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62강(민13:30-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30. 14:33

민수기 강해 제62(13:30-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14()

 

12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기에 갈렙이 나서고 있으며 또 그를 반대하는 정탐꾼들이 목소리를 높여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있는가?(13:30-33)

 

본문의 내용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입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①하나는,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의 발언과 행동을 분석하여 보면 그들이 어째서 그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극소수와 백성들의 여론에 편승하는 대다수로 구별이 됩니다. ②또 하나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여호와를 믿는 신앙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 12정탐꾼의 하나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대목에 대하여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13:30);

1)    모세의 글로 미루어 보면, 12정탐꾼의 보고를 들으면서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란합니다. 정탐꾼들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강해 보이고 전설상의 거인인 아낙 자손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라고 보고를 했기 때문입니다(13:28).

2)    정탐꾼들이 가지고 온 탐스러운 포도나무 열매와 석류 그리고 무화과 열매를 보고서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인 줄만 알았더니(13:26-27) 나중 보고를 듣고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흉포한 족속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커서 웅성웅성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3)    그 모습을 보고서 즉시 회중들에 대하여 정리정돈을 해야만 하는 자는 신정국가의 최고책임자인 모세입니다. 모세가 나서서 백성들이 우려하고 있는 그 문제에 대하여 차분하게 12정탐꾼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개인적인 정탐 결과에 기초하여 속 시원하게 필요한 설명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4)    따라서 백성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의 달콤한 약속에 그만 속았다는 원망과 이제는 너나없이 광야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라는 등 급격하게 불신앙과 절망감에 그리고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젊은 피를 가진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참지를 못하고 감히 나서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적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더 강하신 여호와를 믿고서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하여 모두 나서자고 하는 것입니다(13:30).

(2)  둘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주장이 다른 정탐꾼들의 반론에 의하여 백성들에게 먹히지를 않고 있습니다;

1)    이제는 모세 앞에서 정탐꾼들이 마구 떠들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서서 백성들에게 선동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입니다; ①하나는 백성들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를 즉시 간파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값이면 백성들 다수가 원하는 쪽으로 편승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세력을 얻는 방법입니다.

2)    ②또 하나는 백성들의 원망과 분노 앞에 모세가 무력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늙은 모세입니다. 그의 권력의 누수현상이 이미 발생하고 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 선장과 함께 타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백성들에게 영합하고 있는 10정탐꾼들의 주장이 다음과 같이 거침이 없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13:31).

3)    모세와 사령관들이 12정탐꾼들의 객관적인 정보를 모두 듣고나서 전략회의를 통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대부분의 정탐꾼들이 그러한 절차를 무시하고서 함부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단정적으로, 가나안의 원주민들과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가 약속한 땅이라고 하더라도 그 땅을 차지하고자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것은 천부장에 불과한 자신들의 분수를 한참 넘어서고 있는 발언입니다.

(3)  셋째, 백성들의 여론에 편승하게 된 10명의 정탐꾼들은 이제 아주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미 보고한 객관적인 정세보고를 완전히 뒤집는 발언까지 서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1)    그들의 발언은 마치 그 포도열매는 신 것이기에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여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발언이 다음과 같이 과장되고 너무나 주관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2-33).

2)    그 정도로 대단한 족속들이라고 한다면 지중해 연안에 가까운 변방 가나안 땅에 쫓겨와서 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애굽과 메소포타미아까지 정복하여 이미 대제국을 만들어서 살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요컨대, 그렇게 이치와 현실에 맞지 아니한 이야기를 백성들의 여론과 분위기에 아부하느라고 함부로 떠들고 있는 공명심이 강한 정탐꾼들이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 그 장면을 보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실까요?

1)    지금까지 수차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창조주 여호와이십니다(3:8, 17, 13:5, 33:3, 20:24).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의 자손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자 애굽의 황제인 바로까지 굴복시키신 여호와이십니다(2:24-25, 3:15-20, 12:29-38). 추격하는 애굽의 정예병들을 홍해에 수장시켜 버리신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14:26-31).

2)    광야생활에 있어서도 더위와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어 주십니다(13:21-22).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장정을 사용하여 황야의 무법자인 아말렉 족속의 기습도 물리치신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십니다(17:8-16). 광야에서도 240만명의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아니하도록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신 하나님이십니다(16:12-15).

