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30과(15:22-27) <OBS3-30>(손진길 작성)
[Q1]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 시나이 반도로 넘어온 240만 명 이상의 히브리 인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약속의 땅도 아니고 기름진 농토도 아니고 좋은 목축지도 아닌 이른바 “수르 광야”였음(출15:22). 그곳은 사흘 동안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 행군을 계속해도 마실 물조차 찾을 수 없는 절망의 땅이었음(15:22-23). 절망의 땅 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발견했음. 그 때 광야에 나타나신 구원의 하나님의 모습 그리고 그 생생한 교훈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백성들에게도 절실함. 지난 1960년대부터 온 국민이 오로지 경제발전, 국가발전에만 매달려서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 날 한국민들은 영적으로 광야의 황폐함을 경험하고 있음. 물질적인 가치가 영적인 가치까지 좌지우지하는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 한국 사람들은 살고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성도들은 영적인 불모지 북녘 땅을 말씀으로 선교해야 하는 역사적인 책무까지 떠안고 있음.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국가들과의 경제적 이념적인 무한경쟁의 와중에서도 그들 공산권 종주국에 복음을 계속 전하고 교회를 심어야만 한다는 절실함이 있는 것임. 21세기가 시작되고 벌써 10여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국내외의 한국 사람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인도받는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본문내용에 내포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각적으로 집중 묵상해보고자 함. 먼저, 하나님께서 홍해 부근 에담 광야 길에 이어(13:18) 다시 수르 광야 길로 백성을 인도하신 의도는 무엇인가?
· 출애굽의 목적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섬긴 후(출3:12) 계속 행진하여 궁극적으로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는 것임(3:8, 17). 그렇지만 약속의 땅에 이르는 길은 비옥한 해변길이 아니고 광야의 길이었음. 그 이유는 광야를 통과하면서 바람소리와 굶주림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구원의 메시지를 뼛속 깊이 새기지 아니하면 장차 풍요로운 약속의 땅에서 그 윤택함과 안락함 가운데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임.
· 모세 역시 개인적으로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기까지(3:1, 4) 아라비아 반도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디안 광야에서 지난 40년간 양치기 생활을 한 바 있음(7:7, 행7:23, 30). 따라서 모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기름진 나일 강변이 아니고 바로 왕궁도 아니며 좋은 목축지가 있는 고센 땅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음. 즉, 인생의 광야 길을 걷고 있다면 그 길은 하나님을 만나는 첩경(捷徑)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임.
[Q2] 광야길이 하나님 만나도록 준비하는 길이 되는 3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 첫째로, 광야 길을 걷고 있는 자는 세상에서 얻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거나 떠나있는 자이기 때문임(출2;15, 22). 광야에서는 자신의 땅도 없고, 명예와 권세도 없고, 도리어 생존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임. 오로지 남은 것은 세상 노예에서 겨우 벗어난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① 생존권, ② 하나님 모시는 방법, ③ 약속된 땅에 이르는 은혜의 갈급함 뿐인 것임.
· 둘째로,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은 물질이나 세상적 권력관계가 아님. 오로지 발가벗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광야길이 중요한 것임(출3:5 롬7:24, 9;15).
· 셋째로, 광야 길을 계속 걸을 수만 있다면 그 인생은 천성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임(히11:16). 광야에서는 땅차지 “제로섬” 게임보다는 이(異)민족과 함께 잘사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을 것임(롬3:29).
[Q3] 생존권을 보장하시는 하나님, ‘마라’의 쓴 물(출15:23)을 고치시면서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
· 인간이 마실 수 없는 ‘마라’의 쓴 물을 마실 수 있는 생수로 바꾸심으로 백성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출15:25).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모세가 나뭇가지 하나를 ‘마라’의 쓴 물에 던져 넣자 물이 달게 변한 것임.
· 그때 주신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개인적으로) 말씀을 청종하며 의를 행함이 있고, (집단적으로) 계명의 취지를 이해하고 규례지킴이 있으면 재앙(질병)을 면하고, (생존위협이 있으면) 이를 치유할 것임”을 천명한 것임(출15:26). 그것이 바로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의 선언인 것임.
[Q4] 샘물 열둘과 종려나무 칠십 주가 있는 오아시스 “엘림”은 언제 나타났는가?
· 마실 물과 과일이 풍성한(‘12’와 ‘70’이란 수는 많다, 충분히 많다는 뜻임) 오아시스에 도달할 때까지 ① 수르 광야길 3일과 ② 목마름 그러나 마시지 못하는 마라의 쓴 물이 있었고 ③ 특히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율법) 선포가 있었음. 따라서 오아시스는 하나님말씀 따라 의의 길을 걷는 인생이 맛보는 안식이라고 볼 수 있음.
[Q5] 궁극적 오아시스 가나안 땅에 이를 때까지 “의인 만들기”를 계속하실 하나님.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가?
· ‘의’(義)의 개념은 다음 2가지로 볼 수 있음; ① 하나님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의) 믿고(믿음의 의) 따름(동행), ②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은 만큼(빚진 자) 다른 사람을 대접한다는 것임(섬김과 희생).
· 따라서 출애굽 백성이 얻은 ① 노예해방, ② 전쟁종식, ③ 생존권보장(마실 것, 먹을 것, 살 땅)을 가나안 원주민에게도 똑같이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임. 즉 원주민들을 다 같은 사람으로 대접해주며 함께 공존공영(共存共榮) 하는 것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목표라고 할 수 있음. 다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에(창15:16), 곧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신앙을 떠나 있는 그들이기에 장차 회개하고서 하나님께 돌아올 때까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타향에서 떠돌이로 살게 될 것임.
· 그 이치는 선민에게도 동일함. 거룩한 백성이 타락하여 제사장 나라로서의 구실을 못하게 되면 예루살렘이 망하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이방 땅에서 유리하게 될 것임. 그것을 말하고 있는 모세의 예언이 다음과 같음; “그 때에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야훼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야훼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야훼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야훼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신29: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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