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27강(민6: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8. 21:00

민수기 강해 제27(6: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4()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은 무엇인가?(6:1-8)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은 성막에서 여호와를 직접 섬기는 의무를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레위인들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장자들과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레위인들과 그들의 가축으로 대신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여호와의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3:12-13, 41, 45).

그렇다면 레위인이 아니면 성막에서 여호와를 직접 섬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와 같이 나실인의 법을 따르게 되면 레위인처럼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장자나 남자들에게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들에게도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6:2). 그러한 제도를 마련하고 계시는 의미에 대하여 먼저 알아봅니다;

(1)  첫째로, 레위인들이 성막 봉사를 하고 있지만 그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생활을 영위해야만 한다고 하는 선민들의 의무사항에 있어서는 12지파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4-6).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나라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의무입니다. 비록 레위인들만이 성막에서 직접 여호와를 섬기는 일꾼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선민으로서의 의무를 벗어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 가운데 레위인처럼 살고 싶은 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들을 위하여 본문에서 나실인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6:1-8). 그 구체적인 내용은 훗날 단 지파 출신의 나실인 삼손의 경우에서도 그대로 엿볼 수가 있습니다(13:4-5). 그리고 나실인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선지자 사무엘의 경우와 세례 요한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1)    첫째,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와 한나 부부가 자신들의 아기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립니다(삼상1:1-2, 21-28). 그 결과 사무엘은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엘리의 집에서 제사장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삼상2:11).

2)    둘째,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로 태어난 세례 요한은 제사장 가문이므로 나실인과 같은 법으로 금욕생활을 하게 됩니다(1:15). 그에 그치지 아니하고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이 세상에 소개해야만 하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빈들로 나아가서 마치 엣세네 사람들처럼 고행을 하게 됩니다(1:16-17, 80, 3:4).

(3)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마지막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22:16-18).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때로부터 제자들은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여호와의 것으로 바치고자 맹세를 하고서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나실인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6:2-4). 그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나실인으로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6:1-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6:1-2a);

1)    선민이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직접 만나고 그 음성 듣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0:18-19). 그 이유는 혹시 잘못하여 여호와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 피조물인 사람들의 목숨이 끊어지고 육신이 녹아 버리기 때문입니다(33:20, 벧후3:10, 12). 따라서 모세에게 요청하여 홀로 여호와를 만나고 그 말씀을 자신들에게 전해주면 그것을 잘 지키겠다고 맹세를 합니다(5:23-27).

2)    그에 따라 모세가 혼자서 여호와 하나님을 홀로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잘 정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세가 알기 쉽게 정리를 하여 전해준 여호와의 말씀에 의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가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신정국가의 법률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24:2-8). 이제 그 율법에 또 하나가 추가가 되고 있습니다(6:1-2a).

(2)  남자나 여자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6:2b);

1)    출애굽 직후에 여호와께서는 애굽 땅에서 유월절 밤에 죽지 아니하고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생존하게 된 이스라엘의 모든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들은 전부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13:1-2, 3:13). 그런데 일년이 지나자 이스라엘 12지파에 군대를 만드시면서 장남들까지 전부 군복무를 하라고 하십니다(1:1-4, 45-46). 그리고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장남 대신에 성막에서 전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도록 하라고 지시하십니다(1:47-51, 3:6-12, 41-51). 그에 따라 레위인들만이 여호와의 것이 되고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3:6-12). 

2)    여호와를 성막에서 섬기며 살아가게 되는 레위인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일까요? 그냥 성막과 성물만을 운반하고 제사만을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성전에서의 찬양과 기타 물품 관리의 업무까지 도맡게 됩니다. 그리고 성막 주위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호하고 경비하는 임무까지 수행을 합니다. 그러한 모든 일을 여호와 보시기에 의롭게 행하기 위하여 그들은 거룩한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들의 거룩한 삶의 모습을 본문에서는 나실인의 삶의 모습으로 조명해주고 있습니다(6:2-8).

3)    레위인을 제외하고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만약 일정기간 여호와께 서원을 하고서 자신들도 레위인들처럼 여호와의 것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나실인의 법을 마련하고 계십니다(6:1-21). 그것은 12지파의 사람들이 일정기간 소원을 가지고 마치 레위인처럼 거룩하게 살아보고자 할 때에 적용이 되는 율법입니다. 하나 특이한 것은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그러한 서원을 하고서 여호와 보시기에 거룩하게 레위인처럼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6:2).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6:3-4);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6:3);

