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28강(민6:9-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0. 09:54

민수기 강해 제28(6:9-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5(주일)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 나실인의 머리를 더럽히게 되면 지나간 나실인의 수련기간이 무효가 되는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그 몸을 다시 정결하게 하는 절차가 어떠한가?(6:9-12)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그 몸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특이한 피조물입니다(2:7). 그러므로 창조주의 생명의 기운이 그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몸을 여호와의 것으로 바친다고 하는 서원의 맹세를 하고서 거룩한 구별된 삶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나실인에게 있어서는 그 머리에 창조주의 생기가 넘치고 있습니다(6:2-5).

그런데 나실인이 서원의 기간을 거룩하게 지내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그 곁에서 악한 영의 방해가 기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실인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그의 곁에서 별안간 숨을 거두게 되는 경우입니다(6:9a). 그렇게 되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악한 영들의 영향력이 나실인에게 전염이 되어 오게 됩니다(8:2, 6:-7)). 그 결과 하나님의 생기로 충만해야만 하는 나실인의 머리에 육신의 연약함과 허망한 죽음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마는 것입니다(6:9b).

그렇다면 여호와께서는 나실인을 어떻게 다시 생명의 자리에 세우고 그 머리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그 주()의 안식일에 나실인의 머리털을 밀게 하는 것입니다(6:9). 이발을 하는 것은 본래 나실인이 서원한 기간을 모두 채웠을 때에 하는 행위입니다(6:13, 18, 18:18). 그런데 이제는 죽음의 슬픔과 허망한 기운에 사로잡혀 있는 정신자세를 다시 반듯하게 다잡고 여호와 앞에 바로 서기 위하여 그 결심과 맹세를 새로이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발을 함으로써 새로이 서원의 기간을 시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6:12).

(2)  둘째, 그 안식일 다음날에 가장 작은 제물 두가지 종류 중의 하나를 가지고 제사장을 찾아갑니다(6:10). 값이 싼 제물로서는 산비둘기 2마리가 있으며 그것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집비둘기 새끼 2마리를 바치도록 율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15:9, 12:8, 5:11, 2:24). 그러므로 나실인은 산비둘기 2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2마리를 가지고 제사장을 찾아가서 속죄제물과 번제물로 바칩니다(6:11). 그 작은 제사로 말미암아 머리 속이 다시 깨끗함을 받으며 그 죽음으로 인한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이제는 나실인이 새로이 서원의 기간을 시작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여호와께 드리는 의식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 방법이 1년된 숫양을 속건제물로 대신 바치는 것입니다(6:12a). 그 속건제사로 말미암아 오염이 된 지나간 서원기간은 모두가 무효가 되고 다시 거룩한 기간이 카운팅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6:12b).

(4)  넷째, 나실인이 자신의 몸을 한시적으로 여호와께 바치는 거룩한 기간을 모두 무사히 마치게 되면(6:13) 3마리의 양과 소제물 그리고 전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다양하게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속죄의 제사와 번제 그리고 화목 제사입니다(6:14-17). 그러한 절차에 대해서는 다음 번 강해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2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2마리를 가지고 회막 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6:9-10);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6:9a);

1)    갑자기 나실인의 곁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되는 나실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충격이 신경조직을 타고서 고스란히 나실인의 머리로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2)    그러면 그 동안 자신의 몸을 여호와께 바치는 거룩한 기간을 지내고 있던 나실인의 머리에 어떠한 충격이 가해지게 될까요? ①먼저 죽음의 공포가 전이되어 올 것입니다. ②그 다음에는 자신도 별수없이 저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허망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하게 됩니다. ③마지막으로 육신을 보전하고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크게 되살아나서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나실인의 영적인 삶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3)    참고로,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음을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람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1-25).

4)    모세의 시대는 주전 15세기이므로 아직 주후 1세기 초에 발생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나실인은 어떻게 하여 그 죽음의 두려움과 절망감을 떨쳐내고 다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그 머리 속에 꽉 채울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 방법이 이제 율법으로 그 다음 구절에서부터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2)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2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2마리를 가지고 회막 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6:9b-10);

