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63강(민14: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30. 14:35

민수기 강해 제63(14: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16()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망과 원망 속에 담겨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신의 내용은 무엇인가?(14:1-5)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찰했던 12정탐꾼 가운데 하나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며 거인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이미 약속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의지하여 북벌을 단행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3:30).

그러나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한 10정탐꾼들은 갈렙의 말에 강력하게 반발을 합니다(13:31, 14:6-9).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나안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혼혈민족인 헷 족속과 일부 거인 족인 아낙 자손들의 용력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전쟁에서 대패하여 전멸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러한 모험을 하고 싶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 속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원하고 있는 달콤한 말을 자신들의 정찰보고로 확인해준다면 여론은 자신들의 편이 됩니다(13:31-33). 그렇다면 600명이나 되는 천부장 가운데 자신들은 백성들의 지지로 더 큰 출세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지파에 있어서 군대의 차기 사령관은 자신들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네피림의 후예인 아낙 자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약하고 만만한 상대들이 살고 있는 땅을 골라서 정복전쟁을 벌인다면 요단 강 동편에서 자신들이 정착할 수 있는 좋은 땅을 차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며 안전한 길이라고 판단하고서 그들은 즉시 그렇게 입장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찰한 실제의 내용을 왜곡시켜 자신들이 처신하기에 좋도록 그렇게 백성들의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13:31-33).

10정탐꾼들이 과대 포장하여 백성들에게 심어준 공포의 누룩은 그 전파력이 대단합니다. 순식간에 이스라엘의 회중들이 절망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하게 되면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전멸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한 미래를 예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참으로 원망스럽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밤새도록 여호와를 비난하고 원망을 늘어놓으면서 마침내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14:1).  

절망과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고 있는 그날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불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원망과 불평의 말속에서 역설적으로 여호와신앙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불신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14:2-5). 그 가운데 드러나고 있는 극심한 불신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운 모세와 아론을 먼저 철저하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14:2).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지도자를 불신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불신하는 첫걸음입니다.

(2)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보다는 종살이를 하더라도 세상제국인 애굽에서의 삶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14:3). 그것은 영생의 천국보다는 유한한 육신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더 좋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3)  셋째, 여호와를 버리고 자신들의 의지로 세상제국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그 방면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지도자를 새로 세우자고 하는 것입니다(14:4). 그러므로 여호와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영적인 지도자가 백성들을 리더하고 있는지 그러하지를 아니하고 세상적으로 머리가 빨리 회전하는 자가 백성들을 리더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되면 그것이 신앙공동체인지 아니면 세상적인 공동체인지를 금방 판별할 수가 있게 됩니다.

(4)  넷째,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론 앞에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지도자들인 모세와 아론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온 회중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14:5);

1)    그것은 참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철저하게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백성들의 여론에 휩싸이고 무릎을 꿇을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그 역사하심을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통하여 이미 체험한 바가 있는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1년 남짓 전에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의 능력을 믿고서(14:21-22, 26-28) 다시 전진하자고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들어야만 합니다(17:8-16).

2)    그러나 그러한 조짐은 전혀 보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세와 아론을 대신하여 옷을 찢고 여호와의 뜻을 전하고자 담대하게 백성들의 앞으로 나서고 있습니다(14:6-9).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보시기에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영적인 리더십은 상당히 차세대 리더인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넘어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14:1-2);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14:1);

1)    모세는 온 회중’(whole congregation)백성’(peoples)을 여기서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미가 있는 구별입니다. 왜냐하면, 12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 대한 40일간의 탐지의 보고를 하는 자리에 240만명이나 되는 모든 백성들이 참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표자들이 그 자리에 참석을 하여 청취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한 자리에 같은 목적으로 모여 있는 자들이 바로 회중’(會衆)입니다. 그 보고가 끝나게 되면 그들 대표자들이 자신들의 족속과 가문에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경과를 설명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2)    12정탐꾼들의 보고 자리에 참석을 했던 회중들이 자신들의 족속들과 가문으로 돌아가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달한 내용은 12정탐꾼의 하나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한결같이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서 역설을 한 그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가나안 땅의 백성을 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엄청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고 있는 땅이 아닙니다. 농사를 피땀 흘려 지어도 그 열매를 얻기가 힘든 메마른 땅입니다. 더구나 힘센 아낙 자손들이 그 땅을 지배하면서 그 적은 소출마저 약탈해가고 마는 그러한 곳입니다. 그러한 박토를 얻겠다고 거인족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들의 멸망을 재촉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입니다”(13:31-33 의역).

3)    그와 같은 설명을 듣게 된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1년이 넘는 세월을 혹독한 광야의 시련을 견디면서 오로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복락을 누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한갓 일장춘몽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미래의 소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잠도 자지 아니하고 모두들 장막 안팎에서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14:1b). 그리고 절망과 원독에 찬 소리를 하늘을 향하여 퍼붓고 있습니다(14:1a).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14:2a);

1)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절망에 사로잡혀서 밤새도록 울면서 여호와를 원망하고 있는 그 소리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 내용을 12지파의 여러 족속과 가문의 대표들인 회중들이 영적인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14:2ab). 그 내용의 가장 첫머리는 백성들이 하나같이 그들을 애굽에서부터 잘못 인도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이 원망스럽다는 것입니다(14:2aa).

