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64강(민14:6-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1. 21:21

민수기 강해 제64(14: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17(주일)

 

백성들이 절망스러운 현실을 이기고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는 방법 3가지가 여호수아와 갈렙의 발언 가운데 어떻게 제시가 되고 있는가?(14:6-9)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말이 아니라 10정탐꾼의 말을 믿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밤새 울면서 여호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13:31-14:1). 그 모습을 보다 못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이 격분하여 온 회중에게 말하고 있습니다(14:6-9). 그 가운데 실로 묘하게도 절망스러운 현실을 이기고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는 방법 3가지가 다음과 같이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과 또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모두가 심히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14:7).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데 그것이 살아 생전에는 성령님의 임재와 동행이시며(11:9-13, 24:49, 1:8) 부활한 다음에는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5:1-12, 22:28-30, 14:1-3).

(2)  둘째,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 약속의 땅을 넉넉하게 차지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14:8).

(3)  셋째, 인생길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면 그 앞에 막아서는 적들은 전부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적들의 수호신과 우상들이 먼저 여호와의 사자에 의하여 쫓겨나게 되어 그들에게는 믿고 의지할 언덕이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14:9).

그렇지만 문제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갈파하고 있는 그와 같은 사실을 백성들이 믿고서 그 마음이 여호와께로 돌아서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백성들이 다시 그들의 마음 문을 여호와께로 열고서 회개를 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영생의 구원까지 얻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11:16). 반대로 끝까지 여호와를 불신하고 그 은택을 저버리게 되면 광야와 같은 삶을 살다가 죽고 마는 불행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14:28-30).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14:6);

(1)  13장에서 전체적인 정탐 결과의 발표가 있은 다음에 개인적으로 의견을 발표한 정탐꾼은 모두 11명입니다. 그들의 의견은 110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먼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전체보고를 듣고서 실망한 이스라엘 회중들은 절망에 빠져서 갈렙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의 열패의식은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한 분위기를 재빠르게 파악한 10명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사견임을 전제로 하여 공식적인 정탐의 결과를 심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3)  구체적으로, ①첫째,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가 아니라 메마른 불모지이며 그나마 거인족들이 그 소출을 뺏아가고 마는 약탈의 장소라고 폄하합니다(13:32). ②둘째, 그 옛날 전설적인 거인들인 네피림이 그 땅에 아낙 자손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전투를 벌였다가는 백전백패라는 주장입니다(13:31, 33).

(4)  10정탐꾼의 소견을 들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절망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장막으로 돌아가서 모든 백성들에게 전달합니다. 밤새도록 온 백성의 울음소리와 절규가 그치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불신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가는 길로 되돌아가자고 여론을 모으고 있습니다(14:4). 그 모습을 보고서 마침내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통분하여 나서고 있습니다(14:6a). 그와 동시에 여호수아의 친구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도 자신의 옷을 찢고 있습니다(14:6b).

(5)  그것은 자신의 몸을 대신하여 옷을 찢으면서 결사의 항전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 볼 수 있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과연 여호수와와 갈렙의 주장은 무엇일까요? 그 주장을 본문에 대한 구절연구에서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의하여 볼 점은 여호수아의 이름을 갈렙의 이름보다 모세가 앞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14:6).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여호수아의 지도자로서의 비중이 갈렙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①여호수아는 일찍이 이스라엘 전군을 지휘한 바가 있는 사령관입니다(17:9-10). ②그리고 모세의 시종입니다(33:11). ③나아가서 그는 젊지만 70인 장로 중의 한 사람이며 선지자입니다(11:24-25, 28). 그러므로 단지 무력이 출중한 갈렙보다는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14:7);

(1)  여호수아와 갈렙이 무엇보다도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두루 정탐한 가나안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입니다(14:7). 그러므로 10정탐꾼들이 주장하고 있는 거주민을 삼키는 땅”(13:32)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한 왜곡된 거짓말에 속지를 말라고 하는 당부입니다.

(2)  인생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이 때로는 좋아 보이지 아니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실은 헤브론과 네게브 광야을 지배하고 있는 혼혈민족 헷 족속 가운데에는 아낙 자손으로 불리는 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성읍은 넓고도 견고해 보입니다(13:28). 덩치가 왜소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그들을 쳐부수고 헤브론 땅을 차지할 수가 있을까요? 10정탐꾼들의 말대로 그것은 메뚜기 떼와 거인과의 전투와 같습니다(13:33). 한 마디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실망합니다.

(3)  그러나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전혀 신뢰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벽에 부딪힌 것과 같이 아찔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믿는 성도들의 아버지이시기에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전진을 한다면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간증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생활의 비결입니다.

셋째로,여호와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14:8);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음생활의 비결 두번째의 사항을 여기서 백성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선민들에게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백성들의 믿음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눈여겨보시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들의 믿음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것이라고 한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그 땅을 넉넉하게 얻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그러한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넷째로,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14:9);

(1)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막상 북벌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과 헤브론 성읍을 지배하고 있는 헷 족속은 무기체계가 뛰어나며 더구나 거인 족인 아낙 자손들이 선봉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의 2배나 되는 3m의 키를 자랑하고 있는 거구들입니다(삼상17:4, 훗날 블레셋의 가드 땅에 남아 있는 아낙 자손 골리앗의 키가 그 정도임, 11:22). 그들이 휘두르고 있는 칼과 창은 두렵기 그지 없습니다.

(2)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14:9a). 그 이유는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수호신과 우상들이 창조주 여호와에 의하여 이미 와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14:9b). 그러므로 그들은 그저 큰 고기덩어리에 불과한 육체의 소유자에 불과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위력에 눌려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을 그들이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4:9c). 여호수아와 갈렙의 주장이 사실일까요? 그것은 훗날 가나안 정복전쟁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3)  첫째, 길갈에서 요단 강을 건넌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으로 정탐꾼을 보냅니다(2:1).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서 다음과 같은 현지의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2:8-11).

(4)  둘째, 85세의 노장인 갈렙이 헤브론 땅과 네게브 광야를 자신이 정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청원하고 있습니다(14:6-11). 그의 믿음대로 그 땅이 갈렙에 의하여 정복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대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14:12-15).

결론적으로,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여호와를 불신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3가지의 믿음을 가지라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가장 좋은 것을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그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당장은 신통하지 아니하게 보여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불평불만을 하지 말고 여호와께서 주신다고 하는 그 약속의 땅이 가장 좋은 것인 줄 믿고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 주신다고 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때로는 여호와께서 주신다고 하는 영적인 축복이 세상적인 축복보다 못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현세적인 목숨보다 더 좋은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며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복음사역에 정진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성도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셋째, 이 세상에는 두려운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난관도 버티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완력이나 세상적인 꾀로 그들을 상대하려고 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만 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적들을 보호하던 수호신이나 우상들이 먼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깨어지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남게 되는 적들은 덩치만 컸지 고기덩어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음미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깨달음을 얻어 믿음생활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