3)    그런데 그 모든 사실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식간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불경스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그들 백성들을 치리하지 못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의 무능함도 돋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처리를 해야만 할까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제14장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13:30);

(1)  갈렙이라고 하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흔한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표기가 되고 있습니다(13:6).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는 그냥 갈렙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급히 적고 있는 이유는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의미입니다;

1)    12정탐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자기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두들 분노에 차서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기까지 왔더니 그것이 모두 장대한 가나안 원주민들의 밥으로 만들기 위한 술책이라고 하는 원망을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 퍼붓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통치자 모세와 60만 군대의 12사령관들이 참석하고 있는 그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만하게도 신정국가의 통치체제와 권위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분노한 그들의 안중에는 창조주 여호와의 존재나 그 전능하신 능력이 전혀 보이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모습을 보고서 즉시 진화작업에 나서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 모세와 아론 그리고 12사령관과 70인의 장로들입니다. 그들도 적들이 너무나 강하다고 하는 12정탐꾼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적으로 위기에 빠진 순간에 여호와께서는 젊은 장군 갈렙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13:30). 여호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갈렙이 갑자기 신체적인 열패감(劣敗感, 열등의식과 패배주의)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일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13:30).

(2)  그와 아주 흡사한 경우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훗날 다시 등장합니다. 초대 왕 사울의 시대 블레셋과의 전투 장면입니다;

1)    블레셋의 선봉장인 거인 장수 골리앗이 40일간이나 사울 왕의 진영을 모욕하고 자신과 싸울 자를 내보내라고 고함을 쳤으나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대적하고자 나서는 자가 없습니다(삼상17:10-11, 16). 무려 신장이 3m에 가까운 아낙 자손인 골리앗을 용력으로 싸워서 이길 장수가 이스라엘 진영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 참담한 모습을 보고서 청소년 다윗이 떨치고 일어납니다.

2)    그는 자신의 돌팔매 실력이나 용력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욕하고 있는 가드 출신 아낙 자손 골리앗의 모욕에 대하여 더 이상 참고서 듣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싶습니다.

3)    그 거룩한 분노로 그가 결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여기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13:30).

둘째로,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13:31);

(1)  14장의 말씀을 미리 참조하면 12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같은 뜻을 가진 자는 여호수아 뿐입니다(14:6-10). 그러므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이 열패감에 빠져버린 백성들과 한 마음이 되어 다음과 같이 갈렙의 말에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13:31). 풀이를 해보자면, 전쟁이란 쉬운 상대만을 골라서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는 지론입니다. 자기보다 강한 적과는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해야만 하는 상대라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여호와신앙은 이스라엘의 전쟁에 있어서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육체적으로 약한 상대하고만 싸우고자 하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이스라엘 60만 대군의 칼과 창으로 약한 적들을 무찌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면 됩니다. 가나안 땅이 아니더라도 잘 찾아 보면 중동지역에 그러한 약한 부족들의 주거지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는 주장이 10정탐꾼들의 입에서 발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세속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도 과연 괜찮을까요? 그 점에 대하여 모세의 민수기가 그 대답을 명쾌하게 해주고자 합니다.

셋째로,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13:32);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13:32a); 10정탐꾼들이 분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름을 끼얹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일간 12사람이 함께 정탐한 가나안 땅에 대하여 객관적인 보고에 충실하던 그들이(13:25-29) 삽시간에 백성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13:32a). 그것이 세상적으로는 인기에 영합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처세하는 자는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지지세력을 규합하여 득세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정치적인 계산이 반영되어 있는 무서운 진실의 왜곡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13:32).

(2)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13:32b); 10명의 정탐꾼들이 이구동성으로 악평하고 있는 가나안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증언은 여호와의 말씀과 정반대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가나안의 땅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하셨기 때문입니다(3:8, 17);

1)    이라고 하는 것은 목축을 하여 가축에게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젖이 흐르고 있는 땅은 가축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목초지가 있는 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라고 하는 것은 넓은 들판에 꽃이 많이 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좋은 날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벌들이 그 만개한 들판의 꽃에서 꿀을 많이 생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풀이 잘 자라고 꽃이 잘 자라며 날씨가 좋은 땅은 농사가 잘 되는 토지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서로가 얻고 싶어하는 땅입니다.

