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66강(마11:20-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3. 03:19

마태복음 강해 제66(11:20-2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12()

 

메시아의 사역 두 가지 곧 말씀사역과 이적사역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서 칭찬과 책망으로 갈라지고 있다(11:20-24, 8:5-13, 9:20-22, 5:24)

 

예수님 일행의 갈릴리 지역 복음사역의 내용을 사도 마태는 다음과 같이 한 구절로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그 내용을 다시 요약해보면,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두 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천국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말씀사역입니다. 둘째가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는 사역 곧 이적사역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일행이 2년 이상 갈릴리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면서 복음사역을 했는데 그 가운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그 지역을 거론하고 있는데 고라신과 벳새다’(11:21) 그리고 가버나움’(11:23) 등 세 곳입니다. 그들 도시와 고을에 있어서 도대체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는 단어가 본문 첫 머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11:20).

참고로, ‘권능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한 선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0:1). 그렇습니다. 축사(逐邪, Exorcism)와 치유의 권세와 능력을 예수님의 권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마태가 그렇게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적을 일으키는 사역또는 축약하여 이적사역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에는 그러한 권능의 행사 곧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b)고 사도 마태가 기술하고 있는 그러한 이적사역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또 하나의 사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9:35a)라고 묘사되고 있는 소위 말씀사역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사역이 더 중요하며 우선적인 것일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2년 이상 행하시면서 이적사역을 크게 일으키신 장소 이름이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등입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는 가버나움입니다. 그곳에 갈릴리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왕궁이 있습니다. 큰 회당이 있으며 갈릴리 지방의 산헤드린 공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관도 그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구가 있는 중심도시이기에 예수님이 그곳에서 크게 권능을 행사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헤롯 분봉 왕의 신하인 구사의 아들이 죽을 병에서 되살아난 곳이 가버나움입니다(4:46-54, 8:3).

가버나움의 근교도시가 고라신이며 벳새다입니다. 각각 가버나움에서 십 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고라신은 북쪽 교외이고 벳새다는 동쪽 교외의 마을입니다. 모두 가난하고 못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애정을 가지고 병든 자를 치유해주고 귀신을 쫓아내어 주었습니다. 특히 벳새다 출신 제자가 여러 명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 그리고 빌립 등 5명이나 됩니다(4:18-22, 1:44). 그래서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여 그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고 수 많은 주민들의 병과 장애를 고쳐주셨습니다(8:14-17). 한 마디로, 크게 혜택을 받은 동네입니다.  

둘째로, 그렇게 이적을 많이 경험한 도시와 마을의 주민들이 왜 회개를 하지 아니하고 있을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먼저 먹고 그 다음에 육체적인 양식을 먹어야만 하는데 그 순서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불치의 병과 장애를 치유해주시는 메시아의 사역에 그만 정신이 팔려버린 결과가 심각합니다. 당장 낫게 되는 치유의 현장에서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의 기억이 오래가지를 않습니다. 그 심령 속에 속사람 속에 그리고 영혼 깊숙하게 큰 깨달음으로 자리하고 있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기억이 퇴색하고나니 그저 자연적인 우연의 결과 치유가 당연히 이루어진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 점을 익히 아시고서 다음과 같이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창조주의 공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우주운행의 대원칙을 먼저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을 창조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주운행의 대원칙은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돌보고 생명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주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치를 모르고서 복음을 멀리한 채 치유와 축사의 권능만을 행사해주기를 원했으니 그 믿음이 온전할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부작용을 치유할 수가 있을까요? 사도 마태의 복음서 제8장과 제9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방법이 다음과 같이 이미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멀리서라도 한 말씀만 해주시면 그 병이 나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백부장은 인간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능력이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자신의 하인의 중풍병을 치유해줄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치유의 이적이 아니라 그 이적을 발생시키고 있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 말씀의 능력을 믿고 있는 백부장을 예수님이 크게 칭찬하고 있습니다(8:10).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더라도 자신의 지병인 혈루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9:20-22). 그녀는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주의 능력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실체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어 자신의 병을 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속뜻인 구원의 복음을 이미 믿고 있는 그녀이기에 예수님의 능력이 부지불식간에 그녀에게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5:30)”.

그렇다면, 말씀사역이 이적사역보다 더 중요하다고 예수님이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현세적인 치유와 목숨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현세에서 건강을 회복해주고 부귀영화의 복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죽고 나면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한시적인 가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무한한 가치를 가지는 것들입니다. 창조주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위의 말씀을 뒤집어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믿지 아니하게 되면 비록 예수님의 이적을 맛보고 치유의 은혜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영생을 얻지를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11: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