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66강(민14:13-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2. 12:23

민수기 강해 제66(14:13-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19()

 

모세의 가장 애절한 중보기도의 내용이 어떠한가?(14:13-19)

 

광야생활 40년을 통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용서를 위하여 여호와께 드린 중보의 기도 가운데 가장 애절한 간구가 두 번 있습니다; ①하나는 시내 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멋대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인 경우입니다(32:1-10). 그때 십계명을 어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모세가 여호와께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32:11-14, 31-32). ②또 하나는 가나안 땅을 고의적으로 나쁘게 평가하는 10정탐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여호와의 약속을 거짓말이라고 치부하면서 하나님을 철저하게 불신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 때입니다(13:31-14:10).

두 경우의 공통점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들 모두를 전멸시켜버리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32:10, 14:12). 따라서 본문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뜻을 돌이키기 위하여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간구의 내용이 애절하면서도 굉장히 논리가 정연합니다. 어떠한 논리로 구성이 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하시려고 하시는 일은 앞뒤가 맞지를 않는 것이라고 모세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애굽의 노예상태에 있는 언약의 자손들을 해방시켜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서 여호와를 잘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3:8, 17). 그런데 시내 광야와 가나안 남부 네게브 광야의 사이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멸시켜 버리신다고 하면 애굽의 백성들이나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여호와를 비웃을 것이라는 간구의 내용입니다(14:15-16). 그 이유는 막상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시키기는 하셨지만 가나안 땅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도중에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으로 그들이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4:13, 16).  

(2)  둘째, 유종의 미를 거두어 달라고 하는 모세의 설득입니다; 출애굽의 기적과 광야생활의 기적을 통하여 창조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이 온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240만명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낮에는 너무 덮고 밤에는 심히 추워서 생존 자체가 어렵고 위험하기 그지 없는 광야에서 1년 넘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광야 주변의 민족들이 그렇게 기적을 베푸시는 놀라운 여호와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14:14).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모두 쳐죽이실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전능하심과 놀라우신 은혜의 절정을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 가나안 땅 입성으로 온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14:17). 부디 그 점을 헤아려 달라고 하는 모세의 간구입니다.

(3)  셋째, 모세 자신이 믿고 있는 여호와는 그렇게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백성을 쳐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해주시는 고마우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모두들 믿고 있습니다(14:18-19).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광대하심을 다시 한번 보여 달라고 하는 모세의 간구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4)  전체적으로 볼 때, 모세의 중보기도의 내용이 진일보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시내 산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무조건 간절하게 매어 달리던 그때와 비교를 하게 되면 어떤 면에서 일종의 믿음의 여유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본문에서의 모세의 간구는 그 논리적인 설득력이 한층 돋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14:13-16);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14:13-14a); 모세가 여호와께 호소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보다도 출애굽의 사건과 광야에서의 일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양자관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 사실 때문입니다;

1)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애굽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신 바가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애굽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끝까지 인도하여 들이실지 아니면 도중에 포기하실 것인지를 눈 여겨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하여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친 광야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240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시내 광야, 미디안 광야, 바란 광야, 신 광야 등지에서 생존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오로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라고 주변의 모든 족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그 목적지인 가나안 땅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가 주변의 모든 이방 족속들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14:14b); 광야의 주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떠한 특혜를 베풀고 계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온 사방에 토픽으로 전해지고 있어 애굽의 백성들까지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14:14ba).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인 모세와는 대면하여 말씀을 나누신다는 것입니다(14:14bb).

2)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임재하여 계시는 동안에는 구름이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4:14bc).

3)    셋째,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진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광야의 뜨거운 빛과 열을 구름이 막아주고 밤의 혹독한 추위를 열기운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14:14bd).