2)    반면에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은 아무리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개간해도 그 소출이 잘 나지 아니하는 박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만 들지 생산이 별로 안되니 그 주민들이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찾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약한 자의 재물을 노략질하고 약탈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를 사용하여 경작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불모지에서 약육강식의 삶만이 이루어지고 있는 땅을 일컬어서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가나안 땅이 과연 그러한 땅일까요? 물론 일부 지역에 있어서는 그러한 지역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10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전부 그러하다고 의도적으로 악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13:32b).

(3)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13:32c);

1)    가나안 땅에서 거인 족인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땅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그들은 혼혈민족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일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혼혈민족인 헷 족속이 지배하고 있는 헤브론 성읍에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습니다(23:2). 그리고 역시 혼혈 해양민족인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는 5개의 도시국가 가운데 3곳에 그들이 주로 살고 있습니다. 가드와 아스돗 그리고 가사 지역이라고 훗날 여호수아가 말하고 있습니다(11:22).

2)    그런데 10정탐꾼은 그러한 객관적인 사실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서 본 모든 백성은 키가 장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순수한 가나안 원주민들은 그렇게 키가 크지가 않습니다. 다만 잡종강세로 혼혈민족들이 키가 큽니다. 특히 신장이 장대하다고 하는 말은 거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은연중에 10정탐꾼들은 아낙 자손과 버금가는 자들이 가나안의 원주민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곳으로 향하도록 획책하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 주고자 하시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무슨 수를 사용해서라도 백성들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악한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자들입니다(6:12). 그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진실을 왜곡하고 혹세무민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로지 악한 영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열패주의에 빠져 있게 되면 그러한 악한 세력들이 준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3);

(1)  고대사회에 있어서 노아의 홍수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두가지 사실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1)    첫째, 홍수심판의 당하기 전의 인간사회가 혼혈로 말미암아 장대한 용사로 태어난 네피림이라고 하는 거인들이 지배한 사회라는 것입니다(6:4). 네피림은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장대하며 힘이 강한 자는 세상의 권력과 부 그리고 미인들을 모두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6:2-3). 그 반면에 육체적으로 왜소한 자는 네피림의 노예가 되고 착취의 대상이 될 따름입니다. 그러한 육체적인 지배구조에 반대를 하게 되면 무죄한 자의 피가 그 땅에 흘러 넘칠 따름입니다(6:11-13, 15:16, 왕하21:16). 

2)    둘째, 그러한 흉포한 사회는 결국 여호와의 홍수심판으로 말미암아 그 땅과 함께 멸망 가운데 들어가고 맙니다(6:3-7, 11-13). 그러므로 네피림이 득세를 하고 있는 그러한 말세에 살고 있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 종말이 홍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더 불행한 일입니다. 구원의 길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 노아의 방주입니다(6:8, 14-22). 그러나 그 방주를 100년 넘게 건조한다고 하는 것은 단축이 된 인간의 수명으로는 이제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6:3, 8:22). 따라서 그렇게 네피림이 통치하고 있는 땅에는 애초부터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는 것이 상책인 것입니다.

(2)  전설로만 듣고 있었던 그러한 네피림이 가나안 땅에 아낙 자손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0정탐꾼의 주장은 아무리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지 아니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메뚜기와 같이 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수가 많다고 하여 겁없이 거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함부로 들어가게 되면 뼈도 추리지를 못하고 모두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13:33).

(3)  그런데 10정탐꾼의 주장은 두가지 사실 때문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1)    하나는 네피림이 힘으로 다스리고 있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심판하시고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노아의 가족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9:18-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신론자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12:1-4).

2)    또 하나는 거인 족인 아낙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에게서 용장들이 삼손처럼 많이 나오게 하여 모두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13:3-5, 16:28-31). 실제로 40년 후에 노장 갈렙이 아낙 자손들을 물리치고 헤브론을 차지하게 됩니다(14:12-15). 그리고 훗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청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삼상17:45-51)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장수가운데 거인족을 죽인 용장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삼하21:16-22, 23:20-21).

결론적으로, 참으로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출애굽의 해방과 광야에서의 생존까지 가능하게 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그 전능하신 능력을 생각한다면 가나안 땅의 원주민과의 전쟁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명령을 내리신다고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서 사력을 다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전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러한 백성들의 여론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10명의 정탐꾼들의 파렴치한 모습과 객관적인 정보의 곡해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꾼의 술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자면 그러한 여론조작이나 정보의 왜곡은 극히 삼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러가지 측면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의 내용을 음미하시면서 현실과 자신을 깊이 성찰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