2)    모세의 그 기록은 하나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지도자를 원망한다는 것입니다”(14:2).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인 모세와 아론은 어차피 백성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원망을 듣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10번 잘해주고 상황이 여의치 못하여 한번 백성들의 요구를 속 시원하게 들어주지 못하게 되면 잘해준 것은 모두 간 곳이 없고 그저 못해준 그것 때문에 욕을 얻어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사실은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덕에 대하여 배은망덕하게 행동을 하고 있는 죄인들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정직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은 모세와 아론처럼 백성들로부터 억울한 욕을 얻어 먹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컨대, 자신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당하게 되는 시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기도 한 것입니다(5:11-12, 벧전3:17).

(3)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14:2b);

1)    모세와 아론의 귀에 차마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는 애매한 모함의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로 모세와 아론이 고센 땅에서 잘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찾아와서 허망한 약속으로 희망을 불어 넣어준 것이 혹세무민이라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하는 장미 빛 약속을 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2)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가 아니고 더구나 거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므로 그것은 정복할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그 땅을 점령하라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신다면 그것은 모두 그곳에 가서 죽으라고 하는 것이므로 차라리 애굽에서 그냥 살다가 죽게 되는 것이 훨씬 복이 된다는 논리입니다(14:2b).

둘째로,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3);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14:3a);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은 사실 복잡합니다. 일단은 악에 받혀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지만 그들은 내심 여호와의 약속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분석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2명 정탐꾼 가운데 10명이 그렇다고 강조하였으므로 백성들은 다수결에 의하여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믿고 의지했던 여호와 하나님께 철저하게 놀림을 당하고 속은 것입니다. 그것이 분하고 억울한 것입니다.

3)    둘째, 가나안 땅에는 거인 족인 아낙 자손들이 힘으로 지배를 하고 있다는 정찰 보고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으로 쳐들어 갔다가는 뼈도 추리지를 못할 것입니다. 장정들은 모두 거인들의 칼날에 목숨을 잃을 것이며 처자식들은 그들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14:3a).

4)    셋째, 그런데 지금까지 그러한 것처럼 모세와 아론은 또다시 여호와의 명령이며 약속이라고 강조하면서 백성들에게 무리하게 가나안 땅으로 진군을 하라고 지시할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와 아론의 생각을 사전에 꺾어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총 궐기하여 마치 횃불을 든 것처럼 모세와 아론의 지도노선을 완전히 배격하고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2)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3b); 모세와 아론의 지도노선을 완전히 뒤집어버리고 그들의 공로를 모두 지워버리는 방법은 출애굽부터 부정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의 지도노선을 반대하고 있는 세력들이 은밀하게 여론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는 명분을 퍼뜨리고 있습니다(14:3b). 그것은 말도 되지를 않는 주장이지만 당장 모세와 아론에게 속고 여호와께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섭섭한 마음에 그러한 억지주장이 그대로 먹히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14:4-5);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14:4);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영적인 권력과 정치적인 권력을 전부 독점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의 지도체제에 대하여 그동안 내심 불만을 지니고 있던 세력들이 지금 결코 놓쳐버릴 수가 없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그들은 이성을 잃고서 격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지휘관을 새로 세우고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이미 거쳐온 애굽으로 가는 길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무력으로 쉽게 점령할 수 있는 땅을 차지하자는 것입니다”(14:4 의역). 참으로 시의 적절하고 솔깃한 구체적인 대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 속에서 횃불 하나를 만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 그리고 그 뒤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일시 잊어버리고 그 제안에 따르고자 하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2)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14:5);

1)    어리석은 백성들이 정치꾼들의 농간에 놀아나서 정신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지도노선에 대하여 불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른 지휘관을 뽑아서 그에게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을 맡기고자 합니다. 졸지에 백성들로부터 불신임을 당하게 된 모세와 아론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백성들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온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여기서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14:5)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모세와 아론의 행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그렇지가 아니하다는 사실이 다음 문단에서 금방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받드는 지도자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와 같은 극악한 여호와 불신앙에 대하여 격분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패기가 있는 젊은 차세대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신 내세우고 계십니다(14:6-9).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친히 강림을 하시는 것입니다(14:10). 모세와 아론이 염려하고 있던 두려운 일이 마침내 발생하고 마는 것이 본문 다음의 내용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9:4-6). 광야생활을 통하여 믿음의 성숙을 이루도록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13:21-22, 15:22, 16:12-15, 30, 17:11-16).

구체적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게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식량으로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1년이 넘는 세월을 여호와의 보살핌과 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10정탐꾼들의 과장되고 왜곡이 된 보고를 듣고서 일시에 그들의 믿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속고 모세와 아론의 거짓말에 속았다고 하면서 여호와신앙을 버려버립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면서 모세와 아론 대신에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은망덕한 행동에 대하여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의 거룩하신 분노를 그들에게 드러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9:45-46, 2:13-17). 그저 백성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하여 그들 앞에 엎드릴 따름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지켜 보신 여호와 하나님의 처방과 심판이 이제부터 나타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단지 밤새도록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인 지도자를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 가운데서 여호와신앙을 버리는 그들의 불신앙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운 모세와 아론을 먼저 철저하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14:2).

(2)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보다는 종살이를 하더라도 세상제국인 애굽에서의 삶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14:3). 지독한 현세주의 사고방식입니다.

(3)  셋째, 여호와를 버리고 자신들의 의지로 세상제국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그 방면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지도자를 새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14:4).

요컨대, 하나님이 세운 영적인 지도자를 불신하는 행위, 현세 제일주의 사고방식, 세상적으로 머리 회전이 빠른 자를 지도자로 세우는 일 등이 모두 신앙생활에서 실족하고 불신앙으로 향하고 있는 위험 요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위의 3가지 위험요인에 대하여 깊은 성찰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