(3)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14:15-16);

1)    이미 모세가 설명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일은 더 이상 양자관계가 아닙니다. 그동안 출애굽 사건과 광야에서의 삶을 통하여 애굽인들은 물론 광야 주변의 민족들 그리고 모든 중동사람들이 앞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지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분노를 참지 못하시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멸시켜 버리신다고 하면 모든 이해당사국들이 고소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능력을 폄하할 것이라고 모세가 직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14:16);

둘째로,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4:17-18);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14:17-18a);

1)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크신 권능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만이 창조주로서 이 세상에 선을 보일 수가 있는 큰 권능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악한 영들이 결코 지니고 있지 못한 능력입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보유하고 계시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바로 죽어가는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능력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그 수리와 치유가 가능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창조주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호와께 허물과 죄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14:17).

2)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백성으로 만들어 달라고 모세가 간청하고 있는데 여기서 모세가 여호와께 용서의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는 자의 범위는 주동자들이 아니라 군중심리에 휩싸인 모든 백성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대다수는 그저 10정탐꾼들이 고의로 가나안 땅을 악평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흥분하여 여호와의 뜻과 능력을 오해하고 불신하는 죄악을 저지른 잘못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긍휼과 인자로 백성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다시 한번 충성할 수 있는 길을 허락해 달라고 모세가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14:18a).

(2)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4:18b);

1)    모세가 이번 사건의 주모자와 주동자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처벌을 완곡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참으로 교묘합니다;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4:18b). 그들 책임 있는 극소수의 인물들에 대해서 자신이 용서를 바라고 간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2)    그러한 진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차제에 제거하고자 음모를 꾸민 자들을 색출하여 가나안 땅을 고의로 악평한 10정탐꾼들과 함께 일거에 처형을 하고 마시는 것입니다(14:36-37). 그러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여 모두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세력을 규합하여 고의적으로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을 전파한 누룩의 덩어리는 여호와 앞에서 제거의 대상인 것입니다.

셋째로,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시옵소서”(14:19);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14:19a); 모세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그리고 은혜 베푸심이 실로 광대하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비와 은혜로 모든 피조물들이 잘못을 용서 받고 지금도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심판과 처벌은 필요합니다. 주모자에 대한 처벌과 심판이 없이 물에 물타기 식으로 모두 용서를 하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 누가 여호와의 심판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래서 모세가 중보의 기도를 함에 있어서도 하나의 용서의 기준을 나름대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2)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시옵소서”(14:19b);

1)    모세가 진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용서의 범위가 참으로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못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주신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달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4:19b). 그렇다면 그 용서와 사면의 범위가 어느 정도일까요?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을 때를 참조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 3천명이 피를 흘렸습니다(32:28). 그 정도의 수준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2)    모세의 말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광야생활 가운데 많은 자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신 여호와이십니다(12:1-2, 14-16). 따라서 그 점까지 충분히 고려하셔서 희생자를 최소한으로 줄여 달라고 하는 중보의 기도입니다(14:19b). 그 결과 10정탐꾼을 위시한 주동자 극소수의 처벌로 국한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14:36-37).

결론적으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 두가지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는 믿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성도들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양자관계에 국한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성도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가 또 하나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성도의 하나님사랑이 사회적으로도 구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자신과 똑같은 창조물로 생각하고서 성도들이 여호와에 대한 그 사랑을 이웃에게도 그대로 실천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사람들은 성도의 하나님사랑이 별로 볼일이 없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모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옥석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전부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저 주동자들의 꾀임에 넘어가서 부화뇌동한 자들에 대해서는 크신 인자하심으로 긍휼히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잘못과 죄악을 사해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그 반면에 당시 모세를 제거하고자 음모를 꾸민 주모자들과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준 바가 있는 10정탐꾼들에 대해서는 형벌 받을 자의 본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가 있듯이,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옛날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 기도의 내용에 있어서도 논리적이고 굉장한 현실적인 타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내심을 읽고 있는 모세는 불신앙을 조장한 누룩의 덩어리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처벌을 내려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그들에게 전염이 되어서 주범이 아니라 종범으로 행동을 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과감하게 사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옥석을 구별하여 합당한 처벌과 용서를 병행해야만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세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여호와를 불신하는 자리에 주동자로 나서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낙인이 찍히게 되면 용서함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불신하는 악한 누룩이 되지 아니하여야 하며 만약 그러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한다면 즉시 자신의 잘못과 허물에 대하여 회개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리에 빨리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늘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