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99강(마27:50-6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19. 22:54

마태복음 강해 제199(27:50-6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 5 27()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와 어머니 마리아가 경험하고 있는 절망과 변화 그리고 새로운 소망(27:50-63)

 

첫째로, 사도 마태와 사도 요한의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등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 골고다 언덕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였던 장소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세 번 달리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사도 요한)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19:25-26),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27:54-56), “(아리마대)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27:59-61). 알기 쉽게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처음에는 십자가에 죄 없이 매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절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특히 이종동생이며 막내제자인 사도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의 노후를 부탁할 수가 있었습니다(19:25-26).

(2)  그 다음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이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홀로 매달려 있는 사이에 그 참혹한 광경을 계속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가 없어서 그들이 조금씩 위치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후 3시 예수님이 막상 운명을 하시는 순간에는 그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습니다(27:55). 그 사실을 마태가 세심하게 기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27:50-56).

(3)  그런데 느닷없이 그 신분이 높은 산헤드린 대 공회의 구성원인 아리마대 요셉과 그의 친구 니고데모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27:57-60, 19:38-42). 로마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얻어서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인계 받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 처리를 한 다음에 세마포로 싸서 새 무덤에 안장합니다. 그곳으로 갈릴리의 여인들이 이동을 합니다. 그 무덤은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골고다 언덕 바위동산에 파서 만들어 놓은 비싼 묘실입니다(27:60). 무덤이 있는 그곳을 멀찍이서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여인들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입니다(27:61).

둘째로, 여인들이 십자가를 중심으로 위치이동을 함에 따라 동시에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훈을 얻기 위하여 그 사실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1)  처음에는 단지 사랑하는 스승 또는 아들을 잃어버린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나 갈릴리의 여인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복음사역에 동참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계자인 왕으로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인 큰 선지자로 이 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10:47, 1:49, 18:15). 그러므로 메시아인 예수는 당연히 그 옛날 다윗처럼 백성들을 조직하여 외세를 내쫓고 이스라엘 제국을 회복할 것입니다(20:21).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모세처럼 큰 이적을 베풀고 율법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그러한 추종자들의 기대를 예수님은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허무하게도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붙들려서 십자가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만 같습니다(27:46).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큰 절망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완전히 떠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9:25). 특히 여인들인 그들은 남자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체포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십자가 아래까지 다가갈 수 있는 운신(運身)의 자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 다음에는 십자가 임종과 더불어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자신들의 스승이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은 십자가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마병정인 백부장과 그 부하들이 먼저 예수님의 임종의 순간을 정확하게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27:50). 바로 그 순간에 실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진이 발생합니다(27:51). 둘째, 골고다 언덕 공동묘지의 무덤들이 열리고 있습니다(27:52). 그래서 이방인인 그들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27:54).  그들의 깨달음은 조금 떨어져서 그 현상을 지켜보고 있던 갈릴리 여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습니다(27:55-56). 무언가 이상합니다. 철저하게 무기력해 보였던 예수님의 죽음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제사의 방법임을(3:13-17) 어렴풋이 짐작하기를 시작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3)  또 그 다음에는 느닷없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그들은 정치적 종교적인 신변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의 십자가처형 이후의 상황변화를 주시하고 있는데 그 시선을 아랑곳하지를 아니하고서 그들은 용감하게 로마총독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그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27:57).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하여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사용하려고 많은 돈을 들여 완공해놓은 부자의 바위굴 묘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27:60).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마태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27:51).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고 있는 휘장 문이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의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져버렸다고 하는 사실은 산헤드린 대 공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첩보를 접하고서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먼저 행동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16-17). 이제 갈릴리에서 온 두 여인의 관심이 영적인 차원으로 더 높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4)  끝으로 사도 마태는 그 당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평소 예언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27:62-64). 그와 같은 삽화는 사실 예수님의 무덤을 지켜보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와 모친 마리아의 심중에 어떠한 생각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계속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있을 부활의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되고 있습니다(20:16-18).

  결론적으로, 십자가를 쳐다보게 되면 그 시선이 달라지기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의 고통과 고난의 모습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대속의 인생을 끝까지 감당한 결과 이 세상에 발생하고 있는 변화를 바라보게 됩니다. 교회의 발생과 기독교의 역사가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명감이 생깁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부활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27:54, 11:25-26).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들은 막달라 마리아나(27:56, 61, 20:18) 사도 바울처럼(고전15:8)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27:53) 남은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됩니다(3:10-12). 그와 같이 신앙인의 시선은 신앙의 성숙과 더불어 계속 위치이동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