1)    포도주는 두가지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잔칫집에서 손님들을 대접하는 용도입니다. 그것은 가나에서의 잔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에서 잘 엿볼 수가 있습니다(2:7-10). ②또 하나는 마치 독주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의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는 포도주의 기능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께 일정 기간 자신의 몸을 바치고 거룩하게 살아감으로써 여호와께 맹세한 자신의 서원을 이루겠다고 하는 나실인은 포도주를 독주와 같은 용도로 사용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2)    포도주를 독주로 사용한 사례를 창세기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노아가족이 홍수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 후에 그들이 살게 된 땅은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닙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생겨서 기후가 불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개간하기에 힘이 듭니다. 농작물을 재배하기에는 더욱 힘이 듭니다. 특히 늙은 노아는 외롭기 그지 없습니다. 아내를 제외하고 모든 친구들이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만들어서 취하도록 마시고 있습니다(9:20-21). 마치 취생몽사(醉生夢死, 한평생 취하여 살다가 꿈과 같이 죽게 되는 인생)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노아가 그만 포도주로 만든 독주에 취하여 스스로 자손들을 축복하고 또한 저주하게 되는 큰 사건을 일으키고 마는 것입니다(9:21-27).

3)    나실인이 이왕 여호와 앞에 그 몸을 드리고 일정기간 거룩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아예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를 말라고 율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6:3).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할 때에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젖과 삶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상징하고 있는 꿀이 함께 생산이 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와 같이 생포도와 건포도는 삶의 기쁨과 기분을 좋게 하는 열매입니다. 그같은 윤택함과 세상적인 여유를 누리기를 포기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는데 정신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주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나 대속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는 포도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2:7-10, 26:27-28, 고전11:25-29). 그것은 독주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포도주, 삶의 달콤함을 맛보게 하는 생포노나 건포도와는 전혀 다른 용도이기 때문입니다.    

(2)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6:4);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는 일은 나실인이 서원을 하고 있는 기간 동안에는 금지입니다. 그와 더불어 포도나무에서 생산이 된 열매 가운데 그 씨와 포도껍질도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씨와 껍질을 제외한 포도열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을 포도주로 만들게 되면 아무래도 마시고 취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오래 두면 초가 되어 역시 독주처럼 변하고 맙니다. 따라서 그러한 용도로 사용이 되기가 쉽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아예 포도즙을 사용하여 잔치에서나 성찬식에 사용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6:5);

(1)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머리와 어깨가 가장 먼저 눈에 뜨입니다. 그래서 성소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대제사장의 예복에 있어서 모자와 관이 중요합니다. 또한 어깨에 붙이고 있는 견대와 견장이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holy to the Lord)이라고 하는 금패를 붙이고 있습니다(28:36-38). 그리고 양쪽 어깨에는 큰 호마노를 각각 견장에 매달고 있습니다. 각 호마노에는 각각 6지파의 이름을 도장처럼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28:8-12).

(2)  그와 같은 의미에서 제사장처럼 나실인의 머리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머리털을 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 나실인이 서원을 하고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주시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뜨거운 시선을 머리에 느끼고서 대제사장처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28:36-38).

2)    둘째, 그 머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실인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실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삼손에게 그 머리털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큰 힘을 주고 계시는 것과 같습니다(13:5, 16:16-20).

3)    따라서 사도행전 제18장을 살펴보면 로마시에서 서바나까지 제4차 선교를 하고자 서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원기간이 끝나자 겐그레아에서 비로소 이발을 하고 있는 대목을 볼 수가 있습니다(18:18, 19:21, 15:23-24).

넷째로,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6:6-7);

(1)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고 나실인의 서원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여호와께서는 나실인이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눈여겨 보십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시선이 그 사람의 머리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6:7b)고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성도들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있는 말씀이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를 지내도록 하고 너는 나의 제자가 되어 온세상에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9:59-60). ②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어야만 합니다(1:12-13). 혈통과 친지에 관한 일도 그 다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있는 그의 제자와 성도들이 바로 자신의 형제와 자매라고 말씀하십니다(8:19-21).

  다섯째로,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6:8);

(1)  성령님께서 그 심령 속에 임재를 하시고 성도들과 함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것은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과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시게 되면 거룩한 영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그것은 세상적으로 육신적인 삶만을 살아가고 있던 지난 날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듭난 삶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7). 그러한 거듭난 삶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3)  구약시대의 나실인들은 그들이 서원한 일정기간만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인 성도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가축인 어린양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의 십자가에서 영원한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의 거듭난 인생이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그에 따라 남은 인생을 나실인처럼 언제나 거룩하게 끝까지 복음의 일꾼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만민에게 전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리고자 하는 성도들은 육신적으로 이미 죽은 자의 시신을 수습하거나 오래 장례를 치르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역점을 두고서 부모와 형제 자매의 관계도 새로이 정립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각오로 마치 구약시대의 나실인처럼 서원과 맹세를 새로이 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강조하십니다. 그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9:59-62).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서 이제부터 성도들은 나실인이나 레위인보다 더욱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