1)    두가지의 응급조치가 마련이 되고 있습니다; ①첫째, 그 사건이 발생한 주(, week)의 처음 안식일에 머리털을 밀라고 하십니다(6:9b). ②둘째, 당장 값이 싼 제물이지만 산비둘기 2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2마리라도 들고서 안식일 다음날에 성막으로 제사장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6:10).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원칙적으로 나실인이 자신의 몸을 여호와께 바치기로 서원을 하고 거룩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그 기간 동안에는 머리털을 밀 수가 없습니다. 서원한 기간이 모두 끝나게 되어야 이발이 가능합니다(6:13, 18). 그런데 여기서는 머리털부터 밀라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거룩한 생활을 유지하고 정성을 기울인 것이 모두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당장 그 주의 안식일에 머리털부터 밀라고 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서원과 거룩함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3)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허망함 그리고 영적인 절망감이 나실인의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되었으므로 그것은 빨리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으로 몰아내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그 방법이 비록 지금까지의 공덕을 전부 무효로 돌리더라도 다시금 머리털을 밀고서 죄인의 심정으로 거룩하신 창조주 여호와 앞에 다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생의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4)    둘째, 다양한 제물의 종류에 대해서는 창세기 제15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15:9). 값이 비싼 암소부터 값이 싼 비둘기까지 나열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당장 구할 수 있는 것이 값이 싼 비둘기입니다.

5)    그러므로 나실인에게 산비둘기 2마리를 구하든지 그것도 곤란하면 당장 집비둘기 새끼 2마리라도 구해서 성막으로 제사장을 찾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털을 민 그 다음날에 바로 그렇게 조치를 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허망함 그리고 영적인 절망감을 모두 나실인의 머리 속에서부터 내어쫓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생명의 기운이 아니면 도저히 유한한 사람의 능력으로써는 치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말미암아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그날에 그의 머리를 성결하게 할 것이며”(6:11);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말미암아 얻은 죄를 속하고”(6:11a);

1)    시체로 말미암아 죽음의 세력이 나실인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나실인이 그만 육신적인 목숨에 연연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영적인 풍성함과 그 거룩한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서 먼저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번제도 드립니다. 특히 번제를 드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육신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자신을 태워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부디 새로운 영생의 능력으로 채워 주십시오. 그러한 소원을 담아서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비둘기를 대신 번제로 태워서 바칩니다”.

(2)  또 그는 그날에 그의 머리를 성결하게 할 것이며”(6:11b);

1)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를 않습니다. 제례의식(祭禮儀式)이란 형식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제례의 내용을 내면화(內面化)하는 작업이 정신적으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나아가서 그만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풍성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무시하고 외면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비둘기를 완전히 태워서 번제로 여호와께 바치면서 자신의 머리 속을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으로 채워야만 합니다(6:11b). 그와 같은 거룩한 인식(認識)과 의식(意識)이 반드시 머리 속에서부터 내면화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셋째로,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1년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6:1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1년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6:12a);

1)    속건제물로 제사를 드려서 여호와로부터 용서함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의 죄는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의 거룩한 성물을 무의식적으로 잘못 만진 경우입니다(5:15). 참고로, 웃사의 경우에는 고의로 성물을 만졌으므로 속건제사에 해당이 되지를 아니하고 즉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삼하6:6-8). ②또 하나는 부지중에 여호와의 계명을 범한 경우입니다(5:17).

2)    본문의 경우는 전자가 아니고 후자에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갑자기 곁에서 죽었는데 그 때문에 나실인의 머리에 깃들어 있는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6:9). 그것은 바로 그 앞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율법 곧 나실인의 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6:6-7).

3)    그 깊은 의미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9:59-60). 그와 같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당장 실천하지 아니하고 죽은 예법에 묶여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6:12b);

1)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1년된 숫양을 바쳐서 속건제를 드리고 있는 것은 지나간 기간을 전부 무효로 하고 새로 서원을 시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단락을 매듭짓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6:12b).

2)    여기서 다음 단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매듭을 짓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목숨에 연연하고 있는 약한 마음입니다. 그러한 육신적인 것들이 더 이상 나실인의 머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여호와의 능력으로 끊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서원을 하고 나실인으로서의 거룩한 삶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속건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몸을 여호와께 바쳐서 거룩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나실인의 결단과 행동을 악한 영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해공작이 심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나실인의 곁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목도하게 되면 나실인은 머리 속이 하얗게 비고 말 것입니다.

다음 순간,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허망함 그리고 영적인 절망감이 나실인의 머리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거룩하게 성별이 된 삶을 살아온 나실인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나실인이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과 의지로써는 그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서 나실인이 영적인 생명력을 회복하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는지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본문을 다시 묵상함으로써 성도님들의 믿음의 회복과 관련하여 많은 은혜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