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30강(민6:18-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1. 02:47

민수기 강해 제30(6:18-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 7()

 

나실인이 머리털을 밀고 두 손에 제물을 들고서 여호와 앞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6:18-21)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민수기의 내용은 제5장에서 아내의 간통을 밝히는 절차를 적고 있고 제6장에서는 나실인의 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여호와 앞에서 의심의 소제물 또는 기억의 소제물을 들고 서 있으며(5:18) 나실인은 화목의 제물을 손에 들고서 여호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6:19).

그렇지만 그 이유는 다릅니다; 아내의 경우에는 여호와의 정확한 판단을 구한다는 의미이지만 나실인의 경우에는 이제 환속을 하게 되었기에 앞으로 자신의 세상살이에 있어서도 구별된 거룩한 삶이 계속 이루어지도록 부디 여호와께서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달라고 하는 간구의 성격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실인은 자신의 머리털까지 깎고서 그것을 화목제사에서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6:18). 이어서 모세는 제사장의 축복에 관하여 후술까지 하고 있습니다(6:22-27).

그러한 의미들이 어떻게 본문에 녹아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나실인이란 여호와께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고 맹세를 하고서 비록 한시적이지만 레위인들처럼 전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서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그렇게 거룩하게 성별(聖別)한 기간이 끝나고 있습니다. 그때 나실인은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와 번제 그리고 화목의 제사를 드리면서 환속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6:13-17). 그런데 두가지 의미심장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자신의 머리털을 밀고서 그것을  화목의 제물과 함께 불사르고 있다는 것입니다(6:18). ②또 하나는 여호와 앞에 화목의 제물을 나실인이 들고서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장의 제사를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6:19-20). 그와 같은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2)  첫째로, 나실인이 머리를 깎는 것은 두가지의 경우입니다; ①하나는 갑자기 곁에서 누가 죽는 것을 보고서 그 머리 속이 오염이 되어 버린 경우입니다(6:9). ②또 하나는 환속을 앞두고서 화목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나실인이 이발을 하고서 그 머리털을 함께 태우는 것입니다(6:18).

1)    첫째, 누가 곁에서 죽는 것을 보고서 나실인의 머리가 오염이 되었다면 이발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섬김으로써 나실인의 머리 속에 영생의 소망과 기쁨이 충만하였는데 그것이 지금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척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서 나실인이 크게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갑자기 인생의 허무와 절망감이 머리 속에 엄습하여 믿음과 생명의 기운을 모두 쫓아내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죽음의 기운을 빨리 단절시키고 생명의 기운을 회복하며 믿음을 다시 강화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머리털을 밀고 나실인이 제물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6:9-12).

2)    둘째, 나실인이 환속을 위하여 화해의 제사를 드릴 때에 이발을 하고서 그 머리털을 태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지금까지 서원의 기간동안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도와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살이를 시작하고자 하오니 부디 앞으로도 거룩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6:21).

(3)  둘째로, 여호와 앞에 화목의 제물을 나실인이 들고서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장의 제사를 돕고 있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1)   남편으로부터 부정한 여인이라고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아내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녀가 여호와 앞에 들고 서 있는 그 소제물은 자신의 범죄를 생각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물입니다(5:18). 그러나 여기서 나실인이 환속을 하기 위하여 여호와 앞에 화해의 제물을 손에 들고서 서 있는 것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6:19). 그것은 한 마디로, 여호와의 축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2)   그동안 서원한 기간 동안에는 성막에서 레위인들처럼 여호와를 전적으로 섬겼기에 순전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합니다. 지금과는 다른 상황입니다. 세상살이 가운데 거룩한 삶을 온전히 유지하기가 힘이 듭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각별하신 보호하심이 필요합니다. 그 도우심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그 화해의 제물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6:19-2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6:18);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6:18a); 17절에서는 화목제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제18절에서는 나실인이 이발을 하는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번제와 속죄제를 모두 지낸 다음에는 나실인이 참여하는 화목제사가 있는데 그것을 위하여 나실인이 먼저 회막 문으로 가서 이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제사가 끝난 것이 아니므로 나실인의 환속의 절차가 모두 마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는 회막 문을 통하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막의 뜰에서 이발을 하는 것입니다(6:18a). 그것은 화목의 제사가 끝나면 단정한 머리와 옷차림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절차입니다. 그리고 화해의 제물의 하나로서 사람들이 일신상으로 바쳐야 되는 것이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2)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6:18b);

1)    겉으로 보면, 나실인이 환속을 위하여 이발한 후에 남겨진 그 머리털을 화목제물을 태우는 그 불에 함께 넣어 태우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상당히 깊은 것입니다. 단순하게 머리털을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머리털에는 나실인의 단단한 각오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지금까지 그 머리털을 밀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서원을 가지고 성막에서 나실인으로 일했습니다. 이제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실인의 법을 잊지 아니하고 성별된 삶을 속세에서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나실인의 그 결심을 여호와께서 아시고 도와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3)    그와 같은 의미를 뒷받침하고 있는 장면이 화해의 제물로 그 머리털을 태우고 있는 대목입니다(6:18b). 또한 그가 서원한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6:21)고 하는 구절도 그러한 경우에는 나실인의 율법을 준용하라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 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6:19-20);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6:19);

