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31강(민6:22-2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1. 02:48

민수기 강해 제31(6:22-2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 8()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고 있는 제사장들의 축복의 특징에 대하여(6:22-27);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 특히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을 본문에서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보아 세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그 위의 내용 곧 나실인의 환속과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 제사장의 축복입니다. 나실인들이 환속을 하게 되면 이제는 12지파에 소속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세상적인 삶을 평범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때에도 그들에게 나실인으로 거룩하게 성별된 삶을 살아가던 때에 베풀어 주신 여호와의 그 복과 보호하심을 그대로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여 나실인들이 정성껏 다양하게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6:13-21). 그와 관련하여 여기서는 제사장이 그들 나실인들에게 구체적인 축복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권리도 있지만 의무도 있습니다. 그들의 권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지켜 주시기를 언제나 간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들의 의무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의무사항에 대하여 조금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옛날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부름에 순종하여 이방인들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큰 복을 전파한 그 삶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선민으로 택하신 이유입니다(19:4-5). 따라서 출애굽기 제19장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마치 아브라함처럼 선지자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각자 살아가라고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19:6).

2)    그런데 본문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에 있어서는 그 대목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의무를 빼 버리고 선민으로서의 권리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공의의 하나님의 공정성에 맞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권리와 책무 사이의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무래도 집단 이기적인 선민사상에 의하여 모세오경이 편파적으로 해석이 되고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재편집이 되고 있는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여기에 수록이 되고 있는 제사장의 축복이란 마치 초대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도들의 축도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고린도후서 제13장 말미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축도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구체적인 축복의 내용을 가지고 그 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세기 제12장 앞부분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주시고 있는 축복과 보호하심의 언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축복이란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복과 지키심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6:24).

2)    둘째, 여호와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백성들에게 환하게 비추어주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사역과 대속의 고난의 희생을 통하여 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 깊은 은혜의 원천에 대하여 묵상을 해보면 그것은 사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계획하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얼굴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은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6:25)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나면 제자들은 이제 험한 세상에서 홀로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세상권력자들의 핍박과 세속적인 시험과 유혹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 가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자꾸만 마음속의 평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7:21-24). 따라서 성도들은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여 자신의 마음속 평강을 회복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7:25, 6:18). 그와 같은 깊숙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이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6:26) 입니다.

4)    넷째, 제사장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하게 되면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여호와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와 같은 확약(確約, 확실한 약속)이 다음과 같이 마지막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6:2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6:22-23); 여기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을 할 수 있도록 축도의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도들의 축도의 원형이 여기 본문에 실려 있는 제사장들의 축복의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라는 구절과 비교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한번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둘째로,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6:24);

(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고 있는 제사장의 축복의 첫 대목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제12장 앞부분에 실려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의 내용을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되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2:1-3);

(2)  ①첫째, 자손의 번성입니다. ②둘째, 아브라함의 이름의 창대함입니다. ③셋째,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큰 복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방 족속들에게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12:2-3). 그리고 위험한 이방 땅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을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12:3).

(3)  그와 같은 동일한 복이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을 통하여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제사장의 축복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누리자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그리고 중보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18:23-32).

셋째로,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6:25);

(1)  사도 바울은 그의 축도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고전13:13a)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라고 하는 용어가 여기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용어 대신에 여기서는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6:25)라고 적고 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1,400년 전이므로 그 표현이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뜻을 생각해보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11:26).

(2)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4:9-10).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얼굴을 보게 되면 피조물인 인간들은 모두 죽고 맙니다(33: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을 하셔서 인간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3)  그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람들은 안전하게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고 그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에서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그것이 참으로 큰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제사장은 그러한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가 백성들에게 함께 하기를 여기서 미리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6:26);

(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를 하십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이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5-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2)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려고 하면 세상의 환난과 핍박이 엄청날 것이므로 세상을 이기고 평안을 회복하기 위하여 반드시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그러므로 성도들이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 마음속 평강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의미에서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6:26)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얼굴이 진면목 그대로 성도들에게 향하게 되면 창조주의 얼굴을 본 자는 죽게 됩니다(33:20). 그러므로 그 얼굴을 이제는 성령님 안에서 영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가 죽음을 면하고 그 생기를 받아 믿음이 회복이 되면서 평강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섯째로,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6:27);

(1)  제사장들이 제마음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해보아야 그것은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기록된 바와 같이 여호와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행동하고 있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그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에게)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그 능력으로 복음사역을 하고자 하는 네게)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6:24-26)는 의미가 그 속에 영적으로 벌써(already)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따라서 제사장들이 위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백성들을 축복해야만 그 효력이 여호와에 의하여 발생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 축복을 명령하신 여호와께서 책임을 지시고 그대로 복을 받게 해주십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자신이 지시하신 말을 믿고서 백성들을 온전히 축복한 제사장들의 행위에 대하여 그 성취의 책임을 지시겠다는 언명입니다. 요컨대, 제사장의 축복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보증(保證, endorse)이 있는 것이므로 그것은 허망한 것이 아니고 실효성이 있는 강력한 축복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제사장의 축복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이제 환속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나실인들에게 앞으로 자신들의 지파로 돌아가서 세속적인 삶을 살더라도 항상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먼 훗날 초대교회 시대에 사도들이 행하고 있는 축도의 원형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살펴서 시행하고 있는 제사장의 축복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책임을 지시고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하는 보증의 문구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축복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성령님과 동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누리고 동시에 만민구원의 복을 온세상에 전하시는 성도님들의 거듭난 영적인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