지도자들에게 모세에 대한 불만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2)    애초에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하고 다른 최고지도자를 회중에서 세워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의견을 모은 바가 있는 군부의 지도자들입니다(14:3-4). 그러한 전력(前歷, 옛날의 이력)이 있기에 고라의 충동으로 군부의 지도자들이 다시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하고자 획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군부지도자 612명의 40%에 이르는 250명이 고라의 반역의 도당에 가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큰 풍운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셋째로,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16:3);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16:3a);

1)    모세의 사촌인 고라가 앞장을 서고 르우벤 진영의 주장인 르우벤 지파에서 3명의 장로들이 고라를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부의 실세들이 250명이나 가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라를 앞세우고 회막에 있는 모세와 아론을 찾아와서 책임추궁과 함께 논리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2)    그 첫마디가 모세와 아론은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하고 있으면서 그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권력만을 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의 대군이 가나안 남부 네게브에서 크게 패전한 책임에 대하여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전혀 사죄를 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빙자하여 군림만 하고 있으니 그것이 백성들이 보기에 분수에 지나치고 있다는 것입니다(16:3a).  

(2)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16:3b);

1)    고라의 당(, 이념으로 뭉친 무리들)의 주장은 지도자들 사이의 평등성과 민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평소 모세의 회막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민족의 장래문제를 논의하는 것입니다.

2)    지도자들이 모두 지성소에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회막에 모시고 그 앞에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16:3bb).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에 회중은 모두 거룩한 선민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자신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그것이 이스라엘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그러한 평등성과 거룩성을 부인하고서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만이 특별한 우월적인 지위의 일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일견하기로는 굉장히 민주적인 발언으로 보입니다.

(3)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16:3c); 고라의 당은 모세와 아론이 교만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고자세로 군림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최고지도자로 모세를 선출한 적이 없으며 또한 대제사장으로 아론을 추대한 적이 없는데 그들은 스스로 여호와의 지시라고 말하면서 그 최고의 자리들을 꿰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자리차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넷째로,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16:4-5); 역시 세 부분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16:4-5a);

1)    모세가 고라의 당의 주장을 모두 듣고 나서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지성소를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16:4). 엎드려서 여호와 하나님께 이 문제의 해결을 기도로써 부탁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고라의 당이 찾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견을 모은 결과 모세와 아론 두 사람의 지위와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손으로 뽑은 최고지도자도 대제사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고지도자와 대제사장이라고 모세와 아론이 강조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판단으로는 그것을 믿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3)    모세는 그렇게 자신들이 불신임을 당하고 있으니 그 발령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부디 말씀해 달라고 엎드려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도를 끝낸 모세가 돌아서서 회중들에게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16:5a).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2)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16:5b);

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여 찬반투표를 실시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호와의 분명한 선택임을 다시 눈으로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여호와의 답변이 후자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    첫째,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시는 그러한 신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일꾼을 선택하시는 제일 기준은 그 사람이 여호와께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입니다(16:5ba). 자신의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아니면 선택하지를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3)    둘째,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자신의 뜻을 물리치는 자를 거룩한 자라고 부르십니다(16:5bb).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여호와께서 일꾼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16:5bc). 

(3)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16:5c);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의견을 일일이 들어가면서 민주적인 결정을 하실 필요가 하등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어떠한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는지를 위와 같이 설명하신 다음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계십니다;

2)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모세의 회막 앞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앞으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와 대제사장으로 사용하실지 다시 밝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불러서 여호와의 성소 앞으로 나아오게 하실 것이니 눈을 크게 뜨고서 바라보라는 말씀이십니다(16:5c).  

결론적으로, 인간의 지성과 이성이 발달할수록 사회적으로 민주주의와 다수결이 가장 좋은 제도인 것으로 선전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피조물이며 육신을 지니고서 살아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있는 제도에 불과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계속 축적이 되고 있습니다. 사례별로 법원리와 문제해결의 방법이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논리성과 현실성을 지니고 있는 이론도 상당히 많이 개발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미래가 다가와도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오랜 세월 축적이 된 경험과 이론을 잘 활용하면 당면한 문제들의 해결은 시간문제라고 21세기의 인류가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을 엄청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고라의 도당과 같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가 너무나 불안합니다. 일례로 1960년대에 벌써 지구를 여러 번 불바다로 만들 수가 있는 핵무기를 강대국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칫 실수로 핵 단추를 눌러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상상하기도 싫은 인류의 멸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참으로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인류멸망의 핵 단추를 제어할 수가 있을까요? 민주주의 다수결로 뽑은 지도자들일까요? 아니면 창조주께서 선택하시는 거룩한 일꾼일까요? 본문의 뜻을 음미하고 보면 분명히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다수결의 신봉자가 되기에 앞서 아무쪼록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신실한 일꾼들을 많이 보내어 달라고 먼저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