1)    나실인이 환속을 위한 제사를 드리면서 마지막으로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발을 한 자기 자신과 화목의 제물입니다. 화목의 제물로 사용이 되고 있는 숫양의 고기 가운데 제사장이 삶아 놓은 어깨부위를 나실인이 한 손에 들고 있습니다. 또 한 손에는 무교병과 무교전병을 하나씩 광주리에 담아서 들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풀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나실인이 이발을 하고 자신의 머리털을 먼저 화목제물로 태워서 바친 후에 스스로를 여호와 앞에 세워서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세상에 나아가지만 앞으로의 인생을 역시 여호와의 것으로 바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심을 이미 이발을 하고서 그 머리털을 화해의 제물로 태워서 바쳤으니 부디 그 뜻을 받아 달라는 것입니다.

3)    둘째, 나실인으로 서원을 하거나 화목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친 제물에 대해서는 제사장이 삶아서 주는 부위를 그 제사에 참여하는 백성이 특별히 먹을 수가 있습니다(7:16). 그러므로 그 나실인이 여호와의 성막에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제사장이 삶아서 그 부분을 그 손에 쥐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6:19).

4)    셋째, 이제 나실인은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 그 고기와 또 한 손에 들려 있는 무교병과 무교전병을 먹을 권리를 여호와로부터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 뜻은 앞으로 여호와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살이를 할 터이니 부디 일용할 양식을 얻도록 도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 들어 있는 한 대목과 같다고 하겠습니다(6:11).

(2)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 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6:20a); 그렇지만 제사장만이 화해의 제물 가운데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있습니다. 그것이 가슴부위와 넓적다리입니다(7:34). 그래서 모세는 그것을 성물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제사장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6:20a). 제사장은 그 부위를 여호와 앞에서 흔들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회막 문 안 거룩한 곳에서 먹는 것입니다(7:32-34, 6:26, 29:31-34).

(3)  그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6:20b); 그 삶은 고기는 나실인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이틀 동안이나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7:16). 그리고 이제는 거룩한 서원의 기간이 모두 끝났으므로 환속을 한 나실인은 그동안 금기시하고 있던(6:3) 포도주도 마실 수가 있습니다(6:20b). 그렇지만 포도주를 과음하여 취하게 되는 일은 여전히 삼가해야만 합니다(9:21). 그렇게 하지 아니하겠다고 이발도 하고 헌신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6:18-19, 21). 따라서 일단 나실인으로 살아본 경험을 가진 백성은 더 이상 세상살이를 함부로 할 수가 없으며 그 몸을 제멋대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훗날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셋째로,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6:21);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6:21a);

1)    나실인이 되기 위하여 바치는 제물은 속건제사에 사용할1년된 숫양입니다(6:12). 속건제사는 본래 두가지 용도입니다; ①하나는 성물에 부지중에 닿은 경우 그 허물을 사함 받기 위한 것입니다(5:15-16). ②또 하나는 여호와의 계명을 부지중에 범한 허물을 용서 받기 위한 것입니다(5:17-18).

2)    그 가운데 나실인이 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는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여호와의 계명을 모두 지키지 못하고 살아왔으므로 그 허물을 용서하시고 이제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정 기간 레위인처럼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오니 부디 성별(聖別, 거룩하게 구별됨)된 자로 받아 달라고 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3)    그에 비해서 서원한 기간이 끝나고 이제 나실인이 환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는 그 제물이 풍성합니다; ①첫째,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이 숫양 1마리와 암양 1마리입니다. 그 가운데 숫양은 번제로 드립니다. ②둘째, 화목제사를 위해서도 숫양 1마리를 바칩니다. ③셋째, 1광주리의 무교병 3종 세트를 소제물로 바치고 기타 전제물까지 드립니다.

4)    그렇게 환속을 할 때에 온갖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요? 그것은 앞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에 만나는 모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아무쪼록 나실인으로 살 때처럼 그렇게 생명의 기운이 충만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도와 달라고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2)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6:21b); 환속을 한 이후에도 나실인의 경험을 가진 자는 힘이 미치는 대로 제물을 준비하여 제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의 제사일까요? 그 옛날 나실인으로 성별된 삶을 살아가던 그때처럼 여호와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는 나실인이 되기 위하여 드린 속건제사 그리고 환속을 위하여 드린 속죄의 제사 및 화목의 제사를 준용하라고 모세가 여기서 규정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12지파의 사람들이 레위인처럼 한번 살아보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경험입니다. 전적으로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거룩하며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금방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환속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 마주칠 세상의 고난과 어려움이 걱정입니다. 따라서 나실인은 정성껏 속죄의 제물과 화목의 제물 그리고 소제물과 전제물을 준비하고 제사장에게 부탁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부디 앞으로의 세상살이에 있어서도 거룩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도와 달라고 하는 간구인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살이에서 영적으로 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제물을 준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옛날 나실인이 되고자 서원한 경우의 제사와 환속할 때에 드린 그 제사가 준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제사는 이제 영적인 깨달음과 헌신의 맹세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맹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성도들은 세상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복음전파의 삶을 왕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의 능력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전파의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